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난 너에게 잘못한 것 없어 (29/82)



〈 29화 〉난 너에게 잘못한 것 없어

경수가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3부 예배의 성가대를 준비하던 미순 일행에게  사람이 다가왔다. 양수영, 미순의 친구 수민의 친언니로, 현재 예비 아나운서였다.


그녀를 보고 수민이 다가갔다. "언니! 오늘 바쁘다 하지 않았어?"


"오전에 끝난다고 했잖아. 그리고 미순이 있니?"

수민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수영은 미순에게 다가갔다. "미순아. 경수가 급히 어디 가더라."


"아! 급히 가봐야 한데."

"혹시 환희라는 이름을 알아?"

미순이 놀랐다. "환희? 환희 언니 말야? 그럴 리 없어. 환희 언니는 지금 프랑스에 있잖아."


"경수가 뛰어가며 환희라고 하던데?"

옆에서 듣고 있던 성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 사람이 외쳤다. "빨리 준비해. 예배 시작 30분 전이야."

미순은 자기의 성가대복과 악보책을 챙겼다. "고마워 언니. 내가 예배 끝나면 연락해 볼게."


"잘해봐."

그대로 수영은 잠시 휴식하러 찻집으로 향했고, 미순, 수민, 성화는 성가대의 일행으로 예배당으로 향했다.


예배가 끝나기까지 미순의 머리 속에 환희의 이름이 둥둥 떠다녔다.

미순은 경수와 환희가 옛날에 사귀던 사이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동거하다 두 사람은 헤어졌고, 경수는 군대를 갔다.


제대 후 혼자가 된 경수에게 미순은 적극적으로 대쉬했고, 1년 간의 밀고 당기는 시간을 보내며 둘은 사귀게 되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미순은 경수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하며, 둘은 남녀 관계의 끝까지 다 해보았다.

지금은 두 사람이 취직하고 생활이 안정되면 곧바로 혼인신고와 결혼식을 하기로 약속해둔 상태였다.

그런데도 환희의 이름에 미순은 크게 신경이 쓰였다.

..................

병실 안에서 경수와 환희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정미를 보고만 있었다.


그 때 경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경수는 즉시 받았다. "미순아. 미안해."

- 일은 잘 됐어? 그런데  오빠가 달려 가야해? 그만큼 급한 일이야?

경수는 아무 말 못했다. 상식적으로 어머니가 죽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는 것이 오버로 생각되었다.


- 혹시 여자 일이야?

경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실대로 말할게. 환희야. 환희가 급한 일이 있는데, 한국에 아는 사람이  밖에 없어 나에게 전화한 거야."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미순아.  들어. 그냥 아무 일도 아냐."

- 그게 왜 오빠냐고? 환희 언니 일에 왜 오빠가 가야 하냐고?
미순의 목소리가 커졌다.

경수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미순아. 내가 너에게 걸리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솔직히 말하겠어?
난 당당하니까 환희 일로 왔다고 말하는 거야. 난 너에게 뒤가 켕기는 일, 절대 한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아."

- 그래도 환희 언니잖아.  사람 옛날에.


"6년 전 일을 지금 와서 들춰내서 뭘 어떻게 할래. 다시 말하지만  너에게 비난 받을 일을 조금도  적 없어."

오빠가  곳에 있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야.


"정말  할 수 없는 급하고 중요한 일이야. 너 날 못 믿어?"

- 알았어. 끊어!
미순은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경수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모습을 환희가 바라보았다. "그 전화는 미순이?"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희가 결심한 듯 말했다. "가봐. 미순이에게."

경수는 아무  안하다가, 문을 향해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나가는 경수를 보고 환희는 그 문을 오랫동안 보고만 있었다.


...............


경수는  길로 교회로 달려갔다. 미순은 3부 예배의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고, 집에 돌아간다. 3부예배가 끝난 시간이라 경수는 미순의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출입구 앞에서 미순 집의 호수를 눌렀다.

경수니?
미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미순이 있죠?"


- 오늘 화가 많이   같아. 무슨 일 있어?


"우리들 연애야 그렇죠. 뭐... 사과하려고 왔어요."

아파트 출입구 문이 열리고 경수가 들어갔다.

경수가 미순의 집에 들어가니, 정태가 경수를 노려보았다.
"너희 또...  싸운 거냐?"

"그럼 연애에 싸우는  빼면 뭐가 남냐? 미순이는?"

