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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적응 안되는 사람 (55/82)



〈 55화 〉적응 안되는 사람

그렇지만 미순은 아직 의문이 남아 있어 그런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궁금한 게 또 있어?"

"네. 또 한가지 궁금한 것이. 왜 저에게 저작권을..."


정미는 그 질문에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미순은 물러설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미는 미순의 눈빛에 눌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노래들,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 주려는 것이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너에게..."


"누군가 저에게? 그게 누구죠?"

"태겸이!"


"선생님? 왜?"

"그건 나도 몰라. 네가 직접 물어봐. 나는 태겸이에게 주려고 했고, 그는 너에게 주라 했어. 나는  녀석의 의견에 따르는 것뿐이야."

미순은 이해가 어렵다는 얼굴로 정미를 보았다.
"그리고  저를 그런 쪽을... 안하게 하신 거죠?"


"그런 쪽이라니?"


"성상납..."

정미는 미순의 그 물음에 더욱 난처한 얼굴이었다. "그 것도 태겸이가..."

"선생님이요? 왜"

"나도 몰라. 난 그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해줬을 뿐이야. 그것도 태겸이에게 물어봐."

미순은 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원하신다고... 도대체 선생님은 당신의 뭐죠?  그렇게..."

정미는 고개를 돌리고 얼굴이 슬퍼졌다.
"그건... 그 녀석이 그의 아들이니까. 그와 너무 닮았으니까..."

"죄송...합니다." 미순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잠시 시간을 두고 미순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죄송하지만. 한가지만 더 물어도 될까요?"


"뭐지?"

"그렇다면. 선생님과는 어떻게 해야죠?"

그 말에 정미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녀 문제에 제 3자가 어떻게 말하지?"

"선생님과 저 사이를 남녀 문제로 생각하시나요?"

"아니야?"

미순의 얼굴에 난감함이 가득했다.
"저도 선생님이 싫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남자들에게 여자로 보이고 싶지는..."

그 반응에 정미는 당황했다. "미안."

"아니에요. 아직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부담스러워요."

미순은 정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고, 정미는 그녀를 슬프게 바라보았다.

 사람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박정미가 집에 오자 미순은 그녀를 따라 나섰다.

정미는 집을 나서는 미순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 여자도 적응  돼. 어떻게 다뤄야 하지? 태겸이가 힘들어 했던 것도 이해가 가. 그 쪽의 문제가 저 여자의 역린인가?"

정미가 미순을 발탁하는 이유는 그녀의 능력 이외에 환희와의 관계와 태겸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4년 전 파리에서  부부를 만나고 돌아온 이후, 정미는 미순을 특별 대우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엔 경수의 돌아올 자리를 위해 미순을 보호해왔지만, 딸 부부가 헤어지지 않는 걸 알게 된 이후에 그녀에 대한 보호막을 거두었다.

하지만 태겸이 그녀를 보호하고 나섰고, 정미는 태겸을 위해 미순의 보호막을 다시 설치했다.

만약 미순과 태겸이 맺어진다면, 환희가 죄책감을 덜어내어 한국에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미인 가수를 보호하려면 정말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했고, 정미는 태겸의 요구들을 모두 들어주며 미순을 보호했다. 자신과 자기 딸을 위해...

그런데 생각대로 둘의 사이는 진전 되지 못했다.

태겸은 자기 아버지와 닮아 그런 쪽에 숙맥이기 때문이라고... 정미는 지금까지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미순과 대면해본 결과는 달랐다. 오히려 그녀가 그런 쪽에 쑥맥 정도가 아닌 결벽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상대를 공략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여자가 사랑했던, 경수와 미순이 얼마나 깊은 관계였는 지를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연인들을 갈라 놓고 남자를 뺏은, 환희의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미순은 박정미와 함께 시내를 돌며 옷과 화장품, 장신구 등을 구입했다. 어제까지 자신이 무대에  때 외에는 구경도 못해볼,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절대 쳐다보지 않을 금액의 것들이었다.


평범한 서민의 1년 수입이 넘는 돈을 단 한나절 만에 쓰며, 자신이 유명 가수일 때도 회사에 두고 다니던 것들이고 소유하리라 생각지도 않아왔던 것들이 자신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  미순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음을 실감했다.

비록 인기 가수였지만, 사치에 관심이 적고 그런 것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그녀에게 화려한 옷과 장신구들이란 그저 무대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고, 실제로 그런 것들은 회사에 두고 다니며 소유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을 가져야하고, 평소에도 그런 것들로 온 몸을 치장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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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오후 4시가 넘어, 경수와 환희는 연습을 위해 모교를 찾아 갔다.

