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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7화 〉Chapter 2. 검제의 제자. (2) (297/448)



〈 297화 〉Chapter 2. 검제의 제자. (2)

일단 기세 좋게 대련은 시작했지만, 당호연은 선뜻 덤비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검도 없이 우뚝  있는 이 빌어먹을 사기꾼놈에게서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검을 뽑는 순간, 무언가 무형의 기운에 잡힌 느낌이었다.

…뭐지.


당호연은 속으로  당황했다. 자신이  저놈에게 주눅이 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그녀는 이를 악물고 기를 확 터트렸다.



그녀의 특기인 쾌검이 발휘됐다. 연무장에 있던 자들 태반이 그녀가 휘두르는 검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빨랐다. 그러나 강준은 너무나 쉽게 그 일격을 피했다.



“당황하지 말고, 다시.”


이 새끼ㅡ. 당호연은 이를 악물며 그대로 내리그었던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그는 공격 반경에서 벗어난 뒤였다.



“무게 중심이 조금 앞으로 쏠려 있네요. 보법에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사기꾼 새끼가 헛소리는 아주…!



당호연은 미친듯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주 죽이겠다는 기세로. 그러나 그녀의 검은 그의 몸은 커녕 털끝 하나도 건들지 못했다. 분명히 닿기 직전엔 있었는데, 마치 신기루처럼 그가 사라지는 꼴이었다. 그녀는 닿을 듯 말  하는 그 안달남에 미칠 것 같았다.



“후우, 후우ㅡ.”



그녀는 잠깐 숨을 돌리면서 그를 힘껏 노려봤다.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검은 틀림없이 닿기 직전까지 갔었다. 놈도 간신히 피한 게 분명하리라ㅡ.



“감정적으로 휘두르지 마세요. 검에 감정이 담기는 순간, 그건 검술이 아니라 검무가 됩니다. …방금처럼.”

강준은 싱긋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개새끼가…!



사람 열 받게 만드는 데에 아주 도가 튼 놈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의 말대로, 감정적으로 휘둘렀다간 검술이 아니라 검무가 되고  테니.



당호연은 다시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휘둘러도 그녀의 검은 애꿎은 공기만 붕붕 허무하게 갈랐다. 당연히 열불이 날 수밖에. 근래에 그녀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농락당한 적이 있던가ㅡ!



검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강준에게 닿지 못했다. 진짜 환장할 노릇이었다. 한 번, 두 번,  번, 네 번…, 그렇게 수십 번이 지나도 결국 검은 피를 묻히지 못했다. 결국 화가 난 그녀가 강준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거예요ㅡ?!”




당호연은 그렇게외치고 나서 다시 검을 냅다 휘둘렀다. 그녀의 외침대로 이번엔 강준이 피하지 않고 날아오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됐다ㅡ!


이번은 정말 닿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장면에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그걸 구경하고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강준은 그녀가 휘두른 검을 손가락으로 탁 잡아 버렸다.


ㅡㅡㅡ!!!


모두가 놀랐으나 잡힌 당사자가 제일 놀랬다. 당호연은 동그래진 눈으로 잡힌 검과 그의 얼굴을 한  번갈아봤다. 놀란 표정은 점점 분노한 것으로 변했다.



그녀는 다시 검을 빼내려고 용을 썼다. 그러나 검은 마치 무거운 바윗덩이처럼 꿈쩍도  했다. 이 개, 개새이이익…!



아무리 힘을 줘도, 정말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이게 무슨…!

“내가 말했잖아요. 감정을 실으면 검무 밖에 못 된다고.”



강준은 다시 검을 탁 놓았다.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빼내려고 하던 당호연이 잠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꼴사납게 비틀거렸다.



이 씨, 개새끼, 이, 이 나쁜 새끼…!

씩씩거리던 당호연은 다시 덤비려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때마침 소식을 들은 당궁진이 연무장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거기서 그만 대련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검이 없는 강준이 검을 든 당호연을 압도한 것으로 이미 실력은 입증됐다. 설령 그가 검제의 제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실력 하나만으로 대우 받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조카에게 가르침을 주셨다구요.”


