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어몽더스타즈의 비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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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몽더스타즈의 비밀 (2)
흔들림 없는 바의 조명.
하지만 안지혁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입 열면 안 돼.’
지금 입을 열게 되면 테스터에서 살아남았다고 밝히는 꼴이 된다.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만
말을 하게 되면 더 이상해 질 거다.
하지만 지금 박하연의 말.
그냥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게임이 아니면.
···그럼 뭐라는 건데?
굳게 다문 안지혁의 입.
그 입을 열고자하는 박하연의 눈.
“이상하지 않아? 어몽즈라는 게임. 게임은 게임인데, 전혀 게임 같지 않은 게임. 오히려 현실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그런 게임. 감각과 기억, 심지어 정신까지 현실과 다르지 않는 ···그런 이상한 공간.”
안지혁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이상했다.
아까까지는 목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는데 지금은 가슴 한 구석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박하연은 안지혁에게 타박을 주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는 비어 있는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열리는 얇고 빨간 입술.
“저랩인 유저들은 어몽즈에 접속하자마자 신나서 날뛰지. 현실과 다를 게 전혀 없으니까. 처음에는 일반적인 플레이, 그러니까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리고, 골드를 모으고, 아이템을 구하고. 그런데 점점 레벨이 올라갈수록 다른 곳에 눈을 뜨지. 맛있는 것을 먹거나, 다른 이성을 만나거나, 가게를 사서 경영을 하거나. 그러다가 나처럼 고랩이 되면 점점 현실에서 할 수 없던 것들을 하게 돼. 시장 독점을 하거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국가를 세우거나. 그중에 미친놈들은 끔찍한 짓도 저지르기도 해. 게임이라는 미명 아래,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움찔.
분명 의도하고 말한 건 아니리라.
그녀는 안스라드를 모를 거니까.
이어지는 박하연의 말.
“사람은 그럴 수 있어. 기득권이 없고, 현실과 같은 환경이면. 그건 이해해.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지. 아무리 게임이라도 과한 행동을 하면 어몽즈, 그러니까 게임 개발사에서 제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그런데 하지 않아. 어몽즈라는 회사는 분명 게임으로 따지면 GM인데, GM의 역할을 전혀 안하고 있다는 거야.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그건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문제가 있으면 무력으로 진압을 할 뿐, 시스템적인 불이익은 주지 않아. 계정 정지라든지, 캐릭 삭제를 하지 못해. 이상하지 않아?”
안지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기에 대한 발언은 해도 괜찮을 거 같으니까.
“제가 알기로 어몽즈는 유저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준다고 했어요. 그 관점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정책 아닐까요?”
박하연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렸다.
“가능성 있지. 무한의 자유도라면. 크큭. 그래. 충분히 가능성 있어. 사람을 썰어 죽여도, 튀겨 죽여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완벽한 자유의 게임. 아주 좋아. 그렇지?”
“그-. 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안지혁.
그녀는 다시 술을 마셨다.
그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로 계속 마셨지만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무한의 자유도. 그건 어몽더스타즈의 방침일 뿐이야. 아무리 게임이라도, 국가에서 관리를 하게 되어 있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든지, 필요 이상으로 폭력성을 자극하면 그건 충분히 제재 대상이 되는 거야. 어몽즈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근데 국가에서도 관리 안 해. 심지어 어몽더스타즈가 유통되고 있는 모든 강대국에서도!!”
그녀는 뭔가를 조롱하듯 썩은 미소를 지었다.
“어몽더스타즈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뮤르니아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살아가며 성장하는 것. 레벨을 올리고 스탯을 쌓고, 강해지는 걸 권장하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냐고? 정체됐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상태창이 퀘스트를 날리거든. 강해지라고 계속 시그널을 보내는 거야.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보상을 주고.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강한 퀘스트를 주고 더 좋은 보상을 주지.”
술을 따르는 박하연.
안지혁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 저의가 뭡니까.”
박하연이 픽하고 웃었다.
