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둘에게 금기인 그 이름
경수는 복도 끝 창에서 눈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날... 경수는 또다시 운명을 결정할 순간이 온 것이었다. 며칠 전 내린 결론과 방금 전 내린 결론. 둘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그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환희도 정미도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경수씨. 사장님이 찾으세요."
박정미는 병실을 나와 그를 찾았고, 그는 그녀와 병실로 향했다.
침대 옆에서 환희는 정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머님. 괜찮으신가요?"
"나보다 환희가 걱정이야. 홀몸도 아닌데. 자네가 옆에 있어야지."
"내가 문제가 아니잖아? 엄마가 이렇게 아픈데.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환희가 울먹였다.
경수는 의자를 들고 정미의 침대 옆으로 가져가 환희 옆에 앉았다.
"여보 그리고 어머님. 지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죠.
그러니 둘이서 의논해 결정해주세요. 6년 전 환희가 결정했듯이, 지금 둘이 판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여보. 우리가 한국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다못해 어머님이 회복될 때까지만."
두 모녀는 많이 놀랐다. 둘은 경수를 바라보았다.
"지금 무슨 소리를? 서울에 온 이 짧은 시간 동안 환희가 얼마나 괴로웠는데. 그런 일을 당하고도..."
"어머님은 더 아프시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대로 떠나면 더욱더 아프실 겁니다. 게다가 우리가 이렇게 가버리고 어머님께서 어떻게 되시면, 환희는 그 고통에 더 괴로울 겁니다."
"그것도 감당할 사람 나름이야. 나는 견딜 수 있어. 하지만 환희는..."
"우리가 여기 남아 받아야 할 고통과 유럽에 가서 앞으로 받을 고통을 비교하면, 여기서 받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제 판단에는 환희가 여기서 받을 고통은 견딜 수가 있지만, 유럽에서 나중에 받을 고통은 견뎌낼 수 없을 겁니다."
"환희에게 그런 고통을 줄 수 없어."
정미는 정말로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것은 어린 아이를 보호겠다는 엄마의 마음에 불과했다. 그 것을 경수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환희를 어린 아이로 놔두실 거죠? 제 아내가 여린 건 제가 더 잘 압니다.
하지만 환희도 이젠 성인이고 엄마가 될 겁니다. 제가 이렇게 옆에 있다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엔 저 말고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 정미씨, 제 친구들이. 환희도 충분히 견뎌낼 거라 믿습니다."
경수는 환희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여보."
환희는 멍한 얼굴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도 결심한 듯했다.
환희는 고개를 정미에게 돌렸다.
"엄마. 나 괜찮아. 지금은 엄마가 중요해. 나는 견뎌낼 수 있어. 그리고 엄마 곁에 있고 싶어."
정미는 정말로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너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경수는 박정미와 태식에게 얼굴을 돌렸다.
"모녀 간에 대화하도록 우리는 나가 있죠."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희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여보, 결정해줘. 6년 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네 판단에 따를 거야. 그리고 그 길을 가는데 함께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 지금 선택해. 어머니와 함께 여기 있을지, 유럽으로 돌아갈지."
세 사람들은 병실을 나갔다.
"어쨌든 자네가 그런 결론을 내린 건 정말 잘한 거야. 정미에게 좋은 일이야."
태식의 말에 경수는 기운을 얻었다.
경수는 두 모녀가 결론을 내리기까지 병실 밖에서 기다렸다.
점심 시간까지 결론이 나지 않자 병실에 들어갔다.
경수는 환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배를 채우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환희의 표정은 어두웠다. 결론을 못 내리고 헛바퀴 돌 듯 같은 문제에 조금도 앞서기를 못했을 것이었다.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둘은 며칠 전에 갔던 막창 복음집에서 같은 요리를 먹었다. 먹는 동안에도 환희는 아무 말도 안했고 경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으로 돌아올 때까지 둘은 아무 말을 안했다.
병실 앞에 다다르자 복도의 의자에 앉아 있던 박정미가 그들을 보고 일어섰다. 가벼운 인사를 교환하고 경수는 병실 문을 열려했다.
문을 열다 손을 멈추고 경수가 입을 열었다.
"6년 전의 너로 돌아갔네. 아니 더 심해진 건가? 나를 빼앗기 전의 너로."
"뭐야, 그건."
"나는 그 때 너를 지키고 싶어서 너를 따라간 거야. 그리고 너를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어. 지금도 난 너를 위해 어머님과 함께 있고 싶어. 그래서 서울에 더 있는 것을 선택한 거야."
"나를 위해 엄마와..."
그는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려 환희와 마주 보았다.
"그러니 너도 선택해줘. 지금은 괴로워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지. 지금 그 괴로움을 외면한 채 후회를 가지고 살아갈지."
"후회?"
"나는 너를 잘 알아. 너는 어머님을 이대로 내버려 둔 채 파리로 가서 행복해질 수 없어. 평생 그녀를 버려둔 걸 후회하며 아파하겠지.
