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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제 6화 : Lesson! (3) (22/117)



〈 22화 〉제 6화 : Lesson! (3)

그로부터 약 2시간 뒤.

'국민건강보험을 들어뒀었으니 망정이었지... 뭐, 사무실 경비로 처리 해준다고 했으니까 어차피 돈은 들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꿰맬정도로 찢어 졌을 줄이야.'

윤은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이마. 정확히 말하자면 이마에 붙여져 있는 큰 반창고를 보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겠지만 지인들하고 만나게 되면 분명 '무슨 일 있었어?'라며 물어  만큼 눈에 띄고 있었다.

"윤작가님,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런 상처 정도쯤은 별거 아니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가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문만 열지 않는다고 하면 앞으로 별일 없을 거예요."
"우우~ 반성하고 있어요."

장난에 장난이 낳은 참극? 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현관에 튀어나와 있었던 철판 부분이 더 뾰족하고 날카로웠다면 분명 그냥   바늘 정도 꿰매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참고로 미츠키는 요조라에게 충고를, 마츠다에게는 잔소리가 섞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최종보스(?)인 이치하시에게 보는 사람이 불쌍해질 정도로 엉망진창으로 혼났었다.

"네, 네. 반성문은 내일까지 제출하세요. 원고지 800자 10장 내외로."
"에? 에?"
"농담이야, 농담. 도착했습니다. 어서 내리죠."

이래저래 에피소드가 있기는 했었지만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일행은 곧바로 회의가 시작  회의실로 직행했다. 일행은 회의실로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면서도 마주치는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주고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요조라와 미츠키의 기운 넘치는 아침인사를 앞세워 오늘 미팅이 있을 대회의실에 들어섰다. 윤은 미츠키와 요조라의 조금 뒤에 서서 어색한 발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대회의장 안은 이미 도착한 사람들 관계자들로 인해 꾀나 복잡복잡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요조라(짱)! 잘 지냈어?  지냈어?!"
"네. 사쿠라이(桜井) 선배님. 선배님은요?"
"에이~ 또 그런다, 또. 오토 언니(音根)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잖아.  그래 섭섭하게."
"네~에. 오토 언니."
“안녕, 호시노. 오랜만...도 아닌가. 마왕의 신세한탄이 지난해 3분기였으니까.”
"안녕하세요. 나카무라 선배님."

요조라를 알아본 사람들이 입구로 다가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선배라고 해서 그냥 앉아 인사를 기다리고 있지만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다가와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역시 들었던 대로 인간관계는 나무랄 대가 없네. 누가 보면 요조라가  선배인줄 알겠어.’

요조라가 요즘 잘나가는 성우  한 명이라서 선배들이 먼저 다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로지 요조라의 인간관계 관리가 좋은 것이었다.
일본 성우계는 위계질서는 그리 유순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연예계만큼이나 선후배의 관계가 뚜렷했기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후배가 선배를 찾아가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철저한 존댓말과 깍듯한 태도를 대해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세계였다. 세계였지만 그것 역시 본인 하기 나름이었다. 선배들과 벽을 쌓고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느냐, 그 벽을 허물고 격 없이 지내고 인맥을 넓혀 앞으로 펼쳐질 성우인생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게 하느냐는 결국 본인 손에 달린 것이었다.

“그런데 옆에는 누구?”
“안녕하세요! 이번에 선미역으로 같이 작품을 하게 된 타카나시 미츠키라고 해요.  부탁드립니...”

윤은 그냥 가만히 뒤에 서서 요조라와 미츠키가 다른 성우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5분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회의 1분 전입니다! 모두 착석 부탁드립니다!”

윤도 나름 안면이 있는 스태프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 대회의실의 뒷문이 열리면서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회의가  시작됨을 알려주었다.  한마디에 꾀나 산만했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리 되었다.

'응? 그런데 유우지하고 아즈냥은 안 왔나?'

'윤작가님'이라고 써져 있는 좌석에 앉고 회의실 안을 대충 살펴보던 윤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친구들이 없다는 사실에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윤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죄송합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유우지와 아즈사는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최대한 조용히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로 가는 도중 윤과 마주친 유우지는 손을 살짝 흔들며 눈에 띄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뭐하다 늦은 거야. 저 녀석들은... 그나저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 주, 조연 성우들에 각 팀 대표 스태프들이라고 했었나. 얼추 20명? 아니, 25명 정도인가? 엑스트라 역이나 대표 스태프 밑에 있는 스태프까지 하면... 어휴. '

윤은 애니메이션이 한 편이 수백 명의 사람들의 손을 걸쳐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알  없는 전율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윤은 애니메이션 제작이 돈을 벌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사업 중 일환이라는 사실은 아주  알고 있었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세계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움직여주었었고 앞으로 한 번 더 움직여 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윤이 갑작스레 펌프질을 가속화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사이, 오구라를 선두로 들어오지 않았었던 스태프들이 대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럼 지금부터 너에게 안녕을 2기. 전체 미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오구라 총감독님의 인사가 있겠습니다."

