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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2화 (2/134)

2. 새로운 인생(1)

2016.12.16.

오늘도 눈뜨자마자 난, 짧았던 금수저 시절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말하면 뭐하겠는가.

“하아...”

백작 영애였던 내가 왜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라고 있냐고 물으면, 정말 눈물밖에 안 난다. 환생 버프라고 좋아했는데... 내가... 내가... 알고 보니 친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아... 유모의 아이와 뒤바뀌었다나...!?

15년 전.

내가 태어났을 때, 귀족가에서 으레 그렇듯이 젖먹이용 유모를 구했다고 한다. 당연히도 유모 역시 막 아이를 낳은 상태였다. 그래야 젖이 나올 테니까.

우연히도, 우리 둘은 성별도 머리카락 색도 똑같았다. 아기의 얼굴이야 뭐 다 그냥 찌글찌글 시뻘거니까 구분하기도 힘들겠지. 특히 빼액 인상 쓰고 울기라도 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니...

그러던 어느 날,

유모, 그러니까 내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나를 딱 하루 백작가에 데리고 왔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 아이가 바뀌었던 것 같다.

물론, 당연히도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추측해 보건데, 환생자로 호기심이 왕성했던 내가 저택의 모습이 신기해서 열심히 기어 다니지 않았을까?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말이다.

아무래도 환생자라 발달수준이 빨랐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배밀이라도 해서 열심히 기어 다녔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진짜 백작영애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서 뒹굴 거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꺼 보다 뭔가 더 좋아 보이는 포대기까지 빼앗아 휘감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부 추측.

유모, 그러니까 내 친엄마가 일부러 한 짓이 아니라면 정말 우연이었겠지. 어쨌든 아이는 뒤바뀌게 되었고, 그 때의 일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나는 그때까지 내가 정말 백작 영애인 줄 알았다.

그리고 유모는... 내 진짜 엄마는...

아냐. 떠올리지 말아야지. 정말이지 간신히 버티며 살고 있는데... 그 일을 생각하면 슬픔에 와르르 무너져 버릴 거야...

가만히 있으면 너무 비참하고 슬퍼서, 요즘 난 혼자 끝도 없이 주절거리는 버릇마저 생겼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버텨야 했으니까...

“리엘!! 당장 일어나서 청소 안 해!?”

이크, 딴생각 할 때가 아니다. 또다시 수녀원의 고단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비질을 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3개월. 그러니까 3개월 전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난 백작가에서 쫓겨났다.

무정하기도 하지. 그래도 15년 동안 친딸인 줄 알고 키웠으면서...

덕분에 귀족들이 핏줄에 얼마나 집착하는 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키운 정도 없나...

하긴 유모에게 떠맡겨 놓고 쳐다보지도 않던 딸이었는데 뭐 그리 정이 있겠나 싶긴 하다. 안 그래도 유모가 백작부인보다 더 친엄마 같이 느껴졌었는데... 정말 친엄마였을 줄이야.

유모의 딸로 고생하며 자랐던 진짜 백작영애는,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 백작 내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겠지...? 원망은 안 든다. 애초에 나 때문에 그 애는 자신의 자리를 15년이나 빼앗긴 거였으니까.

난 체념한 채 이곳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된 노동은 정말 버거웠다. 문명이 발달한 전생과 달리 이곳은 정말 인간의 집약적인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물을 긷고 불을 떼야 한다. 아궁이 청소와 냇가에서의 설거지는 당연한 추가옵션.

신전청소도 진짜 고역이다. 하루종일 비질에, 쭈그려 앉아 걸레질에... 비누도 없이 걸레 빠는 건 또 어찌나 힘든지... 빨래도 끔찍한데 숯다리미로 다림질이라니! 으아 정말 죽고 싶다.

정말 열악한 세상이다. 그러니 내가 이런 누더기 같은 꼬질꼬질한 옷을 세 달째 입고 있는 것이었다. 찬물에 대충 씻는 거 말고 따뜻한 욕조에 몸 한 번 담가보는 게 소원이라니...

백작 영애일 때는 당연하던 일이 지금은 너무나 그립다. 안타깝게도 지금 내 계급은 목욕물을 나르고 시중을 드는 위치이지, 욕조에 몸을 담그는 존재가 아니다.

