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51화 (51/134)

51. 연애(2)

2017.02.03.

내가 미쳤지. 지금 무슨 짓을 하려 했던 거지!? 으아아악!!!

“앗, 미, 미안해요! 이건... 그러니까... 하, 하늘! 하늘 보자고요! 우리 누워서 하늘 봐요!!”

어벙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리일에게 황급히 둘러댔다. 내 변명에 리일의 눈에 아쉬움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난 절대 덮치려 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옆에 나란히 재빨리 누워버렸다.

“응? 으응... 아무튼! 기대해 리엘. 앞으로 나에게 홀딱 반하게 만들어 주겠어!”

“피잇. 리일은 바보예요.”

“응? 내가 왜?”

나 이미 홀딱 반했는데... 둔탱이!

“몰라요!! 그리고 리일, 저야말로... 리일의 곁에 서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솔직히 나야말로 리일을 만나 많이 성장한 느낌이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남 탓이나 해대던 나였는데, 그의 따스함에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남자 하나 잘 낚아보려 했던 과거의 못난 내가 한심할 정도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그대로도 전혀 부끄럽지 않아!”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리일에게 기대지 않고도 제 힘으로 설 수 있도록, 스스로 강해지고 싶어요. 저, 마법을 배워 제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요!”

“아하. 그런 뜻이야?”

“그리고 일방적으로 보호받기만 하는 그런 관계는 싫어요. 저도 리일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요.”

“그냥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니깐.”

“그래도요...”

“알았어. 그럼 앞으로 절대 도망가거나 밀어내기 없기다? 약속!?”

“약속!”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리일은 어리둥절해 했다.똑같이 따라하라는 제스처를 보이고는, 그의 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꾹 찍었다.

“리테인에서 약속할 때 쓰는 동작인가 봐?”

“그건 아닌데... 아무튼 약속한다는 뜻이에요.”

이게 어디서 나온 기억인지 나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아마 전생이겠지.

“아무튼 기분 좋은데?”

우린 누워서 서로를 바라본 채, 손가락을 걸고 있었다. 리일이 손을 풀며 내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그의 팔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 뉘엿뉘엿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도 거기에 두둥실 떠서 돌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근데 리일, 목이 마른데 우리 아무것도 안 챙겨왔죠? 그만 돌아갈까요?”

“아냐, 가져왔어! 잠깐 있어봐.”

리일은 재빨리 어딘가를 돌아보더니, 무언가 가져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어디에 숨어있던 것인지, 갑자기 나타난 기사들이 쥬스와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후다닥 가져다주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

뭐... 뭐지. 뭔가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기사를... 그것도 무려 임페리얼 가드들을 시종처럼 부려먹네. 하늘같은 자존심이 진창에 처박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하녀들이 챙겨줬어. 얼른 마셔.”

“고마워요.”

쥬스를 쭉 들이킨 나는, 다시 벌러덩 누워서 딸기를 하나씩 집어먹었다.

“아... 좋다...! 딸기 참 맛있네요. 엄청 비쌀 텐데...”

난 또 서민근성이 발동되었다. 이 세계에서 딸기는 감히 하녀 따위가 먹을 수 없는 고가의 과일이다.

“딸기 좋아해? 리엘이 원한다면 딸기 농장도 사다 줄게!”

“풉! 뭘 그렇게까지 해요.”

"나도 딸기 좋아하거든. 그리고...“

예고도 없이 갑자기 딸기 맛 키스가 시작되었다.

어휴, 순 바람둥이야! 키스가 아주 시도 때도 없이 자연스러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던 축제 때도 벌써 그러더니!

하지만 나도 좋았기에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기사들이 보고 있다는 게 신경 쓰였지만, 그냥 병풍이려니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쪼옥

츠읍...

딸기를 먹고 있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더 소리가 적나라하게 야했다.

“아.... 으응...”

한참을 내 입술을 탐하던 리일이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리엘의 입술은 딸기보다 더 좋고...“

그렇게 말한 리일은 다시금 내게 얼굴을 부딪쳐왔다.

