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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70화 (70/134)

70. 데이트(1)

2017.02.25.

리일이 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내게서 떨어졌다.

“리엘. 그, 그만... 더 이상은...”

아 진짜 왜 그래!!!!!

“하아... 왜요...?”

“여기서는...”

아차, 여기 지금 그의 처소고, 대낮이지...! 당연히도 끝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나봐...

쳇,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난 그를 놔 주었다. 근데 나보다 리일이 더 먼저 이성을 차리다니, 왠지 민망하다...

“..... 얼른 결혼하면 좋겠다.”

“....그...그러게요.... 하하하...”

쿨럭, 진짜 이놈의 결혼타령은...! 아 혹시...? 얘 자꾸 결혼타령 하는 게, 결혼하고 나서야 초야를 치러야 된다 뭐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 때문인가?

아니 그럼 그동안의 자유연애주의는 뭔데? 삘 통하는 여자를 찾아서 그냥 뭐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거? 얘 생각보다 순수하구나... 내가 너무 오해했어!

“리엘! 우리 데이트 가자! 여기 말고 단 둘만 있을 수 있는 곳... 그래! 소궁으로 가자!”

......오해 취소. 그래 이 나이 피 끓는 꼬꼬마 소년이 절대 그렇게 머릿속이 담백할 리 없지. 하지만 나 역시 마다하지 않거든. 으흐흐흐...

“그래도 돼요?”

“응! 나 이제 호위도 필요 없어. 가자 어서!”

우와. 진짜로 오러나이트의 벽을 넘어서고 온 거야? 대단하다... 역시 사랑의 힘!

“좋아요!”

앗, 잠깐! 근데 그렇게 맘대로 가도 되는 건가? 뭐, 아들놈이 괜찮다는데 괜찮겠지...

근데 허락도 허락이지만...

“그럼 당장 가자!”

“자, 자, 잠깐만요! 근데 리일... 오랜만에 나왔는데 가서 인사는 드리고 왔어요?”

“아니, 아직인데?”

“저한테....... 먼저 온 거예요?”

“응! 너무 보고 싶어서!”

자식 낳아봐야 아무짝에 소용없다더니... 으휴, 내가 이런 것 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냐!

“부모님부터 먼저 뵈러 갔어야죠! 당장 다녀오세욧!!”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린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인 듯 했다.

***

하지만 우리는 그 날이 아니라, 다음날이 되어서야 본격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황제와 황후를 보러 간 리일이 저녁때까지 한참을 안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리엘, 어제는 미안...”

“아니에요. 어차피 시간이 좀 애매한 때였어요. 근데 웬일로 그렇게 오래 붙잡혀 있었어요?”

“아, 그게 마가렛이...”

뭣이!? 마가렛이라면!! 황후의 사촌이라는 그 영애! 무려 리일을 오래오래 짝사랑 해왔다는!

“레이디 레이튼이요!? 그 영애가 왜요!?!”

“응? 리엘? 왜 그렇게 정색해?”

아차, 이건 생각을 읽어서 아는 거라 나밖에 모르지! 정작 리일 본인도 모르고...

“아, 아니에요. 아무튼... 그런데요?”

“응? 아... 마침 갔더니 어마마마랑 티타임을 가지고 있더라고. 근데 한참을 붙들고 안 놔 주지 뭐야? 결혼이나 할 것이지, 왜 나만 보면 구박하고 난리인지...”

“......”

너 좋아해서 그래. 칼 맞고 의식 없을 때 걱정되어 매일 왔는데, 코빼기도 안 보여주고 또 틀어박혔으니 얼마나 서러웠겠어. 하아... 그 영애 입장에서 보면 내가 진짜 나쁜년이구나.

“아무튼, 오늘은 드디어 아침부터 찌이이인하게 데이트야!”

나와 데이트할 생각에 그렇게 좋은지, 리일은 내내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하긴, 둘 다 연무장에서 죽도록 구른 대가라 생각하니, 더욱 보상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우린 드디어 아침이라는 걸 함께 먹기로 했다.

각자 수련하러 떠나기로 한 날, 원래 함께 아침 먹고 진한 데이트 했어야 하는 거였는데...! 그런데 방해꾼 1, 2... 아차, 황후폐하를 방해꾼이라 하면 안 되지!

아무튼 음... 오줌싸개 공주년의 방해로 아무것도 못 했다구! 그리고는 내가 능력에 대해 퍼뜩 떠올리는 바람에, 울상 짓는 리일을 버린 채 급히 떠나버렸고...

그러니 다시 만나게 된 지금, 리일이 얼마나 불타오르겠는가! 그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분위기를 잡아댔다.

“으응...”

츄릅, 할짝...

“리..리일... 거긴...”

“하아... 리엘...”