"예배 끝나고부터 저렇게 저기압이다. 너희들 싸우는 거야 뭐라 할 수 없는데, 주위 사람들 신경 쓰게 하지 마라."


경수는 피식 웃고 미순의 방문을 두드렸다. "미순아. 나야."


방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경수는 일부러 크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너에게 잘못한 거 없어. 네가 이러는 것은 오버야. 아니야?"

문이 열리고 미순이 원망 가득한 눈으로 경수를 노려보았다.
"그럼 왜 환희 언니라고 진작부터 말하지 않았어?"

"환희가 한국에 와서 나에게 전화할지 몰랐어. 며칠 전에 왔는데, 그 때는 그냥  줄 알았고,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왜 오빠가 가야 하는데?"


"그러니까 말했잖아. 친구 일이라고."

"환희 언니가 친구야? 옛애인이잖아."


"지금은 친구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미순의 말에 그의 엄마, 오빠가 경수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고 경수는 더욱 당당하게 말했다.
"만약 켕기는 게 있으면,  집에서 너에게 이렇게 당당히 말할까? 옛날 일은 지난 일이야. 환희는 친구일 뿐이야. 그리고 너에게 환희와 만난다고 모두 말했잖아. 만약 숨길 게 있다면 내가 환희라고 말하고 이렇게 당당할까?
지금 내 말, 너희 어머니와 오빠가 듣고 있어. 내가 이렇게 크게 말하는 것은 난 비난 받을 짓을 하지도  것도 아니라는 거야. 알았어?"

경수의 당당함에 미순이 물러서는 분위기였다.

경수는 미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해. 내가 너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고. 내가 너에게 당당할  있는 것은 나쁜 짓을 안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좀 더  믿어줘."


"하지만 환희 언니는..." 미순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환희에 대해 걱정 말고 오늘은 쉬어. 알았지?"


미순이 당당한 경수를 보고 아무 말 못했다.

경수는 등을 돌려 미순의 집을 나섰다.

미순은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미순은 중학교 때부터 환희를 따랐다.

미순이 중학교 피아노 콩쿨에 참여했는데, 그 때 고등부 우승자가 환희였다. 그 때 미순은 환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후 환희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그녀를 따라하려고 애썼다.

미순이 부모에게 떼를 써서 환희가 다니는 학원으로 옮긴 것도 그 즈음이었다.

환희는 고교 졸업 이후 개인 레슨으로 돈을 벌려했고, 미순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부모를 졸라 환희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
그 와중에서 환희와 경수가 사귀는 것을 알고 학과 과외를 경수에게 받았다.


그런데 환희는 유학을 위해 프랑스로 떠났고, 경수는 실망해 의욕을 잃었다.
그만큼 미순도 큰 충격을 받고 며칠   안에서 울었다.

더구나 경수까지 군대에 가자, 미순은 좋아하는  사람이 동시에 사라져 충격을 받았다.


미순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그녀의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 잘 나가던 그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위기가 찾아왔고, 그녀의 집안은 많은 면에서 힘들어졌다.
미순은 즉시 돈이 많이 드는 피아노를 포기해야 했고, 오빠인 정태는 군대를 가기로 했다.

피아노를 포기하기로 결심한 날, 미순은 밤 늦게까지 엄마 품에서 펑펑 울었다.

그런 위기는 미순이 고3이 되자, 아버지가 사업으로 재기에 성공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2년  피아노를 그만 두었던 미순은 피아노로 대학을 갈 수 없었다.
미순은 인문계로 대학에 진학했고, Y대학 옆의 M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학교 근처에서 놀던 미순은 휴가 나온 경수와 다시 만났다.
경수의 제대 후, 전의 과외 교사와 학생이 아닌 같은 대학 2학년의 신분으로,  다 애인 없는 싱글로.


만난 처음부터 미순은 경수에게 대쉬했고, 1년 간 열심히 따라다녀 애인으로까지 관계가 깊어졌다.


두 사람은 이제는 그녀의 가족,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커플이 되었다.

하지만 미순에게는 환희가 뛰어넘을  없는 벽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수 마음속의 환희라는 성을 공격할 수도 넘을 수도 없었다. 벽을 공격해도 그 벽이 너무 두꺼워 흠집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환희가 다시 한국에 와서 경수를 흔들고 있었다. 미순이 불안에  이유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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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 후, 정미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이날 경수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중이었다. 기말 시험이라 빠질  없었다.

