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만남과 재회(2) (43/82)



〈 43화 〉만남과 재회(2)

 여성이 집을 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아무 말 없이 남게 되었다.

환희는 노크 후에 정미의 방에 들어갔다.

태겸은 경수에게 다가갔다. "장경수입니까? 저와 잠시 얘기 좀."

경수는 자신을 적의에 찬 눈으로 노려보는 그를 자신들의 방으로 인도했다.

경수가 방문을 닫자 태겸은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전 미래의 프로듀서입니다."


"네?"


"HGE에 와서 미래, 당신이 미순이라 부르는 그녀의 노래들을 프로듀싱했죠. 정미씨가 준 노래들을 편곡하고, 연습 시키고, 뭐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녀와 거의 붙어 다녔죠. 이정미씨가 나에게 그녀를 떠넘겼죠. 강제로."


"그러시군요. 미순이에 대해 잘 아시는..."


"미래가 못 잊는 사람이라 해서 대단한 분인가 했는데. 그저 평범한 분이시네요?"

그의 빈정거리는 말에 경수는 슬프게 놀란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미순이가  못 잊어했습니까?"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셨나요? 그럼 아실 텐데요?"

"네?"


"노래들에 점철된 그리움, 다시 돌아오길 애원하는... 그런 것들 말이죠."

"저는 음악에 문외한이라서..."

경수가 시선을 돌리자 태겸은 그에게 발끈했다.
"하하... 그런 말로 도망치시려고. 미래에게 듣던 장경수와 다르네요. 성실하고, 노력가에, 남이 힘든 걸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동정심이 많다고. 그런데 지금은 책임 회피하려고?"

"어떻게 하든 제가 미순이를 버렸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는 갑자기 경수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그녀가 저렇게 망가진 걸 알아도 나는 어쩔  없다. 그러는 거야?
좋아! 어떻게 할 수 없다면 왜 그녀 앞에 나타난 거지? 지금까지 당신을 보지 않으며 그래도 어렵게 버텨오던 사람을 한순간에 무너뜨려 버렸잖아!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내가 어떻게 해야죠? 당신은 아나요? 그럼 내게 말해줘요. 그럼 그렇게..."


"당신이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잖아? 그 방법은 당신이 더 잘 알잖아?"

"내가 사랑하고 내가 지켜야할 사람은 지금 내 아내입니다. 난 두 사람을 모두 지킬  없어요. 내 아내  사람만 지키자고 이런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울에 오지 않았어요."


태겸은 경수의 멱살을 놓았다.
"좋아. 당신은 그 한 사람만 지켜. 그리고 당신이 버린 여자에 대해 아무 신경도 쓰지 마."


그렇게 태겸이 방을 나갔고, 경수는 한숨을 쉬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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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환희가 방에 들어오자 정미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딸의 당당한 표정을 보고 안심하며 방금 미순이 앉았던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환희는 의자에 앉아 정미와 마주 보았다.



"후우... 사부인께 그렇게 부탁드렸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두 사람이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이의 표정을 보고 미순이 일이라 짐작했어."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왔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딸의 당당한 태도에 정미는 크게 안심한 모습이었다.


"이제  말해줘. 왜 엄마가 미순이를 만나야 하는지?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동생?"


"태겸이를 봤어? 그건 어떻게..."

"미순이와 같이  여자가 말해줬어.  남자와 내가 이복 남매라고."

"말할게 너무 많네. 너무 늦었고. 오늘은 김미순씨에 대해서만 말해줄게."

"그래."


정미는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내가  때 파리에서 너희를 만나고 돌아온 뒤, 새로 사업을 시작했어. 연예 엔터테이먼트 사업."


"그게 저 유지겸씨와?"

"그래 선생님을 사장으로 하고, 내가 돈을 투자해서. 지금의 HGE가 된 거야."

"그 회사에서 미순이를?"


"그 회사를 통해 그녀를 간판 가수로 키웠어. 예명이 정미래로."

"엄마가 작곡 했다고 하는데?"

"그건 복잡한 문제가 있어. 나중에 말해줄게."


"좋아. 그건 나중에 묻고, 지금까지 미순이는 그 걸 몰랐고?"

"그래. 알게 되어 오늘 찾아온 거야."


"그런데 왜 하필 그 애야?"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노래와  맞았어. 음색, 분위기, 외모 등. 가수로서 내 노래와 맞을 것 같고, 실력도 있었어. 키울 만 했지."


"그래서 유명해진 거로군.  때문에 상처 입어서 그런 거 아냐?"


"부정하지 않겠어. 나도 그녀를 돕고 싶었거든. 그 때는 그녀가 참 어려워서."


"어려워?"


