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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7화 〉Chapter 21. 환상 미궁. (8) (267/448)



〈 267화 〉Chapter 21. 환상 미궁. (8)

노사부의 추정 레벨은 450 이상. 그러나, 환상이 그를 똑같이 복제할  있을 리는 없을 테니, 수준은 훨씬 떨어지겠지.


물론 상대가 실제가 아니란 걸 알아도, 강준은 살짝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그가 알기론 인간들 중에서 태극신검의 계승자인 노사부, 검제(劍帝) 왕건후보다 강한 자는 없었다. 지금은 꽤 나이가 들어 전성기의 무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과 노련미가 부족해진 무위를 어느 정도 대체했다.


상대가 인간계 최강자라고는 하나, 그래도강준은 전의를 다졌다. 진짜도 아니고 가짜를 상대로 질 생각은 없었다.



“두려우냐.”

노사부는 잔인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물었다. 강준은 픽 비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도 노사부를 존경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므로, 설령 가짜라도 모욕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에 날선 기운을 상대에게 뿜었다.



ㅡ!



상대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상상 이상으로 마나량이 어마어마한 탓이겠지.

강준은 잠깐 호흡을 고르면서 기운을 다스렸다. 무절제하게 뿜어져 나오던 그것이, 벼린 검처럼 정제됐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스승님ㅡ.



제자의 눈이 스승을 바라봤다.




“…고얀놈.”




상대도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이에 바람이 휭 불었다.


노사부가 먼저 선공을 했다. 원래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영감이.

ㅡ!


그래도 흉내는 기가 막혔다. 노사부의 버릇대로 검은 오른쪽 모가지를 베려고 정해진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속도나 위력 면에선 현저하게 모자랐다.



강준은 상대 검을 쳐내고 그대로 팔을 비틀어 성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노사부는 재빨리 몸을 뒤로 내빼 피한 다음에 다시 일격을 날렸다. 그러나 그것도 허무하게 빈 공간만 잘랐다.

환상이 강준의 기억에서 노사부를 끄집어낸 것까진 좋았다. 그가 아는 한에선, 노사부가 제일 강한 사람인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미처 하나 깨닫지  한 게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밑에서 제자로 지낸 만큼,




그의 검술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걸….




ㅡㅡ!!

노사부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ㅡ, 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레벨도 턱없이 모자랄 테지만, 설령 비슷하다고 해도, 오랜 세월 검의 묘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한 그의 경지는 잠깐 엿본다고 해서 따라할  있는 게 아니었다.



강준조차  길이 없는 그 깊이를, 환상 따위가 어찌 알리오ㅡ.


상대의 검술은 깊이라곤 없었다. 그저 흉내내기에 급급한, 어설픈 칼질이었다. 물론 아예 무시할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진짜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이럴 리가 없다ㅡ!”



노사부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강준은 이놈이 또 무슨 개소리를 하나 싶었다.


“분명, 제일 강한 잔데.  너 따위한테ㅡ!”



갑자기 강력한 일격을 날린 노사부는 뒤로 훌쩍 날아가더니 거대한 괴생명체로 변했다. 주변 환경도 휙 변했다. 세상은 온통 핏빛 천지가 됐다.



울퉁불퉁 진물이 흐르는 듯한 몸통엔 십수 개의 팔이 달렸다. 여러 개의 핏발 선 눈알이 강준을 노려봤다.

생김새는 뭐든 다 때려잡게 생겼는데, 마왕의 분신체보다 약했다. 레벨은 대략 380 전후.

물론 그 정도도 아주 강력하긴 한데, 강준에게 비비기에는 다소 손색이 있었다.

- 죽,인다ㅡㅡ!!




놈이 포효했다. 여러 발의 마나탄이 쉴  없이 쏘아졌다. 강준은 엄청난 속도로 그것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놈에게 쇄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코앞에서 어마어마하게 높은 돌벽이 쑤욱 튀어올랐다. …아니, 사방에서 돌벽이 튀어나오더니 그를 향해 조여오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남은 구멍이 저 위에 뻥 뚫린 공간이었다.


