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나는 신선이 되련다. 15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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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상급 경매 참석을 위해 창동역 인근으로 이동한 준혁은 목탑 입구로 다가갔다.
경비는 준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알은 채를 했다.
“또 오셨군요. 이번에도 물건을 출품하러 오신 건지요?”
“오늘 상급 경매가 열린다고 해, 참석하러 왔습니다.”
“흐음···.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상급 경매는 축기 이상만 입장 가능합니다. 제가 알아보지 못했다면 죄송합니다만, 혹시 축기기에 이르셨습니까?”
경비의 친절한 설명에 준혁은 공간대에서 명패를 꺼내 들었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상관없다 들었습니다.”
“아! 초대패군요. 맞습니다.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초대패는 저에게 주시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준혁에게 명패를 건네받은 경비는 진품인지 확인하고는 안쪽에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이 대리! 이분, 5층으로 안내해 드리게.”
예전에 본 여인과는 다른 호리호리하게 생긴 여인이 다가와 준혁을 향해 인사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경비에게 살짝 묵례를 한 준혁은 여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처럼 1층 2층의 대기실을 거쳐 갈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엘리베이터에 타더니 곧장 5층으로 향했다.
“이걸 쓰시면 됩니다.”
5층에 도착하기 전, 여인은 아무 무늬도 없는 하얀 가면을 건넸다. 준혁은 가면을 살피다 얼굴에 가져갔다.
고정할 끈이나 기타 장치가 없음에도, 가면은 얼굴의 일부분인양 찰싹 달라붙었다.
가면이 얼굴에 붙자 준혁의 기운이 흐릿해지더니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신기하군요.”
“이곳 목탑 안에서만 진법의 영향으로 특수한 효과를 발휘하는 보조 법기입니다. 나가실 때 제출해주시면 됩니다.”
준혁은 여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5층에 도착하자 기다란 좁은 통로를 지나 거대한 경매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는지,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의 방향이 뒤죽박죽이라 어느 곳에 누가 있는지는 분별할 수가 없었다.
여인을 따라 경매 단상이 잘 보이는 좌석에 안내받은 준혁은 자리에 앉았다.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여기 버튼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그럼 즐거운 경매 되시길···.”
여인은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고는 뒷걸음으로 총총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진 것도 없고, 살 것도 없었기에 준혁은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경매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나자 안 그래도 시야가 불분명했던 경매장 내부가 더욱 어두워지며 한쪽 벽면의 단상에만 불빛이 들어왔다.
잠시 후 두꺼운 뿔테를 착용한 마른 사내가 단상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흠흠. 안녕하십니까? 이번 상급 경매를 담당하게 된 유대철이라고 합니다.”
유대철이라는 소리에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일었다.
준혁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축기 후기 수사 중 곧 결단에 오를 거라는 소문이 자자한 강북수사 연합의 유망주 중 한 명이었다.
“원래 경매를 맡기로 한 분께 급한 일이 생겨 대리로 이번 경매를 맡게 되었습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짝-
유대철이 단상 아래를 보며 손뼉을 치자 늘씬한 미녀 두 명이 기다란 목함을 들고 올라왔다.
“자! 그럼 첫 경매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유대철은 목함을 열어 그 안에 있던 길다란 장도를 꺼내 들었다.
“혹시 알아보시는 분이 있나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 제작된 상급 법기 염뢰도(炎雷刀)입니다. 기능을 설명해 드리기보단 가볍게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철이 염뢰도를 집어 들어 앞으로 내밀자 염뢰도의 도신에 붉은 뇌전이 파지직 하며 생성되기 시작했다.
잠시 그 자세를 유지하다 염뢰도를 살짝 휘두르자, 허공에 붉은 뇌전이 잔상을 남기며 뻗어나갔다.
‘대박···.’
준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염뢰도의 시전을 구경했다. 상급 법기라는걸 처음 보기도 했지만, 사용할 때 나타나는 효과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멋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는 영석 500개입니다.”
유대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가격을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700개!”
“800개!”
“810개!”
“850개!”
몇 분 지나지도 않아 급격하게 오르던 가격은 1,200개쯤이 돼서야 그 상승이 살짝 더뎌졌다.
“1,250개!”
“1,300개!”
일반적으로 하급 법기는 영석 50~100개 사이, 중급 법기는 100~500개 사이, 상급 법기는 500~2,000개 사이로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물론 경매의 특성상 필요한 사람들이 몰리면 일반적인 가격을 아득히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론 위와 비슷했다.
“1,500개!”
어디선가 1,500개를 부르자 그동안 따라붙던 입찰자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때 여인의 목소리인 듯 가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걸 시작으로 다시 가격이 올랐다.
“1,600개.”
“1,650개!”
“1,700개”
“1,750개!”
“계속 따라붙는 게 귀찮군요. 2,000개! 더는 올리지 않을 테니 필요하시면 가져가시지요.”
가느다란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 있다는 듯 말을 내뱉자, 더 이상의 입찰자는 나오지 않았다.
유대철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염뢰도를 목함안에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더 이상 없으시면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그럼. 염뢰도는 영석 2,000개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사.”
유대철의 말이 끝나자 여인들이 단상 위로 올라와 새로운 물건을 내려놓고 염뢰도가 든 목함을 챙겨갔다.
“자, 다음 물품은···. 오호···. 이게 나왔군요. 저도 욕심이 가던 물건인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이번 물건은 바로 차심부(借心符)입니다.”
