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부 대공-40화 (41/59)

제 40화

개편 (2)

하루가 지나고 만난 마테오.

장인들을 이끌고 온 그는 바로 사브타 성 내부에 공방을 세울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적당한 입지가 있는가?”

“아무래도 오래된 성이고 해자가 있다 보니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흐음…”

로마시대에 지어진 성.

그걸 마개조까지 해서 이슬람식 내성에 해자까지 끼얹다 보니 공간 활용도가 영 좋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장 중요한 인력인 이들을 밖에 둘 수 없는 상황.

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있으면 화포의 시대.

쓸모없는 해자를 해제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백성을 품기로 한 상태.

그런 상태에서 강제로 징발할 경우 말짱 도루묵이니 해자를 메꾸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성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내게 생각나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혹시 무기고를 개조해서 공방으로 사용할 수 있나?”

“무기고를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무기고라면 공간도 넓고 그늘져 공방으로 사용하기 적합할 거로 생각하네.”

“그러면 안에 있는 무기들은 어디에 보관 하시려 하십니까?”

“병영을 밖에 두려 하네.”

“병영을 밖에…?”

날 거의 미친놈처럼 보는 마테오.

예전에 청동 대포에 바퀴를 두 개 더 부착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보다 더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군의 규모를 점점 키워나갈 예정이니 이들이 머무를 군영을 밖에 세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군의 편제.

내가 상비군을 400 명 정도만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이들이 쓸 무기도 자연스럽게 늘어 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엄청난 부피를 자랑할 대포.

이 대포를 무기고에 쌓아두면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제부터 주철 대포를 만들 시간.

그렇기에 초기 불량으로 인해 폭발하는 걸 염두 해 둬야 했다.

나도 솔직히 비교적 안전한 청동 대포를 만들어내고 싶었지만…

청동이란 재료는 정말 비싼 재료여서 내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체재로 선택된 주철.

그런 주철로 만들어질 대포들을 아군 보병들이 이용할 예정이었으니 무기고에 놔두는 건 장식품 용도 밖에 안 됐다.

“흠…확실히 대포를 주력으로 하신다고 하셨으니 군영을 밖에 세우는 게 더 안전해 보입니다.”

추가적인 대포의 문제인 폭발 문제.

열을 과하게 받으면 뒤틀리곤 했는데…주철의 경우 아에 밥솥 마냥 터지곤 했다.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테오.

아직 주철 대포의 프로토타입도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베네치아 병기창에서 대포를 만들어 본 마테오였기에 누구보다 이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과인 마테오를 납득시킨 나.

나는 이참에 내 주장을 이어 나갔다.

“장인 중 일부를 시켜 몰수한 토호의 저택을 군영으로 개조할 수 있나?”

“송구스럽지만 장인 중에는 그런 일을 해 본 사람이 없습니다.”

단호한 마테오의 말.

다른 소설이나 이런데 보면 장인들은 거의 만능 수준이었는데 내 휘하 장인들은 오로지 무기 원툴이었다.

아쉬운 상황.

어쩔 수 없이 엘프 목수들에게 돈을 주고 부려 저택을 개조해야만 했다.

비좁은 세우타.

하지만 나름 지방 토호들이 있었는지 부를 축적한 토호들이 거대한 장원처럼 집을 지어두었다.

과거 서고트 족이 세웠던 그 장원 스타일을 답습한 느낌.

여기에 이슬람 느낌을 섞어서 그런지 콩키스타도르의 엔코미엔다(Encomienda) 같은 복합적인 장원 느낌이 났다.

덕분에 병영으로 쓰기 적당했고,

무엇보다 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명령도 빠르게 하달될 수 있었다.

“알겠네. 이 부분은 엘프 목수들에게 맡겨야겠군.”

내 말에 안도의 표정을 지은 마테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명령해 둔 청동 대포의 설치는 어떻게 되어가나?”

“이슬람 식 성이라 망루 위의 틈이 좁아 조금 개조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활을 쓰고 있는 북아프리카 문화권.

물론 오스만 제국에 인접해 있는 곳은 대포로 무장해 있지만 그 대포도 청동 대포 같은 대포가 아닌 거대한 사석포에 가까웠다.

거포 주의에 빠져 있는 이슬람.

쉴레이만 1 세의 증조부, 정복자(Fâtih) 메흐메트 2 세 이후부터 우르반 대포를 필두로 거포 만을 찍어내고 있었다.

한 번 쏘면 포신을 식히느라 200 명 이상이 달라붙어 부채질을 해야 하는 미친 대포.

이런 대포 말고 작고 여러 번 쏠 수 있는 대포를 선택한 유럽인들은 일부 성에 대포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의 망루의 일부는 대포를 댈 수 있게 넓게 개조된 반면…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는 아직도 활을 쓰기에 비좁은 틈이 많았다.

현대인 기준으로 그냥 깎아 내면 되는 부분이지만,

성의 망루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걸릴 거로 생각하지?”

“청동대포 5 문 중 2 문만 도착했고 아직 3 문이 덜 왔으니…대략 일주일 이상은 걸릴 거 같습니다.”

“흐음…”

애매한 시간.

모로코 군이 알제를 정복했던 못했던 돌아올 시간과 기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포르투갈 군이 페스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모로코 군의 지휘관 무함마드.

신중한 아베이루 공작이 이끄는 포르투갈 군이 페스를 점령하는 건 어렵지만,

피해는 줄 수 있었기에 무함마드는 회군을 선택해야만 했다.

