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던전의 목적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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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목적 (5)
“저 석상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굴러가긴 했지만···.”
원래라면 정상적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걸어서 나갈 생각이었지만 석상 때문에 일이 틀어져버렸다.
그래도 문제까지는 아니었다.
근력으로 벽을 부수고 나가면 되니까.
안 부서지면?
여분 스탯을 근력에 전부 몰아넣어서라도 탈출할 생각이었다.
안스라드는 처음부터 텔레포트 스크롤을 쓸 생각이 없었다.
탈출용 스크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란 말인가?
만약 그가 다르하의 꿀물을 마시지 않았다면 좋아라하고 스크롤을 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의심하겠나?
타인의 선의를?
하지만 다르하의 꿀물을 마셨고, 마신 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배운 걸 적절하게 잘 써먹는 중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의미지? 건강한 신체라니.”
추측조차 할 수 없는 말.
중요한 건 멜디아는 이 사막 던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석상이 뭔지도 알고 있는 듯 했고···.”
의심스럽다.
너무나도 의심스럽다.
상황 분석을 하기 위해 생각을 더 했으면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었다.
이미 멜디아가 떠났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른 장소로 이동되는 스크롤이라면 바꿔치기 한 것을 들켰을 수도 있다.
“늦게 가면 타이밍을 놓친다.”
안스라드는 스크롤을 봤다.
그녀가 기절했을 때 바꿔치기 한 스크롤.
적어도 나눠준 스크롤은 아니니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소된 상태이다.
“일단 부딪혀 봐야겠지.”
그는 스크롤을 움켜쥐었다.
***
파앗!
텔레포트된 안스라드.
그는 검을 꺼낸 상태에서 스크롤을 움켜쥐지 않았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응?’
그가 도착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평범한 서재.
크기는 한 10평정도?
방금까지 피를 튀기며 싸워온 곳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디서 본 듯한 뒤통수가 있었다.
‘꽁지머리?’
브렘든 광장에서 멜디아와 같이 있던 꽁지머리 남자였다.
바로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아스라드의 정면에 그의 꽁지머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늦었네. 멜디아.”
책장에 문서철을 정리하던 꽁지머리가 혼잣말 하듯이 중얼거렸다.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말을 하는 상황.
텔레포트가 이뤄지면 당연히 멜디아인 듯, 익숙한 말투였다.
꽁지머리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닦달했다.
“빨리 내려가. 니가 정리 안 해주면 또 삽질할 게 뻔하다구.”
안스라드는 말없이 그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언제든지 제압할 준비를 한 채.
그것도 모르고 계속 중얼거리는 꽁지머리.
“이번에도 실적이 좋네. 12명이라니. 화끈하게 벗어 재끼니 남자들이 물고기처럼 달라 붙는구만. 돈 많이 벌-. ···응?”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자 꽁지머리는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타탓!!
순식간에 달려든 안스라드는 감아쥔 중지로 꽁지머리의 목울대를 가격했다.
퍽!
“케켁!!”
갑작스러운 급습에 꽁지머리 남자는 비명을 토했다.
안스라드는 재빨리 그의 뒤로 돌아가 왼팔로 목을 졸랐다.
“으ㅡ. 으으···.”
축 처진 그의 몸.
안스라드는 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묶을 거 없나.”
여기는 서재.
주변을 아무리 살폈지만 그럴 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렇다면.”
안스라드는 꽁지머리의 상의를 벗겼다.
그리고 막강한 근력을 이용해 옷을 아주 얇게 찢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촤악!
하나의 옷이 20개의 줄이 되었다.
안스라드는 꽁지머리의 팔과 다리를 각각 묶고, 묶은 줄끼리도 몸 뒤쪽으로 돌려 꽁꽁 묶었다.
엄청난 악력으로 묶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풀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뒤 옷을 입 안이 꽉 차게 넣고 줄로 입을 감쌌다.
“이러면 소리 지르지 못하겠지.”
그는 우선 창문 밖을 보았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
여기는 숲속이었다.
창문을 열면 청명한 공기가 하루 종일 들어올 것 같은 우거진 숲속.
“···여기가 어디야?”
그는 창문 밖을 계속 살폈다.
창문 끄트머리 저 멀리 성이 보였다.
“주변에 성은 있군. 그런데 여기서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안스라드는 꽁지머리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있던 곳은 3층.
조심스럽게 내려간 1층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어봤지만 밖은 조용했다.
‘뭐지? 왜 아무도 없는 거야?’
분명 아래라고 했는데-.
‘지하실?’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 1층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3층에서 바로 내려와서 잘 몰랐는데 규모가 꽤 되는 집이었다.
‘너무 조용해. 빨리 찾아야 한다.’
그는 탐색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계단 옆에 있는 비밀 문을 발견했다.
딸칵.
미닫이 식의 문은 소리 없이 밀렸다.
그리고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
안스라드는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는ㅡ 말이ㅡ 라는ㅡ.”
띄엄띄엄 들리는 큰 목소리.
분노와 역정의 목소리였다.
‘지하가 더 큰 거 같은데?’
목소리가 울리는 정도를 봤을 때 1층을 뒤졌을 때의 면적보다 훨씬 큰 것 같았다.
마침내 다다른 목소리의 근원지.
언성은 계속 높아졌고 가까이 갈수록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들렸다.
안스라드는 엄폐물 뒤에 최대한 몸을 숨기고 이야기를 엿들었다.
“이 병신 같은 년이 뭔 짓을 한 거냐고!!”
“저도 그건-.”
