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에필로그 (2) (65/115)



〈 65화 〉에필로그 (2)

남산 케이블카 정류소에서 작은 소동이 있고 열흘 뒤.
나나 손에 이끌려 여기 다니고 저기 다니며 이런저런 추억(?)도 만들고 ‘야키야마 한국투어’를 위한 공연준비를 비롯한 리허설까지 완벽히마친 진과 그 일행은 서울에 있는 모 체육관 안에 있었다.

“[모두~ 즐기고 있어?!]”

-와아아아!!

“[오우~ 모두 아직 아직 기운 넘치네. 아직 더   있지?!!]”

-와아아아~~~!!!

“[그럼 다음 곡 모두 다 같이 날아보자!! OVER DRIEVE!!]"

나나의 목소리가 끝나자 객석에 있는 전원이 약속이라도  듯이 일제히 허공을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노래의 반주가 시작되자 공연장 안으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맞춰 점프하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뛰어올랐었던 사람들이 체육관 착지할 때마다 체육관은 지진이 난 것처럼 쿵쿵 울렸다.

“으~ 으~  어떻게, 어떻게.”
“뭐가...”
“객석에 가서 같이 뛰고 싶어! 가서 같이 놀고 싶어!!”
“그럼 가던가.”
“하지만! 하지만! 그러면 공연을  하잖아!!”
“그럼 참던가.”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게스트 같은  안 하겠다고 하는 건데!”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무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며 나나의 무대를 지켜보는 니마와 달리 진은 아주 침착한 표정으로 공연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정일 뿐... 손가락을 팔뚝에 튕기며 나름대로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단지, 곧 수천 명의 관객 앞에 서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는,

“... 사돈남말.”

옆에서 말없이 나나의 무대를 지켜보던 초이의 눈에 딱하고 들어왔다.

“뭐가?”
“손가락이요.”
“어? 아, 이건 그냥... 아는 노래니까. 그런 거지.”

진은 초이의 지적에 손가락으로 리듬을 더 이상 타지 않았지만 이를 대신해 발바닥을 바닥에 퉁퉁 튕기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나나카하고 같이 놀고 싶어!”
“나나카가 아니라 나나. ‘식물의 안녕을 비는 자’”
“아니야! 둘은 다른 존재야!”
“애냐 진짜...”
“전 하늘이 심정이 이해 가는걸요? 라이브는 처음 들어보지만 같이 뛰고 놀고 싶을 만큼 즐겁게 노래하잖아요.”
“맞지? 맞지? 그렇지?! 역시 나나카지?”
“응!”

평소에는 어딘가 살짝 어긋나있는 니마와 민정이었지만  순간만큼 서로의 손을 깍지 끼며 서로에 대한 공감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 십분 동의.”

초이 역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지만 객석에 달려가서 놀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럼 나중에 미니 라이브라도 해달라고 하던가.”
“그건 좀...”

니마는 시선을 내리깔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나나와의 1:1에 대한 거부감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윤, 새삼스럽지만 스타는 스타로 만났을 때가 가장 좋은 것 같아.”
“참나... 그 말 분명 나나가 듣고 있을걸.”
“에이~ 무슨 소리야. 거리도 있고 지금 한창 공연 중인데. 들릴 리가 없잖아.”
“너 벌써 까먹었냐. 나나는 내 가호를 받아서 마음만 먹으면 마음대로 능력을 쓸 수 있는 거.”
“그, 그렇다고 이런 시끄러운공연장에서 그런 능력을 써?”
“못 믿겠으면 불러보던가. 이번 생의 성격이라면 팬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듣고 싶다고 쓰고 있을걸?”
“아...아니야... 못 들었을 거야. 분명히.”

때 마침 노래의 1절이 끝나고 후렴부분에 들어가고... 객석의 호응에 맞춰 춤을 추던 나나는,

“니마~ 뒤풀이  1:1 라이브 공연. 기대해줘!~”

나나와 진, 민정, 초이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뜻이 담긴 목소리’로 공연장이 떠나가라 외쳤다.

“히익!!”

진의 말에 반신반의하고 있던 니마는  언저리에 차가운 물체가 닿은 여중생처럼 깜짝 놀라 귀여운 비명을 내질렀다.

“봐봐, 긁어 부스럼이라니깐?”
“아하하하...”
“공연 스탠바이 1분 전입니다. 준비해주세요.”
“네! ... 어서 준비나 해.”

