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39화 (39/134)

39. 재회(4)

2017.01.20.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다행히 리일이었다.

“리엘, 잘 있었어?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네...”

휴, 놀래라... 왜 쓸데없이 노크는 해서..!

“몸은 좀 괜찮아?”

다행히 진짜로 다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충격이 꽤 컸다. 한치 앞의 미래도 모르는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나 혼자 차디찬 감옥에 갇혀 두려움에 떨었던 그 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안심하고 있던 차에 급작스럽게 끌려 나가 고문당할 뻔하고... 으으... 새삼 떠올리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마법의 폭주로 충격을 받았던 몸도 세심한 치료로 다 나았다. 하지만 리일은 얼굴에는 안쓰러움이 한가득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괘...괜찮아요. 이젠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그땐 정말 끔찍했다고...

“악몽을 꾸거나 하지는 않고?”

“처음엔 조금 그랬는데... 점점 괜찮아지고 있어요.”

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 심리적 후유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매일 악몽에 시달려 잠도 못 자고, 공황장애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하긴 내 인생이 그동안 좀 다이나믹 했어야지... 그리고 셀리나 공주에게 하도 당하다 보니 좀 무뎌졌달까... 그 미친 공주년이 쓸모 있을 줄이야...

아, 아니지! 나 그렇게 된 거, 공주년 때문이잖아!

빠드드득...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내가 반드시 곱절로 되돌려 줄 거야!

“다행이다. 힘들면 나한테 꼭 말해 줘. 내가 다 도와줄게.”

“고맙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해요...”

“아냐. 고맙긴...”

“그런데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알 수 없으니, 아무리 정중한 대우를 받으며 몸이 편해도 영 가시방석 같았다.

“아, 그거 말해주려 온 건데..! 내가 해결해뒀으니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네? 그게 정말이에요? 어, 어떻게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 뭐 그냥... 대충 처리했어. 어마마마도 괜찮다 하셨어.”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진노하시면...”

“아냐. 뒷일은 아바마마가 어떻게든 해 주실 거야. 아바마마는...”

-어마마마 말이라면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얼버무린 뒷이야기가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리일의 생각이 잘 들리는 걸 보니,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된 모양이었다. 당황하거나 흥분해서 집중을 잃으면 잘 안 들리곤 했으니까...

“아무튼 걱정 마.”

어찌된 일인지 궁금했지만, 리일은 결국 자세히 말해주지 않고 두루 뭉실 넘어갔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갚아야지!”

“네? 네! 물론이죠!”

“그러니까 내일부터 내 처소에 배치될 거야. 시녀로.”

“네에에에?”

이렇게 앞뒤 다 잘라먹고 말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수가 없잖아!!

“왜...? 싫어? 마탑에서는 이미 쫓겨나서 돌아갈 수가 없을 텐데... 설마 별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아니요!!!!!!!!!!”

그런 대형 사고를 쳤으니, 마탑에서는 당연히 날 데리고 있기 부담스러울 것이다. 물론 별궁 지옥행은 절대 사양이었다! 공주가 날 받아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아니, 오히려 나를 혼쭐내 주려고 벼르고 있을 테니 냉큼 데려가려나...?

어쨌든 별궁에서도 안 받아주면 어느 바닥까지 떨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 괜찮지?”

며칠 내내 최악의 미래를 가정하며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로또? 완전 전화위복이었다.

“괜찮다마다요! 너무 기뻐요!! 정말정말 좋아요!”

내 격한 반응을 뭐라고 오해한 건지, 리일의 뺨은 발그레해졌다.

“정말? 나도 기뻐!”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내가 지금 기뻐하는 건 순전히, 더 나은 일자리로의 승진 때문인데...

물론 리일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솔직히 불편하고 미안하고 해서 이제 거리를 두려 했다.

어차피 마탑에서 쫓겨난 이상 신분을 획득할 방법도 없으니, 리일과는 더더욱 불가능한 사이가 되었으니까.

“.............”

“이제 매일 함께 있을 수 있겠다!!”

내 속도 모르는 리일은 그저 해맑기만 했다.