사회를 보는 스태프의 말이 끝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여러분들을다시 만나게 되어서 정말로 반갑습니다. 대부분이 얼굴을 아는 사이이니 거추장스러운 인사말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새롭게 출발하게 된 너에게 안녕을에 새로 합류하게 된 사람들과 개인 사정으로 인해 1기전체 미팅 때 오지 못했던 분을 소개 할까 합니다. 윤작가님."
"아, 네."

호명된 윤은 왠지 일어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조심스레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너에게 안녕을을 집필하신 윤작가님입니다. 윤작가님, 모처럼 이니  말씀하시죠."
"아, 네... 그러니까."
'아니, 뜬금없이 한 말씀하라니... 뭐라고  다냐.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작가 윤입니다. 저번 단체 미팅 때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었지만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계속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정말 재밌게 시청했었습니다. 연기를 해주셨었던 성우 분들과 제작을 담당을 해주셨었던 스태프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주제 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제작될 2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윤은 끊지 말고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나오는 대로 자신이 느꼈던 점을 그대로 뱉어냈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이번에 새로운 역으로 합류하게  하나사키 아이, 타카나시 미츠키..."

새롭게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사람들의 소개를 시작으로 회의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으로 전개 할 2기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흐름, 변해갈 인간관계. 이로 인해 성우 개개인에게 필요로 하는 간단한 요구 사항을 포함한 앞으로의 대략적인 스케줄 등등...미리 준비해온 자료를 토대로 회의는 빠르면서도 간결하게 흘러갔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만 짚고 넘어가는 데에 12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엔딩까지 13화. DVD, 블루레이 특전으로 ova 2편인가. 스토리도 그렇게 급한 같지도 않고 늘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1기 스토리전개도 이런 식이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현장을 모두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구경도  수 있겠고.'

"그러면 이걸로 전체 미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에 관한 세부사항은 모두 개인적으로 추후 미팅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1화의 대본은 이미 준비되었으니 관련  관계자분들은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난 뒤, 윤은 보는 사람이 시원해질 정도로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회의가 지루했나요? 윤작가님."
"네? 아, 아니에요. 그냥 습관이라고 해야 하나... 회의하는 도중에 앞으로 제작 될 애니메이션이 기대되어서 계속 두근두근 거렸는걸요?"
"그런가요? 정말 다행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예전처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었는데 말이죠."
"그 때는 그... 죄송해요. 분에 넘치게 이것저것 있는 대로 말해서."
"아닙니다.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불만을 삼키고 소극적으로 말하는 사람들 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쪼록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네,저야 말로 잘 부탁드려요."

오구라와 말을 끝낸 윤은 곧바로 자신이 데리고 가야 할 소속사 성우 2명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그런데 이때

"어이, 윤."

오늘 회의에 아슬아슬하게 참석한 유우지와 아즈사가 윤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 어... 너네 뭐하다 늦었냐. 늦잠이라도 잤냐?"
"날 저기 있는 1)똥그란 보름달하고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게 누구 때문인데."
"뭐냐, 마치 날 위해서 늦었다는 그 말투는..."
"아즈냥은 이거니까."

유우지는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뒤집어 얼굴에 가져갔다.

"누가 2)장미냐! 누가! 난 그런 쪽으로 취미 없다고!"
"응? 뭐냐 그건."

윤은 유우지가 뜻하는 바를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 뜻을 아는 아즈냥은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부정했다. 아마 회의장이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근처에 있던 몇 명은 아즈사를 쳐다보며 '또 너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순수하구나. 윤은. 음, 음.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마."
"너한테  말을 들으니 뭔가... 몰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튼 무슨 일인데."
"으... 우유지  나중에 두고 보자고."
"무서워~ 아즈냥~"
"이 바보커플은 진짜..."
"이 녀석하고 엮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라고... 일단 이쪽으로."

아즈사는 평소처럼 인사대신 하던 장난이 끝나자 조금은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와 윤에게 밖으로 나가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윤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유우지에게 양손으로 등을 떠밀리는 바람에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나참. 무슨 일인데? 대체."
"네가 알고 싶어 하던 미우라의 정보. 알아왔어."
"응?"

윤은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꺼낸 아즈사의 말에 무심코 되묻고 말았다.

"그러니까. 요조라가  레슨을 받고 나오는데 울었는지. 거기에 대해 정보를 캐왔다고."
"진짜?"
"뭐... 어디까지나 얻은 정보를 토대로 추측한 거니 100%라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늦은 거였냐?"
"그런 거지. 엊그제 사촌누나하고 연락이 겨우 닿았거든. 워낙 바쁘다 보니... 그래서 사정사정해서 오늘 아침에 만나 겨우 이야기를 듣고 오는 길이야."
"역시나 아즈냥이네. 그래서 본론은?"
"우리들의 추측하고 아즈냥의 사촌누나에게 들은 정보를 모두 빠짐없이 전해 줄 테니까. 판단과 결정은 너에게 맡길게. 윤."

윤은 앞으로 두 사람이 들려 줄 이야기를 기다리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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