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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57화 (57/134)

57. 사냥 (2)

2017.02.10.

"아앗!"

동시에 쉬익 하는 파공성과 함께, 나무에 뭔가 퍽 하고 틀어박히는 소리가 났다.

뭐였지 지금?

".....!!"

화살이었다.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공포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화살? 화살이라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화살을 사용하지 않는 여우사냥 날이다.

황실 사냥터에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리는 없는데...? 그럼 누군가가 나, 혹은 리일을 노리는 건가?

일단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난 급한 대로 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아윽...”

그 순간, 단검이 날아와 어깨를 스쳤다. 땅바닥에 박힌 단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숙이지 않았으면 심장에 맞았을 거야...!

나를 노리는 게 분명해. 내가 혼자가 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미친 듯이 두려움이 몰라왔다. 어떻게 하지... 리일을 불러야 하나? 하지만 그도 위험해 질 텐데...

생각할 시간 따위 없었다. 언제 또 무기가 날아올지 모른다. 뭐라도 해야 해!!

난 일단 바람계열 마법을 일으켰다. 바람의 칼날 대신, 대량의 바람으로 광풍을 만들어 냈다.

단검이면 몰라도, 적어도 날아오는 화살이라도 흐트러트릴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필사의 의지로 마법을 유지하며 버텼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빗나간 화살들이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쉬익!

“아악!”

이번엔 단검이 꽤 깊게 베며 지나갔다.

내가 이걸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계속 버틸 수 있을까...?

화살은 그렇다 쳐도, 단검은 어쩌지?

“리엘!!”

젠장. 물을 뜨러 다녀온 리일이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의 얼굴은 온통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지 말아요! 위험해요!!”

하지만 리일은 광풍을 뚫고 나에게 힘겹게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야! 얼굴에서 피가 나잖아!”

몰랐는데 귀에서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목덜미가 축축한 게 느껴졌다. 어깨도 마찬가지인지, 피가 흘러내려 손까지 끈적끈적했다.

“오지 말라니까요!”

“무슨 소리야!!”

내 옆에 온 리일은 쏜살같이 나를 제 뒤로 감추었다.

“리일, 암살자인 것 같아요. 절 노리고 있어요. 리일까지 위험해져요!”

“내가 지켜줄게!“

그런데 리일이 나타나자 갑자기 화살이 잠잠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아, 리일은 황족이니 건드리기 곤란한 건가?

난 잠시 마법을 멈추었다. 긴장한 채 급작스레 시전했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이게 끝이 아닐 텐데 어쩌지...

부스스

부스럭

역시나, 곧 적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황자 전하를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그 계집이니 얌전히 내어 주십시오. 다치지 않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미 들킨 거, 리일은 다치지 않게 제압하고 목표인 나만 죽이고 갈 생각인 듯 했다.

아무리 암살자 길드라도, 나라가 뒤집힐 만큼 대대적인 혼란기가 아닌 이상 쉽게 황족을 건드리진 못한다. 잘못 손댔다가는 뿌리 채 사라지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개소리! 간덩이가 부었구나!”

하지만 나를 내어줄 리 없는 리일은 챙 하고 검을 빼어들었다.

“누가 오기 전에 서둘러 계집을 처리한다. 황자전하는 절대 건드리지 말아라.”

적들은 수가 꽤 많았다.

투척용 단검을 든 자가 두 명, 장검을 빼든 자가 네 명, 그리고 리더 한 명. 이렇게 총 7명이었다. 궁수는 숨어있는지 보이지 않아 몇 명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쪽은 나까지 두 명. 게다가 난 한 번도 전투경험이 없었다. 리일도 축제 때 치한을 처치한 게 처음 사람을 죽여 본 거였을 텐데...

“너희들은 황자전하를 막아라. 계집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순식간에 싸움이 시작되었고, 상황은 당연히 우리에게 불리했다.

“리엘!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하지만 실전경험이 없는데다가 아직 오러도 못 쓰는 리일은, 6대 1로 대치하자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게다가 자객들의 실력은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나마 저들이 리일을 다치게 할 수 없기에 이나마 버티는 중이었다.

내 쪽 역시 안 좋았다. 리일과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나무 뒤에 숨은 궁수가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딱 붙어있기엔 리일을 막던 자들이 호시탐탐 나를 노렸다. 여섯 자루나 되는 검들은 조금만 방심해도 리일이 아닌 내게 향했다.

“아윽...“

눈 깜짝할 새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적의 리더 역시 어떻게든 날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리일의 보호를 받으며 나 역시 바람의 칼날을 날리며 죽자고 분투했다. 하지만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움직이는 적들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악!!”

집중력도 명중도도 최악으로 떨어졌다. 마법을 완성하지도 못하고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 성공한다 해도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다.

내가 위험할 때마다 리일이 온 몸으로 막아줘서 그나마 아직 살아있는 셈이었다. 번뜩이는 검날 앞에 리일이 몸을 던지면 저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으니까.

“리엘, 내 뒤에 숨어서 조금만 버텨!!”

다행히도 리일이 상대하던 적 두 명이 벌써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셈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자, 리더는 리일을 막고 있던 남은 네 명 중 두 명을 불렀다.

“계집이 마법을 쓰지 못하게 견제해라!!”

적들은 단검을 짧게 그러쥐고는 나에게 휘둘렀다. 내가 리일의 곁에 딱 붙어있어 단검을 날리지 못하니 직접 달려들게 한 것이다.

한 명도 버거웠는데 세 명이라니...! 손발이 어지러워진 난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

나에게 달려드는 적들의 칼날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심장에 검이 내리꽂힐 위기였다. 리일 역시 두 명과 동시에 검을 맞대고 있느라 바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이, 이대로는 죽겠어..!!

