〈 147화 〉Chapter 28. 새 딜러. (3)
바바라는 평일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했다. 단체 훈련이라는 게 정말 이렇게나 지독한 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 무서운 건, 이렇게 지독하게 고생하고도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다는 거ㅡ. 힐러가 존재하는 이상, 영광의 상처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녀는 왠지 이게 끝없는 고문을 받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팔이 한 번 뚝 부러지면 그때만 아프고 말겠지만, 낫고 부러지고를 계속 반복하니까 진짜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걸 수개월 동안 묵묵히 감내해 온 하나 언니가 존경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고생스러운 평일을 보내고, 드디어 평화로운 첫 주말을 맞이했다.
- 주말은 네 하고 싶은 거 맘대루 해. 놀고 싶으면 놀고, 자고 싶으면 자. 그게 우리팀 규칙이야!
그래서인지 팀하우스의 주말 아침은 매우 고요했다. 늘 일찍 일어나 훈련 갈 준비를 하느라 시끌벅적한 평일하고는 딴판이었다. 그녀는 침대에 비비적거리며 이 느긋한 여유를 만끽했다.
…어젠 진짜 장난 아니었어.
어젠 말 그대로 진짜 불타는 금요일 밤이었다. 하나 씨는 정말 서너 시간 동안 앙앙 교성을 터트렸다. 옆에서 쉬지 않고 그런 짓을 하는데, 바바라가 멀쩡히 잠을 잘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참다 못 한 그녀도 결국 자위를 또 했다. …살면서 5일 연속으로 자위를 해 본 적은 결단코 처음이었다.
두 사람…, 정말 성욕이 대단하네.
솔직히 그녀는 가만히 듣고만 있기가 쉽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나이는, 마치 인화성 물질처럼 뜨거운 걸 갖다 대기만 해도 활활 타오르는 시기였다. 옆에서 그 뜨거운 신음이 흐르는데, 그녀가 불 붙지 않고 어떻게 배기랴ㅡ.
성적 호기심도, 성욕도 왕성한 때였다. …사실 많이 궁금했다. 남녀가 그걸 하면 기분이 어떨까, 하고. 특히 요즘은 더더욱. 그 친절하고 착한 하나 언니가 저렇게까지 앙앙 교성을 터트리는데, 궁금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한 바바라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또 슬그머니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뜨니까, 오전 10시가 좀 넘었다. 그새 또 3시간을 푹 자 버렸다.
바바라는 하품을 쩍 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간단히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갔다. 재난 뉴스를 시청하면서 호롭 커피를 마시고 있는 쿰바 씨가 보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그래.”
그는 좀 무뚝뚝하고 사납게 생겼지만, 생각보다 성질은 온순했다. 사실 부딪힐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옳았다. 가드라는 것 외엔 공통 분모가 없어서. 물론 셀라 씨 역시.
“일어났어?”
밤새 그렇게 시달리고도 하나 씨는 바바라보다 먼저 일어나 있었다. 요부처럼 앙앙 야한 신음을 터트리던 그녀는 이제 친절하고 성스러운 웃음을 달고 있었다. 솔직히 잘 매치가 되지 않았다. 낮의 언니와 밤의 언니는.
“토스트 구워 줄까?”
“아뇨, 제가 할게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아냐, 내가 해 줄게. 나 요리하는 거 좋아해.”
바바라는 하나 언니처럼 천성이 착한 사람은 못 봤다. 그래, 이런 언니가 강준 팀장님 같은 분을 만나야 세상이 공평하지ㅡ.
마침 방에서 강준이 나왔다. 어머, 팀장님ㅡ. 토스트를 굽던 하나 씨가 자상하게 그를 불렀다. 바바라는 잠깐 하나 언니의 눈을 봤다.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이었다. 애인이 아니고서야 감히 나올 수 없는 그것이었다.
“바바라.”
“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잠깐 미궁으로 들어갈 거야. 너, 박하나, 혜미,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
겨우 네 명만? 바바라는 강준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 그렇게 네 명만요?”
“응, 빨리 레벨 업 해서 각성해야지. 일단 그게 급선무야.”
강준은 하나 씨가 내민 접시를 받아 식탁에 앉았다. 그 소릴 들은 쿰바가 고개를 돌렸다.
“대장, 그럼 난?”
“넌 알아서 개인 훈련해. 노닥거리지 말고.”
“알았어. 고기 사 먹어도 돼?”
“맘대로 해.”
고작 그걸로 쿰바는 만족했다. 사나운 오거의 본성은 강준에게 맞고 살다 보니까 잔뜩 수축해 있었다. 어차피 1인자의 자리는 영영 엄두도 못 내는 처지라, 이제 배불리 먹으려는 본성만 남아 있는 꼴이었다.
원래 독립하지 못하는 오거의 운명이 보통 그러했다.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아니면 충성하면서 수그리고 살 거나….
그래도 그는 형편이 나았다. 언제든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또 짝짓기 할 수 있는 암컷도 있으니까.
