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제 11화 : 7월의 콘서트 (10)
한편, 가히 살인적으로 불러도 될 만큼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다시 나온 나나와 그 시종들은(?)
“야,야. 간신히 식혔는데 또 열나게 하지 말라고!”
“괜찮아, 괜찮아. 땀을흘려야 청춘이라고 어느 위인이 그랬으니까. 그것보다도 어디부터 가면 돼?”
“그 누군가 진짜 한 방 먹여주고 싶네... 일단은 저기.”
카페 밖으로 나온 진은 나나의 손을 뿌리치고선 광화문광장 저편에 있을 경복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나는 진이 뻗은 손가락을쫓아 고개를 돌린 뒤 눈가를 가볍게 찌푸리며 시선을 최대한 멀리 두었다. 그렇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광화문광장을 따라 다니고 있는 자동차들밖에 없었다.
“저기가 뭔데?”
“이쪽으로 쭉 가면 경복궁이라고 있어.”
“그게 뭔데?”
나나는 난생처음 듣는 단어에 검지로 턱을 가볍게 받치며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렸다.
“어? 그러니까...”
“약 700년 전에 세워진 우리나라의 궁궐.”
우물쭈물하는 진을 대신해 민정이 간단명료하게 대답 해주었다.
“아~ 아~ 뭔지 대충 알겠다. 역시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성부터 가봐야지! 가자! 가자!”
그렇게 나나와 일행의 대책 없는 서울관광이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1시간 뒤. 시간이 흘러도 집에 돌아갈 생각조차 안 하는 태양 아래 일행을 데리고 조선 시대 정궁인 경복궁을 한 바퀴 쭉~ 돌아본 나나는,
“바로 옆 나라라도 역시 다르구나.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이야.”
“나나는 이런 거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다는... 처음 보고 접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나? 이 경복궁이라는 건 세계 어딜 가도 여기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 그런 게 좋아.”
“아~”
“혹시 또 다른 궁궐은? 경복궁이 끝이야?”
“아니. 창덕궁이라고 다른 궁궐이...”
“야, 야. 쓸데없는 말라...”
“가자, 가자! 거기도!”
“아낙... 늦었어.”
“또... 어디가.”
민정에게 근처에 창경궁과 경희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도 돌진! 뒤에서 적당히 돌아다니라고 있는 힘껏 불평을 내뱉는 진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가는 니마의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희궁까지 다 돌아본 뒤에,
“여기 어디 유명한 타워가 있다던데. 스카이트리 비슷한.”
“타워?...아, 남산타워?”
“응, 응.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거기도 가보자! 나, 높은 곳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윤, 니마. 갈 거지?”
“...아, 몰라. 맘대로 해.”
“..,”
예전에 지인에게서 들었었던 남산타워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서 남산까지 한 번에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있었다.
“윤... 나나하고 민정하고 단둘이만 둬도 괜찮아?”
“안될 건 또 뭐 있어. 저 녀석하고 떨어져 있을 때 조금이라도 쉬어야 한다고. 보아하니 저녁까지 끌려다닐 것 같으니까.”
진은 케이블카에 타기 전에 사둔 이온 음료가 담긴 페트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입구가 어디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그 안의 내용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입안으로 전부 들어가지 못한 음료가 입술을 타고 밖으로 흘러내렸다.
“옛날보다 지금이 더 무서워... 왠지 파워업 해서 돌아온 것 같아.”
“하아~ 누가 뭐래도 저 녀석은 지금 일본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 한 명일 테니까. 그만큼 체력관리도 하고 있겠지. 안 그러면 전국투어 콘서트 같은 거 하겠냐.”
“듣고 보니 그러네.”
‘것보다 저 녀석 일부러 따로 탔단 말이지. 또 무슨 꿍꿍이인지...’
진은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었다.
그러자 지금 타고 있는 케이블카와 똑같은속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와 그 밑으로는 푸른색의 옷을 입은 남산이. 그리고 그 뒤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로 수평선이 지면에 닿는 그곳까지 펼쳐져 있는 서울의 전경이 진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한편 앞서 올라가고 있는 케이블카에 타고 있는 나나는,
“케이블카 정~말. 오랜만에 타본다.”
