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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76화 (76/134)

76. 진실(3)

2017.03.05.

고모뻘이라며 리일을 왜 좋아하는 거야! 하여튼 저 집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상한 것 같아. 걔네 오빠라는 레이튼 후작도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고... 아 진짜 은근 신경 쓰이네.

“리엘?”

“네? 네... 레이튼 후작가의... 맞죠?”

“응, 맞아.”

한동안 까맣게 존재도 잊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야! 하아....

“저기 리일, 둘이 무슨... 사이에요?”

“응? 사이는 무슨 사이? 그냥 친척이지.”

“흐음... 정말요?“

“응. 나랑 다섯 살 때부터 같이 컸어. 마가렛이 7살 때 황궁으로 왔거든. 그 전까진 세이라 왕궁에서 할마마마랑 살았었고.”

“......”

젠장, 생각보다 깊은 사이잖아!

“근데 리엘, 그건 갑자기 왜?”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리일은 왠지 엄청 기쁜 듯한 얼굴로 나에게 조르듯이 물었다. 심지어 질투하는 거 아니라고 하면 실망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 아니, 맞... 아니 그게 맞는게 아니라 몰라요!!”

“푸핫! 기쁘긴 한데, 걘 정말 전혀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완전히 친구야. 서로 볼 장 다 본.”

아가야, 그건 너만의 생각이란다. 네가 여자를 모르는 구나. 에휴... 남의 마음을 멋대로 밝혀버릴 순 없기에, 난 그냥 슬쩍 말을 돌렸다.

“네... 근데 레이튼 경은 영지로 떠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경은 떠났지만 마가렛은 아직 남았어.”

“네? 왜요?”

“글쎄? 곧 떠나긴 한다는데, 작별인사 할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는 거 아닐까?”

“아........”

“아니면 제도에 남아 신랑감 찾으려고?”

젠장, 이거 농담으로 들을 수가 없는데...?

“........그렇군요.”

어휴, 둔탱이 리일은 걔가 자기 좋아하는 지 영원히 모를 것 같았다. 딱 보니 꽤나 오랫동안 혼자 마음앓이 한 것 같던데...

“아무튼 그 잔소리쟁이 레이튼 경이 떠났으니, 이때다 하고 파티를 연 거겠지.”

“아, 그런 거였어요? 근데 어째 리일이 더 속 시원해 보이는데요?”

“에이, 아냐. 내가 뭘... 어, 다 왔다. 내리자”

리일은 찔리는 듯 급히 말을 돌리며 마차의 문을 벌컥 열었다. 레이튼 후작가는 황궁 코앞에 위치해 있었기에, 타자마자 도착했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 우린 다시 한 번 의상을 점검해 보았다. 가발에 가면, 특수한 분장에 목에는 마법아이템인 음성변조기까지 두른 내 모습은 정말 완벽했다. 이건 부모가 와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이 귀한 마법을 이딴 데 쓰다니 어이가 없지만, 돈 많은 것들이 그렇지 뭐!

“초청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문 앞에 다다르자 역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시종이 정중히 요구를 해 왔다.

리일은 고급스러운 초대장을 하나 내밀어 보였다. 이름은 따로 쓰여 있지 않지만 저것만으로도 초대객으로서 신원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와!!”

안에 들어가자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딱딱한 격식의 황궁 연회와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끝없이 흐르는 웃음소리와 경쾌한 음악, 넘쳐흐르는 술과 음식들... 화려한 의상과 볼거리 등,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리일은 재빨리 지나가던 시종에게 잔을 받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알록달록 예쁘게 장식된 칵테일이었다.

“자, 여기. 일단 마셔. 오늘은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제대로 놀자!!”

그러고 보니, 환생한 이후 이렇게 마음 편히 부어라 마셔라 즐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노는 거 좋아할 한창 나이에, 늘 무언가에 얽매이고 쫓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고마워요. 우리 오늘 끝까지 달려요!!”

짠!!!

“실례합니다. 레이디”

우리가 건배를 하자 시종은 내 칵테일에 화르륵 불을 붙여 주었다.

