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제 11화 : 한마디 (12)
“[이 새끼가 진짜!]”
윤은 순식간에 벤치를 뛰어넘어 오른손으로 아즈사의 멱살을 거칠게 낚아챘다. 이 바람에 방금 주먹질을 할 때 찢어졌었던 티셔츠의 어깻죽지 부분이 ‘부우욱’소리를 내며 더욱더 넓게 찢어졌다.
“정곡을 제대로 건드렸나 보지?”
“닥쳐! 니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아주 자~알 알지. 니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기 두려워하는 겁쟁이라는 걸.”
윤도 자기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요조라의 고백을 거절한 것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가라고 했던 것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 이상 가까워지지 말자고 말했었던 것은! 그 전부가 요조라를 위해서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전제가 깔린 말들이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은 다시 이 장소에 돌아올 수 없다고 단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미 한국에서 이루어 놓고 온 모든 것들과 짊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이 자리로 돌아오기에는 그에 따른 희생이 너무 커서 ‘포기’라는 선택지를 머릿속에 마련하지조차 않았었고 지금 역시 그러다 하는 것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윤은,
“[닥쳐!!]”
정곡을 정확하게 찔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시퍼런 힘줄이 바짝 선 오른쪽 주먹으로 아즈사의 얼굴을 있는 힘껏 강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을 얻어맞은 아즈사는 일시적으로 새하얘진 시야 속에서 저항의 ‘저’자 한 번 꺼내 보지 못하고 또 한 번 수풀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큭...”
윤은 뒤로 넘어진 아즈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곧바로 그 가슴 위에 올라타 왼손으로 멱살을 당겨 완력으로는 저항이 힘든 자세로 만들었다.
“니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니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고!”
“요조라는...! 요조라는...! 그런 식으로 거절을 당했으면서도 너를 먼저 생각했다고. 네가 상처받고 이곳에서 떠날까 봐. 자기 때문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야 할 이곳 생활이 엉망으로 바뀌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네 말을 듣겠다고!”
“그래서... 그래서... 요조라의 고백을 받아들이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할 건데! 좋든 싫든 떠나야 한다고! 겨우 한 달 동안 행복하자고 고백을 받아들이라고?! 웃기지 마! 그딴 것보다 무책임한 짓이 또 있을 것 같냐고!!”
“왜 떠나서 돌아올 생각을 안 하냐고!! 죽을병에 걸린 사람처럼 꼴깝떨지 말란 말이야!!!”
“!!”
아즈사는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윤의 왼손을 거칠게튕겨 낸 다음 오른쪽 주먹을 윤의 얼굴에 꽂아 넣었다.
-퍽!
아즈사의 말에 순간적으로 사고가 경직되어 멍하니 있던 윤은 아즈사의 주먹에 정통으로 얼굴 맞고 그 멱살을 놓치며 뒤로 넘어지는 듯 했으나... 상체가 마치 오뚝이처럼 앞으로 퉁겨져 올라오며 아즈사를 제압하고 있는 자세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아즈사의 한 방 덕분에 정신이 맑아진 윤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처녀 귀신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아즈사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네가 뭘 아는데... 내가 병신 머저리라서 돌아올 생각조차 안 한 줄 아냐? 좋든 싫든 대학교는 최소 1년은 다녀야하니까... 곧 있으면 정년퇴직할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까... 나 때문에 해산될 뻔했던 sky 활동도 계속해야 하니까... 내 마음 하나 가지고 그런 것들을... 나 하나 행복해지자고 그런 것들을 내 팽개칠 수는 없다고. 아무리 미칠 것 같더라도!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뭐?”
“그래서 부딪혀 봤냐고... 그 현실이란 녀석하고 부딪혀보고 말하는 거냐고... 모두가 네 생각에 지나지 않잖아! 넌 부딪혀보지도 않고 이미 포기를 한 거잖아! 그러니까 겁쟁이라고 한 거라고 이 멍청한 자식아!!”
-피~~융!
아즈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폭죽이 밤하늘을 타고 올라가는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고 연이어,
-펑! 퍼벙!! ... 펑! 펑! 펑!