그러나 거기로 놈의 대가리가 쑥 나오더니, 입을 쩍 벌렸다.


이제 도망갈 구멍도 없었다. 강준은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벽은 이미 수십 겹이나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이런 개새ㄲ…!

놈의 주둥이에 마나가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마나를 쏟아넣을 작정인 듯했다.

아무리 강준이라도 이렇게 정통으로 맞으면 버틸 수 있을 거라 자신하긴 좀 애매했다. 옆에서 힐이라도 퍼부어줄 힐러가 있으면  몰라, 지금  환상속에선 강준 혼자였다. …스스로 깨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 만약에 네가, 이 한 점에 모든 걸 넣을 수 있다면, 강은 물론이오, 땅도, 심지어 하늘까지 가를 수가 있다.


아까 노사부를 봐서 그런지, 그분의 말씀이 머릿속을 스쳤다.



강준은 예전에 미궁의 좁고 긴 통로에서 마나빔을 쏘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그 감각을 기억해냈다.

그는, 모든 감각을 한 점에 집중했다. 바로 성검의 끝에ㅡ.




강준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조급한다고 안 될 일이 되는  아니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 강준아.

- 네, 스승님.

스스로 믿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어ㅡ.





그리고, 마나탄이 떨어졌다.



동시에, 성검이 위로 향했다.

섬광이 번쩍했다.



마나탄을 전부 막을 순 없었다. 그러나 성검에서 쏘아진 마나빔은 떨어지는 마나탄의 중심부를 뚫고 놈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ㅡㅡ!!

강준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버텨냈다.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끔찍했다.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을 불태우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훅 사라졌다. 강준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성검을 우뚝 세운 채 공간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하악, 하악ㅡ.


마나탄을 거세게 얻어맞는 감각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나 몸은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죽고 브레스에 맞아본 경험은 꽤 신선했다. …남에게 평생 얻어먹을 술값 정돈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음탕한 몰골로 바닥을 벌벌 기던 팀원들도 이제 모두 멀쩡하게 돌아왔다. 그녀들은 추했던 자신의 꼬라지를 떠올리면서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었다.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변태 성욕이 모두 까발려진 꼴이나 다름없었으니….




강준은 반쯤 넋이 나가 있는 부팀장 쯔쉬를 불렀다.

“쯔쉬. …쯔쉬!”

“멍! …아, 네…, 팀장님.”


아직도 자기가 암캐인 줄 알았던 쯔쉬가 개 짖는 소리로 대답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강준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에 선 그녀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 했다.

“애들 정신 차리게 도와주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준비시켜. …알았으면, 멍 해 봐.”

강준은 뒷말을 그녀만 들리게 속삭였다. 쯔쉬는 고개를 더욱 수그린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멍ㅡ, 하고 대답했다.



자기 변태 성욕이 낱낱이 까발린 여자들은 다들 강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했다. …얻어맞길 좋아하는 박하나가 약과에 속할 줄은 강준도 몰랐다.




변태 성욕  최고봉은 역시 보지 피스팅이었다. 평소에는 순진한 처녀처럼 섹스 얘기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던 막내 바바라가, 설마 그런 변태 성욕을 바라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걸 들킨 막내도 진짜 수치스러워 죽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늘 고결한 공주의 자세를 고수하던 마리아도 자신의 변태성이 들키자 안절부절못했다. 조카와 강준의 자지를 사이좋게 공유하던 장화영도 마찬가지였고. …아니, 팀원들 전부가 그랬다. 트롤녀를 대롱대롱 매단 채 좆집으로 쓰던 쿰바만 멀쩡했다.




“다들 오늘 있었던 일은 잊어. 환상이니까. 운이 없었다, 하고 생각들 해. …알았지?”


“…네에.”


팀원들의 대답이 영 기운이 없었다. 강준이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아ㅡ, 하고 외쳤다.




“네에ㅡ!”