“네... 그러네요.”

더 나아진 처지를 순수히 기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어쩌지... 저렇게 좋아하는데, 뭐라 거절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각자 동상이몽인 상태로, 내 처우는 결정되었다.

***

복잡한 마음과는 별개로, 어쨌든 정신없는 본궁 시녀 생활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바뀐 처지는 나를 매우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감옥에 갇혀 고문당하면서 처형을 앞두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황태자의 측근이 되었다니 정말 믿겨지지 않았다.

갑자기 낙하산으로 내리꽂힌 나를 못마땅해 하며 배척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황태자 처소의 시녀들은 나를 딱히 적대하지 않았다.

하긴... 황태자가 직접 꽂아 넣었으니,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함부로 못 대하는 건가...?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미친 척 하고 요구한 내 부탁도 들어 먹혀서 줄리도 함께 본궁으로 오게 되었다.

줄리는 어차피 마법에 재능이 하나도 없는지라, 마탑에 남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으니 황녀 전하의 시녀로 오게 된 건 정말 잘 된 일이었다.

일이 다 해결되고 얼결에 함께 본궁에 오게 되자, 줄리는 나를 붙들고 엄청나게 울었다.

“리엘!! 너무너무 기뻐!!”

한참 울다가 드디어 그친 줄리는 시뻘건 눈으로 외쳤다.

“나야말로 정말 고마워! 네 덕에 산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절대 이 은혜 잊지 않을게... 고마워. 진짜...”

줄리가 나서준 덕에 이렇게 햇빛도 다시 보게 되었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거 밖에 없다니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같이 본궁에서 시녀로 일하게 되니 정말 기뻤다!

“헤헤. 내가 뭘... 그 자리에서 쫓아내거나 벌주지 않고, 내 얘기를 들어주신 윗분들 덕분이지. 아무튼 걱정 많이 했어... 나 정말 네가 죽는 줄 알고... 흑...”

내 일이 터졌을 때 줄리가 얼마나 걱정했을까...

“고마워 줄리... 정말정말 고마워!!”

“리엘, 이제 몸은 좀 괜찮은 거지?”

“응. 걱정마!”

“우리 일단 당분간은 각자 적응하느라 바쁠 테니까, 나중에 다시 회포를 풀자!”

***

그렇게 난 새로운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더 힘들어지는 건 적응하기 어려워도, 쉬워지는 건 곧바로 익숙해지는 게 인간이었으니까.

사실 리일은, 날 시녀로 일하게 하는 것 보다 그냥 호의호식 시켜주고 싶어 했다. 말로는 안 했지만, 머릿속 생각이 선명히 들려왔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어떻게 그런 호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겠는가... 황제가 아니니 후궁도 둘 수 없는 리일인데, 결혼도 안 한 그의 곁에서 애첩처럼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죄인 주제에 급작스레 시녀로 승진한 것만 해도 마음 불편한데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게 속이 편했다.

그리고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황제 황후의 눈치도 꽤나 보였다. 이거 두 분께 허락은 받고 한 짓인지, 나에 대해 아무런 제제가 없긴 했지만 난 괜히 혼자 찔렸다.

그런데 반대가 거셀 줄 알았는데, 별 말이 없으시네? 고작 시녀니까, 마음에 드는 아이를 데려다 두는 것 정도는 상관없다는 건가? 음... 아니면 혹시 뭐 이런 거? 연애는 자유지만, 결혼만 안하면 된다는 그런?

태풍 직전의 고요인 것 같아 괜히 불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잠잠하시니 다행이다. 솔직히 말해 웬 년인지 한번 보자고 하실까봐 쫄았는데, 전혀 찾지를 않으신다.

아무튼 내 생활은 그저 평화로웠다. 별로 힘들만한 일거리도 없어서 널널하기까지 했다.

내 일이라고 해봤자, 그냥 리일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자잘한 수발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정도였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하아... 헉... 헉..... 리엘. 물... 물 좀...”

리일은 검을 집어던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요!”

난 재빨리 차가운 물을 쟁반에 받쳐 대령했다.