진은 진행 요원에게 짧게 대답을 마친  기타의 음이 맞는지 현을 튕겨보기 시작했다. 반면 패닉에 빠진 니마는,

“1...분! 윤! 윤! 어떻게!”

현을 튕기며 최종적으로 일렉트로닉 기타를 점검하고 있는 진의 오른팔에 매달리며 또 다른 패닉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떻게 하긴 준비해.”
“어떻게?!”
“알아서.”
“너무해!”
“뭘 너무해.”

진은 팔에 매달려 있는 니마를 집에서 애교 부린다고 달라붙는 포미를 쫓아내듯이 털어냈다.

“... 진정해, 이하늘. 공연 망치겠어.”
“그, 그러는 너도 떨고 있잖아!”

초이는 숄더키보드 위에 얹은 오른손을 눈에 보일 정도 떨고 있었다. 만약 키보드가 공연장에 연결되어 있었다면 손에서 나타나고 있는 긴장감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테크닉을 선보이고 있을 것이다.

“둘 다 괜찮을 거야. 그... 연습 많이 했잖아.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아니, 아니야. 부족한  같아. 지금이라도 당장 연습을!”
“... 연습!”
“30초도 안 남았는데 연습은 무슨 연습이냐? 어서 준비나 하라고.”

패닉에 빠진 니마가 우왕좌왕하고 긴장감을 주체하지 못하는 초이가 떨리는 손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키보드의 음을 조율하고, 진이 현을 튕기며 음을 체크하는 가운데... 30초라는 시간은 말 그대로 총알처럼 지나갔다.
나나가 서 있던 스테이지의 화려한 조명들이 일제히 꺼졌고 공연장 안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물들여 버렸다. 관객들은 그동안 방출했었던 열기를 식히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저마다 짧은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를 신호로 진과 니마가 무대 위에 지정된 위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웅성 웅성 웅성

사물의 윤곽 정도만 간신히 잡힐 정도로 어두운 무대로 뛰쳐나간 일행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바닥에 새겨져 있는 야광표식을 보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동안의 무대 경험과 리허설의 경험에 의지해 기본 세팅을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연결됐나? 마이크 테스트 1, 2, 3. 1, 2, 3.”
-네, 잘 들립니다.30초 뒤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네.”

대답을 마친 진은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깊게 숨을 내쉬었다.

“으~ 윤. 어떻게 해. 속이 울렁울렁거려.”
“아까까지만 해도 나나랑 같이 놀고 싶다고 했으면서. 웬 엄살이야.”
“나나가 아니라 나나카! 그리고 관객으로 같이 놀고 싶다는 거였지!”
“이랬다가 저랬다가. 애냐 진짜...”
“... 프로답지 않아.”
“시, 시끄럿!”

아, 참고로 진과 니마, 초이는 ‘뜻이 담긴 말’로 대화 중이었기에 관객들에게는 물론이었거니와 마이크로 무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관계자들에게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스탠바이 10초 전입니다.

“그러면... 초이 넌 시작 잘 끊고.”
“...기인지우(杞人之憂).”
“나 참... 니마 너도 괜히 떨 필요 없어. 평소처럼만 해. 평소처럼만. 넌 평소처럼만 해도 충분히 베스트니까.”
“그게 된다면...”
“이제 우는소리  시간 없어. 준비해.”

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대 위에 있는 3명이 실루엣이 보일 정도로 옅은 조명이 들어왔다.

-우오~~~!!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관객들은 무대 위에 조명이 들어오고 누군가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공연이 재개된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첫 환호성이 공연장으로 울려 퍼지고 약 3초 뒤, 강한 불빛을 내뿜는 스포트라이트가 진과 니마, 초이에게 각각쏟아졌다.
그렇게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확실하게 드러나자,

[재네 뭐냐...]
[아,  게스트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이름이 영어였는데...  였더라.]
[무슨 게스트냐. 김빠지게...]
[나나카도 쉬어야지 인마.]

관객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나카가 안 나왔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사람부터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 모를 이들에 대한 아유까지...그 중에는,

[아! sky다!]

sky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정체를 몰라 수군거리기 바빴다.
 목소리는 무대에 서 있는 일행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진이야 뭐 말할 것도 없었고 니마와 초이는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객석에서 감돌고 있는 분위기로 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행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반쯤은 예상했던 반응. 어느 공연이든 게스트가  공연자보다 환영받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원래 준비했었던 대로 손을,목을, 시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Let`s!! show time!”

초이의 입에서 시작된 허스키하면서도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가 무대에서 객석으로 울려 퍼져 나갔다.

