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누구라도 낚이면 좋겠어-83화 (83/134)

83. 위기(5)

2017.03.09.

***

사건의 목격자인 시녀는 본궁으로 소환되어 곧바로 증언을 했다.

심문이 아닌 정중한 증언 요청이었기에, 예전처럼 리엘에게 불리한 내용이 강요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증언과정은 리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하필이면 마법검증을 통해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방법이었기에, 더욱 좋지 않았다.

“레이디 라비체, 그날 본 사실을 빠짐없이 진실 되게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네.”

시녀는 차분히, 객관적으로 자신이 본 내용을 진술했다.

“리엘양이 별궁으로 방문했고, 그녀가 따른 차를 공주 저하와 비올레티양이 먼저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차는 누가 준비했습니까?”

“준비는 다른 하녀가 미리 해 두었지만, 찻잔에 따른 것은 리엘양이었습니다.”

“그녀가 차에 독을 타는 걸 봤습니까?”

“아니요.”

“무언가 수상한 행동을 한 건 없습니까?”

“저는 따로 떨어져 서 있어서 그것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차를 준비했던 하녀는 이미 목을 매 죽었다 하니, 독을 누가 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공주 저하가 리엘양에게 차를 권했고, 제가 찻잔을 하나 더 가져다주었습니다. 비올레티양이 차를 따라 주었습니다.”

“그걸 리엘양이 거부하던가요?”

“아뇨.”

“그렇다면 마셨나요?”

“그게...”

“말씀하십시오.”

“......긴장된 나머지 그다지 마시고 싶어 하지는 않는 듯 했습니다.”

“혹시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까?”

“아뇨. 그냥 제 생각일 뿐,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석연찮은 대답이 감지된 듯 마법진이 빨갛게 변하게 삑삑 소리를 냈다.

“무언가 이상하게 느낀 점이 있었군요.”

“.........”

“무엇입니까?”

“.....리엘양이 찻잔을 들더니 손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녀 역시 공주라면 학을 뗄 정도로 싫어했기에, 공주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대로 말할 수밖에 없으니, 증언은 점점 리엘에게 불리해져 갔다.

“확실합니까?”

“......네.”

“또 이상하게 느낀 점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또 마법진은 그녀의 거짓말을 감지해 냈다.

“.........레이디. 솔직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리엘양이... 바닥에 찻물을 흘렸습니다.”

“실수였습니까, 고의였습니까?”

“글쎄요... 긴장해서 손이 미끄러졌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녀 역시 정황상 리엘이 수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리엘이 별궁에 지내는 동안 공주에게 얼마나 심한 짓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라도 그런 상대가 차를 권한다면 껄끄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증언을 해 주고 싶었지만, 마법 앞에서 하나 둘씩 저절로 말하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군요.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공주저하가 화를 내시고, 비올레티양이 다시 차를 따라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리엘양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머뭇대는 사이 공주저하와 비올레티 양이 피를 토해 버려 곧바로 난리가 났거든요.”

“음... 그렇군요. 독은 어디서 검출되었습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기사들이 확인한 결과, 티팟에서 나왔습니다.”

이후로도 소소한 증언들이 계속되었지만, 리엘을 변호해 줄 만한 내용은 딱히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객관적 정황만 놓고 보면 리엘이 의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티팟에서 독이 나왔고, 그걸 따른 건 하필이면 리엘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후 보인 뭔가 수상쩍은 행동들...

객관적 물증은 아니지만, 현행범인 상황에 더해 심증까지 생겨 버리니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

“엘, 어떻게 되어가나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엔릴이 하도 난리를 부려대는 탓에, 황제와 황후 역시 이 일로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증언은요?”

“불리합니다.”

“좋지 않군요... 혹시...?”

“시녀가 포섭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시녀는 공주나 리테인 측과의 연관은커녕, 엔릴파 귀족들과도 관련 없는 한미한 자작가의 영애였다. 즉, 별 관련 없는 사람일 게 뻔했다.

“일단 리엘에게 불리한 이 증언 내용은 함구시켰습니다. 시녀에게도, 담당 마법사에게도요.”

“네. 그런데 공주 쪽은요? 그리고 함께 있던 레비넌 영애, 비올레티인가 하는 아이는요?”

“공주는 회복을 핑계로 어떤 증언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증언을 강요할 수도 없고요.”

피해자의 위치로 보나, 신분으로 보나 공주는 심문 대상이 아니었다. 함께 있던 비올레티는 그나마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있는 존재였지만, 그녀 역시 피해자였고 공주의 비호 때문에 접촉이 쉽지 않았다.

사실 그건 비올레티가 공주에게 부탁한 것으로, 사건의 진실을 들키는 것을 막기 위해 요구한 일이었다. 그렇게 비올레티는 공주의 곁에 딱 붙어 별궁에 틀어박혀있었다.

“......리엘에게 직접 증언을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애를 쉽게 내놓지 않을 겁니다.”

“네... 엘, 그나저나 리일은 좀 어때요?”

“여전하지요.”

“후......”

“제가 좀 다녀올게요.”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황후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엔릴의 처소에 다다르자, 그가 꼼짝 못 하도록 문을 겹겹이 지키고 있는 기사들이 보였다.

똑똑

“리일”

“어마마마!!!”

“리일...”

“리엘은, 리엘은 어떻게 되었어요?”

“......”

“아직도 별궁에 있나요? 혐의는 벗겨 주었고요?”

“그게, 리일... 지금 상황이 좋지 않구나.”

