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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AI가 성좌가 되었다-83화 (83/183)

083화

58장 초대 황제

라온은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무사했다.

승철이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에, 다시 제 주인에게 돌아와서 평소처럼 그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교전 상황 시에 도와드려야 했는데…….』

"괜히 자책하지 마. 어쩔 수 없었던 거니까 나도 이해해."

왠지 시무룩해져서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참 기분이 묘하다.

아무래도 라온이 감정을 가지는 인공지능이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었다.

『아니요. 제가 반드시 도와드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운이 좋았고, 상황이 좋게 흘러가서 압도적인 싸움이 되었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많이 위험했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상대가 가진 능력의 가짓수와 그 힘은 절대 무시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정작 그 힘을 조종하는 파일럿이 병신이었을 뿐이었다.

그 점을 노리고 여러 아이템을 한 번에 꺼내면서 상대를 당황시키고, 그 허점을 찌르는 방식으로 전투했을 뿐이다.

결과만 보자면 승철이 압도적으로 적을 짓누른게 되지만 말이다.

위험하기는 했다.

'아직 멀었어.'

승철이 제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죽을 각오로 그렇게 급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아니 몇주도 되지 않아서 ■■는 승철을 살해할 수 있는 존재를 키워냈다.

지금까지 빠르게 성장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해져야 한다.

반드시 그럴 거다.

그래야 살 수 있고, 누나도 지킬수 있을 테니까.

[좋은 마음가짐이야. 상대는 종말이 숭배하는 존재니까. 방심해서는 한 순간에 객사할 수도 있지.]

[심연 속의 어릿광대가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던 중, 심연 속의 어릿광대가 꺼내는 소리를 듣고 관심이 훅 그쪽으로 쏠렸다.

처음으로 ■■의 정체나, 그에 대한 정보를 들은 거니까.

"뭔 소리야?"

[더 이상은 안돼. 성좌가 되던가, 레벨 더 올리고 와.]

들려오는 대답은 전과 같이 더 성장하라는 말뿐.

승철이 아쉬움을 담아 혀를 찼다.

'알려 줄 거면 제대로 확실하게 알려 줄 것이지…… 거 참 째째하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궁금해 죽겠다.

그가 입을 툭 내밀면서 텐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승철이 개인 제작한 텐트는 피로를 풀기 딱 좋았다.

그들은 라온이 돌아오기 전까지 피로를 확실하게 풀고, 다시 목적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동훈이 왠지 승철을 대하는 태도가 전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과격한 전투 이후에 잠깐의 휴식, 다시 목적지로 향하는 승철의 모습을 보고 하연이 물었다.

"승철 오빠. 방금 전에 덤벼온 사람은 뭐야? 나 중위권 탱커 목록에서 한번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내가 알고 있는 능력이랑……."

"지나칠 정도로 다르지?"

승철이 쓴웃음을 지으며 하연의 말을 이었다.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전에 말했잖아. 날 죽이려고 드는 미친 놈."

"오빠를 죽이려고 드는 사람 본인이야?"

하연의 거듭된 질문.

전에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렇게 직접 목숨의 위협을 받는 건 처음 봤을 테니, 조금 놀랍기도 할 거다.

확실히 상대가 보여주는 신성과 거력은 지구에 있는 사냥꾼이 보여줄수 있는 무력 그 이상이었다.

충분히 그렇게 착각할 수도 있었다.

"아니. 단기간에 육성된 미친 놈의 사도."

아마 몇 주도 안 되어서 만들어진 놈이 있겠지.

■■가 활동하지 않은 지 딱 그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게 겨우 사도라고……? 아니, 오빠는 도대체 살아가는 게 왜 그렇게 고된……."

뒤에서 측은하다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말문이 막히는지 더듬거리며 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라온이 다시 제 주인을 불러들였다.

『주인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차를 숨기고 도보로 이동해야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본 장갑차는 스텔스 기능이 있으나, 민감한 기사, 마법사에게는 들킬 수 있으니까요.』

"……."

"알겠어. 얘들아. 내리자."

장갑차 내부에서 들리는 라온의 목소리에 하연이 입을 다물었다.

승철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성문에서는 한창 제국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에 대한 검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인들부터 여행자들이 신원을 인증하며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성벽은 빌딩이 연상될 만큼 높았으며, 생각보다 상당히 견고해 보였다.

옵저버가 보여주는 성벽 너머의 광경은 무지막지한 인파와, 번화가들이 보였다.

『파르본 제국의 수도.』

라온이 말하길, 기사들의 땅.

[검에 미친 남자가 실력이 상당한 기사들이 느껴져, 즐거워합니다.]

[검에 미친 남자가 향수를 느낍니다.]

[죽음의 대마도사가 이 너머에 자신이 숨겨 두었던 금속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신원 보증을 받긴 해야겠지?'

괜히 몰래 들어가려다가 들키면 골치 아파질 것 같다.

안 들킬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 근방에 뛰어난 실력자들이 있는 지도 자세히 모르기도 하고.

그런 승철의 고민은 라온이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주인님. 옵저버를 통해서 정보기록구에 담겨진 신원 정보를 원격수정하겠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했어?'

제작자인 본인도 몰랐던 사실이다.

『저는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왠지 뾰로통한 듯한 목소리였다.

제 주인이 평소에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니 살짝 삐진 듯이 이야기했다.

물론 순식간에 그런 감정은 다시 풀어졌지만 말이다.