“그리 대단한  아닙니다. 부족한  몇 마디 해 주었을 뿐이에요.”


“그 몇 마디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아까 대접이 좀 소홀했던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던 참이었습니다.”

당궁진의 태도와 말투는 아까와 확연히 달라졌다.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하하 웃으면서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비참함과 수치심에 젖어 있던 당호연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사납게 흘기면서 괜히 심술을 부렸다.

“뭘 봐요?! 수련이나 똑바로 하세요ㅡ!”

당호연은 그렇게 사납게 톡 쏘아올리고는 쿵쿵거리는 발걸음으로 연무장을 나가버렸다. 에이 쯧쯧, 성질머리 하곤ㅡ. 조용하던 연무장이 순식간에 시장 바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다들  미남자의 정체가 무언지 궁금해했다. 겨우 알아낸 거라곤 문지기의 입에서 나온 이강준이라는 이름 석 자였다.




- 이강준이 누구야?


- 처음 듣는 이름인데?


- 저렇게 강한데 누군지 모르는 게 말이 되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흑호접(黑胡蝶) 당호연을 상대로 검도 없이 농락한 사내였다. 이 정도면 오히려 별호나 이름을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수치란 수치는 배 터지게 다 먹은 당호연은 자기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들고 있던 애검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 있는 힘껏 의자를 걷어찼다. 그러고도 속에  화를 삭히지 못해서 씩씩거리며 방안을 미친듯이 왔다갔다했다.




기라고는 쥐꼬리 수준 밖에 안 됐다고. 그 새끼 분명 나보다 한참 밑이었단 말이야. 분명해. 분명했다고ㅡ!



당호연으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보자마자 무조건 이길 줄 알았다. 사기꾼 새끼에게 당가의 위대함을 톡톡히 맛보여줄 참이었는데…, 반대로 당가의위엄을 다 깎아먹은 꼴이 되고 말았다.



가끔 사술을 쓰는 이방인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녀는 이놈도 혹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니고선 이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분명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차이였다. …날아오는 검을 손가락으로 잡다니ㅡ! 그런 기교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대련에서 꼴사납게 패배했다. 여기서 사술이라고 변명을 지껄였다간 더 추한 꼴을 면치 못할 터. 속이 쓰려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당호연은 저녁 식사 시간 때 다시  남자를 만나게 됐다. 보자마자 속에서 열이 화악 올라왔으나, 그녀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실력이 대단하시더라구요. …오늘 가르침, 정말 유익했습니다.”



그녀는 열불이 나는 속을 누르고 고개를 살짝 수그렸다. 거기서 작은 아버지는 조카의 속마음도 모르고 강준을  띄워 주기만 했다.




“호연이도 놀란 모양입니다, 하하.”

“정진하면 더 높아질 겁니다. 그래도 당가의 체계적인 교육 덕분인지, 기초는 확실히 탄탄하더군요.”

“우리 당가가어떤 곳인데요. 사천 제일 아닙니까ㅡ!”

같은 사천인 청성파가 들으면 당장 펄쩍 뛸 소리였으나, 이곳엔 맞장구를  당문 사람들뿐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칭찬 속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당호연은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날카로운 시선이 자꾸 강준에게 닿았다. 혹시 어딘가 수상한 점이 있나 없나 하고. …혹시 저 반반한 외모도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그 역용술이 아닐까ㅡ, 하고 의심까지 했다. 이방인들은 워낙 수상한 족속들이라 무슨 사술을 썼는지 장담할  없으니까.


“그래도 마냥 놀고 먹을 순 없으니, 여기서 지내는 동안 당 소저의 검술 지도라도 하겠습니다.”




…뭐어ㅡ?! 지가 꼴에 뭐가 된 줄 아나ㅡ!




