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백퍼센트 순혈인간-1화 (1/113)

< 프롤로그 >

“맨 뒤에 송한솔, 제대로 못 따라오나!”

이른 아침의 구보 시간. 대열 끝에서 헥헥대는 내게 담임의 노성이 내리꽂혔다.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나 신기했지만 생각해보면 수수께끼라 할 것도 없었다.

그야 아침마다 이렇게 애들 따라가느라 죽도록 헐떡대는 게 요즘 내 일과였다. 사실 이것도 꽤 나아진 편이었다. 첫날에는 쓰러져 토하느라 끝까지 뛰지도 못하고 열외당했다.

내가 죽상을 짓고 다시 속도를 내자, 앞에서 딱히 힘든 기색 없이 뛰고 있는 녀석들이 수군거렸다.

“쟤는 차석으로 들어와서 왜 저런대?”

“연기 아니야?”

“땀 줄줄 흐르는 거 보니 연기 아닌데.”

“나 뭔지 알아 저거. 안에다 모래주머니 같은 거 찬 거.”

미안하지만 다 들린다. 모래주머니는 개뿔이, 학교에서 아침 구보 뛰는데 그딴 걸 달고 있는 정신병자가 어딨어? 어이가 없어서 중지를 들어올려주고 싶었지만 힘들어서 그럴 기력도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팔이 안 올라갔다.

‘진짜 죽겠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두는데 나는 결코 저질체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운동신경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적어도 아침에 학생들 잠 좀 깨라고 가볍게 뜀박질시키는 이런 것에 나가떨어질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놈들이 이상하게 튼튼한 거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앞에서 달리고 있는 같은 반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 있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짐승귀나 뿔 같은 게 달려있는 요상한 꼴을 하고 있었다.

애들이 단체로 훼까닥 돌아서 아침 댓바람부터 할로윈 분장을 하고 뛰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기가 그런 광기의 현장이었으면 당장 나부터 무서워서 도망쳤을 것이다.

전부 이 빌어먹을 유사 21세기 지구가 문제였다.

원래 세계와 비슷한 점이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 있고, 사람들 다 한국어 쓰고, 와이파이도 잘 터지고.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세상엔 마력이라는 무안단물 비슷한 무언가가 펑펑 터져나오고 있어서, 특정한 체질의 사람들만이 그걸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특정한 체질이라 하기도 뭐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99퍼센트는 그 조건에 부합하고 있었으니까.

혼혈(混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피가 몸에 섞여있는 존재. 이 세계 사람들은 피가 짙든 옅든 누구나 무언가의 혼혈이었고, 지금 운동장에서 나랑 같이 뛰고 있는 녀석들은 그 안에서도 거르고 걸러진 혈통서 첨부의 괴물딱지들이었다.

이곳 세한기사전문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명문 중의 명문. 전국에서 손꼽히는 괴물들을 싸그리 긁어다놓은 복마전.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장차 이야기를 뒤흔들게 될 거물들이 몇 명이고 있었다.

집안 내력부터가 대대로 검성인 자식.

마녀들이 다같이 달라붙어 키운 비밀병기.

아버지가 이번 대 마왕 하고 계시는 놈.

자기 힘이 너무 세다 봉인해놓은 힘숨찐.

···그만두자. 읊기 시작하면 열 줄 스무 줄을 떠들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 고로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대단하신 출생의 학우님들께선 가진 몸뚱아리의 성능 자체가 남달랐고, 가벼운 구보라는 것의 기준도 내 상식과는 달랐으며, 그 탓에 나는 이렇게 아침마다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혼혈 죽어.”

온갖 기괴한 혼혈들이 판치고 있는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백 퍼센트 순혈 인간이다.

< 프롤로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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