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24. 후아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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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동물소리가 들린다. 아니 이건 원숭이 울음소리다. 여긴 원숭이 군락지가 분명하다. 한두 마리 울음소리가 아니다. 떼거지다.
“사부님 여기는 ···”
“그래 너도 짐작하겠지만 원숭이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 사는 곳이다.”
"골요리 드실려구요? 그건 좀..."
"허허. 골요리라니. 이 사부는 음식에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제자야 지금부터는 조심조심 움직여야 한다. 될 수 있으면 기척을 감추어야 한다.”
“네? 왜요? 원숭이 정도는 저 혼자 처리할 수 있어요.”
“이 녀석아. 괜한 살생은 업을 부르는 게야. 우리가 굳이 원숭이랑 드잡이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거만 가지고 가면 된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나도 원숭이는 죽이고 싶지 않다. 골 요리가 유명하다는데 그건 비위가 상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다.
다행히 사부 말씀 하시는 걸 보니 골 요리는 아닌가 보다.
기척을 숨기고 원숭이 무리들이 있는 곳을 지나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부가 발걸음을 멈춘 걸 보니 여기가 맞는 거 같았다.
“사부님! 여긴 나무밖에 없는 데요. 굳이 나무하러 여기까지 안 와도 되는데 왜 여기까지?”
“여기에 천하일미가 숨겨져 있다. 지금 보이는 나무 중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 나무를 찾아보거라.”
“네? 설마 나무 속에 영약이라도 있는 건가요?”
사부가 날 이렇게 생각하신다. 굳이 영약이 필요 없는데 준다면 거절하지 않겠다.
“영약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아주 필요하다. 녀석들이 눈치채기 전에 빨리 가져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라.”
알고 보니 원숭이들이 과일을 나무속에 넣어논걸 훔쳐가는 거였다. 이젠 하다하다 도둑질까지 할 팔자다.
일명 후아주. 원래 후아주란게 원숭이들이 술을 만들려고 나무속에 보관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아껴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넣어두었던 걸 잊어버려서 그게 발효되어 후아주가 된 것이다.
냉장고에 보관하던 음식을 까맣게 잊어먹은 꼴이다.
그런데 술을 어떻게 들고 가지? 물통도 작은 거 하나뿐인데. 내 거랑 사부 호로병 하나 총 두 개 다. 이 정도론 하루도 못 마신다.
내 술병에는 이미 한가득 찼다. 그런데 사부는 계속 술을 넣고 있다. 이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다. 갑자기 내가 살던 현대에서 삶에 아주 유명한 물건이 떠올랐다.
‘이건 아공간이야. 무한 저장 창고 아공간!!! 바로 이게 시초였어.
신이시여!!! 뱀파이어 로드시여!!! 절 여기로 보낸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공간가방이 어떤 물건인가? 각각의 능력치에 따르긴 하나 살아있는 생명체를 제외하곤 그 어떤 물건도 집어넣을 수 있다.
물론 전생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기본이 십억이다. 1톤을 담을 수 있는 아공간이···
무한 공간과 보온보랭의 마법 기능이 추가된 것은 값어치를 추산할 수 없다.
난 그 아공간의 기적을 지금 보고 있다. 혹시 내가 회귀를 한다면 다른 건 몰라도 저거는 챙겨가야 한다.
'사부님! 만수무강 포기하세요. '
“이제 되었다. 가자꾸나.”
사부와 함께 우린 원숭이촌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아복아!”
“네 걱정 마세요.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후아주와 고기 찰떡궁합이다. 이건 안 물어봐도 안다. 정말 소설처럼 술이 엄청 맛있는 걸까..
고기를 구워 사부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후아주. 그 천국의 맛!!! 아니 그냥 과일주였다.
예전에 먹어본 과일주 딱 그 정도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맛있다.
“사부님 그 호리병이요.”
“그래 이것이 궁금하더냐?”
“네. 작은 호리병에 엄청 들어가네요. 무슨 비법이라도 있나요?”
