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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7화 〉Chapter -1. 마왕성. (1) (417/448)



〈 417화 〉Chapter -1. 마왕성. (1)

핏빛 하늘이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사람들은 이곳이 인세가 아니란 걸 대번에 파악했다. 어딜 보아도 녹음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펼쳐진 것은 물기 하나 없이 메마른 땅이었다. 하늘색이 그러한 탓에, 온 세상도 다 핏빛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마치 지옥에 온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의 몸은 다시 재구성됐다. 쿰바는 오거로, 깔루아는 요정으로 되돌아왔다. 사람들도 각자의 인종에 따라 머리색과 피부색이 돌아왔다. 강준도 잘렸던 왼팔이 다시 생겨났다. 그걸 본 장화영은 참으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팔을 잃은 게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자신이 약해서 그가 다쳤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튼 사람들은 모두 제 본모습을 되찾았다. 그건 희소식이었으나, 그들의 얼굴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바짝 굳어 있었다.



“저기에, 뭔가 있어요ㅡ!”




렉시가 저 멀리 허허벌판에 세워진 어느 건축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성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저기가 마왕의 성이란  눈치챘다.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며 강준의 눈치를 봤다. 그는 좌중을 한   훑고 이제 움직이자고 까딱 고갯짓을 했다.



“이제 출발하자.”



강준팀을 비롯해 여러 이방인팀이 저기 마왕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다 보니까, 이곳에서 오래 버틸  없었다. 물도 음식도 없는 이곳에서 기껏해야 이틀 정도 버티는  한계였다.


주변엔 정말 생명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눈으로 직접 볼  있는 변화라고는 가끔 번쩍이는 핏빛 하늘이 전부였다.

“씨이벌, 진짜 지옥인가….”




이방인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밝고 평화로운 낙원을 상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황량하고 섬뜩한 장소일 줄은 다들 몰랐던 눈치였다.



멀었던 마왕성이 성큼 다가왔을 때, 저 멀리서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둥둥 날아오기 시작했다. 유령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수가 어마어마했다. 사람들은 곧바로 전투 준비를 했다.


마법 딜러들이 먼저 각자의 재주껏 마법 공격을 날렸다. 그리 강력한 놈은 아닌지, 마법을 얻어맞은 놈들은 곧바로 소멸됐다. 적들은 많은 수가 있었으나, 이방인팀의 마법 공격으로 금세 숫자가 줄어들었다. 소수가 근접했으나, 놈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강준은 이방인팀에게 잠깐 휴식을 취하게 한 뒤 다시 성을 향해 움직였다. 멀었던 성은 점점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 크네.”



성벽은 거대했다.얼핏 보기만 해도 족히 수십 미터는 되는 듯했다.  성벽조차 핏빛처럼 붉었다. 팀원들은 혹시 자신이 악몽을 꾸는 게 아닌가ㅡ, 하고 허벅지를 꼬집거나 뺨을 찰싹 때리기도 했다. …그만큼 보고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섬뜩한 기운은 더더욱 강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강준은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 거대한 기운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역시 3회  때는 몰랐었는데, 경지가 오른 지금은 그걸 알 수 있었다. …저게 바로 마왕인 듯했다.



그들은 성벽 아래에서 다시 한 번  휴식을 취한 다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성벽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성문이 없었다. 아치 모양으로 뻥 뚫린 입구를 통해, 이방인팀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바깥과 마찬가지로, 성벽 안도 황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요정 깔루아는 호흡 곤란 같은 걸 겪었다. 다른 인종들에 비해 이런 기감이 유독 발달한 요정은 그 강력한 마기를 버티기 힘들어했다. 결국 그녀는 강준의 옆에 바짝 붙어야 했다. 성검 칼리버가 내뿜는 기운이 그나마 마기를 중화시키는 탓이었다.