케이블카 안을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하며 처음 보는 이국의 경치를 마음껏 구경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케이블카를 타 보이는 모든 것을 신기하게 느끼고 있는 어린아이의 들뜬 모습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식물의 안녕을 비는자... 세피하고 하늘이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네. 들었던 대로 말괄량이 모습 그대로라고 할까? ... 근데 다행이다. 둘밖에 없어서.’
민정은 지금 케이블카 안에 나나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살짝 안심하고 있었다. 만약 케이블카에 사람이 꽉 차 있었다면 어떤 시선을 받았을지...
‘아마 ’무개념 케이블카녀‘라고 인터넷에 올라갔을지도.’
그렇게 케이블카가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바깥 풍경만 내다볼 것 같던 나나는 갑작스레 몸을 180돌리고선 민정을 쳐다보았다.
나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민정은 나나와 눈이 똑바로 마주치자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깜빡깜빡했다.
“자~ 그러면 겨우 둘이 있게 되었네.”
“응?”
“민정에게는 여러 가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여태까지 방해꾼들이 붙어 있었으니까.”
나나는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채셔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민정에게 다가갔다.
‘... 이 시선.’
나나는 누가 보더라도 절로 미소가 나올 정도로 귀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표정과 정반대였다. 눈빛에는 사람에게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존재만이 내뿜는 특유의 위압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때하고 똑같아.’
민정은 이러한 종류의 시선을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딱 3번 느꼈었다.
첫 번째는 캠퍼스 안에서 니마가 ‘넌 누구야?’라고 물어보았었을 때. 두 번째는 도서실에서 세피가 자신을 유렵가로 오해했었을 때. 세 번째는 ‘고독을 탐하는 자’가 현현한 뒤 가호를 멋대로 옮기려고 했었던 자신을 쳐다보았을 때. 즉, 정령이라는 존재가 적의를 가지고 자신을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내가 또 무슨 일을 저질렀나? 아니면...’
민정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만났었던 니마와 세피의 모습이 겹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른침을 천천히 삼켰다.
“에이~에이~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아. 난 지금 민정을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니까. 릴렉스. 릴렉스. 나는 민정이 좋은걸? 미아가 될 뻔했던 나를 도와줬고 오늘도 안내를 해주고 있으니까.”
나나는 급격히 굳어진 민정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표정을 수십 배는 부드럽게 풀었다. 그렇지만 눈동자에서만큼은 그 특유의 위압감이 지워지지 않고 어른어른했다. 오히려 나나가 만든 표정과 분위기에 대비되어 그 존재감이 한층 더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으응...”
“우음~ 이번 생에는 너무 솔직해서 문제야. 포커페이스라는 게 전혀 안 되니까... 말하기 전에 분위기에서 다 드러난다고 해야 하나?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절대로 잡아먹으려는 건 아니야. 맛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
“농담이야. 농담. 정말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는 거야.”
“... 어떤 일인데?”
민정은 긴장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나나의 말에 거짓말은 없다고 느껴졌기에 천천히 입을 뗐다.
“사실은... 오늘 답례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계속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거든.”
“?”
“민정과 윤의 관계.”
“뭐?”
민정은 나나의 말의 뜻을 전부 이해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의미 없이 되묻고 말았다.
“그러니까 민정과 ‘동물의 안녕을 비는 자’의 관계. 여자의 감이라고 할까? 정령의 감이라고 할까? 여태까지 보낸 수 시간 동안 봐왔던 민정과 윤의 관계는 어딘가 특별해 보였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윤이 누군가에게 가호를 내려준 건 마녀사냥 이후 처음이거든.”
“마녀사냥이라면... 정령사가 마녀로 몰려 사냥당했었던.”
“그것까지 알고 있어? 후음... 그것까지 말해줬을 줄은. 아무튼 간에 윤에게 있어서 민정이 다른 인간들보다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만은 확실해.”
