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55. 공주님!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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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왜 공주가 이 늦은 밤 방문했을까? 이런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안다. 더구나 난 이미 경험이 있다.
천부 심경 때문일까? 공주의 영약 때문일까? 나의 돌머리가 이제 서서히 부서져감을 알고 있다.
‘마마! 아니되옵니다. 더이상 가까이 오시면 아니 되옵니다. 저를 제발 시험에 들지말게 하시옵소서.’
독경을 멈추고 마음속으로 공주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아니 다가오기를 빌었다. 흔들리는 갈대다. 오기를 바라면서 떠나기를 바라는 난 야누스다.
[사박사박]
바람 소리일까? 그녀의 옷깃 소리일까? 눈을 감았지만 알 수 있다. 공주 옷을 가볍게 입고 왔다. 이런 건 안 봐도 안다.
천상의 음률보다 더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복아!”
“...”
“아복아!!!”
"......"
여기서 답하다간 큰일이다. 나 열혈청년이다.
‘공주님! 그만 불러요. 저도 남자입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아복아! 날 이리 무시하는 거냐? 어서 눈을 떠보거라. “
별수 없이 눈을 떴다. 앉은 채 독경했으니 잠자는 척도 못 한다.
“마마! 이 늦은 밤 어인 일로 오셨습......”
“바보! 넌 바보구나. 내가 어찌 왔는지 진정 모르느냐?”
‘압니다. 당연히 알지요. 그냥 해본 말입니다. 공주님 제발 참아주세요.”
“ 고 공주님···”
“내 이름은 주설아 이다. 설아라고 불러다오. 오늘밤 너에게 공주이기보다 설아란 여인이고 싶구나.”
“설아님!!!”
불가항력이다. 공주의 치명적인 채취 어질어질하다. 심장이 마구마구 뛰기 시작한다. 섬섬옥수일까 희디 흰 그녀의 손이 내 머리를 만진다.
“아복아! 널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구나. 내 마음 알 거라 생각한다. 어려워 말거라. 나도 처음이니라.”
‘공주님! 죄송합니다. 전 처음 아닙니다.’
그녀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이성이고 나발이고 한계다.
‘공주님! 진짜 이러시면 안 돼요. 아니 아니 아니... 돼요. 됩니다. 저도 이젠 못 참습니다.’
뜨거운 밤 하룻밤 그녀와 사랑을 나눈 밤이다.
***
아침에 눈을 떠보니 공주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자기 침실로 돌아간 거 같다. 냥이 녀석도 보이지 않는다.
꿈이었을까? 아니 현실이다. 어젯밤 공주와 사랑은 결코 꿈이 아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럽다.
‘그냥 여기서 살아? 부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신분의 격차, 궁중 생활의 답답함,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있을지 떠날지 갈팡질팡이다. 하지만 떠나기로 했다.
“마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지금 떠나려느냐?”
“네 마마.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잠깐!!!”
‘잉? 설마 공주가 어젯밤 일로 책임지라 하려고 하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데···’
“이걸 가져가도록 해라.”
공주가 준 건 비환이다 쉽게 말하면 팔찌다.
“이 이것은 무엇입니까?”
“어서 차보도록 해라. 멀리 서역에서 온 물건이니라. 무병장수에 효과가 크다고 하더구나.”
‘안차도 돼요. 뱀파이어 잘 안 죽어요. 공주님 차세요. 병으로 일찍 죽는 뱀파이어는 없어요.’
라고 하고 싶지만 공주의 간절한 눈빛에 팔찌를 찰 수밖에 없다. 아니 공주가 손수 팔찌를 채워주었다.
“아주 멋있구나. 너에게 정말 어울리는구나.”
“그런가요? 헤헤헤! 공주님 감사합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이별의 순간이 길어지면 더 힘들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봇짐을 챙겨 황궁을 나섰다.
‘늴리리야 늴리리!’
***
“마마! 그 비환은 부마가 되는 분에게만 ···”
“유모! 모른 체하지 마. 어제 아복이랑 난 하나가 됐어. 그가 이젠 부마야.”