사람들은 성벽 안에 도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운데에 거대한 성 하나만 뾰족하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아까 보았던 그 검은 물체들이 스믈스믈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접근했다. 강준은 그게 떠도는 혼이 강력한 마기와 만나 형상화된 존재라는  알았다. 그래도 가끔 한 두 개씩 나타나는 거라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드디어 성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것은 얼마나 거대한지 고개를 치켜들어야  꼭대기가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그 성 주변엔 또 내성벽이  둘러져 있었다. 그러나 외성벽보다 크진 않았다.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사람들의 얼굴엔 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이유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공기처럼 짙게 깔려 있는 마기가 그들을 압박하는 이유가 가장 컸다. 떠도는 혼이 실체화되어 나타날 정도니  다했지.



“좀 쉽시다.”




강준은 자주 휴식을 취했다. 언제 어디서 싸우더라도 최대한 멀쩡한 상태로 싸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사람들사이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다들 힘을 내자고 격려를 했다. 그래도 그의 노력 덕분에, 그들은 힘을 좀 얻었다.

이제 그년도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ㅡ.



강준은 몽마의 여왕, 유리스를 경계했다. 슬슬 사고가 터질 때가 됐다. 이곳엔 유리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몽마들이 있는 곳이었다. 분명 정신력 약한 놈들은 매혹 마법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했다.



특히 그는 정인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놈은 유리스에게 당해 팀원들과 강준을 죽였다. 그는 그때를 생각하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꼬박 7년이 넘게 걸렸다. 그 7년동안, 강준은 그 빌어먹을 몽마년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러다가 기어코 일이 터졌다.


사건이 발생한 건 다른 이방인팀에서였다. 갑자기 누군가 자기 팀원을 칼로 찔렀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라, 찔린 상대는 반항 한  못하고 그대로 심장이 꿰뚫려 죽었다.



“이 미친 새끼야ㅡㅡ!!”



하필 죽은 사람은 힐러였다. 팀장은 다시 검을 휘두르는 동료의 목을 칼로 썩둑 잘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준팀에 있는 사내놈은 강준과 오거남 둘뿐이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오거는 그런 매혹 마법에  빠지지 않으니, 그리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문제는 사내 새끼가 많은 정인호팀이지.

그리고 정인호팀에도 사고가 터졌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은 정인호가 아니라 일리단이라는 가명을 쓴 조르쥬였다.



ㅡㅡㅡ!!!



칼침을 맞은 건 다름 아닌 덩치 브루노였다. 힐러인 그를 먼저 처리하는 게 당연히 싸움에서도 유리할 수밖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칼이 심장에서 빗겨 나가 즉사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혜미와 마리아 공주는 쓰러진 그에게 얼른 힐을 주었다.

“이 개새끼야ㅡ!”


팀장 정인호는 당연히 눈깔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리단을 제압해 무기를 빼앗고 구속했다. 놈은 눈깔이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정인호는 결국놈의 경동맥을 꽈악 압박하여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놈이 축 늘어졌다.



“씨발, 씨발….”

이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됐다. 그때 강준에게도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 죽여.


강력한 마기가 몸을 파고 들려고 했다. 그러나 한낱 몽마 따위가 감히 그를 제어할 순 없었다. 당연히 강준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빨리 숨어 있는 몽마년을 찾아야 했다. 강준은 이방인팀들에게 어서 움직이자고 했다.



그들은 드디어  안으로 진입했다. 칠흑처럼 어두컴컴했다.마법 딜러들이 빛 구체를 만들어 띄웠다. 그제서야 주변이 좀 환해졌다. 빛의 힘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기가 약간 줄어들었다. 몽마의 영향력도 좀 줄어든 듯했다.

아직까지 정인호에게 몽마 유리스가 접근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러나 언제 돌변할지 몰랐으므로, 강준은 그에게서 신경을 떼어놓지 않았다.



마왕성은 정말 거대했다. 강준도 이곳에 들어오는  처음인지라,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지 못했다. 여기서부턴 그도 1회 차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아주 긴장을 한 채로 움직였다. 강준은 마기가 가장 강한 곳으로 움직였다. 팀원들은 언제라도 싸울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가끔 몽마에게 매혹 당한 자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그것 말고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그때 갑자기 저 앞에서 검은 연기가 화악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게 한  개가 아니었다. 그건 검은 갑주로 변했다. 저게 무언지 정확히   없었으나, 아군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전투 준비ㅡㅡ!!”