바바라는 토스트가 담긴 접시가 앞에 놓였는데도 얼른 집어먹지 못 할 정도로 혼란스러워했다. 아무리 그래도 달랑 4명으로 미궁에 간다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솔직한 말로, 하나 씨와 바바라는 팀원들 중에서 가장 급이 떨어지지 않나ㅡ!
“그럼 어떻게 준비할까요?”
그러나 똑같이 그 얘길 들은 하나 씨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렇게 물었다.
“나중에 쯔쉬가 알려 줄 거야.”
“네.”
이제 이적한 지 1주도 안 된 신입은 팀장 앞에서 대놓고 안 된다, 못 한다, 그런 소리를 하기가 민망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선언을 한 강준은 토스트 한 장을 싹 먹어치우고 쯔쉬 방으로 건너갔다.
가만히 앉아 있던 바바라는 팀장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하나 언니에게 이 속사정을 털어놨다.
“아, 걱정 된다구?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하나 씨는 바바라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해 보고 그런 걱정이 들 수 있겠다 싶었다. 강준을 잘 모른다면 누구라도 그러하리라.
“괜찮을까요? …전 크게 도움도 안 될 텐데.”
“걱정 마. 정말이야.”
물론 그 말만 듣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겠나ㅡ! 믿음이 그리 돈독한 사이도 아니고….
그녀에게 미궁이란 늘 죽음의 공포 속에서 덜덜 떨어야 하는 곳이었다. 실제로 진짜 죽을 뻔한 적도 몇 번 겪기도 했고.
그런 곳을 달랑 4명만 간다? 초짜가 둘이나 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없었다.
“난 어떻게 설명해 줄 수가 없어. 그냥 믿으라는 말 밖에 못 하겠는데…. 강준 씨가 대단한 건 너도 알지 않아? 조직에도 소문이 쫙 퍼졌을 거고.”
바바라는 하나 씨의 믿음이 거의 광적이라는 걸보고 좀 놀랬다. 아무리 제 애인이지만 저렇게까지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그렇게 평화로웠던 토요일 낮은, 걱정으로 버무려진 채 지나갔다.
저녁 노을이 질 때쯤, 쯔쉬가 바바라의 방으로 들어왔다. 월요일에 계획된 미궁 탐사 설명을 위해.
그녀는 이것 저것 준비할 것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짤막한 계획까지. 정말 꼼꼼한 사람이었다.
“저, 언니.”
“음?”
“정말 괜찮을까요? …전 거의 도움이 안 될 텐데요. 그리고 혜미 언니랑 하나 언닌데….”
우리들 만으로 미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 하는 걱정스런 물음이었다. 그리고, 그걸 들은 쯔쉬는 정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안 해도 돼. 니가 죽을 일은 없어. 넌 그냥 팀장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알았지? 얼른 1차 각성부터 해야 하니까.”
바바라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건 정말 가슴에서 우러나는 믿음이었다. 그녀는 어떻게이럴 수 있나 싶었다. …심지어 그녀는 애인도 아닌데!
쯔쉬가 나가고, 바바라는 혹시나 해서 혜미 언니한테도 그렇게 물어봤다.
“걱정 마, 동생. 선배님 진짜 강하니까. 그리고 나도 있잖아! 절대 죽을 일 없어.”
“그치만…, 미궁이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고….”
“하유, 넌 그냥 팀장님 말씀만 잘 들어, 응? 그럼 다 잘 돼. 알았지?”
“…네에.”
혜미 방을 나온 바바라의 머리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졌다.
어떡하지, 어떡하지ㅡ.
팀장님과 면담이라도 한 번 하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오전 중에 어디론가 떠났다. 그리고 내일 온다고 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평일이나 주말이나 여전했다. 이번엔 신음이 아니라 걱정 때문에.
그렇게 걱정으로 가득한 주말이 순식간에 지났다.
바바라는 월요일 새벽 4시에 어버버 일어나 빠르게 탐사 준비를 마쳤다.
아침 식사는 쯔쉬가 직접 준비했다. 탐사를 떠날 4명은 든든히 위장을 채우고 짐가방을 하나씩 멘 뒤에 골목길에 서 있는 밴에 올라탔다.
이때 처음 만난 강 매니저와 바바라가 첫 인사를 나눴다.
“이분이 새 팀원이세요?”
“네, 바바라 올슨이라고 합니다.”
“매니저 강소미예요. 잘 부탁해요.”
와아ㅡ. 이런 고급 밴을 타 본 적은 처음이라, 바바라는 잠깐 걱정도 잊고 이 부드러운 승차감에 빠졌다. 다시금 강준팀으로 이적한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가, 또 미궁 탐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차 안은 미궁으로 가는 동안 고요했다. 바바라는 팀원들이 차라리 시끌벅적 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라서.
1시간 정도 달린 밴은 39구역 미궁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짐가방 하나씩만 메고차에서 내렸다. 어깨가 꽤 묵직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다들ㅡ.”