혹시 이 비법을 알면 난 고생 끝 지상천국을 펼칠 수 잇다. 뱀파이어라해도 피 같은 거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 아공간 가방을 팔아 천하제일의 부자가 될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다.
“비법은 아니다. 우리 배교의 신물이다. “
“신물이요?”
“우리 배교가 어떤 종교이더냐. 아무리 쇠락했다고 하나 이 땅의 모든 종교와 도문, 승문, 마문이 다 우리에게서 파생됐다.
도문의 시조라 불리는 전진교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한 지파에 불과했다.”
“그럼 신물이면 더 만들 수는 없어요?”
“이놈아! 신물이 여러 개 만들어지면 그게 신물이더냐. 딱 한 개다. 이번에 내가 길을 알려주었으니 다음엔 네가 술을 담아오거라.”
“네. “
아쉽기는 하지만 신물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 나쁘지 않다. 아니 내가 이 배교를 이어받으니 저건 내 거다.
“사부님! 그런데 술을 담으셨잖아요. 혹시 다른 것도 넣을 수 있어요?”
“아니다. 오직 물과 관련한 것만 담을 수 있다. 이건 단순한 저장고가 아니다. 이 신물에 물을 담으면 하루 정도 지나면 정화되고, 또한 뜨거운 걸 담으면 며칠 동안 뜨겁게 저장할 수 있다. 차가운 성질도 그 성질을 며칠간은 유지시킨다.”
“예? 근데 술맛은 평범한데요.”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거니와 원래 후아주란게 아주 맛이 없는 술이다. 이 호리병에 담겨있어서 그나마 맛있는 게야. 네가 가져온 호리병의 술을 마셔 보아라.”
내가 담은 술병의 술을 마셔보니 이건 정말 싸디싼 백주 맛이다. 아니 그보다도 못했다. 겨우 술맛만 난다. 결국 난 결론을 냈다.
이 신물은 아공간가방의 시초다. 현대의 아공간은 이것에서 진화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이거든 저거든 난 땡잡았다.
그렇게 사부와 나의 밤은 또 하루가 지나간다. 이제 곧 만월이 뜨는 밤이 온다.
***
“으 으 괴로워. 참을 수가 없어. 피! 피! 피가 고프다.”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만월의 밤이 왔다. 나름 동물의 피를 병에 담아 마셔보았지만 효과가 거의 없다. 만월엔 사람의 피가 필요하다.
사람이 마음먹으면 뭘 못하겟냐고 하겠지만 이건 마음과는 상관없다.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 하지만 이만 흔들린다.
입에서 피가 난다. 내 피라도 마셔본다. 전혀 효과가 없다.
이 근처엔 사람이 없다. 오직 나와 사부만이 있을 뿐이다.
괴롭다. 너무 힘들다. 피를 조금만이라도 마시고싶다. 그래도 집에선 어머니가 주시던 피로 잠시나마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지만 여기는 늙은 사부 하나뿐이다.
차마 사부에게 피를 뽑아달라 할 수 없다. 그러다 황천길로 가실 수 있다.
이대론 버티기가 힘들다. 들짐승이라도 조금 잡아 마셔야 한다. 운 좋게 호랑이 피라도 마시면 그나마 좋을 텐데··· 이곳엔 호랑이가 안 보인다.
서서히 이성을 잃어간다. 나의 눈은 진한 핓빛으로 물들었다. 만월의 밤중 가장 절정의 시각이다.
피 냄새가 느껴진다. 난 무의식중에 그 피 냄새가 있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사부의 방이다.
“크크크크! 피다. 인간이다. 신선한 피다.”
사부가 정좌한테 앉아있었다. 마치 날 기다린 거 같다. 난 손에서 긴 강철과 같은 손톱이 그리고 입에선 맹수의 송곳니처럼 튀어나온 이를 한 채로 사부에게 다가갔다.
사부의 목덜미가 보인다. 희디흰 여인의 속살은 아니지만 아주 맛있어 보이는 목이다. 물어 빨고 싶다. 피를 빨고 싶다.