“리엘!!!!!!!”

리일이 갑자기, 팽팽히 맞대고 있던 검을 무작정 놓아버리고는 나를 감싸왔다. 대치 중에 멋대로 몸을 빼 버리자 밸런스가 흐트러지며 적의 검이 그에게 파고들었다.

“흐윽...!”

적이 황급히 검을 회수했음에도 리일의 옆구리에서 이미 피가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리일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에게 몸을 날렸다.

내 심장이 막 꿰뚫리려는 순간, 리일의 등이 적을 가로막았다. 당황한 적은 온 힘을 다해 검을 비틀려 했으나, 이미 내리꽂히던 검은 결국 리일의 등허리에 깊이 틀어박혔다.

“크억....”

“리일!!!!!!!”

난 다급히 그를 불렀다.

“리일... 리일...!!”

“괘.. 괜찮...”

어... 어떻게 하지... 피가, 피가 너무 많이 나는데... 치료.. 치료해야 하는데...

화악!

힐링마법을 배워두지 않은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며 멍청하게 공격마법만 연습한 과거의 나를 후려패고 싶었다.

화악!!

아쉬우나마 마나라도 열심히 끌어다 부어주었지만 리일의 상태는 심각했다.

어..어떡하지...

“보, 보스 어..어..어.떻게 할까요... 황자가 다쳤는데...”

적들 역시 예상치 못한 리일의 부상해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이익.. 일을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어차피 끝장이다! 이판사판이니 무조건 계집을 죽여라! 서둘러 처리하고 철수한다!!”

내 절박한 심정과 상관없이, 적은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리일도 쓰러졌으니 나 하나쯤 죽이는 거야 손쉬운 일이었다.

“리..엘.. 도망...가..”

힘겹게 날 가로막으며 리일이 말했다.

리일을 피를 콸콸 쏟아내는 와중에도 제 몸을 돌볼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든 나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짓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리일, 안 돼요... 어서 피해요. 리일까지 죽겠어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비웃으며 자객 중 한 명이 기다란 장검을 치켜든 채 다가왔다. 날 끝장내기 위해 검을 높이 치켜드는 것이 보였다.

...안돼... 죽기 싫어..!

안 돼, 멈춰...!!

제발 멈춰...!

“멈춰!!!!!!!”

멈칫

내 간절한 외침에, 적은 고장 난 기계라도 된 듯 덜컥하고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휘두르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린 자세 그대로 적은 움찔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샤악!

내가 구현해 낸 바람의 칼날에 적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끄으.... 꾸르륵...”

쿵...!

피 끓는 소리를 내던 적은 이윽고 쓰러졌다.

“하아... 하아..”

........어떻게 된 거지? 뭔가 묘한 감각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뭣들 하는 게냐! 계집을 어서 죽여!”

어리둥절할 틈 따위 없었다. 한 명을 죽였지만, 아직도 적은 넷이나 남아있었다. 잠시 주춤했던 적은 이윽고 각자 무기를 꼬나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화악!!

일단 강풍을 쏘아 적들을 살짝 밀어낸 후 리일의 상태를 재빨리 확인해 보았다.

이미 의식 없이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그는 딱 봐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그나마 독검은 아닌 듯 해 다행이었지만 이대로 방치했다간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쉬익!

쉭!

적들이 다시 다가오자, 되는대로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피융!

하지만 강풍이 없어지자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들었다. 날 막아주던 리일도 쓰러졌으니 궁수는 거리낄 게 없는 듯했다.

“악!”

팔뚝에 화살이 박히자 미친 듯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마법이고 뭐고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어쩌지... 어떻게 하면 좋지... 이대로 계속 저항하며 시간을 끌며 리일이 죽어. 저들은 날 죽이기 전엔 떠나지 않을 거야.

이젠 뇌도 지쳐서 마법도 잘되지 않았다. 당황하니 집중이 자꾸만 깨졌다.

아까 느껴졌던 기이한 감각, 그걸 어떻게든 다시 해 보려 했지만 다시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정말 끝인가.. 나 때문에 리일까지.. 그라도 살아야 하는데...

휘잉!!

마지막 집중력을 쥐어짜 저들을 잠시 밀어내고, 나는 다급히 외쳤다.

“잠깐만요!!”

“뭐냐 계집,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은 거냐?”

“제 목이 필요한 거잖아요!”

당연한 얘기에 적들은 대답 없이 눈만 번뜩였다.

“가져가세요. 대신!! 그가 죽지 않게 당장 치료해 주세요. 당신들도 전하가 죽으면 곤란하겠죠.”

그들 역시 리일이 죽으면 곤란하겠지만, 보다 절박한 건 내 쪽이었다.

하지만 저들이 과연 약속을 지킬까...? 몸을 빼는데 급급해서 리일을 버려두고 그냥 철수하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치며 걱정이 치솟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 혼자는 저들을 절대 못 이기고, 저항해봤자 리일의 상태만 시시각각 나빠진다.

어차피 죽을 거 리일이라도 살려야 했다.

“좋다. 약속하지. 그럼 이제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미안해요. 리일. 나 때문에 다치게 해서... 어차피 이렇게 될 거, 리일을 끌어들이지 말고 얌전히 죽어줄 걸 그랬어요...

그래도 암살자들이니, 고통 없이 한 방에 죽여주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

암전된 시야 너머로 빛이 번뜩이는 게 느껴졌다. 검을 휘둘렀나 보구나. 곧 목이 떨어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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