차심부라는 말에 아까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준혁은 처음 들어본 말이었기에 궁금증이 일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어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 준혁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유대철이 물건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이 있을까 봐 설명해 드리자면, 차심부란 건 수사의 목숨줄 하나를 예비로 가져간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반적인 발화용 부적과 다르게 체내에 연화시켜 놓으면 심장이 파괴되었을 때 몸의 상태를 원래대로 돌려주는 기능입니다. 물론 죽을 정도의 극심한 상태에도 적용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현재 수도계에 차심부의 숫자가 100여 장도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걸 제작할 수 있는 분께서 원영에 이르신 후로는 더는 제작을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는 영석 700개!”
조금 전 염뢰도 때보다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누구나 목숨이 중요했기에 물건에 욕심내는 수사의 숫자도 훨씬 많았다.
결국 차심부는 영석 3,100개에 낙찰되었다.
‘3,100개면 31억···. 세상에 부자가 많긴 많구나. 하긴···. 술 한잔에 수십억 하는 것도 있다니깐.’
예전 친구에게 자신이 해줬던 말을 떠올리며 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준혁의 입장에선 차심부의 가격이 과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돈이 썩어 넘쳐나는 부자들 입장에선 싸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과 두 번째 경매품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 올려놓자, 그다음으로 나온 물건들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음에도 평소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되었다.
10여 개의 물건이 낙찰되고 나자 유대철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여인들이 가지고 오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벌써 마지막 경매품이 올라오는군요. 이번 물건은···. 참, 욕심이 납니다. 주최 측은 경매에 참가할 수 없다는 불문율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경매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유대철이 뜸을 들이며 물건을 설명하지 않자 몇몇 사람들이 빨리 물건을 보이라고 소리쳤다.
화가 났다거나, 진상을 부리려는건 아니고, 그저 궁금증에 조급함이 엿보였다.
“하하. 알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가질 수도 없는 것. 빨리 소개해 드리도록 하지요. 마지막 물건은!”
단상 위에 올려진 자단목함을 조심스럽게 연 유대철은 그 안에 든 푸른색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바로 법보(法寶)! 얼마 전 타개하신 결단 중기의 명룡자 선생님께서 사용하셨던 법보! 바로 수많은 사람의 치를 떨게 했다던 무영검(無靈劍)입니다!”
유대철이 손을 휘익 젓자 손안에서 출발한 단검이 단상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허공에 고고하게 떠 푸른 기운을 내뿜었다.
단검의 정체를 알게 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영검이 경매에 나왔다고!”
“말도 안 돼! 왜?”
나름 악명이 자자했던지 무영검의 출연에 사람들이 놀라 했다.
유대철은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쓰게 웃음 짓다 말을 이었다.
“자, 자. 진정들 하시지요. 다들 왜 이런 물건이 경매에 나왔나 의문이 드실 테니, 우선 그것부터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무영검의 주인이셨던 명룡자 선생님껜 두 분의 자녀가 계십니다. 아쉽게도 늘그막에 얻으신 두 분 모두 수도계와 인연이 없으셨는지 영근을 타고나지 못하셨습니다.
명룡자 선생님께서 타계하고 난 후 그분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녀분들은 보물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 거란 불안감에 저희 강북수사 연합에 무영검을 판매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많은 법기들과 재료들도 함께 판매하셨지요. 나머지 물건들은 중급 경매와 하급 경매에 올라올 테니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그때 참가해주시길 바랍니다.
참, 말이 돌아왔군요. 저희 강북수사 연합은 무영검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 한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무영검을 연화 시키는 게 무척 까다롭다는 걸 깨달았지요. 일반적으로 법보를 체내에서 연화시키지 못한다면 법기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고심하던 저희 연합은 결국 경매를 통해 물건을 내놓게 된 것입니다.”
유대철의 긴 설명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그의 설명의 맹점을 짚었다.
“유대철 수사께선 왜, 문제가 있음만 제기하시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하, 아닙니다. 설명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저희 연합에서 무영검을 연화시키기 위해 많은 분이 도전했지만, 모두 한가지 문제로 인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하, 수사분께서는 무영검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설명해 드릴 테니 진정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당면한 문제는 바로 무영검을 체내에서 연화시키면 내부의 기가 들끓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알고 있기로 무영검은 어떤 기운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움직인다고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나니 원래 법보에서 나타났어야 할 기의 파동이 전부 법보와 연결된 시전자의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즉, 무영검을 연화시키거나 사용하는 동안 시전자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기의 파동을 세밀하게 조정하며 사용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법보를 사용한다는 말은 누군가와 전투를 하고 있다는 뜻인데, 그 와중에 내부를 흩트려놓는 기운까지 통제 해야 한다니요?”
매서운 질문에 유대철 역시 쓰게 혀를 찼다.
“그러니···. 명룡자 선생님께서 대단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결단에도 오르신 거고요. 전 오히려 이 물건이 경매에 오르는 걸 반대했습니다. 무영검이 내부에 미치는 기운을 조절해 낼 수만 있다면, 혹시 결단에 이르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유대철의 반문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사실 강북수사 연합은 꽤 오랫동안 무영검을 연구하다 포기했다. 그리고 결론 내기를 무영검을 조정하는 건 결단에 이르는 실마리와는 상관없이 그저 명룡자의 체질이 특수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지금도 경매장 뒤편에서 유대철의 입심을 듣고 있던 연합관계자들은 ‘역시 유대철!’ ‘말빨은 기가 막히는구먼!’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다시 경매장을 돌아와서.
유대철은 잠시 생각에 빠진 척 고개를 숙였다. 숙인 얼굴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회심의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이던 유대철이 고개를 번쩍 들며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자! 그럼 결단으로 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지도 모를 무영검! 시작가는 영석 1,000개입니다!”
어느 순간 법보가 가진 단점이 결단으로 가는 방법으로 뒤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