그들의 모교는 음악 쪽의 특기를 가진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는 학교였다. 그 때문에 음악  특기생들이 특별 대우를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방학이고 환희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 학생들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음악실 앞에 모여 그들을 맞이했다. 많은 학생들이 환희를 향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학생들에게 A급 피아니스트를 직접 보고, 그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방학 중에도 일부러 환희를 보러 학생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경수는 반사적으로 옷으로 환희를 가려주었다.
"잠깐. 허락 없는 촬영은 몹시 불쾌한 일입니다. 자제해 주십시오."


경수는 많은 학생들 속에서 며칠 전에 보았던 선생을 발견했다.
"선생님! 학생들을 통제해 주세요."

그의 통제로 환희 주위에 몰려들었던 학생들이 물러났고, 둘은 가까스로 음악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음악실은 경수의 요구대로 난방이 되어 있어 따뜻했다.


 교사는 그들을 따라 음악실에 들어왔다.


경수가 추궁했다. "어떻게  거죠?  학생들은 어떻게..."

"미안. 환희가 여기서 연습한다고 알려진 모양이야. 우리 학교 음악과 선후배 사이에 연락이 되어 있으니..."


환희가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쨌든 여기에 사람들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저도 조용히 연습하고 싶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그는 환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음악실을 나갔다.

환희는 그가 나간 음악실의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저렇게 말랑말랑하게... 저 인간을 대하기가 적응 안 되네. 생각나? 우리 1학년 때 얼마나 무서웠는데 말야."


"저 선생, 그렇게 안 봤는데. 저렇게 강자에게 비굴할 줄은."

"그만큼 우리가 대단해 진 거지. 과거의 고딩이 아니잖아?"


환희는 코트를 벗고 피아노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피아노. 다시는 치지 못할  알았는데."


그리고 피아노 건반  개를 가볍게 쳤다. "흐음... 튜닝도 제대로 되어 있고. 청소도... 신경 많이 썼는데?"

"그나저나, 넌 왜 이렇게 하는 건데?"


"뭘?"


"졸업한지 10년이 넘은 학교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주고, 여기서 연습한다고."

"모두 너와 날 위해서." 환희는 자신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네가 전에 말했잖아? 너는 너를 믿어준 친구들을 배신했다고. 그 중에 학교 선후배들이 많을 것 아냐. 영훈이나 성화 언니도 그렇잖아.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해주는 거야."


"그럼 여기서 연습하는 건..."

"저 인간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여기 1학년 때 저 인간이 나를 불러다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음악하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흔들지 말라고.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니 우겨서라도 여기서 연습 하려고 해,"

"저 선생 앞에서 너와 나 사이를 자랑하게?"

"안될 것도 없잖아."

"하긴... 이만한 피아노를 갖춘 곳도 힘드니..."

환희는 연주를 시작했다.

‘Illusion’. 일본 애니메이션의 ost로 가을 낙엽에 어울리는 곡이었다. 단순해서 초급 연주자의 소품 같은 곡이지만, 경수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환희가 자주 연주했다.
환희가 경수 앞에서 고교 때 많이 연주했고, 처음 환희가 경수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의 곡이고, 둘이 첫키스를 하게 된 계기를 만든 곡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경수는 가만히 환희를 바라보았다. 환희도 건반에서 눈을 올려 마주 보았다.

경수가 피식 웃었다. "이 음악.. 여기서 들으니..."

"우리의 시작이니까. 나의 피아노... 그리고..."


둘은 서로를 보며 첫키스 때가 생각  웃었다.


"넌  곡을 좋아했지. 단순해서  별로였는데."


"넌 두 번만 듣고 그대로 따라했잖아."


"그래서 묻고 싶어. 왜 이 곡을 좋아한 거지?"


"그 때 난 여신을 사랑하는 주인공 같았어. 피아노 치는 넌 여신만큼 빛나고 아름다웠지.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싶었고, 그 피아노를 나만 위해 치게 하고 싶었어."


"소원이 이루어졌네."

경수도 환희도 서로 웃었다.

환희는 다른 피아노곡, 손가락을 푸는 곡을 치며 말했다.


"그래도 난 이 것을 그렇게 애절하게 치지 못하겠어. 널 보며 치게 되면 왠지 웃음이 나거든. 원곡처럼 애절해지지 않아."


"슬픈 곡을 행진곡으로 만드는 것이 네 특기잖아."


경수는 음악실 중간의 다른 의자에 앉아 랩탑과 태블릿을 켰다.

잠시 뒤에 경수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장경수입니다."


- 형님. 저예요.


"희락이? 무슨 일이지?"

- 여기 음악실 앞이에요. 형님을 만나러 왔어요.

"잠깐 기다려."


경수가 안에서 문을 열자, 문 앞에 희락과 수민이 있었다. 그 뒤에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우선 둘만 들어 와."


문 틈 사이로 보이는 환희를 사진으로 찍으려고 몇몇 학생들이 달려들었지만, 이내 경수는 손으로 가리며 둘과 함께 음악실로 들어왔다.

경수는 희락에게 물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건 어떻게 알았지?"