“......리일... 그, 그만...”

여기서 뭐하는 짓이야! 내가 아무리 얼굴에 철판 깐 아줌마의 기억이 있다지만, 남들 눈앞에서는 키스까지만이라고!

“리, 리일..!!”

하지만 리일의 적극적인 공세에 내 몸은 점점 바닥으로 기울어져갔다. 그의 입술은 어느덧 목덜미까지 내려와 있었다.

젠장, 안 된다고!!

에잇! 난 몸을 확 뒤집어 순식간에 자세를 바꾸었다. 그리고는 옆에 나 있는 털북숭이 풀을 꺾어다가, 바닥에 깔아 놓은 리일을 마구 간지럽혔다.

“복수예욧!”

“으앗! 리엘! 가, 간지러!! 그, 그만! 잘못했어!”

“에잇!!”

“으악 미안...!! 원래 키스 이상 갈 생각은 없었어! 진짜야!! 아주 잠시,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뿐이야...!!”

“흥! 믿기 어렵지만 믿어 주죠. 아무튼 이 이상은 안 돼요!”

“응... 알았어... 나도 잘 알고 있어...”

풀죽은 그의 모습이 왠지 불쌍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근데 리일, 그때 왜 그렇게 쉽게 키스하려 했어요? 가벼운 마음이라 그랬어요?”

“응? 언제?”

“......축제 때요!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진짜 바람둥이라니까!”

“바람둥이라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리일은 진짜로 억울하다는 듯이 펄쩍 뛰었다.

“그럼 대체 왜 그런 건데요?”

“키스하려 하면 바람둥이인 거야?”

“.......글쎄요... 솔직히 뭐... 진중해 보이진 않는달까...”

“그렇게 보였을 줄은..... 난 그게 아니라... 그저...”

“그저...?”

“난 바람둥이가 아냐! 그냥 내 여자 내가 찾겠다며 열심히 파티에 다녔을 뿐인데... 근데 온갖 영애들이 죄다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잖아!”

“쿡쿡. 어땠는데요?”

“그냥... 죽자고 달려들고... 내가 좋다면서 다짜고짜 키스하려 들고...”

헐.... 영애들이 육탄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나 보구나. 난 처음에 육탄공격 안 하길 잘 했네. 이런 애한테는 순수가 더 통하는 법이지! 순수한 소녀의 밀땅이라고 들어봤는가?

“그리고요?”

“아무튼 그래서... 키스는 호감의 표시인 줄 알았지. 그래서 그랬어! 네가 마음에 들어서... 영애들이 나한테 좋다고 하는 것처럼, 나도 그랬을 뿐이었는데...”

리일은 억울하다는 듯이 귀가 추욱 쳐졌다. 아니, 강아지도 아니니 진짜로 쳐질 리는 없겠지만 그냥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고! 그런 건 가짜 키스고, 진짜 키스는 따로 있다는 걸 알아!”

쿡쿡, 귀엽다! 더 구박해 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난 그에게 줄 선물을 꺼냈다.

“알았어요. 이해해 줄게요. 그보다... 리일한테 줄 게 있어요.”

“나한테? 정말? 뭐? 뭔데?”

“늦었지만 생일... 선물이요.”

“정마아아알?”

리일의 초롱초롱한 눈은 빛이 튀어나올 듯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차마 내 수수한 선물을 꺼내지 못할 정도였다.

“별거 아니니까... 그렇게 기대하지 마세요. 실망하면 어떡해요..”

“그럴 리가! 리엘이 주는 거면 다 좋아!!”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난 챙겨온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들었다.

“별 건 아닌데.... 자, 여기요. 생일 축하해요. 이거... 제가 직접 짠 거예요.”

사실 목도리 뿐 아니라 오빠신공도 한 번 해 보려 했는데, 너무 낯간지러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해도, 나한테는 영 안 어울려서 포기했다.