엔릴은 불안한 듯 떨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황후의 뒷말을 기다렸다.

“증언 내용이... 리엘이 따른 차를 마시고 공주와 레비넌 영애가 피를 토했고, 정작 리엘은 공주가 차를 권하자 거부했다고 하더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거예요.”

“알아. 하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남들이 보면 리엘이 독을 탔기에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준비한 차를 권유받자, 덜덜 떨며 차를 쏟아버리지 않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안 돼요! 그간 공주가 한 짓이 워낙 많으니, 당연히 겁이 난 거겠죠!”

“그래.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일 뿐이야. 증언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데, 당시 상황이 리엘에게 너무 불리했던 것 같구나.”

“그냥 증언일 뿐이니 묻어버리면 되는 거잖아요.”

“물론이지. 우리 쪽에서 시녀의 증언을 들어봤지만, 아무 혐의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할 생각이야.”

“휴... 고맙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쪽이 불리한 증언을 더해주지 않아도, 현행범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저쪽은 리엘을 붙잡고 있을 수 있어. 그러니 이쪽이 리엘에게 유리한 증언을 더해줘 봤자, 별 소용 없는 일이야.”

“......대체 공주가 뭘 원하는지... 아직도 아무 말 없나요?”

황후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로 봐서는, 고작 영토할양이나 자잘한 협정 따위를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이쪽이 충분히 초조해지길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그녀의 말 그대로, 엔릴은 리엘이 지금 어떤 짓을 당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한지 이미 오래였고, 잠도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황제가 강제로 방에 유폐시켜두지 않았다면, 진즉에 뛰쳐나가 별궁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겹겹이 지키고 있는 기사들은 그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그 역시 갓 오러를 깨우치긴 했지만,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정예 중의 정예인 오러나이트 기사단이었다.

아무리 난동을 피워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죄 없는 기사들에게 백날 칼부림을 해 봤자, 어차피 황제가 직접 와서 제압하면 끝이었다.

“황자비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그럼 제가 공주와 결혼할게요! 잠깐만 참았다가 나중에 리테인 정벌 후에 내치면 돼요. 만약 일이 꼬여 쫓아내지 못한다 해도, 제 인생 같은 거 리엘만 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글쎄. 뭘 원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구나.”

“어마마마 제발...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요. 그냥...”

황제가 막아두지 않았다면, 엔릴은 진즉에 별궁에 쳐들어가 무력으로 빼내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뒷일이 어떻게 되든 말든 알 바 아니라고 하면서. 사실 지금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까짓 거 어차피 터질 전쟁, 아무렴 어떠냐고 말이다.

“리일... 나도 답답하단다. 하지만 네 아버지가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지. 괜히 일을 망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렴.”

“.....그럼 일단 신분 문제라도 해결해야죠.”

“그래. 우리 쪽은 이미 처리했어. 마법사로 인정받아놓은 기록이 있으니, 아나이스를 도와 연구한 실적으로 의무복무를 대체하는 것으로 말이야. 본인의 의사도 없이 처리하는 셈이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 바로 신분을 만들어 줬어. 하지만...”

“하아...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 소관인가요?”

“아니, 저쪽에서 리엘의 국적포기를 기각했다는구나.”

“네? 어째서요!?”

“귀족사칭죄 및 왕족시해 미수죄에 얽혀 있으니, 혐의가 명백히 밝혀지기 전에는 놓아 보낼 수 없다는 거지.”

“말도 안 돼요!! 이제 제국민이니 그냥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 안 되나요?”

“제국민인 동시에 아직 리테인 백성이기도 하다는 게 문제야. 게다가 귀족사칭죄로 소환장이 온 것과 독살미수사건이 먼저였어. 그나마 황실의 이름으로 힘을 쓰면, 이미 제국민이니 과거의 죄를 따지기 위해 옛 국적의 나라로 보낼 수는 없다고 우겨 볼 수는 있겠지.”

“그럼 당장...”

“리테인으로 보내지 않고 그렇게 버틸 수 있지만, 문제는 별궁에 억류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거야.”

“그냥 무조건 데려오면 안 돼요?”

“리일...”

“어차피 누명인 거 알잖아요! 그리고 이제 제국민이니 그녀에 대해 마법심문을 하겠다고 하면 되잖아요!”

“이미 협조 요청을 했어. 하지만 공주가, 리테인 왕실이 거부했어. 귀화 전의 일인데다가 정황이 너무 명확하다고 말이야.”

“별궁에 군사를 동원해서 강제로...”

“리일!!”

“그럼 어떻게 해요...! 이대로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한심한지... 두 분을 닦달하는 것밖에 못 하는 제가 얼마나 비참한지 어마마마는 모르실 거예요. 어쩜 이렇게 무력한지...”

“휴우...”

그때였다.

똑똑똑

“황후 폐하, 황제폐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급히? 무슨 일이라 하시더냐?”

“셀리나 공주가 와 있다고 합니다.”

“...........알았다. 바로 가겠다.”

“어마마마! 저도 같이..,”

“안 돼. 내가 가서 들어볼 테니 넌 기다리고 있으렴.”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황후는 떠나고 기사들은 재빨리 엔릴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하. 들어가 계시지요.”

“...........”

***

“엘”

“디트, 엔릴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겠다고 난리지요. 하아... 복잡하네요. 저쪽의 요구사항은요?”

“이제부터 들어봐야지요. 그렇게 뜸을 들이더니... 직접 제 발로 찾아왔군요. 지금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함께 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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