“마마!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다고 하나 공주님의 배필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심이 ...”
“신분 따윈 상관 안 해. 아니 부족하면 만들면 돼. 지위와 명예 그건 내가 만들어놓을 거야. 아복이는 내 거야. 누구한테도 양보 못해.”
“마마! 그럼 왜 그를 잡지 않고 보내셨습니까?”
오랜 기간 공주를 호위하는 무장이 물어본다. 신분 같은 거 신경을 안 쓴다면 굳이 궁밖에 보내지 않고 같이 살아도 된다.
대신들의 반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공주를 끔찍히 아끼는 황제가 있기에 불가능하지는 않다.
“지금은 보내야 해. 아직은 궁이 많이 답답할 거야. 난 알아. 만약 그를 잡아두면 영원히 도망갈 생각만 할 거라는 걸···”
“괘씸합니다. 언제 돌아올지 얘기도 않고 그저 쌩하고 나가다니 너무 괘씸합니다.”
“호호호! 다 생각이 있어. 용봉비환 원래 한 쌍이잖아. 뛰어봐야 벼룩이지. 이 비환이 그가 있는 곳을 알려줄 거야. “
신물이라 불리는 용봉비환! 상대방이 위급하거나 다칠 때 신호를 주기도 하고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 당장 황궁 무고를 열어.”
“마마! 이제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무공은 좀 더 회복을 하시고···”
“아니 내 남자는 내가 지켜야지. 얼마나 많은 여자가 꼬리 치겠어. “
“마마!!!”
“그이 덕분에 임독양맥도 타동되고 환골탈태까지 했어. 우선은 놔둘 거야. 맘껏 뛰어놀라고... 기다려 봐! 내가 폐관이 끝나면 아주 단단히 ···”
유모와 호위 무장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공주 어렸을 때부터 영약이란 영약은 다 먹었다. 내공이란 게 영약을 먹었다고 갑작스레 늘지 안는다.
하지만 공주는 다르다. 아복이의 의술이 내공을 증폭시켰다. 순수한 내공으로 보면 이미 유모와 호위 무장을 넘어섰다.
이미 지혜와 학문은 황실 최고라 불리워진다. 구음절맥의 특성답게 육체적 능력은 감퇴하지만 정신적 능력은 그 누구보다 더 뛰어나다.
“은밀각주를 불러와!"
얼마 지나지 않아 은밀각주가 공주의 처소에 방문했다.
“은밀각 천비효 공주님의 부름을 받자옵니다.”
“각주! 사람 하나 추천 좀 해줘. 추적과 탐지 그리고 무공이 높은 애로 단 여자는 절대 안돼.”
“마마! 은밀각 모두 추적에 특화된 자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누굴 추적하여야 하는지요?”
“누구긴 누구야? 진아복 날 고쳐준 남자지. 제대로 한명 붙여야 해. 그의 무공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
공주는 은밀각주에게 아복의 추적을 명하고 바로 황궁 무고에 들어갔다.
공주의 마음은 한시가 급하다. 최소한 초절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를 잡아둘 수 있다. 이런 건 남들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기다려! 내 꼭 찾아갈 테니···”
***
황궁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한기가 들었다. 살짝도 아니고 뼛속같이 춥다.
‘이거 뭐야. 왜 이리 춥지? 에고 황궁 밖을 나와서 그런가? 설마 광녀? 공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무조건 길을 걸었다. 아니 뛰었다. 황궁과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다.
솔직히 황궁 근처 음식 맛 하나만으로도 손님들이 줄을 서 있는 객잔도 있고 월궁항아들이 즐비하다는 유명한 기루도 많지만 더 엮이기 싫었다.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갓집과 되도록 멀리 있으라는 속담도 있듯이 기루, 객잔을 다 지나치고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를 꼬박 아니 반나절을 조금 넘게 달리니 어느덧 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내 무공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신법은 없지만 축지법은 있다. 언젠가 신법도 통달하리라. 우선 배고프니 육포라도 꺼내 먹어야 할 때다. 점심도 거른 채 달렸다.