형형색색의 화려한 불꽃들이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마츠리(축제)가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화려한 피날레가 시작되자 미츠키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올려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보이는 불꽃놀이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윤의 얼굴에 한 방 더 먹여 주려고 오른팔에 힘을 주던 아즈사는 그 주먹을 수풀위에 털썩 떨어트려 버렸다. 그렇지만 두 눈 만큼은,
“...”
윤의 머리 뒤쪽으로 보이는 불꽃놀이가 아닌 윤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
윤 역시 아즈사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그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상대방으로 노려보듯... 아니, 마치 어딘가의 정령들처럼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듯이 윤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던 아즈사는...
“무거우니까 비켜...”
윤의 다리를 오른손으로 툭툭치며 평소처럼 툴툴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윤은 아무 말 없이 아즈사의 가슴 위에서 내려와 그 옆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너.”
“뭐...”
“내가 없는 동안 지켜 줄 자신 있냐?”
“...”
아즈사는 윤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가 불꽃놀이의 도화지가 된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붉은색 불꽃이 꽃 모양을 그리며 주변으로 불꽃을 뿌렸다.
“한 대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됐냐?”
“뭐?”
“당연한 거 일일이 묻지 말라고. 귀찮으니까.”
“참 나...”
“그리고 너도 접근 금지야 인마.”
“본말전도도 유분수가 있지.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윤은 아즈사의 가슴팍을 오른손등으로 툭 하고 가볍게 내리쳤다.
“니가 지금 요조라랑 어떻게 됐냐.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 뭐가 됐든 넌 지금 요조라를 울린 빌어먹을 놈이니까.”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해피엔딩이 되게 만들어야지.”
“아니죠. 아니죠. 해피엔딩이 되면 모두 끝나버리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음...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죠?”
미츠키는 두 사람의 분위기가 일단락된 것 같자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윤과 아즈사의 곁으로 다가왔다.
“알 게 뭐야. 그딴 거...”
“우~ 못 됐어. 생각해주는 척도 안하네.”
“시끄러...”
“매니저님! 한 번 더 엎어 치면 안 돼요? 정신 바짝 차리게! 사이다처럼 뻥~ 뚫어 주길래 조금은... 다시 봤는데. 아직 숙녀에 대한 예의는 한~ 참 부족한 것 같아요.”
“숙녀는 무슨... 철부지 어린애지.”
“오지랖이 문어발인 아즈냥 오빠에게 듣고 싶지는 않거든요? 현실에 부딪히라니... 쿡쿡. 어디 주인공 대사도 아니고.”
미츠키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양쪽 눈을 초승달로 만들어 웃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보란 듯이 아즈사를 비웃어 주었다.
“저게 진짜!”
아즈사는 양 팔을 스프링처럼 튕기며 마치 강시가 관에서 튀어나오듯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일찌감치 도망치고 있는 미츠키를 전속력으로 뒤쫓기 시작했다.
“하여간... ? 유우지?”
요조라에 관한 것도 잠시 있고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츠키와 아즈사의 추격전을 구경하던 윤은 수풀 너머에서 무언가를 들고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유우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유우지는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정도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숨을 죽인 채 입꼬리를 하늘을 향해 바짝 올리고 있었다.
“...”
“유우지. 얌마. 너, 유우지 맞지?”
유우지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꽃게처럼 횡 방향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야, 니가 왜... 잠깐. 너 그거 캠코더잖아. 얌마! 너 설마!!”
유우지는 대답 대신에 생긋 웃어 보인 뒤에 몸을 돌려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아니, 자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한 윤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너! 거기 서!! 빨리 안 서!!!”
윤은 방금 전 자신의 여러모로 부끄러운 모습을 누군가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지켜보았다는 사실보다도 고스란히 기록되었을 그 모습을 누군가가. 특히나 요조라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을 그 어느 때보다도 새빨갛게 붉히며 유우지를 전속력으로 쫓기 시작했다.
불꽃이 쉬지 않고 하늘로 날아가 각기 다른 형태로, 다른 빛깔을 뽐내는 밤하늘 아래에 윤과 유우지, 미츠키와 아즈사는 난데없는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