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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제 8화 : 아사쿠사 불꽃놀이 대회 (7) (45/117)



〈 45화 〉제 8화 : 아사쿠사 불꽃놀이 대회 (7)

윤은 등에 몸무게가 실리는 감각이 들자마자 게다를 줍는 동시에 무릎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몸을 완전히 일으킨 윤은 요조라의 무릎 안쪽 부분을 손으로 받치고는 귀가를 서두르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다.

‘저번보다 가볍네? ... 아니, 아니지. 저번에는 스키점퍼라던가 여러 가지 걸치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기껏해야 유카타 하나... 지. 응. 유카타 밖에 안 입고 있으니까 가볍... ... ... !! 뭔 생각을 하는 거냣!!’

윤은 셔츠 한 장 너머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의식하자마자 우후죽순 피어오르기 시작한 망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었다.

“저... 무겁죠? 오늘 온종일 돌아다녀서 안 그래도 피곤할 텐데...”
“아, 아뇨. 전혀요. 저번에 비하면 무지하게 가벼운걸요? 이렇게 가벼워서 날아가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윤은 남자라는 생물이 가진 슬픈 속성을 이성으로 이겨내기 위해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그렇지 이런 남자의 번뇌(?)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응?’

윤은 콧등을 무언가가 톡하고 건드는 느낌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위로 들어 올렸다.

‘... 어라? 기분 탓인가?’

밤하늘을 곁눈질로 살피던 윤은 별다른 징조를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뒤에 도로 저편에 있을 버스정류장을 향해 잠시 멈췄었던 발걸음을 차근차근 옮겨나갔다.
참고로 윤이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정신이 없어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새까만 도화지 같았던 밤하늘은 이미 먹구름으로 가득  뿌옇게 흐려진 상태였다.

“저,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뇨. 비가 오는 줄 알았는데 착... 어?”

말을 이어가던 윤은 땀으로 달궈지고 있는 머리 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우수수수 떨어지는 느낌이 들자 고개를 치켜들어 밤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런 윤의 얼굴을 맞이해 준 것은...

“윽.”

해가 저문 지 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후덥지근한 열기를 품고 있는 아스팔트를 향해 거침없이 떨어지고 있던 차가운 빗방울이었다.

‘오늘 비 온 다는 없었는데. 망할 일기예보!’

빗방울은 윤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점점 그 숫자를 늘려나갔다. 그리고 수 초 뒤, 사람들을 우왕좌왕하게 할 정도의 굵은 장대비로 바뀌었다.
윤은 일단 쏟아지기 시작한 장대비를 피하기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장소가 있는지 빠르게 훑어보았다. 훑어보았지만,

‘꽉 찼어...’

주변에서 비를 피할 만한 곳으로 보이는 장소는 이미 사람들로 초만원. 피할 장소를 찾지 못한 대다수 사람은 근처에 있는 편의점이나 역을 향해 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어쩐다어쩐다. 그냥 이대로 대시해? 아니면 근처 어딘가를 찾아야 하나?’

원래 일본이라는 나라가 비가 어지간히 오지 않는 이상 우산을 쓰지 않고 무시하고 분위기를 가진 나라이긴 했지만... 지금 내리는 비는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지하철을 타면 막 수영을 마친 사람처럼 온몸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릴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거기다,

‘나 혼자면 그냥 맞으면서 가도 상관이 없긴 한데... 요조라를 그런 꼴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등에 업혀있는 요조라가 심히 마음에 걸렸다.
요조라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외모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다는 20대 중반의 여성에게 훗날 굴욕 사진의 한 컷으로나 나올법한 그런 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윤은,

‘에라이 모르겠다!’

몸의 방향을 90도로 급회전시킨 뒤에 미리 봐두었던 골목길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윤작가님?”

‘비를 피할 때가...’

윤은 귓가에서 울리는 요조라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전력 질주 중인 우사인볼트를재칠 기세로 전력 질주를 하면서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비를 피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있나 훑어보았다.
한편, 요조라는 몸이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들자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팔걸이를 만들고 있는양팔에 더욱더 힘을 주었고 여태까지 살짝 띄어 놓았던 상체를 윤의 등에 한 층 더 밀착했다.
그렇게 골목을 2블록 정도 지났을 무렵...

‘OK. 저기닷!’

윤은 가게인지 가정집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앞에 간의 천막이 처져 있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하아... 하아... 휴~”

천막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윤은 허리를 구부려 길고 짧게 심호흡을 반복하며 그동안 제대로 공기를 넣어주지 못했던 폐의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저, 저. 윤작가님.”
“... ... 네?”
“저 일단 내릴게요.”
“아... 네.”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윤은 요조라가 내려가기 편하도록 허리를 펴주었다. 요조라는 윤이 허벅지를 바치고 있던 팔걸이를 풀자 가볍게 폴짝 뛰어 바닥에 착지했다.

“미안해요. 때매 힘들었죠?”
“아뇨아뇨. 후우... 그렇지 않아요. 어차피 둘이 걸었어도 같이 뛰었을 텐데요. 뭘.”
“그래도...”
“이 정도는 힘든 축에도 안 들어요. 것보다 이거 금방 지나갈 것 같지가 않네요.”

윤은 대화의 주제를 돌리려고 일부러 고개를 비가 내리고 있는 어두컴컴한 밤하늘로돌렸다. 불꽃놀이를 볼 때만 해도 상현달까지 떠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검은 도화지를 제공해 주었었던 밤하늘은 어느새인가 먹구름으로 가득 차 마음껏 비를 뿌리고 있었다.