민정은 눈동자만을 움직여 뒤쫓아 오는 케이블카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나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호감?”
“호감... 이라니.”
“웅? 틀려?”
“틀리고말고. 절대로 아닐걸. 그 선배가 무슨...”
나나가 무슨 말을 꺼낼지 내심 긴장하고 있었던 민정은 어느새인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리 생각해보고 저리 생각해보아도 나나가 꺼낸 대화 주제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움~ 그럼 민정은 어때?”
“나?”
“응.”
“어떤 게?”
“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음... ‘동물의 안녕을 비는 자’?”
“그런 거 말고. 민정의 머릿속에 있는 윤에 대해서 알려줘.”
“머릿속에 있는 선배? 음... 음... 입이 좀 험한 선배?”
“후웅... 정말 그것 뿐?”
“응.”
나나는 볼을 살짝 부풀리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자기 생각을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이야. 그 외의 감정이라고 할까. 인상은 별로.”
‘별로... 없지.’
민정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태까지 진과 겪었던 일을 차례대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통학로 사건에서 왼팔을 식칼에 찔리면서까지자신을 구해줬었던 때. 커티에게 납치당했을 때 달빛을 등지고 멋있게(?) 등장했었을 때. 팔색조 알을 구해준 대가로 ‘동물의 안녕을 비는 자’의 가호를 받게 되었을 때. 메이의 도움에 야산으로 갔다가 ‘오염’에 먹히기 직전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었던 일. 의식이 ‘오염’에 침식당하는 동안에도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해주려고 했었던 일까지... 그렇게 곰곰이 여태까지 겪었었던 일을 되짚어 보던 민정은,
‘그러고 보니 도움을 받기만... 아니, 아니야. 커티라는 화신에게 납치당한 거는 굳이 따지자면 선배 때문이고. ‘오염’사건도 선배가 경고를 해주지 않았었으니까그렇게 된 거였잖아. 엄연히 따지면 난 피해자라고.’
누구에게 변명이라도 하듯이 자신이 도움받았었던 이유에 대해 속으로 구구절절 나열하고 있었다. 하지만 변명을 늘어놓으면 늘어놓을수록,
‘왜, 왜 이러지. 갑자기.’
피는 점점 얼굴로 몰려오는 것 같지. 심장은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점점 펌프질을 가속하고 있지. 숨은 점점 차올라 어느새인가 입으로 호흡하고 있지... 민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양손을 양 볼에 가져가 찰싹 붙이고 있었다.
“후움~ 역시나. 지금 두근거리고 있지?!”
“!!! 아, 아니야!”
“에이~ 얼굴에 다 쓰여 있는걸. ‘나 완전 두근두근해!!.’라고. 윤을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아니야. 절대로 그런 거 아니야.”
‘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어째서? 왜? 여태까지 아무런 의식도 안 하고 있었잖아. 내, 내가 그런 아웃사이더에 안하무인.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사람을 의식하고 있다고?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민정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던 현상에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며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답이 나올 턱이 있나... 오히려 교감신경을 자극해 몸은 참 정직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동요를 점점 키워나가고 있었다.
“자~알. 생각해봐. 윤과 같이 보냈었던 시간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꼭 ‘난 저 사람이 좋아!’라고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야. 그냥 같이 있는 게 자연스럽다. 같이 있는 게 좋다. 그런 걸로도 충분히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걸?”
“하지만... 나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서 안 좋을 건 없다구? 솔직해지면 모든 게 편해져. ‘인간, 모름지기 솔직해져야 한다.’ 라구.”
나나는 상체를 구부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민정을 얼굴을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았다.
민정의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양쪽 볼이 잘 익은 홍시마냥 붉게 물들어 있었다.
‘후움~ 역시 기대 이상의 효과인걸?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잘 들을 줄은... 몰랐네.’
나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가루를 문지르며 대기 중에 흘리고 있었다. 분홍빛을 띠고 있는 가루는 나나의 손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설탕이 물에 녹듯이 대기 중으로 녹아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