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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제 9화 : 애니멜로 서머 라이브! (9) (54/117)



〈 54화 〉제 9화 : 애니멜로 서머 라이브! (9)

그렇게약 30초 정도가 지나고... 마츠다 앞에 도착한 윤은 숨을 한 차례 짧게  쉰 뒤 입을 열었다.

“... 호시노씨 데려왔어요.”
“수고했어. 그런데 말이지.”
“... 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 뛰어가서 데려올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 부르는 거라면 그냥 방송으로 불러도 충분하니까.”
“아...”

무안하다고 해야 하나, 마땅히 할 대답이 없다고 해야 하나. 어찌 되었든 윤은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한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마츠다는,

“마치 청춘드라마 보는  같아서 신선했어. 응응.”

윤의 머리 위에 있는 무언가 위에  무언가를 하나 더 얹어 주었다.
마츠다의 얼굴은 어느새인가 미츠키와 유우지가 장난칠 때 머금는 장난기 못지않은 장난기로 도배 되어 있었다.

‘요조라도 그렇지만 윤도 가끔 보면 놀리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그렇게 지금 상황도 잠시 잊고 고개만 푹 숙이고있는 윤을 잠시 지켜보던 마츠다는...

“그리고  손도 얼른 놔주어야지. 안 그러면 요조라가 말을  하잖아.  그래?”

고개를 바닥에 파묻을 기세로 숙이고 있던 윤이 고개를 약간이 나마 들어 올리도록 친절하게 어퍼컷(?)을 날려주었다.

“네? 아...”

마츠다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윤은 오른손이 요조라의 왼손과 확실하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 그래도 잠깐의 뜀박질로 상기된 얼굴을 더욱더 붉히기 시작했다.

“그...”

윤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런 대답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선만을 이리저리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른손과 이어져 있는 요조라의 왼손을 시작으로 시선을 점점 위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요조라의 왼손에서 출발한 윤의 시선은 왼팔, 어깨, 목을 따라 느린듯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이윽고 얼굴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순간!

“!!”

방금 뛰어서 그런 건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분명 그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양 볼을 연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요조라와 눈이 딱하고 마주쳐 버렸다.
윤은 요조라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벌였는지 확실하게 깨닫고 뒤늦게 밀려오기 시작한 부끄러움과 창피함. 그리고 요조라에게 대한 미안함이 한  뒤섞인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이끄는 대로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여 버리고 말았다.

“...”
“...”

그렇게 윤과 요조라가 눈을 ‘딱!’하고 마주치기를 약 4초.  4초가 지나자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결계가 ‘깡!’하고 깨져버렸다.

“미, 미안해요. 그, 손을. 그러니까 손을 잡을 생각이. 아니, 허락 없이 잡아서. 제, 제가 그러니까. 경솔... 이것도 아니고. 하여튼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윤은 요조라의 왼손을 집어 던지듯이 놓아 버렸고 요조라는 내 던져진 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며  뒤로 재빠르게 숨겨 버렸다.
그러자 이 상황을 유도한 마츠다는 물론이거니와 멀리서 이를 지켜보다가 다가온 미츠키 역시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특히나 미츠키는 마치 새콤달콤상콤한 과일을 입안에 넣고 너무 맛있어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자. 일단 그것보다도 요조라.”
“네?! 프로듀서님.”

양손을 뒤로  채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보이지 않게 우왕좌왕 거리던 요조라는 어깨를 살짝 움찔 거린 뒤에 누가 듣더라도 지금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미안한데... 안 좋은 소식이 두 가지가 있어.”
“... 네?”
“우선, 오늘부를 예정이었던 secret treasure는 MR이 망가져버 린 바람에 부르지 못할 것... 아마 부르지 못할 거야.”
“네?!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건가요?”
“어. 안타깝게도. 지금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 중이긴 하지만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보면 돼.”
“그러면 다른 노래라도...”
“안 좋은 소식 두 번째가 그 이야기야. 사무실에 예비로 만들어  MR은 우리 사장님이 어제 전부 망가트려서 지금 우리 수중에 다른 MR도 없는 상황이야.”
“?!”

여태까지 요조라의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머릿속까지 어지럽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마츠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나도 남지 않고 밖으로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직후, 백지가 되어 버린 머릿속에는 ‘어째서?!’, ‘왜?!’라는 두 글자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마츠다는 요조라가 패닉상태에 빠져들 기미가 보이자 그럴 틈 자체를 주지 않기 위해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윤이 대안을 제안해 주었어. 운명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윤이 마침 ‘달빛요정’의 MR을 가지고 있거든. 그래서 지금 우리의 눈앞에 놓인 선택지는 2가지야. 하나는 달빛요정을 부른다. 또 다른 하나는 이곳에 있는 곡중 하나를 골라 부른다. 말하자면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거지. ... ... 두 번째 안은 별로지?”
“네? 네... 되도록이면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렇지만 달빛요정은...”
“네가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어. 오노씨에게는 이미 양해를 구해 놓은 상태라 네가 원한다면 그에 맞춰 모든 세팅을 전부 바꿀 거야. 만약 시간이 부족하다면 입장 시간을 조금 늦춰서라도 해주신다고 약속까지 받아 놓은 상태고. 그리고 우리 회사도... 이런 트러블이 터진 이상 어쩔 수 없잖아? 발표 전에 데뷔 무대를 갖지 말라는 법도 없고. 난 이게 오히려 찬스라고 생각해. 애니멜로 서머 라이브에서 발표하게 된다면 그 홍보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테니까.”
“그건...”
“우린 네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그에 전적으로 따를 거야. 네가 좋다고 하면 OK. 싫다고 하더라도 우린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해줄 거고.”