“정말? 정말정말?”

“네. 이거 뜨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를 거예요! 휴, 아직도 어깨가 다 결리네요.”

“진짜... 진심으로 고마워...!!! 너무너무 고마워!

“황녀 전하께도 드렸어요. 두 분 쌍둥이시니까 남매룩으로 하고 다니세요.”

“뭐? 누나아아?”

“네. 그동안 몇 번이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어서요. 같이 하시라고 두 개 떴어요.”

“리엘!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남매룩은 무슨 남매룩이야! 커플룩이라야지!”

“네...?”

아니 그게... 이거 뜰 때까지만 해도 우리 커플 아니었는데...

“누나는 못생겨서 이런 거 어울리지도 않아!”

......저기요. 너님 누나가 저보다 훨씬 더 미인이거든요?

“......”

“내가 뺏어 올게. 리엘이랑 나랑 하고 다니자!”

“으악! 이미 드린 걸 어떻게 그래요! 엄청 좋아하셨다고요! 절대 가서 내놓으라고 하면 안 돼요!!”

“나도 엄청 좋아하잖아! 같이 하면 더 좋다구!! 뺏아올 거야!!”

“리일!!”

“아! 그럼 하나 더 떠!”

“.....그럼 트리플룩인가요?”

“........”

그건 자기가 생각해도 좀 웃겼는지, 리일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축 쳐졌다.

“치이... 그럼 다음엔 꼭 커플룩이다!?”

“네, 네....”

“아무튼 고마워! 평생 잘 간직할게! 매일매일 하고 다닐게!!”

“대단한 선물도 아닌데 좋아해 주시니 제가 다 기뻐요.”

“왜 대단하지가 않아!!? 리엘이 손수 만들어 준 건데!! 나 정말 기뻐!! 이런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이거든!”

“정말요? 한 번도 누가 해 준 적 없어요?”

“뭐... 장인들이 만들어 준 건 많지만, 가까운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준 적은 없어. 아바마마가 뜨개질을 할 리는 없고, 어마마마 역시 아바마마 못지않게 정무로 바쁘시거든.”

“황후폐하도요?”

“응. 어마마마도 아바마마랑 법적으로 동등한 공동통치자거든. 두 분 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지. 바쁜 와중에도 우리를 잘 챙겨주셨지만, 이런 걸 하실 시간은 당연히 없으시지. 심지어 할마마마 조차도 공국을 혼자 다스리시느라 바쁘셔서...”

“신기하네요...”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공동통치자라니... 이 세상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이 나라는 생각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것 같네?

“그치? 원래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아바마마가 법을 개정하셨거든.”

“아...”

그러고 보니 리일이 황위를 이어받지 않을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공동통치자라니, 내가 무슨 수로 그런 걸 해...

“아무튼 정말 고마워. 리엘, 뒤 돌아봐. 내가 마사지해줄게.”

“아뇨, 괜찮아요!”

“괜찮긴, 결리는 건 바로바로 풀어줘야 해.”

“고, 고마워요.”

무엄하게도 황자가 해 주는 마사지도 받고, 이게 다 웬 호강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의 손이 슬쩍슬쩍 스칠 때마다 시원하기는커녕 몸이 베베 꼬이는 건, 내가 너무 밝힘증 변녀라서 그런 거겠지?

“읏...”

“아, 미안. 아팠어?”

“아뇨, 그... 그게...”

그런 이유가 아닌데... 멈추지 마! 좋아서 그래. 으흐흐... 내가 이상한 소리를 내자 오해한 리일은 조금 더 부드럽게 마사지 해 주었다.

아... 좋다. 나도 언젠가 꼭 단 둘이 은밀한 곳에서, 리일을 눕혀 놓고 복근을 만지작 만지막... 으흐흐흐흐....!!

그렇게 끝없는 망상에 빠져들며, 난 그의 손길을 만끽했다.

“리일... 아읏...! 간지러워요!”

어느새 마사지는 점점 핑크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