백작 영애로 살 때는 누군가 다 해 주니까 이런 걸 전혀 몰랐다. 나 한 명을 위해 수십 명의 노동력이 동원되었다는 걸.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내 신세여..

아 진짜 이러고 살고 싶지 않단 말이야. 가뜩이나 현대문명의 혜택으로 편하게 살던 난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고!

고된 노동과 수면부족, 허접한 식사 때문에 윤기 흐르던 내 뺨은 꺼칠하게 푹 꺼졌고 눈가는 퀭하게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머릿결도 푸석푸석하고... 보기 좋던 내 몸은 영양부족으로 인해 볼품없이 말라비틀어졌다.

이러니 이곳 평민들 평균수명이 40세지! 아, 난 15세까지 호의호식 했으니 55세까지는 살려나?

그동안 전생의 나라 욕했는데, 그곳은 천국이었어. 적어도 인권이 있고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으니까.

“수녀님, 청소 다 끝냈어요.”

“쯧쯧,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어서 가서 식사준비를 돕거라!”

“네.”

식사... 이곳의 음식은 정말 토 나오게 맛이 없어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입에도 대지 못했다. 서민이었던 전생에서도 음식은 먹을 만 했던 것 같은데, 이 나라는 정말 음식수준이 떨어진다.

아아... 백작 영애 시절이여!

근데 왜 이렇게 주절주절 신세한탄을 하느냐고!? 그야... 이러한 이유로 내 인생 목표가 바로...! 신분상승이 되었거든!!

나 절대 이렇게 평생은 안 살 거야! 반드시! 반드시 남자 하나 잘 물어서 떵떵거리며 잘 살 거라고!!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평생 이렇게는 못 산다고!!

제 힘으로 성공할 생각은 안 하고,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할 생각만 한다고 욕해도 상관없어!! 솔직히 이 고리타분한 신분제 사회에서, 연고도 없는 평민 여자애가 무슨 수로 혼자 성공하겠냐고...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도 난 어느 정도 교육받았고, 기억력도 좋은 편이니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휴우......”

하지만 난 점점 회의적으로 변했다. 이 세상은 여성의 사회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곳으로,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냥 태어나서 집에서만 얌전히 살다가 결혼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성공은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 게 뻔했다.

게다가 내 장점인 우수한 기억력도 이 세상에서는 아무 쓸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한테 방해만 되는 기분이었다.

쓸데없이 기억력이 너무 좋은 탓에, 난 꿈까지 전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그 꿈이 또 왜 이렇게 현실적인지... 무언가를 고민하다 잠들면, 꿈에서 이어서 그 내용을 처리하고 있고... 깬 후에는 내가 이 일을 한 게 실제였는지 꿈이었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하루 24시간의 기억이 잊히지도 않고 거의 늘 누적되는 셈이니, 내 머릿속 일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전생인지도 가끔 헷갈린다.

아, 머리가 너무 좋은 것도 피곤해... 아니, 이건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기억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를 더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가 또 있다. 남들에겐 비밀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는데...

“리엘!! 몇 번을 불러! 오늘 저녁도 굶고 싶어?”

“죄송합니다!”

아차, 이곳에서는 생각할 시간도 슬퍼할 겨를도 사치였다. 안 그래도 아침, 저녁 두 끼밖에 안 주는 열악한 수녀원에서 저녁밥을 빼앗기면 큰일이다. 거의 풀죽에 가까운 식사지만 이거라도 먹어야 했다.

“하아, 과거는 잊자. 미련 따위 털어버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연연해봤자 되돌릴 수도 없잖아.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신분상승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게 낫지. 아무튼 내 목표는 신분상승이다! 누구라도 낚아서!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감히 내 신분에 귀족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어디 돈 많은 남자 없나?

휴... 꿈은 참 야무진데, 실현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함정이구나.

전생에서도 부자를 만나 신분상승하는 건 상상 속의 일이었다. 그런데 신분제가 고착화된 이곳에서, 평민고아인 내가 무슨 수로 팔자를 고치겠는가...

에휴.. 내 팔자야. 그래도 이렇게 살다 죽기는 싫은데... 답이 없다.