무라비트 왕조 시절의 수도이자 지금 사드 왕조의 군사 도시인 페스.

중요한 도시인 만큼 이곳을 지켜야만 했다.

그렇게 페스로 돌아온다면…

당연히 자기 앞길을 막은 포르투갈 군과 우리를 공격하러 올 예정인 모로코 군.

이번에는 수성전이었기에 해 볼 만 했지만 조심해야만 했다.

“더 빠르게는 불가능한가?”

“바르바리 해적들만 아니면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만…”

매번 도움이 전혀 안 되는 해적 놈들.

저번에는 연합군 식량을 훔치고 다니더니 이번에는 대포를 노리고 있었다.

엄청 비싼 재료 중 하나인 청동.

그래서 해적들은 해안 강습하면 바로 교회로 뛰어가 촛대와 교회의 종을 떼오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교회의 종은 청동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걸 잘 아는 바르바리 해적들이 청동 덩어리인 대포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장인들과 함께 간신히 도착한 2 문의 청동 대포.

나머지 3 문 모두 가져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끄응…”

아쉬운 부분.

일단 급한 대로 2 문이라도 성벽에 사열 시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 * *

정말 바쁜 하루.

나는 오전에 마테오를 만난 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오후 업무에 들어갔다.

바로 세금에 대한 문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산추 재상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그를 불러 말라가 영지를 공백 상태로 둘 수 없었기에 나 혼자 낑낑대야만 했다.

내가 적용하려는 세금.

그러니까 일종의 종교세로 이슬람의 지즈야(Jizya)를 변경 시킨 세금이었다.

원래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비이슬람 피지배인들에게 매기는 세금.

그런데 이게 보편 파디샤, 그러니까 오스만 제국 이후로 일종의 인두세처럼 사용되었다.

성인 남성 한 명에게 부과되는 세금.

이 시기의 우리나라, 조선에서 볼 수 있는 세금과 달리 은과 금으로 납부 해야 하는 게 특징이었다.

빈민자의 경우 40g 은이나 0.5g의 금.

중산층의 경우 80g 은이나 1g의 금.

부유층의 경우 120g 은이나 2g의 금을 매년 납부해야 했다.

스페인이나 오스만 제국의 일반 세금보다 조금 높은 금액의 세금.

이 세금을 낼 경우 종교가 달라도 차별하면 안 됐다.

종교를 지키고 싶으면 내야 하는 세금.

아니라면 개종을 해 일반 세금(소득의 1/40)을 내는 세금을 내면 그만이었다.

개종을 독려하는 정책.

아무래도 종족이 다르기에 통합을 위해서는 종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차별 정책.

하지만 16 세기였기에 이런 세금 정책은 나름(?) 착한 세금이었다.

이 당시에 있었던 스페인의 세금 정책인 알카발라(Alcabala).

물건에 무려 14%나 소비세를 매기는 정책인데 이게 소매 업체 세 번만 거치면 값이 두 배로 뛰는 마법을 보였다.

이 때문에 스페인 내부 경제는 박살이 나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내 경우 이 세금을 면제할 예정이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상공업의 발달.

다른 하나는 민생 안정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상공업의 발달의 경우…

세우타 영지에 상업 지구를 세울 예정이었다.

이곳에 차별받는 유대인들과 여러 상인들이 머물며 무과세로 장사할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상업이 활발한 베네치아, 제노바, 북독일 지역을 이기려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정책을 해야만 했다.

상업이 크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 인두세를 더 받을 수 있는 정책.

이런 정책으로 주변 인구를 땡겨 올 생각이었다.

추가로 운이 좋으면 해외 자본이 흘러 들어올 수도 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두 번째는 민생 안정.

종교세는 사회 통합의 목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지만,

알카발라의 경우 과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

이 세금을 유지하던 스페인은 17 세기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무수한 반란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독립을 부추긴 세금.

여기에 추가로 이 세금과 더불어 개신교도라는 이유로 추가 세금을 냈었던 저지대 사람들은 결국 독립을 선택하고 말았다.

돈도 벌고 싶고 강제개종도 하고 싶었던 욕심 많은 펠리페 2 세 형.

형의 과용 때문에 부유한 땅인 저지대를 잃은 걸 반면교사 삼아 나는 이 세금을 도입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나름 괜찮은 정책이네.”

내 입에서 나온 혼잣말.

하지만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자고로 세금 정책은 고대 때부터 항상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었기에 자만하지 않고 주변의 조언을 구했다.

“세뇨라 이자벨.”

근위병에게 부탁해 호출한 집사장 이자벨.

산추 재상이 말라가 영지의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했다면,

살림은 그녀가 담당했기에 그녀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부르셨습니까?”

“네, 이번에 세금 정책을 고려해 봤는데 어떤지 의견이 필요합니다.”

“제가 감히…”

“아뇨, 제 집사장이 산추 재상과 함께 말라가 백작령을 어떻게 지켜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세뇨라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해 주시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건넨 양피지를 살피는 이자벨.

그녀는 천천히 읽어 본 뒤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혹시 이 종교세 부분은 지즈야를 인용하신 부분인지요?”

“네, 맞습니다.”

“흠…백작 님이 개종을 독려하기 위해 하시는 건 알고 있지만…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입니까?”

“백작 님께 송구스러우나…”

“가감 없이 말씀하시지요.”

“자기 종교에 대해 과세를 한다는 부분에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흐음…”

꽤 어려운 부분.

나는 그녀의 말에 이걸 어떻게 잘 다듬어야 하나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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