"경수와 헤어진 후에 여러 일이 있었어. 작은 사고를 당하고, 취직도 안되고, 거의 1년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어.
그런데 가수를 꿈꾸고 여러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어. 전업 가수로 데뷔하려는 생각이었는데, 그 때는 완전 아마추어에 실력도 형편없었지. 그런 상태로 가수가 될  없어서, 그녀를 원하는 회사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발탁했어. 처음엔 그저 회사 소속의 그저 그런 연예인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키워서 나쁠 것 없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유명가수로 키웠다?"


"뭐 그렇지."

"하하... 듣다보니 바보 같네."


"인정해."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가수를 그만 두겠대."

"나라도 당연히 그렇게 하겠어."


"어쩔 수 없잖아? 위로금 주고 내 보내야지."

환희는 정미의 표정을 보고 외쳤다. "거짓말! 엄마도 나에게 숨기려는 거야?"

정미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하...  보던 사이에 엄청난 재능이 생겼네? 남의 거짓말을 금방 알아버리고."


"무슨 일을 하려는 건데?"


"그건  못해. 네가 알아서는 안되는 것도 있어. 그리고 난 지금 사부인과 할 말이 있으니 너는 나가 있어."

"왜 나에게 숨겨야 하지?"

"나가 있어. 어서!"

정미의 단호한 말과 표정에 환희도 물러섰다.




환희가 방을 나서자, 상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희는 방금 전 환희의 의자에 앉았다. "죄송해요.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환희가 이렇게 성장했을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그런 재능까지..."


"남의 속마음을 알아채는?"

"원래 내가 그래요. 눈치만은 정말 천재적이죠. 아빠를 닮아서 그런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날 닮은 구석이 있었네요."


"하하...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요?"

"그 것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정미의 눈빛은 추궁하는 것이었다.


"제가 미순이를 만나서 설득해 보죠."


"가능하시겠어요?"


"적어도 경수에게 더 이상 미련 가지지 않도록 할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사부인께 맡길게요. 내가  수 없는 일이라."

정미는 잠시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그리고 한가지 부탁도 있어요. 설득하실 때 HGE에 계속 남아있도록 해주세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것까지..."

"오늘  딸이 오는 걸 못 막은 그 대신이라고 하죠."


상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해보죠. 그런데 왜...?"


"내가 그녀에게 준 것과  것이 있어요. 지금까지  것들이 아깝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수 없는 것들이에요. 그러니 부탁드려요.  제안을 거부하지 말라고. 그렇게 설득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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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는 방에서 나와 거실에 오니, 2층에서 내려오는 태겸과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서로 닮은 모습, 피가 반  섞였다 해도 이들이 남매라는 것을 부정할 여지가 적었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쳐 서로에게 다가갔다.


"오늘에서야 보게 되네요. 당신에 대해서 들었죠. 나한테 엄마가 다른 누나가 있다고."

"그 말은 누구에게서 들었죠?"

"여기 계시는 사장님에게서."

환희는 지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사장님은 우리 엄마와 이 사람과의 관계를 알고 계신 건가요? 도대체 엄마와 어떤 관계죠?"


"내가 젊을 때 교사였어. 네 엄마와 태겸이 아버지는 모두  제자였지."

"그런데, 지금까지 모르게 하시고 왜 지금..."


"태겸이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자네에 대해 알리지 못했지. 네 존재로 한 가정에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었거든. 지금이야 둘  성장해서 못 알릴 것도 없고."


"알아도 달라질 건 없으니까..."


태겸의 담담한 말에 환희는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피가 반만 섞였다 해도 동생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닮은 얼굴.
환희는 그에게서 ‘혈육’이라는 반가움과 함께, 도플갱어 혹은 거울의 자신을 보는 불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건 맞는 말이네요. 갑자기 내게 동생이 있다 해도, 지금까지의 내 생활에 변할 건 아무 것도 없겠죠?
어쨌든 혈육이 있다는 건 기쁘네요.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요. 동생이라고 참견할 건 아니에요."


"당신이 누나라고 인정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내 핏줄이 하나  있다는 건 나쁘지 않는 일이군요. 지금처럼."


"여기 온  보니 미순이와 관련이 많은 것인가요?"


"당신과 당신 남편의 뒤처리 말씀입니까?"

그 말투는 평소에 환희 자신이 잘 쓰던 방식의 비꼬는 투의 말투였었다.

그런 말이 자신의 입이 아닌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귀로 듣게 되자, 환희는 왠지 모를 친근감과 거부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 감정은 태겸도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친근감과 적의를 동시에 가지고 노려보았다.

......................