그 소리를 들은 당호연의 눈알이 당장 동그랗게 커졌다. 당궁진은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사양했으나, 강준은 후진양성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거절하려고 하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이 사기꾼 같은 놈을 쫓아낼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전 좋아요. 고매하신 선배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너어ㅡ무 행복하네요.”


“…정말 괜찮겠니?”



당궁진은 아무래도 다혈질의 조카가 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이러다가 진짜 큰 사고라도 치면 어쩌나 싶어서. …심지어 전례가 없던 것도 아니지 않나.




“저야 당연히 괜찮지요.”

당호연은 이놈 잘 걸렸다ㅡ, 하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탁 소리나게 포권을 취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그렇게 강준은 임시 검술 선생으로 당호연을 지도하게 됐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가볍게 식사를 하고  순환까지 한 차례 끝낸 당호연은 이강준 앞에  섰다. …만약 그의 실력이 사술에 불과하다면, 가르침에서 그 바닥이 드러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강준은 마치 스승처럼 뒷짐을 쥔 채 당호연의 앞을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이다가, 보법을 한 번 해 보랬다.

흥, 하긴 지 실력에 보법이 제일 만만하겠지ㅡ.




당호연은 순식간에 연무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에 척 섰다.


- 구룡보(九龍步).




당문에서 직계 혈통들에게만 수백 년 동안 전수되어 내려온 보법이었다. 그러나 강준은 이상하게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소저의 몸이 너무 앞으로 쏠리는 듯하군요. 보법에서 제일 중요한 건 중심입니다. 움직이는 그 순간, 어떠한 변화에도 반응할 수 있도록 중심이 딱 잡혀 있어야 하지요.”



…말은 그럴 듯했다. 당호연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속도도 중요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안정성입니다. 속도를  줄여 보세요.”


당호연은 그럴 수 없다고 반발했다. 쾌검의 기저는 바로  보법의 속도가 아닌가ㅡ!


“저에겐 속도가 생명이에요!”

“당 소저, 불안정한 속도는 오히려 독입니다. 지금 소저는 분에 넘치는 속도를 내려고 하고 있어요.”


당호연은 불만이라는 듯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녀에게서 속도를 빼앗는 건, 즉 쾌검을 포기하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럴 수 없어요. 속도를 줄이라뇨? 그건 검을 휘두르지 말라는 소리랑 같아요.”




강준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손바닥을 내밀어 보랬다. 당호연은 그가 하라는 대로 곱게 따랐다. 손바닥 내미는 정도야 별로 어렵지도 않으니.

“제가 손바닥으로 소저의 손바닥을 때려  테니, 소저는 옆으로 피해 보세요.”

강준은  번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면서 이렇게 피하라는 시늉을 냈다. 당호연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반드시 피하고 말겠다는 기세로 눈을 부릅뜨고 그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웃기게도 강준의 손바닥은 천천히 내려왔다. 어린애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그녀는 피하지 못했다.





…어?

마지막 반뼘 정도를 남겨놓고, 그의 손은 어마어마한 빠르기로 그녀의 손바닥을 탁 쳤다.



“다,다시해요! 갑자기 빠르게 친다는 소리는 안 했잖아요!”

강준이 씩 웃었다.

“난분명 피하라고 했을 텐데요.”

“처음엔 느리게 내려왔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아ㅡ!



당호연은 거기서 무언가 머릿속을 번뜩 스치는 게 있었다. 강준이 이제야 알겠냐는 얼굴로 그녀를 봤다.



“이제 알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빠를 필요는 없어요. 지금 소저는 항상 쓸데없이 속도만 추구하고 있어요. 그러면 체력적으로도 손해만 볼 뿐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빠른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요.”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러나 몸으로 이해하는 건 아직 힘들 듯했다.



“아 물론 다 느리게 하라는 뜻은 아녜요. 지금 소저는 수준에 맞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속도를 좀 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안정을 찾을 겁니다. …소저가 지금보다 수준이  높아진다면  기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겠지요.”


…좋은 가르침이었다. 당호연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포권을 말아쥐었다.

“감,사합니다.”



강준이 진하게 웃었다.




“별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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