아 진짜! 아침을 먹으라고! 날 먹지 말고! 진짜 시녀들 보기에 민망해서 살 수가 없네! 그리고 나 배고프다고!

“아... 으읏....”

하지만 점점 목덜미로 내려오는 그의 입술에, 나는 배고픈 것도 잊고 다시 몰입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꼬르르르륵!

내 배에서 천둥이 쳤다.

“......”

이거 내 잘못 아냐. 나 아까부터 배고팠다고!

“...그, 그... 리일, 우리 바..밥부터 먹고 다시 할까요?"

“...배... 많이 고파?”

하지만 리일은 너무나 아쉬운 표정이었다.

“네!”

다행히 보다 못한 시종장이 총대를 메고 말려 주었다.

“흠흠, 전하. 아까부터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만...”

“......알았어.”

"우리 일단 식사부터 해요!”

드디어 아침을 먹는구나... 아까부터 테이블에 식기만 차려놓고 쫄쫄 굶었더니 이제는 머리가 다 핑 돌았다.

테이블은 순식간에 세팅되기 시작되었다. 하녀들이 줄줄이 날라 오는 진수성찬에 군침이 절로 돌았다.

일단 신선한 생과일 주스로 위장을 깨우고!

겹겹이 쌓인 결 덕분에 유난히 부드러운 빵을 촤악 뜯어서, 거기에 상큼한 잼과 꿀, 크림치즈를 얹어 한 입에 오물오물. 그리고 무카 한 모금! 꺄올!!!

“리엘, 아아~ 자, 이것도 먹어 봐.”

우리는 이보다 닭살 돋을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음식을 먹여주었다. 아... 한번쯤 꼭 이 짓 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 성취구나!

“아아~~”

“우리 리엘 잘 먹는다! 자, 이번엔 이거!”

“리일.. 자꾸 그렇게 먹이면 저 순식간에 돼지 되겠어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난 도저히 이 진수성찬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따뜻한 송로 버섯 수프가 뱃속을 뜨끈히 해주니 정말 좋군! 황궁 요리사가 혼을 다해 만든 에그 베네딕트도 일품이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의 사각이는 소리는 식감을 돋워 주고!

아 행복해!! 으아아... 이게 얼마 만에 누려보는 호사야!

“리일 너무 맛있어요!”

“다행이다. 많이 먹어!”

그야 당연하지! 우와, 내가 좋아하는 훈제 참치에 하몽까지! 연어도 맛있네. 샐러드는 또 왜 이렇게 신선해! 이 드레싱은 뭐지? 황궁 특제 레시피인가?

아무튼 맛있네!

마지막 디저트로 나온 것은 갖가지 과일, 견과류를 곁들인 초콜릿,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크림브륄레였다!

진짜진짜 마지막 입가심으로 요거트까지 먹고 나니 배가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식사 끝!

맛있게 먹고 나니 순식간에 테이블이 사악 정리되었다. 정말 내가 팔자 펴긴 폈구나. 예전 같으면 저기 저들 중 한명인 하녀1이 나였을 텐데...

이게 다 리일 덕분이지! 음헤헤헤 이쁜 것. 나 낚아줘서 진심 고마워!

진짜 어디서 이렇게 날 위해 준비된 것 같은 순진한 왕자님이 나타난 건지! 내가 먼저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지...

아, 어차피 다른 애들은 쫄아서 엄두도 못 냈을 거야. 환생녀인 내 현대적 시각과 근자감이 크게 기여한 거니까!

내가 이렇게 망상과 함께 처묵처묵 하는 동안, 리일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만 있었다.

“잘 먹었어? 맛있었어?”

헉, 다 먹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으아아아 쪽팔려! 리일은 잘 먹지도 않는데, 나만 혼자 꾸역꾸역 먹다니...!!

“아...하하... 네. 근데 리일은 왜 잘 안 먹어요?”

“응? 난 리엘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 걸?”

어디서 그런 개 구라를!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것도 다 새빨간 거짓말이건만!

이건 진짜라고! 전생에 울 엄마가 나한테 딱 잘라 그렇게 말했어! 그건 아니라고 말이야. 아, 왜 이런 쓸데없는 것만 기억하는지...

“자.. 잘 먹었어요. 하하하...”

방해하는 공주 없으니 너무너무 좋다! 걔 오줌 싸서 이제 안 올 거야. 크크크!

“진작 같이 먹자고 부를걸. 내가 원래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동안 생각도 못했어. 먹느니 차라리 자는 걸 택하거든.”

“하하하.... 전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해랴 해서, 안 먹으면 쓰러지거든요. 생존에 특화되어 어쩔 수 없달 까요...?”

“쿡쿡. 앞으론 삼시세끼 늘 같이 먹자. 이젠 일 같은 거 안 해도 되지만, 일찍 일어나서 배고프면 내 방으로 와. 나 두드려 깨워서 아침 내놓으라고 하면 하녀들한테 준비시킬게.”