난 머릿속으로는 끝없이 구시렁거리면서도, 열심히 비질을 마쳤다. 오늘 저녁마저 굶으면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쓰러졌다가 병이라도 나면 아주 죽기에 딱 좋은 세상이었다.

참, 출생의 비밀은 어쩌다 밝혀졌냐고? 이게 다 젠장 맞을 마법 때문이다.

몇 달 전,

아직 백작영애이던 시절 난 말에서 떨어지며 나뭇가지에 허벅지를 푹 찔렸었다. 당연히 피가 펑펑 났고, 수혈이 필요했다.

혈연이 아닌 자의 피가 섞이는 걸 싫어하는 귀족가였기에, 가족 중 누군가가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누가 적합할 지 혈액감별법을 해 보았다.

그런데 혈액감별 결과... 수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부모님의 핏줄이 아니라고 나왔다.

이놈의 마법은 수혈 적합성만 따질 것이지, 왜 핏줄 여부를 확인해 주냐고! 수혈 따위 받지 말았어야 했어!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고.... 난 내 원래 이름인 비올레티 반 레비넌 이라는 이름을 잃었다.

유모의 딸인 줄 알았던 마리아가 이제는 비올레티다. 그러니 내 이름이 마리아가 되어야겠지만, 난 전생의 내 이름이랑 비슷한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붙였다.

친자를 찾는 과정은 참 간단했다. 내가 친딸이 아니면 누가 친딸인가 싶어 주변 인물들을 샅샅이 뒤지던 백작부부는, 나와 머리색도 눈 색도 똑같은, 게다가 묘하게 그들을 닮은 마리아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게임 끝. 그놈의 혈액감별법! 친딸 띠링띵!

“망할 옆옆나라 황제 황후!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내 금수저를 빼앗아!”

애초에 내 수저도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원망할 데가 없다 보니 자꾸 남 탓을 하게 되었다.

지들은 오리지널 금수저라 이거지! 평생 고생이라곤 한 번도 안 해봤을 것들! 생각만 해도 그들이 미웠지만, 뭐 어쩌겠는가... 힘없는 내가 참아야지.

그런데 그게 왜 옆옆나라 황제 황후 때문이냐면...

사실 십여 년 전만 해도 대륙에 마법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옆옆나라인 그라츠 제국에서, 무슨 오러나이트라나 뭐라나 하는 황제랑 마법사인 황후가 대륙에 마법을 부활시켰다.

뭐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황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온갖 마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물론 교단은 마법이니 마나니 그딴 걸 인정하지 않았다. 신의 선물인 신성력을 인간이 멋대로 변형시켜 오용하는 것이라고 단호히 부정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마법의 편리함을 맛보았다. 신전에서 막는다고 쉽사리 통제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그라츠 제국은 우리 리테인 왕국과 달리 신전의 힘보다 황실의 힘이 훨씬 강한 곳이었다.

이에 반발해 교단은 자구책으로 성법이라는 걸 개발해 발표했다. 이름도 웃기긴 한데, 마법과 반대되는 신의 학문이라는 뜻이란다.

아무튼 성법은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치유법이었다. 온갖 영역을 망라하는 마법과 달리 고작 치료 용도긴 했지만, 성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을 듯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중에 혈액감별법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친딸이 아니라는 걸 밝혀준 바로 그 혈액감별법!

“근데 세상에 어떻게 마법이 있지? 전생엔 그런 거 없었던 것 같은데...?”

어차피 마법 따위 나와 조금도 상관없는 일이니, 출생의 비밀이 어떻게 밝혀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 것 보다... 그리고, 내가 흙수저가 된 일 따위보다... 가장 참을 수 없이 힘들었던 것 유모의 일이었다.

유모는... 아니 유모인 줄 알았던 내 친엄마는 죽었다. 아이를 잘못 간수해서 15년간이나 뒤바뀌게 했던 죄로 백작가에서 처형당했다.

나 때문에...

정말 충격이 컸다. 유모로서도 엄마로서도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백작가에서 유모와 이튼 오라버니를 제외하면 사실 정 붙일 곳이 전혀 없었기에, 두 사람은 내게 가장 큰 의지가 되었었다.

