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개편 (4)
작고 재빠른 배에 잔뜩 타 있는 이교도 엘프들.
그걸 본 후안 데 라 세르다는 혀를 내둘렀다.
“허…”
“적군이 상륙하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합니다.”
“알고 있소.”
적군을 살피는 시칠리아 총독.
어디서 나타난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적의 함대.
86 척이나 되는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는 건…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이교도 들이군.”
트리폴리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적의 대함대.
이 함대가 올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콘스탄티노플 뿐이었다.
즉, 적장 드라구트는 이미 카톨릭 연합군의 공격을 예견하고 준비했다는 뜻.
그걸 알아차린 시칠리아 총독은 이번 전투가 완전히 실패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적군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난장판이 된 연합군.
가장 먼저 진영을 이탈하려는 약삭빠른 베네치아와 교황령의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제대로 된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상태.
사실상 사기가 바로 꺾여 버렸음을 알고 시칠리아 총독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
피오베라 후작의 외침.
그 외침에 시칠리아 총독은 생각을 정리하고 연합군이 취할 행동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제노바 공국의 차기 공작의 말을 따라야겠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안드레아 도리아.
그는 갑작스럽게 전략을 바꾸는 시칠리아 총독을 바라보았다.
“이미 적군이 근접해 있으니 해전은 어렵다고 보오.”
“하지만 해전을 치뤄야만 적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치만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적의 공격에 계속 휘둘릴 수밖에 없소이다.”
“그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쪽 남쪽의 요새가 하나 있소.”
부관을 시켜 정찰병이 간단하게 만든 지도를 가져오게 시킨 시칠리아 총독.
지휘부 앞에 지도가 펼쳐지자 후안 데 라 세르다가 말하는 그 장소를 모두가 알아차렸다.
“연합군 일부를 이끌고 이곳을 점령한 뒤 우리가 적군과 해전을 벌일 때 트리폴리를 요격하시오.”
“제가 말씀이십니까?”
“공동 지휘관이니 충분히 해낼 거라 믿소.”
시칠리아 총독의 계획.
그걸 들은 안드레아 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명령을 수락하겠습니다.”
그러자 자기 옆에 있는 고령의 후작을 바라보는 시칠리아 총독.
그의 뜻을 이해했는지 피오베라 후작, 돈 알바로 데 산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오베라 후작 님이 곁에서 도와줄 거요.”
“…감사합니다.”
젊은 나이인 조반니 안드레아 도리아.
군이라는 조직 자체가 경직되고 나이를 따지는 조직이다 보니...
안드레아 도리아 혼자 보다는 전공도 있고 나이도 있는 피오베라 후작이 곁에 있어야 병사들이 말을 잘 들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시칠리아 후작.
이대로 포위될 경우 병사 수와 상관없이 패배로 직결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이런 판단을 내렸다.
적의 본 거지가 공격당하면 자연스럽게 포위를 풀 수밖에 없게 되는 점을 이용한 전략.
이를 위해서는 적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는 게 필수였다.
“빠르게 움직이시오. 나는 연합군을 이끌고 적 함대에 맞서 싸우겠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안드레아 도리아.
그는 바로 자신 휘하의 병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이를 뒤 따르는 피오베라 후작.
그는 잠시 시칠리아 총독을 바라보고는 안드레아 도리아를 바짝 뒤쫓았다.
* * *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바다.
과거 포에니 전쟁의 무대 위에서 격돌한 카톨릭 연합함대와 오스만 제국 함대가 격돌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그 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파도 소리에 묻혔기 때문이었다.
“대포를 발사해라!”
청동 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하는 병사들.
재 빠른 선체를 요격하는 건 어려웠기에 적의 기동력을 빼앗기 위해 노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사격이 이어졌다.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격음.
하지만 이미 싸울 마음이 없어진 교황령 측과 베네치아 군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카톨릭 연합군의 피해가 계속 늘어났다.
“알라히 아크바! (신은 절대적이다!)”
“울리크 알라! (알라께 굴종하라!)”
아랍어를 뱉으며 카톨릭 연합함대에 올라타는 이교도 병사들.
시미터를 들고 기이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엘프 이교도들을 상대하는 병사들은 우왕좌왕 했다.
스페인 군대와 달리 백병전에 취약한 교황령 측 병사들과 베네치아 병사들.
허수아비에 불과한 이들은 이교도의 칼날에 바로 물고기 밥 신세가 되어 바다에 떨어졌다.
“칫…모두 권총을 쏴서 적의 접근을 막아라!”
스냅 펀스(Snaphance) 권총.
부싯돌이 강철 팬 위의 스트라이커 플레이트에 부딪혀 발사되는 일종의 개인 화기였다.
아쿼버스와 달리 한 손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일종의 소형 화기.
스페인 군의 일부는 로페라와 이런 권총을 착용하고 있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스냅 펀트 권총을 발사해 엘프 이교도들의 접근을 막았지만…
이미 기세가 밀린 카톨릭 연합군은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아아아…배가 침몰한다…”
“살려 줘!”
“끄아아악.”
적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기 시작하는 연합군 함선들.