“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래요...”

“응? 왜? 뭐가 어때서?”

“너무 버릇없는 짓이잖아요. 전 시녀인데...”

“리엘!!”

리일이 갑자기 나한테 빼액거렸다. 뭔가 표정도 안 좋아 보였다. 갑자기 왜 저러나 영문을 몰라 난 눈만 껌뻑거렸다.

“네...? 제가 뭐 실수라도...?”

“리엘, 무슨 그런 말을 해.”

“네?”

“연인 사이에 신분이 어디 있어!?”

“......”

쿵...! 특별히 대단히 로맨틱한 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저 한마디로 리일이 나에게 얼마나 진심인지 훅 와 닿았다. 신분이 어떻든 간에, 그의 연인으로서 동등한 존재라는 말...

“리일...”

“배고파서 연인한테 칭얼거리는 게 뭐가 이상해?”

“...그러네요.”

“리엘 나 아니면 기댈 데 없잖아... 그러니까, 아무 부담 말고 얼마든지 의지해도 돼. 내가 언제나 지켜줄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툭 던지는 말인데 너무 기뻤다. 고장 나기라도 한 듯,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댔다.

“리일...”

“나 다른 건 몰라도, 리엘 편들어 주는 거 하나는 진짜 잘하지 않아?”

“풉, 맞아요.”

줄리랑 대화하고 나서 새삼 깨달은 건데, 사람은 누구나 주특기 영역에서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 같았다.

리일은... 그러니까 음... 다른 건 몰라도, 내 실드 쳐주는 것에만큼은 진짜 기막히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이 말도 안 되는 신분 차의 연애와, 내 말도 안 되는 민폐 짓도 다 덮어줄 만큼! 연인으로서는 정말 만점!

얘가 내 아들이 아니라 남친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휴...

“아무튼 이제 매일 아침 같이 먹는 거다? 두드려 깨워!”

“그, 그래도 자는 사람한테 어떻게 그래요. 그냥 같이 늦잠 잘게요!”

“난 괜찮은데... 뭐, 늦잠 푹 자고 브런치도 좋지! 리엘과 함께라면 뭐든지 다 좋아!”

“저도요! 함께 있을 수만 있으면 뭐든지 다 좋아요! 그 동안 떨어져 있느라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나도... 우리 이제 절대 떨어지지 말자!”

“당연하죠!”

“맞다 리엘, 마법은 많이 늘었어? 어제 누나가 많이 칭찬하더라.”

“치..칭찬 받을 것까지야... 아무튼 아직 서임만 받지 않았지, 어엿한 마법사랍니다!”

“우와 멋지다!”

“리일은요?”

“응? 나?”

오러나이트가 된 것 같긴 한데... 난 사실 그의 경지가 어떤지, 벽을 어떻게 깼는지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들어도 잘 모르니, 그냥 뭐 멋지구나... 잘하는 구나... 세구나... 그런 정도 느낌이었다.

내가 내 마법 수준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말해줘도 리일이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자기의 ‘강함’을 알아주길 바라는 심리가 있겠지? 슬쩍 띄워줘 볼까? 그냥 짱짱 세졌으면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으니까.

“네. 이제 악당 따위 단번에 무찌르는 그런 멋지고 강한 기사님이 된 거예요?”

내가 이런 오글거리는 멘트를 할 줄이야...

“물론이지! 이제 절대 리엘을 다치게 하지 않을게! 나만 믿어!! 앞으로는 단둘이 바깥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어!”

“우와아... 멋지다!! 우리 리일 최고예요!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역시 남자는 다 똑같다니까.. 에휴... 그러면서도 자동으로 닭살 돋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나란 년... 에휴...

“하하.. 고마워! 기다리는 동안 심심했지. 나 없이 혼자 잘 지냈어?”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그가 내게 물었다.

“아뇨...”

“왜? 무슨 일 있었어?”

리일의 표정이 순식간에 싹 바뀌며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에 난 다급히 뒷말을 이었다.

“리일이 보고 싶어서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넘어가고... 힝...”

내가 생각해도 애교가 무르익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난 아주 그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절대 의도적인 건 아닌데, 내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건지...

“리엘!! 왜 이렇게 이뻐!”

쪽쪽쪽

언제 찌푸렸냐는 듯이, 리일은 눈에서 하트를 뿅뿅 뿜어대며 나한테 키스를 여기저기 마구 퍼부었다.

“아... 리일....”

가벼운 뽀뽀 수준으로 시작한 키스는, 어느 틈에 또 진한 키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으음...”

하지만 더 깊어지기 전에, 리일은 화들짝 얼굴을 떼었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가자! 가서 하자!”

...가, 가서 하자니... 이 음흉한 놈! 하지만 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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