“야이 미친 새끼야!! 스크롤은 니가 준거 아니냐? 줄 때 제대로 준 거 맞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제가 왜 그랬겠습니까? 잘못 받으면 자기 모가지 짤리는 거 알아서 잘 받아서 갑니다.”
“그래? 그럼 이건 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불같이 화를 내는 남자.
그의 앞에 한 명이 쩔쩔매고 있었다.
그가 주눅 든 표정으로 말했다.
“한 명은 거기서 죽었을 수도 있잖아요.”
“이 년 힐 하는 거 안 봤어? 그 던전에서 뭔 짓을 하면 죽을 수가 있다는 거야. 너 현장 안 가봤어?”
“가봤죠···.”
“근데 그 소리가 나와?”
“진짜 허접 새끼가 가면 죽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를 내는 남자가 눈을 부릅떴다.
“이 기본도 안 된 새끼야. 근력보고 뽑는 거 몰라? 사막 비틀에게는 바로 죽을 수가 없어. 해봤자 뜯겨 나가는 게 다야. 그 사이에 스크롤만 쥐면 바로 도망칠 수 있는데 그게 말이 되냐?”
“세상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이 새끼가 꼬박꼬박 말대꾸를!!”
안스라드는 눈만 살짝 내밀어 상황을 파악했다.
총 7명.
두 명은 설전을 벌이고 있었고 나머지 다섯은 뒷짐을 쥔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야.’
무엇 때문에 언성을 높이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안스라드는 자리를 옮겨서 다른 엄폐물을 찾았다.
‘여기가 더 잘 보이ㅡ. ···어?’
여기는 지하실이다.
지하실인데 지하치고 꽤 밝은 편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은 뭔가 작업을 하려는 듯 마법으로 조명을 더 환하게 밝힌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조명이 가득한 그곳에,
12개의 머리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시뻘건 핏물과 함께.
‘···어?’
처음에는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사람이 누워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각도.
머리가 위나 아래가 아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충격적인 모습.
안스라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어?’
매스꺼움.
사막 비틀을 절단하고 녀석들의 몸에서 터져나온 더러운 피를 뒤집어썼을 때도 문제없었던 그의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저, 저들은ㅡ.’
12개의 머리, 아니 얼굴은 낯이 익었다.
바로 방금까지 같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떠났던 파티원들이었다.
‘···이, 이 무슨!!!’
미칠 것 같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
당장이라도 달려가 저 극악무도한 놈들을 모조리 찢어발겨버리고 싶었다.
‘후읍. 후읍. 후. 잠깐. 잠깐만···.’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은 최대한 눌렀다.
‘일단, 일단 잠깐···.’
기다려야 한다.
지금 저들을 회 떠버리면 남는 게 없다.
들어야 한다.
이유를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무것도···.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죽은 자?
왜 이래. 안지혁.
이거.
이거 게임이잖아.
게임 맞잖아.
근데 왜 자꾸···.
···.
크크.
그렇군.
그래. 이게 게임이라서 그런가보군.
너희들에겐 이건 단지 게임이니까 잔인한 짓을 하는 거구나.
그렇다면,
···너희 같은 놈들을 곱게 죽여야 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
안스라드는 다짐했다.
나와 같이 검을 들었던 자들이,
다시는 헛된 죽음으로 마무리되지 않도록.
누군가에 의해서 농락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지키는···.
···지켜?
몸이 흔들렸다.
알 수 없는 진실의 무게가 안스라드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기만자들을 다 죽이세요]
[리워드 : 여분 스탯 100]
[패널티 : -]
···크.
크크크.
그렇지?
너도 원하지?
그래.
보여줄게.
안스라드는 엄폐물에서 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대가리에 뭐가 들어 있-. 어?”
화를 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의 목이 바닥에 깔려 있는 상황임에도 남자는 당황은커녕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너 뭐냐?”
안스라드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내 얼굴 잘 봐둬.”
“···??”
“누구한테 죽는지 알라고 보여준 거다.”
남자의 얼굴이 악귀같이 일그러졌다.
“뭐라는 거야 좆만한-.”
“닥치고 내 말 잘 듣는 게 좋을 거다.”
안스라드는 [무사의 살기]같은 스킬을 쓰지 않았다.
순수한 위압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증오가 남자의 기를 찍어 눌렀다.
“이제부터, 너희들을 전부 죽일 거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그냥 죽이지도 않을 거다. 본인이 어떻게 죽는지 확인시키면서 죽일 거다.”
“ㅡ미, 미친 새끼가!!”
남자가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뒤에 있던 여섯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남자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어디서 굴러먹다온 개새낀지 모르겠지만 일단 팔 다리 자르고 시작해 주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만들 테니 기대해라고.”
그는 뒤를 돌아보며 안스라드를 죽이라는 시늉을 보냈다.
“이야아아아!!”
“우와아아!!”
남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안스라드에게 달려갔다.
달려오는 자세, 속도만 봐도 전부 한가락 하는 자들로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안스라드는 검을 뽑지 않았다.
아니, 뽑을 생각이 없었다.
뽑으면,
그냥 죽일 수도 있으니까.
안스라드는 스탯창을 열어 여분 스탯으로 민첩을 올렸다.
[민첩 : 268(+8)]
순식간에 200을 몰아넣은 안스라드는 상대적으로 느려진 남자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노려봤다.
“죽어!!”
가장 앞에 달려오는 남자.
크게 검을 휘둘렀다.
안스라드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다가가 검을 잡은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 뭐야?”
소리에 놀라서였을까?
아니면 안스라드의 압도적인 기량 때문일까?
다른 남자들은 주춤한 상태로 안스라드를 쳐다봤다.
그에 응답하는 안스라드는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일단 다 부러트리고 시작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