“크아악”
난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로 사부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옥쇄결!!!”
사부가 술법을 외치자 난 꼼짝할 수 없었다. 아니 발버둥 치고 있다. 이 술법을 깨고 싶었다. 어서 피를 마시고 싶었다. 나의 처절한 몸부림은 계속되었다.
처음 때보단 그렇게 날 옭아매지 않는 거 같다. 난 강해졋다. 더욱 뱀파이어가 되어간다. 슬프다. 너무 힘들다.
“혼쇄지심결!!!”
사부의 두 번째 술법이다. 처음엔 이 술법에 정신을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희미하게나마 정신이 남아있다. 슬픈 정신이다 차라리 혼을 놓고 싶다. 하지만 욕망이 피의 욕망이 서서히 정신을 들게 한다.
“혼쇄천심결!!!”
사부가 또 하나의 술법을 부리자 난 정신을 잃었다. 이제야 평안이 찾아왔다. 만월의 밤 그 고통의 밤이 지나간다.
“허허. 벌써 이렇게 강해진 건가. 이제 혼쇄지심결만으로는 녀석을 쉬이 잠재울 수 있을 거 같지 않구나. 아니야. 혼쇄천심결도 오래가지 않을 거야..”
원래 이 술법은 역천의 술법이며 혼의 술법이다. 삼도천을 건너가려 하지 않고 이승에 머물길 원하는 악귀의 혼을 봉인하고 소멸시키는 술법이다.
그 어떤 악귀도 혼쇄천심결은 파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부는 알 수 있었다. 이 술법은 죽은자를 위한 술법, 산자에게는 한계가 있는 술법이다.
특히 아복이와 같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이능과 저주를 가진 이에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의 고민은 깊어간다.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마직막으로 얻든 제자다. 배교의 부흥을 이끌기 위해 수십 년간 헛심만 썼다.
이미 없어져야 할 유산을 붙잡고 혼자 외로이 생활하다 인연이 된 이가 아복이다. 설사 천하의 마인이 되더라도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도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제자야! 너만은 교의 부흥이니 협의지사니 이런 헛된 일에 구애받지 말고 신나게 마음껏 살아보거라.
이 세상 한바탕 크게 휘젓어보거라. 이 사부가 그렇게 만들어 주마.'
깊은 고뇌의 밤이 깊어지고 사부는 제자를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드르렁 드르렁"
***
만월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그때처럼 사부가 날 잠재운 거 같았다.
“사부님! 고마워요.”
“아복아. 많이 힘들더냐. 그리 참기가 힘들더냐?”
“네. 피가 피가 마시고 싶었어요. 저도 절 제어할 수가 없어요. 사부님 어서 술법을 알려주세요. 최소한 만월의 밤을 버텨낼 술법을 가르쳐주세요. 전 흡혈귀가 되고 싶지 않아요. 살고 싶어요. 죽이고 싶지 않아요. 사부님 도와주세요.!!!”
“아복아. 차차 생각해보자꾸나. 아직은 특별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난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도술이든 무공이든 다 필요 없다. 나에겐 오직 이 저주를 풀 방법만 있으면 된다.
“사부님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괴로워요. 전생에서도 괴롭고 현생도 괴롭습니다. 정말 이젠 희망이 보이지가 않아요.”
사부는 최선을 다했다.
사방옥새결, 혼쇄지심결, 혼쇄천심결 이 술법은 비록 영혼을 사로잡고 소멸시키는 술법이다.
하지만 술법 자체는 도문의 술법과는 차원이 다른 술법이다.
바로 종교의 힘이다. 먼 옛날 신을 숭배하고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종교에서 파생된 술법이다.
혼을 봉쇄하고 소멸시키는 술법이다. 그 술법이 듣지 않는다.
지금 무림 세상에서 도문이네 불문이네 하는 이들의 술법은 거의 사라졌다. 오직 무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신과 점차 멀어져가는 세상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정통의 술법이다.
‘허허 그랬던가. 환생이라. 그래서 술법이 통하지가 않았구나. 그렇지 그래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