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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37화 (37/134)

37. 재회(2)

2017.01.18.

“어, 그러니까 누나가... 그게 말이지...”

버벅거리는 리일을 대신해, 황녀가 대신 말을 받아 이었다.

“내가 설명해 줄게. 그날 리엘 너를 만나고 돌아가는데, 왠지 네 이름이 낯익은 거야.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싶긴 한데... 생각이 잘 안 나더라고.”

“으휴...”

리일의 한숨소리와 함께 다시 발이 콰득 내리 찍히는 소리가 났다.

“아야! 아프잖아!!!”

동생을 응징한 황녀는 다시 새침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흥, 엔릴 네 녀석의 사랑타령 따위, 별로 귀담아 들어두지 않았었기에 바로 생각해내지 못했던 거라고.”

“네, 네.”

“아무튼 그렇게 넘어가려는데, 네 친구라는 하녀 아이가 본궁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거야. 황녀전하의 일이 어쩌고 하면서 엔릴을 만나게 해 달라며.”

“네에????”

“줄리라고 하던데?”

“주, 줄리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응, 네 친구 맞지?”

“네! 맞아요!!”

“근데 동생은 그때 궁에 없었거든. 만나지도 못하고 소란만 피우던 게 어마마마 귀에 들어간 거야. 전에 공주가 엔릴의 처소에 하녀들을 밤새 두고 간 이후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라고 말씀하셨거든.”

아...! 그럼 그 때 황후폐하가 갑자기 찾으셨다는 게...?

그리고 줄리가... 날 살리기 위해...

그런데 왜 사건의 당사자인 황녀전하가 아닌 리일에게? 나와 리일의 사이를 어떻게 알고?

내 의아스러운 표정을 눈치 챘는지, 리일이 설명해 주었다.

“아..그게. 그 애는 이미 알고 있었거든. 나에 대해...”

“........네에!?”

“친구한테 화내지 마. 내가 비밀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해서 그래.”

“아...”

화나긴 그럴 리가. 줄리 덕에 목숨을 건졌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아무리 리일의 정체와 나와의 사이를 알고 있더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게다가 리일은 줄리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너무 놀랍고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줄리에게 고맙다고 꼭꼭 인사하고 평생 잘해줘야겠다.

“아무튼 그래서, 그 애가 리엘 네 이름을 얘기하면서 황태자 전하 어쩌고 저쩌고 횡설수설 얘기하더라. 그걸 듣다보니 드디어 생각이 났어.”

“네?”

“영애들을 잔뜩 후리고 다니면서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고 퇴짜를 놓던 동생 녀석이, 요즘 들어 맨날 입에 달고 사는 이름이었다는 걸 말이야.”

“...........”

난 저 직설적인 표현에 할 말을 잃었고, 리일은 쑥스러운 듯이 헤헤거리고 있었다.

깬다, 얘네...

“그래서 일단 엔릴에게 급보를 보내 상황을 설명해 주었지. 부모님께 바로 말씀드리기엔, 동생이 어느 정도 진심인지 몰라 망설여졌거든. 아무튼 그랬더니, 바람처럼 달려오더라? 후후훗”

저렇게 놀리듯이 말하며 웃는데도, 그 모습이 너무나도 기품 있어 보인다는 게 참 신기했다. 난 그런 황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황녀 전하. 정말 고맙습니다. 몇 번이나 구해 주셔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뭘... 인사라면 엔릴하고 네 친구한테만 하면 돼. 내가 모른 척 했다가, 엔릴이 돌아왔을 때 리엘 네가 죽어 있으면 동생이 얼마나 슬퍼했겠어.”

엔릴은 티격태격 거리면서도 누나랑 꽤 사이가 좋은 듯, 연신 황녀에게 방긋방긋 웃어 보이고 있었다.

정말 부러운 남매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나도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튼 오라버니와 이러고 있었을 텐데... 아차! 이튼 오라버니!!

“아, 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한 가지만 여쭤도 될까요?”

“응?”

