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해줘.” “……뭘?” “남장.” 수능을 막 끝낸, 유독 한겨울처럼 추웠던 11월의 어느 날. 첫사랑에게 실연당한 이종사촌의 터무니없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재이는, 사기라고는 한 번도 당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차서주의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서재진이야.” 성은 물론이요, 이름까지 위장하고 “해신남고 다녀.” 입학이 불가능한 학교에 재학 중인 척도 했다. 그리고……. “도망치면 안 된다?” “……어?” “약속 지켜. 내 뒤통수치지 말고.” “…….” “안 지키면 화낼 거야, 재진아.” 일방적으로 사라지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그의 경고를 무시한 채 완벽하게 도망도 쳤다. 그렇게 끝났어야 할 관계가 분명한데. “내가 말했잖아. 도망치면 안 된다고.” 우연이라도, 이 하늘 아래에서 두 번 다신 만나지 말자 다짐했던 남자와 재회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