“아직 대답 안했으니까.”
“?”
“너 아직 어몽즈가 게임이 아니면 어쩔래에 대한 대답을 안했어.”
그녀는 술이 담긴 스트레이트 잔을 감상하듯이 돌려보며 말을 이었다.
“난 질문만 하고 넌 대답만 한다. 여기에 대한 전제는 네가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상관이 없다는 거야. 다만 뭐든 말은 해줬으면 좋겠어. 어몽즈에서 안 죽었지라고 물었을 때,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것도 대답으로 쳤으니까.”
그녀는 안지혁을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몽즈가 게임이 아니면 어쩔래?”
안지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눈.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대답은 해줘도 되겠다는 눈빛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안지혁이 스트레이트 잔을 들었다.
“어몽즈가 게임이 아니면.”
그는 단숨에 술을 넘기고 말했다.
“게임을 만든 놈을 잡아 족쳐야죠.”
멍한 박하연의 눈동자.
그녀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뭐, 뭐라고??”
“누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몽즈 게임을 만든 놈을 잡아서 족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물어봐야죠. 왜 이딴 게임을 만들었냐고.”
“아. 어. 그렇긴 그렇지.”
예상외의 대답인지 박하연은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 했다.
안지혁이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무슨 대답을 바란 겁니까.”
박하연이 어깨를 으슥했다.
“딱히? 정해진 건 없었어. 그냥. 음. 근데 네 말이 맞는 거 같네. 만든 놈을 잡아서 족치면 될 문제네.”
“어몽즈 대표 잡으러 가면 되겠네요?”
“철컹철컹?”
“머리 잘 써서 안 걸리게 납치 해야죠.”
“요즘 같은 세상에 잘도 안 걸리겠다.”
“그건 누나의 능력.”
안지혁은 과일을 하나 집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질문해도 돼요?”
“해.”
안지혁은 고개를 잠시 끄덕인 다음에 말했다.
“그럼 누나는 어몽즈가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네요.”
“응.”
너무 빠른 대답.
그건 뭔가를 알고 있다는 의미와 같았다.
안지혁이 굳은 표정을 짓고 물었다.
“···그럼 게임이 아니면 뭐 같은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엥??”
“킥. 이상한 표정 짓지 마.”
“아니, 뭐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 건 누나잖아요!”
“그렇다고 말해줄 이유는 없지 않나? 너도 머리 굴리면서 이야기하고 있잖아.”
“으음···.”
“하지만.”
박하연이 한숨을 푹 쉬고 말을 계속했다.
“사실 우리는 네가 필요하니까. 일단 알고 있는 건 다 오픈 해야겠지?”
안지혁이 갸우뚱거렸다.
“우리?”
“그래. 우리.”
그녀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아까 그랬지? 고랩이 되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걸 하게 된다고. 나도 그러기 시작했지.”
“···뭔데요?”
“어몽즈에서 조직을 만들었어. 길드라고 표현하면 길드인데, 정식으로 길드 창설 절차를 밟지는 않았거든.”
“뭐하는 조직인데요?”
“어뜯보.”
“···네?”
“‘어몽더스타즈 뜯어 보기’의 약자야.”
“···. ···아하?”
“방금 묘하게 거리감이 있었네?”
“당황스러운 네이밍이라서요?”
“외국친구들은 좋아라하던데?”
“오. 나름 글로벌한 조직이네요.”
“꽤 글로벌 하지. 꽤. ···뭐 어쨌든. 우리는 어몽더스타즈가 게임이 아닐 거라는 전제를 가지고 움직이는 조직이야.”
이어지는 그녀의 말.
“우리는 어몽즈가 다른 세계, 즉 외행성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
“···네에??!!”
다른 세계라니??
안지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봤다.
박하연이 피식 웃었다.
“구라같아?”
“그, 그건 너무 과한 생각 아니에요?”
“그럴 수도? 근데 우리 조직에 나름 똑똑하거나, 부유한 애들이 많거든. 열심히 조사해본 결과가 그거야.”