“저 혹시... 제도 아카데미에 유학 와 있는 제 오라버니가 계신데요... 이번 일로 저 때문에 혹시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지 해서요...”

“아, 레비넌 백작가의 유학생들?”

“네! 혹시 아세요?”

“연좌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긴 했는데, 어마마마도 아바마마도 그다지 원치 않으셔서 아무 일 없었어. 그냥 네가 갇혀있는 내내 기숙사에 구금되어 있던 정도였어.”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오라버니가 널 살려달라며 난동을 부려서, 조금 거칠게 제압당했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것 말고는 별 문제 없었단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 다행이에요.”

“아냐, 고맙긴.. 신전이나 리테인 왕실을 압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아무 상관없는 네 가족들까지 벌할 필요는 없잖아. 별 것도 아닌 작은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지다니... 내가 다 유감인걸...?”

드레스 하나 안 고쳐놨다고 손톱을 바늘로 찌르려 하고,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뺨을 맞았었다. 기분 나쁘다고 채찍질을 당한 후 창고에 가둬질 뻔도 했었다.

그런데 눈앞의 황녀는 자신을 다치게 한 나에게, 별 것도 아닌 작은 일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전하...”

그 따스한 말에 오히려 난.......

오히려...... 리일을 밀어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 동안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두근거리긴 했지만, 100퍼센트 진심은 아니었다. 내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니까.

이제는 나도 진심을 깨달았지만, 나를 곁에 두기 위해 리일이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나 따위 것 때문에, 리일이 그런 파란을 겪어서는 안 돼...

그동안 약아빠진 짓 다 해놓고 이제 와서 한심하게도 왜 이럴까 싶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예전처럼 계략덩어리가 되어주질 못하는 걸 어떡해...

내가 이렇게 180도 바뀔 줄은 나도 정말 몰랐다.

***

엔릴은 리엘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셀리나 공주의 별궁에 발을 들였다.

“저, 전하!!”

처음으로 엔릴을 맞이하게 된 셀리나 공주는, 얼굴에 화색을 가득 띄운 채 반갑게 인사했다. 드디어 정식으로 방문을 받았으니, 오늘 이후에는 먼저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사실 요즘 셀리나 공주는, 한심한 일처리에 대해 본국에서 날아온 질책에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병신 같은 짓이었다. 상황이 다급해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리엘을 몰아놨는데, 제국이 없는 배후를 만들어서라도 자백을 강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 때문에 요 며칠 전전긍긍하느라 잠도 못 자고 있었는데, 엔릴이 방문하자 그 모든 일을 보상받는 듯 기뻤다.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그간... 존안을 뵙고 싶어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공주는 시녀들을 닦달해서 다과를 내오게 하며, 상석으로 엔릴을 안내했다. 하지만 엔릴은 그런 공주의 모습에 콧방귀도 뀌지 않은 채, 차갑게 용건만 말했다.

“공주, 오래 이야기 할 생각 없소. 딱 한 번 말할 테니 잘 들으시오.”

“저.. 전하?”

“자신이 저지른 짓은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법. 공주가 제시한 증거에 대해 증언을 번복하시오. 엉뚱한 걸 착각해서 잘못 알았다고, 리엘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이오. 애초에 조작된 것이니 틀린 말도 아니지.”

“..........네? 그게 무슨...?”

엔릴이 처형장에 난입하고 리엘의 처형이 유예된 일을 공주는 아직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공주는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다.

“머리가 나쁜가? 공주가 그 애에게 뒤집어씌운 시해혐의를 없애라는 말이다. 그대가 처음에 말한 일이니, 본인의 입으로 철회하는 게 모양새가 제일 낫겠지.”

황족 시해혐의로 판명 났던 일을, 이제 와서 잘못 알았다고 하기엔 국가적 파장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혐의는 인정한 채 처형하지 않으면, 황실의 입장이 우스워진다.

그러니 애초에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든 공주가 직접 착각이었다고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전하! 그 계집이 대체 뭐기에...”