[뭐, 뭐야?]

저마다 딴짓을 하고 있던 관객 대부분은 자신의 무대에 집중하라는 듯한 초이의 질타 아닌 질타 깜짝 놀라 무대에  있는 3인방에게 시선을 돌렸다.
초이는 시선이 모인 것을 느끼자마자 건반 위에 올려놓은 오른손을 빠르게 놀리기 시작했다.
한편, 무대 옆에 홀로 남겨진 민정은,

“후우~ 괜히 나도 긴장되네.”

양손을 있는 힘껏 움켜쥐며 연주를 시작한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연습을 봐왔었기에 그 실력을 믿어 의심치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바이킹을 타고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다.
그렇게 민정이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에잇!”

소리소문없이 민정의 배후로 접근한 나나가 양팔을 쭉 뻗어 배를 꽈~악 끌어안았다.

“?! 나, 나나? 벌써 갈아입었어?”
“응. 인기 성우는 옷 빨리 갈아입기 스킬을 기본으로 익히고 있으니까.”
“아~ 그... 공연을 많이 해봤다는 말이지?”
“응! 역시 민정은 이해가 빨라서 좋아.”

나나는 민정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걸이를 푼 다음에 민정과 나란히 서서 일행이 하는 공연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역시~ 대단한걸? 윤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노릴 수도 있을 텐데. 니마나 초이도 기대 이상의 실력이고.”
“나나가 봤을 때도 잘하는 편이야?”
“응응. 프로하고 해도 전부 믿을 정도일걸? 마음 같아서는 셋 다 납치해서 같이 밴드라도 결성하고 싶지만... 그만둘래. 윤에게 미움받을 테니까.”
“아하하하...”

민정은 나나의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감정이 느껴지자 가볍게 쓴웃음을 삼켰다.

“그런데 민정.”
“응?”
“윤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인지 생각해 봤어?”
“선배에 대해서?”
“역시...좋아하지?”

나나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윤과 니마, 초이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민정에게 있는 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목소리에서는 저번 남산 케이블카에서와 다를 바 없는 진지함이 전달되고 있었다.

‘나나...’

민정은 케이블카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는 달리 나나가 어떠한 생각으로, 어떠한 마음으로 또다시 질문을 건네는지 대략적으로는 이해가 갔다.
 사건 이후 세피와 니마. 그리고 나나에게 나나와 진 사이에 어떠한 인연이 존재하는지 충분히 들었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인 자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단단한 인연이 두 정령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나나는... 예언 때문에.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멀리하고 있는 거니까.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은데도.’

사실은 계속 진의 곁에 있고 싶을 터였다. 예언 같은 건 무시하고 계속해서 같이 있고 싶을 터였다. 그렇지만 나나는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서...

‘그러니까 지금은... 정말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걸 말해줘야겠지. 선배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나를 위해라도.’

민정은 자기 생각을 꾸밈없이 말하기로 하고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
“... 정말로?”
“응. 하지만.”
“하지만?”
“같이는 있고 싶어.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같이 겪어서 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냥 여태까지처럼 같이 있고 싶어. 지금은 그것뿐이야.”
“음~ 그러면 친구로서 같이 있고 싶다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 그냥... 지금의 관계가 좋은 것 같아.”
“음... 음... 음... 그러면 그런 거겠지. 감정이  ‘이거다!’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니까. 자~ 그러면!”

민정의 갑작스레 톤이 높아진 나나의 목소리에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나나는 민정이 자신에게 시선을 주자마자 주체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민정의 왼손을 낚아챘다.

“준비됐지?”
“응?”
“준비! 준비! 무대에 난입할 준비!!”
“무대? ... 내가?!”
“응! 물론이지.”
“무, 무슨 소리야?! 내, 내가 왜 무대로!!”

뒤통수를 후려치다 못해 혼까지 쏙 빼놓는 나나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민정은 깜짝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에이~ 그러면 왜 민정을 굳이 무대 옆으로 초대했겠어. 그러면 간다!”
“자, 잠깐만!  노래도 모르고! 옷도 그냥 옷이고! 마음의 준비가!!”
“에잇! 그런 건 그냥 기합으로 어떻게든 해봐!”
“기합으로 될 게... 잠깐만!!!”

민정은 나나의 막무가내 앞에서 저항의 ‘ㅈ’자 조차 제대로 꺼내 보지 못하고 나나의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뛰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세계에  걸 환영해! 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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