“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유우지녀석하고 미츠키야 원래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니 알아서 피했을 테고. 아즈냥도 괜찮겠죠.편의점으로 들어가든, 전력질주로 역으로 뛰든, 원래 계획대로 버스를 타든... 아무거나 그랬을 걸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요조라는 윤의 있는 그대로의 설명에 납득하며 아주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이사이, 윤은 크로스백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검색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역까지... 걸어서 5분이라. 그렇다면 적어도 7분. 길을 헤매면 10분은 거뜬히 넘는다는 이야기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지옥을 맛보더라도 그냥 도쿄 메트로로 가는 거였는데. 혼자 가서 우산이라도 사 올까?’

윤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비가 얼마나 쏟아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으음... 하지만 요조라를 혼자서 두고 가기에는 또 그런데. 동네면 모르겠는데 생판 처음 와보는 동네이고. 괜히 나섰다가 길이라도 헤매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 아플 테니... 그냥 편의점으로 뛸껄 그랬네. 이 멍청이... 왜 여기로 뛴 거야.’

윤은 과거의 자신에게 목소리가 없는 불평을 내뱉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나,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인 것을... 그렇게 나름대로 고심하던 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상식적인 대답을 입에 담았다.

“일단 좀 약해질 때까지 기다릴까요?”
“네.”

수많은 빗방울이 각기 다른 장소를 두들기며 이색적인 연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 비를 피하고 있는 천막, 건물 옥상, 전등 등등... 평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자연의 멜로디가 윤과 요조라에게 은은하면서도 운치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음악을 감상해야 할 청중들은...

“... [...]”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로 그냥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곁눈질로 서로를 살피기는 했지만 딱히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천막 너머의 세상을 가리고 있는 세차고도 굵은 빗줄기. 그런 굵은 빗줄기 너머로 어슴푸레 보이는 가로등 불빛. 그리고 요조라와 윤이 나란히 서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협소한 공간은 마치 ‘이 세상에 너희 두 사람밖에 없어!’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멍하니 아무 말도  하고 있다 보니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한 한낮의 에피소드가 더해지자 윤과 요조라는 평소의 곱절로 서로를 의식하게 되었다.

‘지금은 단둘이서 비를 피하고 있고... 아까는 게다 끈이 끊어줘서 업어줘. 거기다 신사에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까지... 아니, 아니. 손목까지 잡아. 오늘 무슨 날인가 진짜.’
‘오늘 왠지 모르게 이런 일이 많네. 그... 윤작가님하고 같이. 무언가를 겪는 날이. 업히고... 손을 잡... 아까 그건 손잡은 거지?’

요조라는 오른손가락을 꼼지락 움직이며 손바닥을 수차례 쓰다듬었다. 여태까지 업혀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신사에 있었을 때가 생각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손바닥을 쓰다듬고 있는 손가락 끝에서는 포근한 미열이 느껴졌다.

‘아까  두근거림은 역시...’

포근한 미열을 손가락으로 조용히 느끼고 있던 요조라는 고개를 약간 틀어 윤을 올려다보았다.

‘아니,아니. 멋대로 상상하지 말라고. 에피소드 몇 번 생겼다고 다 커플이 되면 이 세상에 솔로가 있겠... 있겠냐고.’

윤은 소설  때는 죽어라 반항하던(?) 상상력에게 거친 슬라이딩 태클을 걸며 고개를 약간 틀어 요조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윤과 요조라는 상대방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상태 그대로 그 모든 것을 멈춰 버렸다.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말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윤의 머릿속에는 캐스팅 부탁을 위해 찾아갔었던 그날 새벽에 처음 보았던 요조라의 얼굴을 시작으로 여태까지 같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보아왔었던 요조라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하는 표정]
[오디션에 합격통보를 받고 기뻐하는 표정.]
[대본을 외울 때, 레슨을 받을  보이는  없이 진지한 표정.]
[상대방의 지나친 장난에 토라졌을 때 보이는 쀼루퉁한 표정.]
[라디오에서 대본을 읽다가 틀리자 허둥지둥 당황해하는 표정.]
[뜬금없이 썰렁한 농담을 들었을 때 보이는 황당한 표정.]
[오디션을   연기하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필사적인 표정.]
[사무실 창문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보이는 멍한 표정.]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잔해에 다리가 깔려버린 자신을 보고 보였었던 슬픔이 가득 담긴 표정.]
[미니 라이브 당시 자신을 보러와 준 팬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스태프에게 다가가 언성을 높이며 지었었던 화난 표정.]
[낮에 신사에서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보여주었었던 부끄러워하는 표정.]
가지각색의 표정을 짓고 있는 요조라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표정 하나하나는 전부 뚜렷하고 선명하게 머릿속에... 아니, 가슴 속에 각인 되었다.
이는 요조라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윤과 함께 보내왔었던 짧지만 긴 시간이. 평소라면 떠오르지도 않을 자잘한 일까지 전부 떠올랐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지만 다른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던 윤과 요조라는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난 요조라를 [윤작가님을] 이렇게나 많이 보고 있었구나...’

서로가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보아왔고 어떤 감정으로 대해왔었는지... 여태까지 같이 보내왔었던 6개월 남짓한 시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존재가 얼마나 컸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역시 서로에 대한 존재가 자신에게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요조라를 [윤작가님을]...’

서로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까지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 자신은 눈에 비치고 있는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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