하지만 네가 여기서 받는 고통을 견딜 수 없다면, 이대로 돌아가는 게 좋아."
경수는 고민하는 환희를 가만히 안았다.
"미안, 환희야. 내가 널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는데. 지금 너를 힘들고 불행하게 만들었어."
"그건 네 잘못이 아냐..."
"이번 일은 내 힘이 미치지 못했어. 그래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 하지 마, 그럼 내가 더 슬퍼지잖아."
환희는 경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더욱 그의 몸에 밀착시켰다.
"여보. 아니 환희야. 그래도 말야.... 지금 네가 힘들어하는 것을 막지 못했지만.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고 싶어."
"불행해진다고?"
"이대로 우리가 파리로 돌아가서 어머님이 혼자 세상을 떠나신다면, 너는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거야. 그리고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 거야.
하지만 서울에 있겠다면 나는 너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당할 고통이..."
"내 고통은 생각하지 말아줘. 내 인생의 목표는 오직 네 행복 뿐이니까. 나는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 만을 생각해 왔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여보..." 환희는 그의 품에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대로 파리로 돌아가서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너의 슬픔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하지만 지금 이대로 어머님 곁을 지키다가 어머님의 임종까지 같이한다면, 나는 네 슬픔을 같이 질 수 있을 거야."
"슬픔을 같이 진다고?"
"그러니 선택해줘. 이대로 파리로 돌아가서 후회하면서 살아갈지... 여기서 이렇게 고통스러워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지를."
환희는 경수의 품에서 조용히 떨어졌다. 그리고 병실로 혼자 들어갔다.
경수는 박정미 옆에 앉아 모녀의 결론을 기다리기로 했다.
..............
잠시 뒤 환희가 병실에서 나왔다. "여보, 들어와."
두 사람은 정미의 침대 옆에 앉았다.
정미는 들어온 경수를 가만히 보면서 한숨 쉬었다. "그래서, 둘이 나와 여기에 있겠다고?"
"그렇습니다."
"6년 전에 내가 한 말 생각나? 환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고."
"네."
"지금 자네는 내 딸에게 괴로움을 참으라 하는 거야."
"그 것보다 중요한 건 어머님의 생명입니다."
"내 생명은 중요치 않아. 내 딸이 행복하다면 내 생명쯤이야."
정미의 말에 환희가 발끈했다.
"엄마가 이런다고 내가 행복해 질 것 같아? 엄마가 이대로 죽고 나면, 내가 행복할 것 같냐고."
"하지만 네가 여기 있으면 너는 불행해져."
"어머님의 불행의 기준이 뭐죠? 힘든 일, 슬픈 일 없이 그냥 웃으며 사는 것이 행복인가요?"
경수의 말에 두 모녀는 놀라서 그를 보았다.
"인생의 어떤 때에 이르러서 잠시 동안 아프고, 힘들고, 울고, 괴로워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견디는 것이 불행입니까? 잠시 동안 그걸 참으며 견디는 것도 인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미는 경수키의 말에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
"언제까지 환희를 어린애로 보실 거죠? 부모로서 안전하고 기쁜 일만 자식에게 주는... 그런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계속 환희를 대하실 건가요?"
"하지만 환희는..."
"6년 전의 환희는 그렇게 누군가 지켜줘야 하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어머님은 자신이 할 수 없게 되자, 절 선택하시고 환희를 부탁하신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정미는 고개를 숙였다. 6년 전에 자신이 함께한, 자기 딸이 벌린 인생 최대의 승부수.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면서도 딸을 지키려 했던... 그리고 결국엔 딸을 지켜낼 수 있었던 일. 지금 그 결과가 그녀 앞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환희는 6년 전의 환희가 아닙니다.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습니다. 그럼 그녀의 내면도 성장한 것을 왜 몰라주시죠?"
"그래도 환희가 여기 있으면 너무 고통스러워져. 그 걸 난 볼 수가 없어."
"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있어서 얻는 기쁨은요. 어머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우리도 어머님과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나도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엄마와 살 수 있다면."
환희의 말에 정미는 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6년 전 제가 유럽 같이 가자고 부탁드렸죠?"
사위의 말에 정미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
"그 때 그 부탁은 환희의 생각이었습니다. 환희는 어머님과 같이 있고 싶어 했죠. 대신 제가 유럽에서 같이 있어줬지만,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환희도 남편을 거들었다. "지금도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
"저는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3명이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해 왔습니다.
4년 전에 오셨을 때 그냥 계시기를 바랬지만, 어머님께서는 다시 돌아가셨죠. 마지막 안식을 준비 하는 사람처럼."
"그 때나 지금이나, 내 마지막 안식은 한국에서 누리고 싶어. 그래서 돌아왔지."
"그럼 저와 환희가 그 마지막 안식에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도 엄마의 마지막에 함께하게 해줘."
둘의 결심은 확고한 듯 보였다.
하지만 둘은 한가지 큰 문제를 잊고 있었다.
정미는 그들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의 딸의 전화 외에도 두 모녀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때마다 정미는 그들이 가진 미순에 대한 죄책감을 깊게 느껴왔다.