그 사건 이후 이곳에 온 내내, 거의 몇 개월 동안 나는 밤마다 울었다. 한순간에 가족에게 버림받고 바닥으로 떨어진 내 처지도 비참했지만, 사랑하던 사람들을 몽땅 떠나보낸 절망감이 가장 컸다.

“흐윽...”

아, 왜 또 울려고 해! 울지 마! 씩씩하게 살아남아야지! 두고 봐. 난 끝까지 살아남아서 꼭 성공할거야!

더 이상은 울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 난 반드시 기어 올라가서, 내 엄마를 죽이고 나를 쫓아낸 백작가에 보란 듯이 잘 살고 싶다.

그래도 한 가지 고마운 건, 입을 막겠다고 날 죽이지 않은 점이었다. 엄마를 죽인 그들의 비정함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는데 말이다.

아마도... 이튼 오라버니가 막아준 게 아닐까...?

“오라버니...”

너무 보고 싶다...

아무튼 출생의 비밀은 극비였기에, 난 유모의 딸이자 고아로서 조용히 수녀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돌아온 진짜 백작 영애는 왕도의 아카데미로 보내졌다.

갑자기 영애의 얼굴이 바뀌면 고용인들이 눈치 챌 테니 말이었다. 그곳에서 몇 년 수학하고 돌아오면, 그사이 백작가의 고용인들을 거의 물갈이 시켜놓을 계획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참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이지...? 평생을 평민으로 살아온 그 애가 아카데미에서 갑자기 귀족으로서 잘 처신할 수 있을까?

앞뒤가 꽉 막힌 전형적 귀족인 백작 부부는, 귀족적 고상함은 혈통에 새겨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나 보다. 그거 다 후천적 교육과 노력의 결과물인데...

그러니 딸이 가서 망신당할 거라고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겠지. 그저 가문 내에서 사람들의 입을 막을 궁리밖에 안 한 것일 테고...

에휴... 그 애도 고생하고 있겠구나. 평민으로 15년 살다가 갑자기 귀족사회에 던져졌으니... 내가 정말 악의 축이었네.

하지만 내가 지금 남 걱정 따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수녀원에서 난 반복적인 노동이나 하면서, 시간에 맞춰 기도하고 미사 드리며 하루하루를 때우고 있었다.

하지만 16세 생일이 되어 성년이 되면, 여기서도 쫓겨난다. 고아원에서 키워주는 건 미성년자 때 까지만 이니까.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하지...? 부자 낚시는 역시 헛된 꿈이었어...

난 그동안 미사 때마다 신전을 열심히 기웃거려 보았다. 하지만 가난한 시골마을인 이곳에 부유한 평민 따위는 한 명도 없었다.

이제 얼마 후면 성년이 되는데, 더 이상 부자니 뭐니 이딴 소리 할 때가 아니었다. 이곳을 나가면 당장 뭘 먹고 살아야 할지도 막막했으니까...

여기 들러붙어서 수녀라도 될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신학 학교를 나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신전은 끝물이란 말이지....

그라츠 제국에서 시작된 마법부흥운동은 신전의 세력을 궤멸에 가깝게 약화시켜 버렸다. 물론 여기서 한참 떨어진 옆옆나라 이야기인지라, 우리 리테인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리테인 왕이 신전의 꼭두각시일 정도로 광신도인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즉,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신전이 호락호락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곧 신전은 세상의 비주류로 물러날 것이 뻔했다. 지금도 바깥세상은 제국과 신전의 분쟁으로 분위기가 흉흉했다. 게다가 이 나라는 거의 십 년째 제국과 전쟁 중이다.

에라 모르겠다. 머리 아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일단 잠이나 자자. 어차피 망한 인생!

***

“리엘! 리엘양!!”

한참 신나게 자고 있는데, 담당 수녀가 미친 듯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한밤중인데...?

“......”

졸린 눈을 비벼대며 겨우 일어난 난, 수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네...?”

“어서 짐을 챙겨서 내려와요.”

“네...? 왜요?”

갑자기 정중해진 수녀의 태도에 난 어안이 벙벙했다.

“레비넌 백작가에서 리엘양을 데리러 왔다고 해요.”

“네?”

나는 바보같이 네?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리엘양이 잃어버렸던 백작 영애라고 하더라고요!! 어서 짐을 챙겨서 내려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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