눈에 보이는 함선으로 보아 무려 40 척이나 침몰하기 시작했고,
일부 이교도들에게 점령된 함선들이 나포되어 전선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눈에 뻔히 보이는 패배.
수적으로 우세에 있었던 연합군 사이에 패배의 기운이 흐르자 도미노처럼 와해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함선이 전선을 이탈합니다!”
“교황령 측 함선이 전선을 이탈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화를 내는 시칠리아 총독.
매번 느끼는 거지만 돈 말고는 믿는 거 하나도 없는 베네치아 놈들이나 신앙심을 들먹이는 교황청을 믿은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데…그걸 버티지 못 하는 연합군.
연합군 공동 사령관인 후안 데 라 세르다의 처지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총독 님. 기함이 위험합니다. 도망치셔야 합니다!”
“…알겠다.”
이대로 적에게 잡혀 포로로 콘스탄티노플로 끌려가는 수치스러운 일을 당할 생각이 없는 총독.
그는 패배를 직감하고 배에 달린 소형 배로 옮겨 타 자기 영지, 시칠리아 방면으로 향했다.
침몰하는 수많은 배들.
처음 출발했을 때는 그 위용 만으로 적군을 짓밟아 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결국 실패를 하고 말았다.
이슬람의 검, 드라구트의 신출귀몰한 능력.
그걸 눈으로 본 시칠리아 총독은 이를 갈았다.
“아직…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충분히 시간을 끌어줬다고 믿고 있는 시칠리아 총독.
그는 제르바 섬 남쪽에 위치한 성채를 바라보았다.
* * *
거친 숨을 몰아쉬는 조반니 안드레아 도리아.
그는 검을 휘두르며 몰려드는 엘프 이교도들의 목을 계속 베어 나갔다.
“허억…허억…괜찮으십니까?”
안드레아 도리아에게 다가온 병사.
제노바의 문장을 새긴 갑옷을 입고 있는 거로 보아 제노바 병사임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군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
“송구스럽지만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으로 적의 규모와 공격 진로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큭…”
분노로 일렁이는 안드레아 도리아의 눈.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드라구트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시칠리아 총독의 절묘한 계책.
연합군이 적의 본대를 막는 사이 일부 함선을 차출해 적의 심장, 트리폴리를 습격한다는 계획은 완벽한 계획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이견이 없는 안드레아 도리아.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상대가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총독, 드라구트라는 점이 실책이었다.
이미 이곳에 올 거라 예측한 드라구트.
그는 자기 휘하, 피알리 파샤를 출격 시켜 이들이 트리폴리로 향하기 전에 이 요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
트리폴리로 나아갈 준비하고 있었던 안드레아 도리아와 돈 알바로 산데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적은 수의 병력이지만,
트리폴리로 항해하기 전에 들켜 버린 상황.
이대로 계속 막힌다면 결국 섬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포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속 항전을 하는 안드레아 도리아와 피오베라 후작.
하지만 적의 증원은 계속되고 요새 인근 해변에는 이미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포위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작전이 실패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안드레아 도리아.
하지만 순순히 패배할 생각이 없는 그는 최후의 저항을 이어 나갔다.
“제노바 공작.”
“…”
갑자기 안드레아 도리아를 제노바 공작이라 부르는 피오베라 후작.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젊은 제독을 바라보았다.
“우린 패배했소.”
“아직 입니다. 아직이라 생각합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하오.”
손가락으로밖을 가리키는 피오베라 후작.
밖에는 끔찍한 학살이 이어지고 있었다.
“…”
“당장 작은 배를 타고 이 섬을 빠져나가 제노바로 돌아가시게.”
“후작 님께서는…”
“나는 오래 살았으니 패배 따윈 괘념치 않소이다.”
“후작 님…”
“걱정 하지마시오. 오스만이 사악한 이교도이나 포로를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않소이다.”
“…”
망설이는 안드레아 도리아를 바라보는 피오베라 후작.
그는 젊은 사령관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은 패배를 겪기에는 아직 젊소. 부디 무사히 돌아가 내 복수를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끄덕인 안드레아 도리아.
그는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이끌고 요새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가 밖으로 나간 걸 보자 스페인 병사들을 이끌고 이교도를 막아서는 피오베라 후작.
그의 모습을 본 안드레아 도리아는 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피오베라 후작 님…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국적을 초월해 젊은 제독을 살리는 걸 선택한 돈 알바로 데 산데.
이번 전투는 패배했지만,
오스만 군이 계속 카톨릭 세계를 노리고 있었기에 그는 늙은 자신 대신 젊은 제독을 살리는 걸 선택했다.
그 뜻을 이해한 조반니 안드레아 도리아.
할아버지를 따라 해군으로 복무한 그였지만…이런 뼈 아픈 패배는 처음이었다.
자연스럽게 분노로 일렁이는 그의 눈.
이런 치욕과 모욕을 준 이교도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다짐했다.
“이 치욕…언젠간 되갚아 주마…”
그렇게 작은 배에 몸을 실은 조반니 안드레아 도리아.
신의 안배 덕분인지 그는 무사히 몰타 섬에 도착해 제노바로 귀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