황궁을 떠나기 전 삼불의 원칙을 세웟다.
첫째; 여자를 멀리 한다.(아주 당분간)
둘째: 소문난 객잔에 가지 않는다. (당분간)
셋째: 기루는 피한다. (당분간)
산의 초입에 들어서니 밤이 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꼬르륵]
봇짐을 풀어보았다. 공주가 정성껏 담아준 옷과 음식이 있다. 신발도 있다. 그리고 야옹이도 있다. 기절할 뻔 했다.
“야!!! 너 언제 이 안에 들어갔어?”
“냐아! 왜그런다냥. 나만 쏙 빼놓고 도망갈라 했다냥. 집사 나쁘다냥.”
“너 공주랑 살지 왜 따라왔어? 공주님이 이름도 정해줬잖아.”
“싫다냥. 거기 여인냥들 너무 기가 드세다냥. 난 자유냥이다냥. “
“야!!! 어서 돌아가. 공주님이 널 기다리잖아. 어서!!!”
“안 간다냥. 그리고 집사 너무한다냥. "
아주 진드기가 따로 없다. 짐덩어리 하나 있다고 크게 나쁠 건 같지 않다.
그래도 녀석이 공주의 병을 고치는데 도움을 주었기에 매몰차게 내칠 수는 없다.
어느덧 나도 정이 든거 같다.
배가 고프다. 너무 고프다. 이미 뱃속시계가 가르키는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버렷다.
항상 밥때는 제대로 지켰지만 예외란 게 있다. 또다시 사건 사고에 휘말리긴 싫었다.
공주가 손수 골라 담아준 육포를 꺼냈다.
혼자 먹으려고 했지만 옆에서 간절히 원하는 녀석의 눈동자를 본 순간 같이 먹기로 했다.
“조금만 먹어.”
"싫다냥. 집사가 조금 먹으라용. 난 많이 먹겠다용."
황궁에서 만든 육포라 그런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양념 따로 안쳐도 된다. 진짜 좋은 고기는 그냥 먹어도 맛있다.
고기를 먹으니 술 한잔이 생각이 난다. 금존청 꽉꽉 호리병에 눌러 담았다. 아니 우리 공주가 몸소 술을 넣어주었다.
문제는 술잔이 없다. 호리병채로 마시면 맛이 안 난다. 술은 잔에 따라 먹어야 맛있다. 난 지킬 건 지킨다.
‘어디 보자. 술잔 대용으로 쓸만한 게 없나?’
산 초입에 술잔이 떡하니 나타날 리 만무하다.
나의 돌머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이제 제법 명석한 두뇌를 가지게 되었기에 임기응변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게 됐다.
신의 무구 미스릴로 돌을 깎아 잔을 만들었다. 모양이야 좀 아쉽지만 제법 잔의 모습을 갖췃다. 이렇게 난 먹고 마시는데 엄격한 철칙을 갖고 있다.
[쪼르륵]
호리병에 막 한잔 따르자마자 까망이 녀석 잽싸게 잔을 낚아챈다. 진짜 얌체다. 정이 들었을까? 왠지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의 잔을 만들어 술을 따랐다. 다행히 녀석도 양심이 있는지 이 잔은 뺏지 않았다.
'에고고! 헤어진지 하루도 안됐는데 공주가 보고 싶네. 잘 지내고 있겠지?'
술을 몇 잔 더 마시자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풀밭에 벌렁 누워 잠을 청한다. 이게 천국이다. 황궁 원앙금침보다 더 좋다. 공주는 보고 싶다.
[드르렁 드르렁!]
[고르르 컥컥 고롱 고롱 컥컥!]
공주가 흑아란 이름까지 손수 지어준 냥이는 여전히 집사의 배위에 잠이 든다. 공주의 침소에서도 잠을 자봤지만 이 배만큼 편한 자리가 없다.
집사 하나는 확실히 잘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