“어떻게 조사를 했는데요.”
“가진 모든 자원과 역량을 다 동원했지. 수준까지는 말 못하겠다. 네가 못 믿을 게 뻔하니까. 어쨌든, 그렇게 조사해서 뭐가 나왔는지 알아?”
안지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뭔데요?”
그녀가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허탈하게 꺼낸 말.
“아무 것도 안 나왔어.”
“···네?”
“아무것도 안 나왔다고. 웃기지?”
안지혁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에요. 그게. 아무 것도 안 나왔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죠.”
박하연이 픽 웃었다.
“그러면 안 되거든.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나사도 털어먹을 수가 있어. 아? 나사는 미국 항공 우주국을 말하는 거야.”
“···!!!”
“거 봐. 안 믿을 거랬잖아.”
안지혁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는 거야. 털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고. 털어서 뭐가 나왔다면 어몽즈가 다른 세계니 뭐니 추측을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아무것도 안 나와서 가장 근접한 ‘가능성 유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다른 세계라는 답이 나왔어. 참고로 이 시뮬레이션을 만든 놈은 노벨 물리학자의 수제자야. 몇 회 수상자 인지는 말 못해주고.”
안지혁은 갑자기 전혀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흐르니 놀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그녀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이상한 거 못 느꼈어? 테스트를 하는데 알바비를 삼백만원이나 준다고 하고, 버그를 잡으면 성공 보수를 천만원이나 준다고 하는 거. 그게 일반 게임 회사에서 가능하기나 한 말이냐?”
“그건···.”
“너야, 아니 다른 알바들이야 돈에 눈이 멀어서 그러려니 하고 말았겠지. 돈 많이 준다고 하는데 누가 왜 돈을 많이 주는지 따지고 앉았냐. 그렇게 따지는 놈이 미친놈이지. 그냥 땡큐, 하고 끝이야. 하지만 우리 같은 놈들은 다르게 보거든. 왜 돈을 저렇게 줄까하고.”
“아니, 그거랑 어몽즈가 다른 세계라고 하는 거랑은 관계가-.”
그녀는 안지혁의 말을 끊었다.
“없지. 그것 때문에 어몽즈가 다른 세계라고 판단한 건 아니야. 하지만 간접 근거는 될 수 있지. 필요 이상의 돈을 주면서까지 버그를 잡아서 게임을 유지하려는 이유. 그 이유가 뭐냐는 거다.”
“···그럼 어떤 직접적인 이유로 어몽즈를 다른 세계라고 생각을 하신 거예요.”
“3시간.”
“···?”
“현실의 1시간이 어몽즈의 3시간이다. 이런 말 들어봤겠지?”
“···네.”
“아까 똑똑하다는 그 물리학자 놈이 계산을 해보니 어몽즈가 지구와 3시간정도의 굴곡을 가진 외행성일수도 있다고 결과를 내린 거지.”
“!!!"
안지혁은 잠시 놀랐지만 곧바로 반박했다.
“그럴 리 없어요. 분명 어몽즈 본사에-.”
“12시간짜리?”
“헉.”
박하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조직 너무 무시하지 마. 실제로 예전에 우리가 역으로 알바 한 명을 고용해서 보내기도 했었어.”
“···허.”
“거기에 대한 대답도 들었어. 워프를 2번 정도 하면 된다더군.”
“하···. 하하.”
“왜? 안 믿겨?”
안지혁은 허탈한 듯 되물었다.
“이게 믿어도 될 이야기인가요?”
“반드시는 아니지? 우리도 추측일 뿐. 추측에 가장 근접한 답이 외행성이었고, 그 추측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우리 조직이 움직이는 거니까. 근데 방금 네가 말한 대로 이 게임을 만든 놈을 잡아 족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네?”
“그럼 어떻게 알아낼 생각이었어요?”
“뮤르니아를 만나려고 했지.”
같은 목적.
박하연은 안지혁과 같은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네가 필요하다는 거야. 안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