정미의 집에서는 방문객들이 하나둘씩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가장 먼저 지겸이 집에서 나갔다.


민정과 태겸도 나갈 준비를 했다.
둘은 가지고 가지 못한 미순의 짐까지 챙겨야 했다. 민정은 미순의 옷가방과 분홍색 기타 케이스를 챙기기 시작했다.


미순의 기타 케이스의 손잡이에 작은 인형 - 흰색의 뚱보 토끼 인형이 달려있었다.


 인형  순간 경수는  기타 케이스에 달려들었다. 그 것은 미순이 좋아하던 캐릭터의 인형이었다. 환희가 좋아하던 캐릭터이기도 했다.

"이건 누구 거죠?"

"정미래씨 기타예요. 소중히 여기는 건데."

"잠깐 볼 수 있을 까요?"


"이 기타는 미래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함부로 만지게 둘 수는..."

태겸의 제지에도 경수는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뭐하는 거야, 당신! 이렇게 함부로."


경수는 그 기타를 보자 충격 받았다. 그 것은 자신이 원룸에 남기고 간, 대학 생활 때에 취미로 연주하던 그 기타였다. 클래식 기타에 어코스틱 기타줄을 연결한, 자신이 만든 기스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의 표정에 태겸이 눈치를 챘다. "이 기타... 아시는 건가요?"

둘의 행동에 환희가 달려왔다. "지금 뭐하는...  기타,  때 그 동영상의?"

동영상이라는 말에 태겸이 환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동영상이라면, 슬픈인연?"

"맞아요. 이 기타로 노래를 부르는..."

환희는 시선을 경수에게로 향했다. "이 기타, 미순이 거야?"


"그래... 전에 내가 쓰던 기타... 내가 한국을 떠날 때, 고물상에 처리하라고 원룸에 놓고 간..."

환희는 경수의 원룸에서 연주해보았던 기타를 생각하고 놀랐다. 그 때 그 기타였다.

경수가 자신의 기타였다는 말에 태겸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하하... 바보 같은 여자... 이런 싸구려에 왜 목숨 거나 했더니, 결국 그거였어?"


갑자기 경수가 쓰러졌다.


"여보, 여보, 왜 그래?"

그의 멀어지는 정신 속에 환희의 울부짖는 소리와 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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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나간 미순은 환희 부부와 마주쳤고, 쓰러졌다.

그녀는 수영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로 집 앞까지 왔다.

수영은 미순 집에 오면서도 그 주소와 집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앞에 이르자 미순이 비틀 거리며 문의 도어록에 번호를 입력했다. 0517이었다.

"언니, 이제 괜찮으니 집에 돌아가. 내일 회사에..."


"괜찮아. 나는 다음 주까지 휴가야. 저 사람들 캐고 다니다가 제재 당했어."

수영의 제재로 휴가라는 말에 미순은 미안해졌다. "미안. 나 때문에..."


"나는 할 일도 없으니, 여기서 자고 갈게."


"그래... 고마워..."


................


같은 시간, 성화는 남편의 출장으로 아들을 재우고 홀로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성화는 컴퓨터로 미순과 경수의 사진들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 사진들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미순이 경수의 방에서 찍은 것이었다. 큰 대형 창문을 뒤로하고 해맑게 웃고 있는 미순과 경수가 서로 안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은 성화가 기억하는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대학 생활 동안 경수 원룸에서 사랑을 나누던 때... 환희가 오기 전의 행복 만을 꿈꾸던 미순이었다.  미소를 다시 되찾을  있다면 하는 생각에 성화는 한숨을 쉬었다.


이때 성화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영씨? 무슨 일이죠?"

그래. 나야. 아직  자고 있었어?


"오늘 영훈이가 출장으로. 나 혼자 자려니 잠이 안와서요."

- 지금 미순이와 함께 있어.

"뭐? 미순이? 제주도에 있었던 거 아닌 가요?"

- 오늘 왔어. 바로 이정미에게 달려가서... 장경수를 만나서, 미순이는 쓰러지고.


"쓰러져? 미순이가요?"

- 지금 잠들었어. 그래서... 부탁이야. 여기 와. 부탁할 사람이 성화씨 밖에 없네. 모두 바쁘니까.


"알았어요. 내일 어린이집에 들렸다  쪽으로 갈게요. 거기 근처에서 연락드릴게요."

- 어딘지 알아?


"그 원룸 그대로잖아요. 잘 알아요."


전화를 끊은 성화에게 다시 고민이 생겼다. 미순과 수영은 자기들이 경수 부부와 친구가 된 줄 모르고 있었다. 그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안섰다.


다행히 다음날은 영훈이 돌아오는 날이었다. 남편과 함께 모두에게  사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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