강준의 외침에 모두가 싸울 준비를 했다. 일부 팀에는 공백이 좀 생겼으나,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손가락을 빨고 앉아 있을 순 없었다.




검은 갑주의 존재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것들은 이방인팀을 둥글게 포위한  대검을 들고 대치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무언가 핏빛 섬광이 번쩍였다. 거기로 무언가가 나타났다.


- 아하하하하ㅡㅡ.


그것이 웃었다. 악ㅡ! 마나가 적은 자들은 그 웃음소리에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일부는 매혹 마법에 당해 그대로 동료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빠르게 제압 당하긴 했지만, 또 언제 누가 당할지 몰라 대단히 긴장한 상태였다.



강준은 하늘에 붕 떠 있는 그것의 존재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가 그토록 복수하고 싶어하던 그 존재였다.

몽마 유리스ㅡ.


몽마의 여왕이자, 마왕의 딸.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미의결정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는 벌거벗은 채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출했다. 몸짓 하나하나에 교태가 섞여 있었다.


정신력이 약한 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정신 제압에 당했다. 강준은 그녀를 보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꼭 말 안 듣고 보는 새끼들이 있었다.



ㅡㅡ!!

매혹 마법은 어찌저찌 버텼으나, 정신 제압까지 동시에 당하니 무너지는 자들이 우르르 나왔다. 진형이 무너지는 이방인팀이 속출했다.



정인호팀에서도 매혹에 당한 자들이 여럿 나왔다. 동료들은 매혹 마법에 당한 팀원들을 제압한다고 진땀을 뺐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온다ㅡ!”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검은 갑주들이 척척 공간을 좁혔다. 매혹된 내부의 적을 제압하기도 바쁜데, 외부의 강한 적까지 상대하는  결코 쉽지 않았다.



강준은 일단 저 빌어먹을 몽마년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검을 불끈 쥐고 마나를 화악 끌어올렸다.

몽마 유리스의 은은한 웃음기가 샥 사라졌다. 그녀의 시선이 강준에게 꽂혔다. 동시에 아주 강력한 매혹 마법이 날아왔다.

씨발년ㅡ.

그러나 그것은 강준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몽마는 더욱 강력한 매혹 마법을 날렸다. 그래도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마기를 강하게 끌어올렸다.

강준은 무릎을 살짝 굽힌 다음, 강하게 땅을 박차며 하늘로 솟았다. 유리스는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그를 피해 물러났다. 그러나 어느새 그녀의 날개 하나가 썩뚝 잘려 있었다. 고통은금세 찾아왔다.



ㅡㅡㅡ!!!


“아악ㅡ!”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에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몽마는 그대로 뚜욱 떨어졌다. 강준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떨어진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수십 개체의 검은 갑주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빠르게 벽을 만들었다. 그러나, 강준의 돌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두꺼운 갑주벽은 단 두 방만에 뚫렸다. 몽마 유리스는 놀란 눈으로 뒷걸음질쳤다.




“아…!”


그녀는 빠르게 어둠 속으로 숨었다. 그의 검은 달아나기 직전인 그녀의 몸을 베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죽을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살아도 상당한 치명상인 건 분명했다.




몽마 유리스가 사라지자 검은 갑주들도 검은 연기로 화했다. 그러나  짧은 새에, 이방인들은 꽤 피해를 입었다. 갑주만 상대했다면 몰라도, 등을 지켜야  아군이 내부의 적이 되어 버린 탓에 피해가 특히 컸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상태는 갈수록 심해졌다. 쉬어도 온전히 쉬는 게 아니니, 가만히 있어도 체력은 자꾸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쉬어야 했다. 최소한 정신적인 피로는 풀어야 했다. 그래야 몽마의 매혹 마법과 정신 제압에 조금이라도 더 저항할 수 있으니까.


의외로 정인호는 강준의 염려와는 달리 몽마에게 넘어가지 않고 굳건히 잘 버텼다.



…어쩌면 4회 차 동안 강준에게 하도 시달리는 바람에, 멘탈이 강해진 걸지도. 생각해 보면 3회  때는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게  있었다.


역시, 망나니 새끼는 몽둥이가 약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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