강 매니저는 해맑게 웃으면서 그렇게 손을 흔들었다. 바바라는 점점 멀어지는 강소미를 자꾸 뒤돌아봤다.
…무사히 나올 수 있을까.
그들은 곧 미궁 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대기소를 지나, 미궁으로 진입했다. 램프불은 강준이 들었다.
지독하게 추운 공기가 후욱 불어 바바라의 뺨을 훑었다. 살갗이 얼 것 같았다.
비록 미궁 탐사가 처음은 아니지만, 바바라는 미궁에 들어갈 때마다 늘 처음처럼 두려웠다. 지독히 깜깜한 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뭐가 확 튀어나올 줄 몰라서. 그녀는 그런 공포를 즐기는 사람 아니고서는, 다 자기랑 비슷한 심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후욱, 후욱ㅡ.
추위와 공포에 살이 바짝 얼었다. 걸으면서 열이 생기긴 했지만, 지독한 추위에 금세 사그라들었다. …갑자기 지구가 너무나 그리웠다.
강준은 거침없이 척척 걸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조심하던 전 팀장님과는 행동거지가 좀 달랐다. 그는 미궁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위험한 곳이라고 늘 당부했었다. …그녀는 그걸 경험 차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강준은 젊으니 혈기가 넘친다고….
진행 속도는 빨랐다. 그들은 순식간에 1지역을 통과해 2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곳도 당일치기 구간이라 강준은 얼른 통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족히 3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걸었다. 바바라는 벌써 숨이 헉헉 찼다. 체력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쉬자.”
첫 휴식은 정말 달콤했다. 바바라는 깔개에 앉아서 말도 못 하고 물만 꿀꺽 삼켰다. 그러나 팀원들은 아직도 거뜬해 보였다.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움직이자.”
겨우 10분 쉬고 강준은 다시 움직일 것을 명했다. 바바라는 끄응, 하고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대열을 맞췄다. 그들은 다시 탐사를 속행했다.
그렇게 한참 걷다가, 드디어 첫 괴수와 맞닥뜨렸다. 앗ㅡ. 바바라는 얼른 짐가방을 풀어 던지고 위치를 잡았다. 하나 씨 바로 옆에.
털 한 올 없이 검은 살이 맨들맨들한, 개처럼 생긴 괴수였다. 눈알이 시뻘겋고, 크르르 우는 이빨도 날카로워 보였다. 물리면 팔다리 하나 뜯기는 건 일도 아닐 듯했다.
“훈련대로만 해!”
강준은 나서지 않았다. 바바라는 깜짝 놀랬다. 셋이서 이놈을 어떻게 상대하라고ㅡ! 바바라는 자신이 딜러로서 충분한 역할이 되어 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어라 겁먹은 소리를 외치기도 전에 괴수가 먼저 덤볐다. 하나 씨는 얼른 방패로 놈의 앞을 가로막으며 어그로를 끌었다. 바바라는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돌아 방패로 밀어치기를 시전했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애초에 그 정도로 놈을 죽일 파괴력이 나오지 않았다. 놈의 앞발이 바바라를 후려쳤다.
ㅡㅡ!
바바라는 부웅 날았다. 그리고 훈련실의 고무바닥이 아니라 돌바닥에 바로 처박혔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피도 나는 것 같고.
“아아악!”
하나 씨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나 강준은 계속 방관하고만 있었다. 그녀는, 이제 진짜 도와줘야 하는데, 하고 급한 마음이 생겼다.
괴수의 발톱이 그녀의 왼팔을 긁었다. 그대로 살점이 뚜욱 떨어져 나가면서 허연 뼈가 드러났다.
“아악!”
그래도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그동안 강도 센 훈련을 받아온 결과였다. 혜미의 힐이 다친 왼팔을 바로 고쳤다. 강준은 이 정도로 만족했다. 쓰러지지 않았으면 됐다.
그는 그대로 괴수의 대가리를 단칼에 썩둑 잘랐다. 강준은 바닥에 버둥거리는 바바라를 일으켜 세우고 뺨을 처얼썩 때렸다. 넋이 나간 눈빛이었다.
“바바라, 다 죽이고 싶어?! 여긴 훈련실이 아니라 미궁이야! 실수는 용납 못 해! 고통은 이겨내! 어떻게든 이겨내! 그래야 모두가 산다. 알았어?!”
“네, 네에….”
강준은 그녀의 면전에다 대고 고함을 질렀다.
바바라는 붉어진 뺨을 손바닥으로 쥐고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울지 마! 울기만 해 봐.”
“안 울겠습니다!”
“근성을 보여, 바바라. 네 가치를 증명하라고. 알았어?!”
“알겠습니다아악!”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악을 썼다.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렀지만,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
돌아서는 강준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 생각보다 근성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하나 씨였다면, 벌써 엉엉 울었을 텐데.
그래, 이런 악바리도 하나 있어야지.
그는 3일 동안 진짜 험하게 굴려야지, 하고 못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