경수는 시험이 끝나고도 6시까지 병원에 가지 않았다. 원래 계약은 6시부터였다.

그는 5시30분에 학교를 떠나 병원으로 갔다. 병원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수술실에 6시가 되었을  갔다.

수술실 앞에 환희와 어떤 여자가 같이 있었다.

경수가 다가가자, 환희가 일어서 걸어왔다.


짝! 환희는 경수 앞에서 서서, 그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왜 이제 오는 거야.... 내가 얼마나... 얼마나..."



그녀의 주먹질은 아프지 않을 만큼 힘이 없었다. 그녀의 떨리는 몸이 이제까지의 고민과 두려움을 말해주었다.

경수는 환희의 두 손목을 잡고 말했다.
"너와의 약속은 6시 부터야. 그리고 난 지난 주에 일요일에 추가 근무까지 했어. 내가 어떻게 더 해야지?"

환희는 원망의 눈으로 경수를 노려보다, 손에 힘을 뺏다.


경수도 마음 속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감추기 위해 허세를 부린 것이었다.

그를 잘 아는 그녀는 눈에서 그의 마음을 알았다. 그도 미안해 있는 것을.

경수는 환희의 손을 놓고, 같이 있는 여성에게로 가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환희의 친구 장경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정미 기획의 박정미입니다."


둘은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간호사들이 사장님의 사위가 있다고 하던데, 이제 만나네요."

"사위는 아닙니다. 아직은..."


환희가 경수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자기 몸을 밀착시켰다. "정미 언니. 우리 결혼했어요. 같이 살고 있고요."


경수는 힘으로 그 팔을 빼내었다. "아직 아닙니다."

환희가 경수를 노려보았다. "그럼 얼마나 더 해야지?"


"네가 떠난 6년 전에 우린 끝났잖아."


"끝나지 않았어.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네 소식을 기다린 지 알아?"


"내 연락을 씹은  너야."


"내가 아니었어. 엄마가 막았던 거야. 우리  다 서로를 찾았잖아. 이제 만났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지?"

"난 지금 애인이 있어."

"아직 결혼을 안했잖아. 아이도 없잖아. 헤어져. 그리고 우리 다시 시작해."

경수는 고개를 돌렸다. "싫어."

"왜 안되는데?"


"넌 미순이 친구니까."


 말에 환희가 움찔했다.


"난 너를  알아. 내가 사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 고민이 없겠지. 하지만 내가 사귀는 사람이 미순이야.  친구의 애인을 뺏을 수 있어?"

그 말에 환희가 물러섰다.

박정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아픈 사람 앞입니다.   다 자제해 주세요."


둘은 안정 되었고, 환희가 의자에 앉자 경수가 옆에 앉았다.

박정미는 경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동안 정미의 지시로 경수의 편지, 메일 등을 중간에 가로채 왔다. 환희와 같이 쓰던 싸이 게정에 올라오는 환희의 글들을 지워온 것도 그녀였다.
정미는 편집증적으로 경수와 환희 사이를 방해했고,  지시에 따라 박정미는 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막아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환희가 떨고 있었다. 환희를 잘 아는 경수는 그 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엄마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것이 환희를 떨게 만들었다.


경수가 환희의 떨리는 손을 잡자, 환희는 곧장 경수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경수는 환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괜찮을 거야. 걱정마."
환희는 경수 품에서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정미가 침대에 실린 채 나오고, 모두 같이 병실로 향했다.

정미의 병실에서 환희, 박정미, 태식이 모였다.


"수술은 잘 됐나요?"


"경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의도한 대로는 됐어."


"다행이군요."

경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식이 싱긋 웃었다. "딸보다 사위인 자네가 더 기뻐하는군.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라도, 이제부터 회복 과정을 잘 거치면, 10년은 보장하지."

"근본적인 치료라... 이식을 할  없는 가요?"

그 말에 환희가 고개를 숙였다.

"아쉽지만, 환희와는 이식이 힘들다네."


경수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식을 기다려야 하는 군요."

"걱정말게. 이식 전까지 절대 정미를 죽게 만들지 않을 거야."

태식의 미소에 경수와 환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가보게. 깨어나도 자네들이 할 일이 없어."


"여기에  곳이 있으니, 우리는 오늘 여기서 보내겠습니다."


경수의 말에 환희도 태식에게 눈빛을 보냈다.

"마음대로 하게."

태식이 웃으며 나갔고, 박정미도 집으로 돌아갔다.