승철은 라온을 한번 보안 프로그램이나 여러가지 업그레이드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움직일 수 있는 매개체가 있는 한, 대단한 일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일은 쉽습니다. 신원에 대해서는 안심하세요!』

[네 비서 엄청 유능하니까 믿고 한 번 가봐.]

'……오케이.'

라온의 말을 듣고 승철도 행렬에 합류해서, 잠시 뒤에 검문소에서 신원 확인을 하게 되었다.

"소지품 없고. 이름."

"할렌입니다. 여기 시민증도 있습니다."

"……확인했다. 통과."

앞에서 대기하던 인원이 신원 확인을 끝내고 안으로 들어서자, 승철의 차례가 되었다.

한데 그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태도가 참 특이했다.

그를 맞이하자마자 곧바로 허술했던 태도를 바로 하고 예의를 차리는게 아닌가.

"충!"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모습이 마치 이등병을 떠올려졌다.

앞 사람한테는 무심하게 강하게 반말을 하면서 사람들을 통과시키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태도.

『라온이 주인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하는 미소를 짓습니다.』

'……?'

승철이 당황하는 감정을 애써 감추며 겨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너무 당황하지는 말아라. 이건 네가 가지고 있는 격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그런 거니까.]

[필멸자를 벗어나고 있는 수준이니까 일반인한테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같은 게 느껴지겠지.]

'아하.'

병사가 가슴을 세우며 격식 있는 태도로 승철의 이름을 물어왔다.

혹시 실례가 될까 그에게 물어보는 어조도 조심스러웠다.

"혹시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앞에서 필수적으로 시행하던 소지품 검사 따위는 가볍게 넘어갔다.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사론 엔지니어라고 하시면 됩니다. 주인님! 제가 좋게 설정해 놓았거든요!』

라온이 활기찬 목소리로 등록시킨이름을 이야기해줬다.

어째 등록된 이름이 조금 많이 이상하지만…… 그냥 가명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넘어갔다.

승철이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끼면서 등록되어 있는 제 이름을 이야기했다.

"사론 엔지니어……"

"……허어어억!"

그러자 병사 한 명이 기록구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하얗게 질렸다.

정작 장본인인 승철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자세히 모르다 보니, 살짝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심지어는 병사들이 기겁하며 그를 데리고 제국 수도 중심부까지 배웅까지 해줬다.

어떻게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인파 사이에서 조금 한적한 곳까지 길을 만들어서 안내하기까지 했다.

"오빠.?"

하연이 옆에서 굽신거리는 병사와 승철을 복잡한 표정으로 번갈아 보았고, 동훈이는 열심히 그 내용을 기록 하기 바빴다.

겸사겸사 일행인 하연과 동훈도 대접받으며 입장할 수 있었다.

번화가에 사람들을 지켜보며 병사들이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자마자, 승철이 라온에게 물었다.

"라온아. 대체 뭘 한 거야?"

녀석은 승철의 추궁에 해맑게 대답했다.

『네! 해당 기록구는 외부와 통신이 가능한 모델이 아님을 확인하고! 정보 사항에 그냥 황족이라고 기입했습니다!』

『또한, 정보사항에 위장 신분으로 입장이라고 추가 정보를 기입해 두었으니 소문이 날 확률은 적습니다.』

『실제로 당사자한테 허락도 받았거든요! 문제없습니다!』

'……뭐?'

라온의 마지막 말에 승철이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당사자한테 허락을 받았다니. 여기에 황제가 대체 어디 있다고.

그런 그의 눈앞에 익숙한 성좌 메시지가 올라왔다.

[검에 미친 남자가 낄낄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

『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성좌님은 현 제국의 초대 황제. 시조님이라고 불리셨던 분이거든요! 이 분건국 신화도 있어요!』

[죽음의 대마도사(전설급) : 사론 에그니투스. 산속에서 홀로 수십 년검을 연마하여, 한 때, 왕국을 멸절시킨 광룡을 참살한 검사.]

[일필휘지(전설급) : 또한 세계 : 에피르에 제국을 건국한 유일한 존재.]

[검에 미친 남자가 쑥스러워합니다.]

[검에 미친 남자가 광선검을 받았으니 이 정도는 자신이 가볍게 해줄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검에 미친 남자가 여차하면 자신이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맨날 채팅 너머에서 낄낄거리고 채팅만 치던 양반이 한 제국의 시조이자.

초대 황제.

[죽음의 대마도사(전설급) : 뭐. 지금은 여기서 채팅이나 치고 있지만.]

한때는 혼자 은둔해서 검에 미쳐서 살아온 남자.

왜 이 제국이 기사들의 땅이라고 불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러면 초대 황제가 내 옆에서 매일같이 저러고 있던 거였어?'

머릿속에서 판타지 세계의 황제라고 하면, 위엄 있고, 패기가 넘치며 대담한 사람.

오만하고, 강력한.

그런 이미지가 단번에 깨어져 나갔다.

[표정보니까 많이 놀란 듯한데. 성좌에 도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기억해.]

[필멸자의 경계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고유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이곳에는 승철과 시시덕거리던 성좌 몇몇이 전설로서 군림하던 세계라는 사실이.

그와 함께하고 있는 성좌들이 모두 승철과 동급, 아니, 그 이상으로 대단한 존재들이라는게.

새삼 실감이 났다.

내가 만든 AI가 성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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