요조라는 아주 자연스레 방금까지 서 있었던 아레나 스테이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달빛요정을 여기서...’

요조라는 무대 위에서 수 만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호응을 받으며 달빛요정을 부르는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 자신이 해야  일을 떠올리고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요조라는 마츠다가 제시한 첫 번째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혹은 내키지가 않아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으냐? 싫으냐?를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좋다고 대답할 정도로 기뻤다. 기뻤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요조라는 안 그래도 이렇게 크나큰 스테이지에 서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한계치를 돌파하고 있는데 여태까지 대중들 앞에서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는 신곡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당혹스러워 막상 하겠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그저 오늘만을 위해서 일주일간 열심히 연습했었던 secret treasure를 부르지 못하게  아쉬움은 고개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역시 쉽게 결정 못 내리겠지?”
“그게 조금...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역시 그렇겠지? 그래도 이런 말 하면  되겠지만 되도록 빨리 결정을 내려 줬으면 좋겠어. 결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나마 연습이나 리허설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얻을 수 있으니까.”
“그렇... 겠죠?”

‘부르고 싶어. 내가 좋아한 노래를...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고 싶어. 그렇지만...’

요조라의 솔직한 속마음은 ‘부르고 싶다.’  한 마디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이 반했었던 노래를,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러서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이 느꼈었던  전율을. 그 느낌을.  감각을. 분명 그 전부를 전부 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프로로서의 이성이 ‘아무런 준비도  한 상태에서 과연 그 기분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질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속마음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로막아 버렸다.

‘역시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아니야.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도 않으니까. 어설픈 무대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요조라는 한시라도 빨리 달빛요정을 여러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지만 적어도 달빛요정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대만큼은 듣는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은 기분을 맛보길 바랐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속마음을 달래주며 이성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윤작가님의 완벽주의가 옮아 버린 걸까나?’

요조라는 고개를 살며시 들어 올린 뒤 지금은 고개를 숙인 채로 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동자만 움직여 그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윤작가님은 내가 달빛요정을 못 부르겠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옹호해줄까? 아니면 그냥 부르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아까 이 제안을 해준 사람이 윤작가님이라고... 그러면 윤작가님은 내가 여기서 달빛요정을 부르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휴~ 나 참. 대체 무슨 짓을  거야... 요조라를 위해서라도 이상한 소문은 안 돌았으면 좋겠는데... 응?’

속으로만 작은 한 숨을 내쉬며 동요했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던 윤은 오른쪽 뺨을 무언가가 톡톡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그러자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는 요조라의 얼굴이 윤의  안으로 들어왔다.

‘음... 역시, 너무 터무니없는 제안인가?’

윤은 요조라가 띄고 있는 분위기. 그리고 표정. 이 2가지만을 눈에 넣고도 요조라가 지금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그래도 모처럼의 기회니까 부르는 편이 더 좋을  같은데... 연습이야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했었고 무대 효과를 바꿀 시간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아쉬운 대로 secret treasure꺼를 약간 바꿔서 쓰면 되니까. 달빛요정이 이런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광경을 보고 싶기도 하고.’

윤은 요조라가 부르는 달빛요정이 끝에서 끝이 한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만 명의 관객이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주는 광경이 상상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열...

‘아니, 아니. 또 한  할 뻔했네... 내가 여기서 뭐라고 하면  되지. 분명 직접 보고 싶기는 하지만 내가 여기서 하자고 했다간 그대로 해버릴지도 모르니까.’

려고 했지만 턱주가리에 있는 힘껏 힘을 주며 입이 열리지 않도록 꾹 닫아 버렸다.

‘그리고 오늘 내가 따라서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요조라의 전담 프로듀서인 마츠다씨의 보조. 아무리 곡을 같이 작업했다고는 하지만 주제넘은 짓을 해서는  돼.’

윤은 이번만큼은 자신이 참견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다시 말해 곡을 작업한 작곡가로서의 자신도, 매니저 보조로서의 자신도, 팬으로서의 자신도, 친구로서의 자신도 여기서는 요조라의 결정을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 더 좋다고 하나 같이 입을 모으고 있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달빛요정은...’

딴 생각에 빠져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요조라는 시야가 현실로 돌아오자 뒤늦게 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작가님.’

그렇지만 요조라는 눈을 피한다거나 조금 전과 비슷한 종류의 분위기를 띄우며어색해하지 않았다. 그냥...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도 요조라는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데도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역시 아무 말도하지 않고 요조라의 눈을 그저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윤이 표정이나 눈빛을 이용해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아니었다. 그냥 해질녘을 수놓는 알록달록한 붉은 노을에 발길을 붙잡혀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었을 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요조라와 다름이 없는 감정으로 요조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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