둘은 우선 배를 채우러 밖으로 나갔다. 같이 밥을 먹는 동안, 둘은 서로 아무 말도 안했다.


병실에 돌아오니, 의식이 있는 사람은 경수와 환희, 둘뿐이었다.


환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어떻게 자야지?"

"넌 저기 침대에서 자.  소파에서 잘게."

환희가 씨익 웃더니, 소파의 뒤를 조작해 등받이를 내렸다. 그러자 2인용 침대로 넓어졌다.

"같이 자지 뭐."

"미쳤어?  남의 남자와 살을 맞대고 자자는 거야?"

"오늘처럼 추운 날, 같이 붙어서 자야하는 것 아냐?"

환희는 웃으며 이불을 가져와 소파 침대에 깔고 누웠다. 그리고 자기 옆을 손으로 두드렸다.
"나 졸려. 빨리 자자."

경수는 한숨을 쉬며 옆의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같이 자자니까!"

"너나 잘 자. 난 그럴 기분 아냐."

경수는 소파를 움직이고, 앞에 의자를 놓아 다리를 올려놓고, 담요를 가지고 왔다.


소파에 누워 담요를 덥고, 그는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아도, 자는 척하기로 했다.


잠이 든 경수는 자기 몸을 누르는 무게 때문에 잠이 깼다. 일어나니, 환희가 자기  위에 있었다.

경수는 환희를 깨우려다, 포기하고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안고 침대로 갔다.

침대에 그녀를 내려놓자,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대로 있어줘. 제발..."


그녀의 목소리만큼 그녀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경수는 한숨을 쉬고 포기했다. 그는 환희 옆에 누웠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밀착시켰다.


그의 품 안에서 그녀는 떨고 있었다. 두려움에  이겨 눈에 눈물이 고여 있고,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이런 그녀를 혼자 놔둘 수 없어, 그냥 이대로 자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녀를 안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애정, 욕망 등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미순을 안은 기분과는 너무나 달랐다.

환희는 온 몸에 힘을 빼고 그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맡기는 형태였다. 그의 팔을 베개로 삼아 옆으로 누워 자기 몸을 완전히 그의 몸에 밀착시켰다. 그렇게 안겨 있는 그녀의 얼굴은 아빠 품에 안긴 소녀의 얼굴이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맡기듯 안기는 것에, 그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순을 안을 때 느낌이 비교되었다.
미순은 이렇게 전심전력으로 안기지 않았다. 관계를 맺을 때도, 그의 몸이 떨어지면 따로 눕고, 그의 팔베개를 할 생각도 없이 자기 베개를 베고 위를 보며 누웠다.

그런 미순과 비교해보면, 안는 느낌은 환희가 더욱 좋았다.


...............


아침이 되어, 경수는 눈을 떳다. 오늘은 학교에 갈 일이 없는 날이었다. 이제 학기말이 되어, 시험만 남은 과목들이 대부분이라 다음주와 다다음주에 4번만 더 가면 학교는 끝이었다.


경수는 눈을 떴을 때, 자기 왼팔이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어젯밤 그대로 환희는 경수의 몸에 몸을 밀착한 채 자고 있었다.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미순과 같이 자고 일어난 적이 많았는데, 미순은 이렇게 자기 품에서 잠이 드는 경우가 없었다. 잠이 깨면 미순은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워 자고 있었다.  번 팔베개를 해 주려 했지만, 미순은 싫다고 거부했다.


그런데 환희는 이렇게 모든 것을 경수에게 맡긴 채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었다. 오히려 미순이 환희보다  살은  나이가 많게 생각되었다.

경수는 자기를 노려보는 눈빛을 느끼고, 황급히 일어섰다. 병실 안에 정미가 있고, 누운 채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수는 일어나 조용히 정미를 향해 몸을 굽혀 사과의 인사를 했다.


정미는 둘을 노려볼 뿐, 힘이 없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경수는 정미에게 다가갔다. "무리하지 마시죠. 그렇게  필요 없습니다. 어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정미의 입술이 떨렸다.

"저보고 아빠 노릇하라고 했잖아요. 전 아빠로서 딸을 안아준 것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정미는 경수를 노려보았다.


경수는 그 눈빛을 피해 병실의 호출 버튼을 눌렀다.
"000호,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정미에게서 멀어져, 환희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병실을 나가 복도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환희가 병실 밖에 있는 경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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