더욱이 미순도 경수를 못 잊고 있었다.
박정미를 통해 자주 미순의 근황을 보고 받았다. 그 때마다 받은 정보로는 그녀가 옛사랑을 못 잊고 있음이 분명했다.
만약 미순과 경수가 재회해서 미순이 그에게 매달린다면...
동정심이 많은 경수는 흔들릴 것이고, 죄책감이 큰 환희는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후에 환희는 심각히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 것이 정미의 결론이었다.
"후우... 너희 생각대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냐."
"뭐가 그렇게 복잡한 거야?"
"자네는 김미순씨를 잊었나?"
경수와 환희는 ‘미순’이라는 말에 경직되었다. 둘에게 금기인 그 이름에.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녀는 자네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 그래도 그녀를 볼 수 있어? 유럽에서라면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기서 그녀를 보게 된다면? 그래도 넌 그녀를 잊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잊지 않았어도... 전 절대 환희를 버리지 않을 겁니다. 절대 미순이에게 돌아가지..."
"매년 그 때가 되면 그녀를 생각하는 네가?"
정미는 사위를 노려보았다.
그가 아직 옛애인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것. 그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6년 전 미순과 사귀면서도 첫사랑을 떨쳐내지 못해, 결국 그녀를 버리고 자신의 딸을 선택한... 그런 그가 또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슨 말을..."
"넌 매년 그녀의 생일 때에는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오지? 그 날이 몇 주 지나기까지 환희와 하지도 않고... 매년 그렇게 하잖아."
"그걸 어떻게..."
경수는 몸이 경직되어 환희를 바라보았다.
환희는 남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 것은 지금까지 둘이 외면해오던 현실이었다.
정미는 환희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너. 너는 그녀에게서 지금 남편을 뺏었어. 그 죄책감을 가지고 그녀를 볼 수 있어?
만약 네 남편이 흔들리고,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려 한다면... 너는 놓아 줄 거야?
그 고통을 감당할 자신 있어? 매년 이 시기가 되면 그를 피하는 네가?"
환희도 아무 말 못했다.
자신도 그 때가 되면 남편보다 더욱 괴로워했다. 솔직히 그 때 남편이 자신을 안으려 해도 자신이 먼저 그를 거부해야할 만큼... 그녀는 그보다 더욱 미순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의 생일에 자신을 피하는 남편에게 더욱 안심했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잘 아는 정미의 지적에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날 위해? 너희들이 처음 그 때처럼 헤어지지 않는 것이 내 행복이야."
둘은 아무 말 못했다. 그 것은 그들이 한국을 외면해온 최대의 이유였다.
"너희들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둘이서, 아니 셋이서 행복하게 사는 거야."
정미는 환희의 배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태어날 내 손자에게 행복한 가정을 선물하고 싶어. 너희 둘이 부부로서 서로 함께 힘을 합쳐 자녀를 사랑해주는."
"하지만, 엄마가... 엄마가... 너무 아픈데... 우린 아무 것도...."
"내 딸, 이리 온."
정미는 환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그녀는 엄마의 품에 머리를 묻고 울었다.
"엄마가 이렇게 아픈데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 광경에 경수는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깨닫고.
그렇게 괴로워하는 경수를 보고 박정미가 다가왔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보고 상황을 알았다.
"경수씨. 무슨...?"
"저도, 환희도 어머님 곁을 지키자고 결심했는데... 금새 흔들리고 마네요.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그 현실에..."
그들의 굳은 결심이 현실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박정미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장경수씨. 제가 한가지 말씀 드려도 괜찮을까요?"
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에겐 부모님이 안계세요?"
"두 분 다 살아계시지만, 이혼하고..."
"가정 사정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6년 전 사장님 지시로 조사했었거든요."
경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무슨 말씀을..."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두 분 끼리 고민하시는 거죠? 경수씨의 어머님이 계실 텐데, 그 분에게 도움 청하는 것이 좋지 않나요."
"엄마와 전 대학 때부터 따로 살았어요. 그 후 서로 연락 없이..."
"그래도 어머니신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 문제는 김미순씨 때문이죠?"
"미순이를 아세요?"
"그 것도 조사했었죠. 하여튼! 이런 상황에서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경수는 멍하니 박정미를 쳐다보았다.
"주제넘은 소리 했네요. 그럼 전 사장님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박정미는 등을 돌려 병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말에 경수는 병원 건물을 나와 야외 벤치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눈은 이미 그쳤다가 다시 내리려 하였다.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같은 서울에 살고 있을 때에도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번 연락한 후 파리에서는 소식조차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6년 만에 갑자기 연락한다면...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야할 시기였다.
경수는 전화를 들었다. 자신의 기억하는 어머니의 휴대전화 번호. 그 번호를 지금도 사용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번호 밖에 없었다.
전화신호가 몇 번 지난 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민상희입니다.
경수는 알 수 있었다. 민상희, 자기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엄마. 저예요. 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