여자들이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특히 바바라가 울상을 한 채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언니들이 다 잊어 주었으면ㅡ, 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강준팀은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두쿵 두쿵ㅡ. 뛰고 있는 마나 파동은 아직 여전했다. 다들 방금 전까지의 수치스러움은 점점 잊었다. 그리고 긴장감이 서서히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저 멀리 무언가가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제단이었다. 강준은 그 위에서 엄청난 마나가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하는  느꼈다.



아밀다의 심장ㅡ.


그게 바로 이곳의 환상을 만들어낸 원인이었다. 그리고, 마법 도시로 향하는 열쇠의 재료이기도 했다.



드디어ㅡ!




강준이 이곳까지 도달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 두 과정은 완전히 달랐지만.



그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팀원들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힐끔 고개를 돌려 부팀장 쯔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눈짓을 보내고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예전엔 화려했었을 제단은 오랜 세월의 격랑을 얻어맞으며 이곳 저곳 해지고 바래져 있었다. 그러나, 심장이 들어 있는 수정은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고 먼지 하나 없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두쿵 두쿵


마나 파동이 거칠게 퍼지며 강준의 몸을 때렸다.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천천히 뻗었다.


- 두쿵두쿵두쿵두쿵


마나 파동이 점점 강해졌다. 손이 가까워질수록 더.



강준의 손이 수정을 쥐었다.



ㅡㅡ!!



갑자기 허공에서 번쩍 눈이 생겼다. 다들 놀라서 움찔했다. 붉은 눈에 쭉 째진 검은 동공은, 꿈에 나타날까 무서울 정도로 섬뜩했다.

그것은 휙 움직여 심장 수정을 들고 있는 강준을 뾰족하게 응시했다.

- 그걸 내려놓아라, 인간.

심장과 연결된 대마도사 아밀다였다.



- 아니면 끔찍한 환영 속에서 영원히 헤매도록 하겠노라ㅡ.

두쿵 두쿵ㅡ, 하고 마나 파동이거칠게 일어났다. 당장 그 말을 실현하겠다는 듯이.




강준은짐가방에서 챙긴 가죽주머니를 끌렀다.  다음 수정의 끝부분을 검으로  베어 열고 무언가를 붓기 시작했다. 심장이 들어 있는 빈 공간에 가루 같은  점점 채워지기 시작했다.




!!



그건 용의 비늘을 갈아 만든 가루였다. 비늘 가루는 심장이 마나를 모으는 걸 방해했다. 그러면 환상 마법도 방지할 수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마나 파동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 인간…!


사태를 파악한 아밀다는 강준을 사납게 노려봤다. …이대로면 연결도 곧 끊길 터.

대마도사라도 마나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놈은 무력하게 강준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연결이 끊기기 직전에, 섬뜩한 경고를 한마디 남겼다.



- 널, 기억하겠다.



 심장 박동이 멈췄다. 눈깔은 끝까지 강준을 노려본 채로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비늘 가루가 가득 든 수정을 다시 가죽 주머니에 넣고 꽁꽁 싸맸다.




이걸로 끝이었다. 강준은 열쇠에 필요한 재료를 모두 얻었다.

세계수의 가지, 용의 비늘, 그리고 아밀다의 심장까지ㅡ.


이제 이걸 정제하여 열쇠를 만들기만 하면, 마법 도시의 문을 열 준비는 끝이었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데에 또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할 테지만….

강준은 한숨을  쉬면서 다시 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부팀장 쯔쉬가 정말 고생하셨다면서 그를 격려했다.




“모두 고생했어, 정말로.”



이번 탐사는 정말 만만치 않았었다. 지금까지 탐사했던 미궁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언제 환상에 걸릴지 모르는 불안감, 레벨 높은 괴수, 그리고 끔찍한 추위가 그들을   없이 괴롭혔다.

다들 지칠 대로 지쳤다. 얼른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폭신한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고 싶었다.



“그래도 아직 끝난 건 아냐. 나갈 때까지 방심해선  돼.”


“네, 팀장님.”


“그래, 나가자 이제.”



강준은 다시 대열을 맞췄다. 그들은 순서를 잡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곳엔,  공기만 쌩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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