“꺅!”

“하하하. 놀랐어?”

“아, 아뇨! 저도 알아요!!”

이 세계에선 처음이지만 분명 어디선가 겪어본 일이긴 했다. 그냥 예고없는 불쇼에 놀랐을 뿐.

“와, 맛있다! 이거 뭐예요?”

“빅토리안 블루라는 칵테일이야. 황궁 무도회에서 제공되는 도수 낮은 와인들과 달리 꽤 세니까 조심해. 순식간에 훅 가.”

역시 십대들의 파티. 초장부터 세구나.

“저쪽에 가보자! 마술쇼 한다!”

마술..? 그건 눈속임용 가짜 아닌가? 마법이 있는 이 세상에서 그런 걸 한다고?

“우와아! 이거 진짜 마법이잖아요!”

역시, 마법의 나라 그라츠답게, 이름만 마술쇼지, 실제 마법을 이용한 온갖 묘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응? 그야 당연하지.”

“진짜 신기해요!!”

마가렛이 열었다는 말에 찜찜했던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난 신나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가면을 쓰고 있으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너무 좋았다. 내가 누군지 모르니 시비거는 사람도 없었다.

“저기 무희들 좀 봐요! 우와 쭉쭉빵빵!!”

무대의 문이 열리더니 화려한 분장의 무희들이 쏟아져 나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흥, 저 정도로 쭉쭉빵빵은 무슨! 솔직히 리.. 아니 우리 서큐버스 여왕님 쪽이 훨씬...”

이 안쪽에서는 본명을 부르지 않는 게 룰이었기에 리일은 내 이름을 말하려다 황급히 말을 돌렸다. 우린 서로 왕자님, 여왕님 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하고 들어온 상태였다.

“으악! 민망하게 왜 그래요!”

“왜.. 사실인데...”

우린 지금 각자 서큐버스와 페어리 왕자로 분장하고 있었다.

머릿속 기억을 뒤져 만든 내 의상은 리일이 저런 말을 한 만큼 아주 파격적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흔치 않은 착 달라붙는 드레스에, 옆트임이 허벅지 위쪽까지 쫘아악 시원하게 나 있었다. 가슴은 푹 파였고, 머리엔 섹시한 뿔까지 달려 있었다. 새까만 깃털가면과 빨간 가발은 야릇한 분위기를 더 강조해 주었다.

반면 리일은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페어리 왕자 그 자체였다. 사랑스럽게 파닥거리는 투명한 날개는 정말 그와 똑 어울렸다.

마치 각자의 내면을 형상화 했다고 할까...? 순수한 왕자님을 꼬시는 사악한 마녀?

“몰라욧!”

“알았어. 안 할게. 그럼 우리 저쪽 가서 카드게임하자!”

리일의 손에 이끌려 가 보니, 파티장 한구석은 카드게임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금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도 할까? 재밌겠는데?”

“돈 안 가져 왔잖아요.”

“아냐. 보석도 받을 걸?”

리일은 그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박힌 커프스링크를 하나 빼서 시종에게 건네며 말했다.

“금화로 바꿔오도록”

이렇게 교환하면 엄청 손해일 텐데... 하긴, 얘가 뭐 그런 개념이 있겠나.

“설마 이거... 세금으로 하는 거 아니죠?”

난 서민근성이 발동해 리일을 쿡 찌르며 살짝 물었다.

“아냐! 국고와 황실 사유재산은 별개라고. 이건 엄연히 내 돈이야!”

리일은 억울한 듯 속닥속닥 항의했다.

“알았어요. 그럼 많이 따요!”

곧 시종이 금화를 산더미처럼 가져다주자, 리일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로 걸어갔다.

자고로 자기 여자에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모든 남자의 공통심리지!

하지만............

20분 후.

“........정말 다 날렸어요? 이렇게 순식간에?”

“응...”

우와, 집 한 채가 사라졌네?

“자신있어하더니...”

“......미안... 재능이 없나봐.”