며칠 리일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켜본 결과, 황태자라는 것도 그렇게 꿀 빠는 자리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리일은 공부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그나마 검술훈련은 열심히 했다. 그런데 검술훈련이랍시고 사정없이 굴려지는 모습은, 내가 봐도 불쌍할 지경이었다.

“엔릴, 엄살떨지 말고 얼른 일어나.”

“............”

엔릴을 팍팍 굴리는 원흉인 눈앞의 이 사람은, 무려 오러나이트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한다. 황제의 측근인 레이튼 후작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 넓은 황궁에서, 황제와 황후를 제외하면 엔릴을 혼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듯 했다. 무려 황태자인 그에게 반말까지 할 수 있다니! 황제와 어릴 적부터 친구라는데, 정말 측근 중 측근인 모양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하아......”

“너 아직 멀었다. 빗겨내는 것도 제대로 못 해서 손목이나 아작 내 온 주제에...”

설마 저거, 나 구하느라 다쳤던 거 말하는 건가? 그야 상황이 엄청 급박했었으니 그런 건데... 나 때문에 다쳤는데 갈굼까지 당하니 엄청 미안하네.

“레이튼 경... 하아... 조, 조금만 쉬었다가...”

“어휴... 다 큰 게 엄살은... 네 아버지는 열 살 때도 이렇게 징징대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것도 엄청 봐 주는 거다.”

“.........”

근데 이건 징징거리는 게 아니라 그냥 생존의 문제 같은데... 그래도 사람이 숨은 쉬게 해 줘야지... 이러다 죽겠다. 리일은 이제 대답도 포기한 듯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갈굼은 끝이 없었다. 불쌍한 리일...

“그러게 맨날 땡땡이치고 도망가더니... 그러니 실력이 이 모양이지.”

설마 저 땡땡이, 나 만나려 왔던 일들? 나 때문에 맨날 혼났구나...

“........하아... 하아... 진짜 힘든데...”

“여자 앞에서 쪽팔리지도 않아?”

그제야 리일이 부끄러운 듯 내 쪽을 돌아보고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난 정말 괜찮다는 듯 열심히 손사래를 쳐 주었다.

아니, 정말로 힘들어 보이는데 이런 일로 쪽팔릴 것까지야... 우와, 애를 얼마나 굴렸으면 잘 걷지도 못해서 비틀거려?

리일이 왜 맨날 거지같은 몰골로 다녔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힘드니까 격식이고 뭐고, 그냥 저 꼴로 다닌 거였구나.

그래도 지금 자세히 보니 옷감은 꽤 고급스러운데, 하도 흙먼지가 묻어있으니 그때 그렇게 오해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 눈치에 리일이 벌떡 일어나자, 어쩌고 후작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지금 존재 가치를 이상한 이유로 인정받았어!

“자, 다시 처음부터 반복!”

“.........”

리일은 얼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 그래도 내 앞이라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이 쌀쌀한 날씨에도 더운지, 어느새 상의까지 벗어던진 상태였다.

으윽... 미친... 몸 좀 봐... 하악... 미쳤어. 미쳤어! 마음 접으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멋있냐고!!

음흉한 속마음을 숨기며 그를 훔쳐보는데, 마침 딱 눈이 마주쳐 버렸다.

“.....!!”

“리엘”

그가 달콤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왔다.

“리엘...”

“네..네?”

리일이 단단해 보이는 긴 팔을 뻗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난 침까지 흘릴 기세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리...일...?”

연재일정이 월~토에서 일~금 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17.01.21.

안녕하세요. 엘리s입니다.

원래 월~토였던 연재일정이 일~금 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자정에 날짜바뀌자마자 연재하던 패턴이, 독자분들의 요청으로 2시간 당겨지면서 요일이 꼬였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당겨진 요일에 맞추어 연재일정을 수정하였습니다.

오늘이 토요일이지만, 어제 이맘때쯤 올린 게 토요일연재분이라서 업로드가 없습니다ㅠㅠ

대신 내일 저녁 10시쯤 일요일 연재분을 올릴게요~^^

읽어주시고 응원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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