공주는 모멸감과 분노에 부들부들 떨었다. 고작 그런 천한 하녀계집 하나 때문에, 오매불망 기다리던 황태자에게 이런 수모를 겪다니..

“말조심해라!”

“대체 왜... 제가 왜 그런 걸 해야...”

“왜냐고? 리엘이 죽으면, 내가 널 죽여버릴 거니까.”

“..............”

거세게 쏟아지는 살기에 공주는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어차피 리엘을 잃게 될 거라면, 네 지시였다고 자백하라고 해야겠군. 같이 죽던가, 네 손으로 네가 한 한심한 짓거리를 수습해라.”

물론 협박을 하기 위한 말일 뿐, 공주가 몰락하더라도 리엘 하나쯤은 어떻게든 몰래 빼낼 생각이었다.

“전하!! 어떻게 그런 모함을!”

“닥쳐!! 리엘에게 한 짓은 괜찮고, 너에게는 안 된다는 건가? 하, 어이가 없군.”

“고작 그런 천한 하녀계집 따위가 어떻게 나랑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공주 그대를 싫어하는 거야.”

그 말이 비수가 꽂히듯 공주의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연모하는 사람에게 듣는 잔인한 말은 너무나 아팠다.

“리엘이 배후로 너를 지목하지 않더라도,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공주 그대 하나쯤은 끌어내릴 수 있다. 증거는 너만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저에게 그, 그런 짓을 하면... 저를 모함한 게 알려졌다가는 양국의 협정은...!”

“내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가 리테인을 잿더미로 만들어 주면 되겠군.”

“..............”

“그럼 오늘이 지나기 전에 해결해 놓도록.”

셀리나 공주가 충격에 빠져있든 말든, 엔릴은 할 말만 하고 차갑게 일어섰다.

“.......전하..! 전하!!”

***

셀리나 공주는 다음날 바로 자신이 엉뚱한 내용을 착각했다고 발표했다. 체면을 완전히 구기게 되어 분했지만, 엔릴의 으름장에 어쩔 수 없었다.

이에 발맞추어 제국 측은 사건의 재조사를 명했다. 지난번에는 공주가 먼저 혐의를 인정해 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심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마법을 이용해 확실하게 심문을 하도록 했다.

물론 리엘에 대한 심문은 한참 전에 있던 일이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시해혐의는 취소되었고 단순한 사고였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물론 전부 리일이 빡빡 우기며 요구한 대로 공표한 것이었다.

똑똑

“어, 두 분 같이 계셨네요?”

“어서 오렴, 아나이스”

간단히 인사하며 들어온 황녀는, 툴툴거리며 엔릴을 욕하기 시작했다.

“휴... 엔릴 녀석 뒷수습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전 중간에 끼어서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엔릴의 난입 덕분에, 시해혐의를 빌미로 리테인을 압박하던 귀족들은 순식간에 입장이 난처해져 버렸다.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협박한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도, 맨 처음 나서서 헛소리를 한 게 셀리나 공주였기에, 그냥 거기에 놀아났다는 걸로 적당히 무마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황실 입장에서는 대단한 타격이었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전 괜찮은데... 엔릴 때문에 아바마마 입장이 곤란해져서 어쩌면 좋아요.”

그녀 말대로, 한참 논란이 불거졌던 이 사건은 얻은 것 하나 없이 애매하게 흐지부지되어버렸다.

아니 오히려 양쪽에 둘 다 마이너스였다. 셀리나 공주는 망신을 당했고, 제국 황실은 우스운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시해혐의로 결정해서 처형까지 몰고 가 놓고는, 이제 와서 공주의 말만 듣고 착각한 것이었다니...

“이미 이렇게 된 걸 어쩌겠느냐. 뒷수습이라도 잘 해야지.”

황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지만, 그 역시 뒷일이 골치 아프긴 했다. 역시 엔릴은 한숨, 두통, 뒷목 3종세트였다.

“그런데 이제 그 애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나이스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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