"이쪽 선후배 음악과 사람들에게  퍼졌어요. 누님이 여기서 연습한다고."

"그 중에  사람이 너의 고객이고?"


희락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경수는 옆에 있는 수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가방과 함께 카메라 가방까지 들고 있었다.


"그리고 수민씨는?"

"편집장님의 명령입니다. 환희씨가 피아노 치는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요."


"카메라맨도 할 수 있는 거야?"


"물론이죠! 저번 인터뷰 때의 사진도 제가 찍었죠."
수민은 자랑하듯 카메라 가방을 흔들었다.


사실 명숙이 이번 촬영을 명령한 것에는 희락의 로비가 있었다. 희락은 어떻게든 수민과 연결하려고 노력했고, 명숙은 사진을 핑계로 수민에게 희락과 동행하라고 명령했다.


수민도 이번 동행이 싫은 것 같지는 않았다. 명숙 앞에서 불평했지만.


"하하... 대단하네. 그리고 여기는 어떻게 알고."

"여기 김희락씨가 저에게 알려줬습니다.  분이 여기 음악실에서 연습한다고."

경수는 희락를 쳐다보았다. 한건 했다는 기쁨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피아노를 치던 환희는 들어온 사람들, 특히 수민을 보고 기겁을 했다.
"당신은? 여기  왜."


수민은 향해 몸을 굽히며 인사했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환희씨."


"자자. 우선 차 한 잔 할까? 여기 포트와 컵도 있어. 그리고 커피까지."

경수는 의자들을 가져와 교실 가운데에 자리를 마련했다.

환희는 잠시 피아노를 멈추고 그  하나에 앉았고, 그녀가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보고 수민과 희락도 의자에 앉았다.
환희는 수민을 보며 경계의 눈빛으로 몸을 움츠렸다.


경수가 커피 머신을 조작하자 커피 향기가 온 교실에 퍼졌다.

희락은 향기를 맡고 학교에서 준비한 커피가 상당히 고급임을 알았다.
"얼레? 이쪽에서 신경 많이 썼네?"


경수가 커피를 만들며 말했다. "우리 학교를 무시하지마. 명문학교니까."

"여기 특목고죠? 환희 누님은 그렇다 해도, 형님은 공부해서 들어오신 거예요? 형님 집안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공부하셨죠?"

경수의 손이 멈추었다.

환희가 말했다. "경수는 장학생이었어. 3년 내내 장학금 받으며 다녔지. 대학 때도."

"1학년 때뿐이었어. 제대 이후에는 내가 학비까지 벌었어."

"와아~ 형님, 대단하시네요."


경수가 피식 웃으며 4잔의 컵에 커피를 담으며 물었다. "여보, 커피는?"

"커피에 설탕 듬뿍. 4스푼."

"2개 이상은 안 되는 거 알지?"


"지금 연습 중이야.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


"자신과 아이 건강을 위해서 단 음식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민의 말에 환희는 얼굴에 짜증이 나타났지만, 눈이 마주치자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수민씨는 블랙인가?"
수민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한 스푼만." 희락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경수는 커피 4잔을 만들어 각각의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환희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으... 써. 이런  어떻게 먹으라고."


"블랙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앗, 뜨거. 왜 이렇게 뜨거운 거야."
수민은 커피를 먹다 입을 열고 헉헉거렸다.

수민의 약점을 발견한 환희는 기운을 얻었다. "뭐야. 당신은 뜨거운 거 못 먹어?"


"설탕을 들이부은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는 낫죠."


"블랙 같이 쓴 걸 무슨 맛으로 먹는다고."

"음식 본연의 맛을 단 맛으로 없애는 어린애 입맛보다는 낫죠."

말싸움에서 환희는 수민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번번이 지는 싸움에 환희는 짜증이 났다.
"어떻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당신이 미순이 친구라고 했지? 그럼 나보다 훨씬 어리네. 나이 많은 나한테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그녀가 말싸움으로 이길  있는  나이 뿐이었다.


"존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야하는 겁니다. 존경하지 않는 상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거죠. 먼저 나에게 연상으로 존경할 행동을 보여주십시오."


환희는 더 이상 저항 못하고 움츠려 들었다.

희락은 환희가 꼼짝 못하도록 눌리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

경수가 지원하고 나섰다.
"수민씨! 그만해!  이상 내 아내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면 남편인 내가 용서 못해. 그리고 내 아내에게는 우리가 절대 무시 못 할 것이 있어."


"그게 뭐죠?"


"피아노.  정도 피아노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이런 수준에 이르려면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해.  아내의 연습을 본다면 수민씨도 존경할 수밖에 없을 거야. 매일 10시간이 넘게 연습하는데.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어?"


그 말에 수민은 아무  못했고 환희는 힘이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 아내의 연주를 듣고 가. 그럼 존경할 마음이 생길거야."

잠시 간의 티타임  환희는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수민은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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