속임수가 있었다 보기엔, 딜러도 없이 참가자들끼리 그냥 하는 게임이다. 참가자들은 모두 아쉬울 거 하나 없는 대귀족들.

리일은 정말 운도 실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어휴... 넌 태어나는 데에 운을 다 썼나 보다. 하긴, 애지중지 사랑받는 황제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더 이상 무슨 운이 더 필요하겠나 싶었다.

“줘 봐요. 제가 해 볼게요.”

난 손을 척 내밀었다.

리일은 커프스링크를 하나 더 빼내어 내 손에 올려주었다.

시종이 후다닥 금화를 가져왔다.

다시 20분 후.

“짠!”

“우와아아아아아...”

“제가 3배로 벌어왔어요. 아까 날린 것까지 해도 본전 이상이죠?”

사실 보석을 급히 금화로 바꾸었으니 그 손실까지 감안하면 거의 본전치기였다. 그래도 돈을 따니 기분은 좋았다.

“우와아아아아아...”

리일은 우와아아 소리밖에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다른 녀석이 하면 되게 멍청해 보일 짓인데, 비주얼이 되는 황자님이니 저 짓도 귀여워 보인다는 게 신기하다.

“자, 여기요!”

“여왕님 멋지다!!”

“훗! 제가 좀 대단하죠! 무거우니 얼른 받아요.”

“아차, 미안. 일단 시종한테 맡겨 두었다가 이따 갈 때 찾아가자. 여왕님이 딴 거니 여왕님이 가져야지!”

“아니에요. 왕자님이 준 금화로 한 건데요.”

“아니야. 내가 했으면 어차피 허공으로 사라졌을 거야. 그러니 기념으로 가져 가.”

“진짜요오오오?”

“그럼! 물론이지.”

으히히히 당연히 좋지! 다른 것도 아니고 현금인데, 현금!! 번쩍번쩍 금화가 수북해!! 저 쬐마난 커프스링크가 이렇게 비싼 걸 줄이야.

이참에 프로도박꾼으로 나가 볼까? 내 비밀 능력으로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인데! 뭐 어차피 리일과 결혼하면 돈 같은 건 아무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야호!

“꺅! 신나요! 제 몇 년 치 월급인지! 아차...”

정체가 드러날 뻔 한 말에 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월급 받고 사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 흑...

“좋아하니 내가 더 기쁘다. 우리 그럼 이제 어디 조용한 데...”

리일이 내 손을 이끌고 막 이동하려는데, 누군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여태껏은 익명 속에서 숨어 단둘이만 돌아다녔기에,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 건 처음이었다.

“어머, 귀여워라. 페어리 왕자님인가 보네요?”

“맞습니다, 레이디. 이쪽은 제 동행, 서큐버스 여왕님입니다. 레이디의 분장은...”

“마녀랍니다. 바다마녀”

“아, 역시! 분장이 아주 훌륭합니다.”

둘이 히히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파티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좀 그랬다.

음... 근데 아는 사람인가? 태도가 묘하게 아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알아보기 힘들 텐데 어떻게 안 거지? 그럼 혹시 아주 가까운 사람?

설마... 마가렛? 그래, 틀림없이 마가렛이야!

내 예상이 맞는지, 바다마녀도 우리에게 슬쩍 떠 봤다.

“그런데 페어리 왕자님, 제가 아는 누군가와 분위기와 매우 닮았군요. 혹시...”

“이런, 레이디. 실례지만 정체를 맞추기엔 아직 이르지 않습니까? 잠시 후에 공식 이벤트가 있을 텐데요.”

“흠. 그렇군요. 제가 실수할 뻔 했네요.”

“괜찮습니다, 레이디.”

“감사해요. 저 그런데... 제게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바다마녀가 내 눈치를 슬쩍 보며 말했다.

가면무도회는 공식 무도회와 달리 딱히 파트너가 고정되지 않은 분위기인지라, 이런 요청이 크게 실례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파트너를 잠시 빌려달라는 말에도 정색을 하기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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