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선 (3) >
“도전하겠다고?”
“네. 도전이요.”
뭐 돈을 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다고 해서 불합격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교수가 도끼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위협하는 듯한 시선에 앉아있던 녀석들이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뭘 또 저렇게까지 놀란대···.’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조금 째려본 것 가지고 너무 호들갑이 심하다 싶었지만, 면접 자리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이 게임의 의도에 대해서였다. 통과하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합격시켜준다. 대단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아무리 면접관에 교수라 해도 독단으로 벌일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테스트를 하는 합당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서있는 교수 손에서 종이를 빼앗는다는 웃기는 짓거리를 통해 평가할 수 있는 학생의 자질이 뭐가 있을까? 해보라 한다고 진짜 하나 배짱이라도 보겠다는 건가.
‘왜 못해?’
나는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교수는 더욱 날카롭게 벼려낸 시선을 쏘아냈다. 나는 시치미 뚝 떼고 눈썹을 으쓱였다. 교수와 눈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어차피 겁주려는 수작일 뿐이다. 교수가 아무리 살기등등하게 노려본들 아무 생각 안 들었다. 그렇게 서로 눈싸움을 하고 있길 수십 초, 나는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었다.
한 번 누가 이길까 끝까지 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 이상 같이 면접 보러 온 사람들 시간을 빼앗는 것도 민폐였다. 나는 책상 저편에 서있는 교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움직이는 순간 함정 같은 거라도 작동할까 싶었는데, 몇 걸음을 걸어도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교수 또한 정말로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손에 들린 종이를 빼앗은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에 내 이름을 썼다.
“···응?”
펜을 내려놓은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일단 다 쓰긴 했는데. 진짜 이걸로 합격인 건가? 나는 내 이름을 적은 합격증을 가져다가 다시 교수에게 건네주었다.
“저기, 다 썼는데요.”
“1분 43초 걸렸군.”
손목시계를 바라보는 교수가 냉랭한 목소리로 고했다. 뭐야. 설마 속은 건가. 몇 초 안에 결단을 내리고 끝내지 않으면 불합격인 뭐 그런 거였나?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굴리는 내게 교수가 한쪽 손으로 면접실 출구를 가리켰다.
“그러면 너는 이제 돌아가도록.”
“네?”
내 얼빵한 대답에 교수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뭐가 네지? 남은 사람들 면접을 진행해야 하니 돌아가란 말이다. 합격자가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있나? 아니면 뭐 다같이 축하한다는 박수라도 한 번 받고 싶은 건가.”
자, 축하한다고 박수. 교수가 턱짓하자 앉아있던 녀석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손뼉을 쳐주었다. 이내 교수가 다시 면접실 출구를 가리켰다. 진심으로 방해되니 빨리 사라져달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직 상황파악이 안 돼 교수에게 되물었다.
“진짜로 합격 맞아요?”
“합격이다.”
“이거 다 함정이고 여기서 돌아가면 날로 먹으려는 심보 괘씸하다 불합격시키고 그러는 거 아니죠?”
교수는 그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 이상 헛소리를 하면 그냥 합격이고 뭐고 취소시켜 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넵. 갈게요. 지금 갑니다.”
나는 재빨리 양손을 들어 항복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한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문을 닫고 빠져나왔다. 복도 바깥의 시원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이거 뭐지?’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머리를 긁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게 잘 꾸며진 몰래카메라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내 내 옆에 시스템창이 띠링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 세한기사전문학교에 합격하셨습니다.>
<추가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화려한 시작 : 1,000 Credit을 획득합니다.>
<세한 사이드의 시나리오가 시작됩니다.>
···아무래도 진짜 합격인 모양이었다.
* * *
아까까지만 해도 대낮이었던 면접실 창문 바깥에서는 벌써 빨갛게 물든 해가 지려고 하는 중이었다.
“끄윽···!”
한 남학생이 면접실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눈에선 줄줄 눈물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럽게 목을 부여잡고 있다. 한시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쓰러진 학생을 내려다봤다.
“5초도 안 돼서 이 꼴인가? 설마 호흡도 제대로 못할 줄은 몰랐군. 안 좋은 의미로 기대 이상이야. 거기 맨 끝자리 학생, 나가서 밖에 있는 보건선생한테 들어오라 해주겠나.”
이내 들어온 다른 교사가 시체라도 치우듯이 쓰러진 학생을 들것에 태워 끌고 나갔다. 면접실 안에 남은 다른 지원자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게임의 다른 도전자는 없었다. 저런 광경을 보면 당연히 도전할 생각은 싹 가실 것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로 면접이 끝났다. 어차피 질답 내용은 형식적인 것들 뿐이니 별 의미는 없었지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혼자 남은 한시혁 교수는 책상 서랍 안에서 합격증서를 집어들었다.
“이 녀석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버텼는데 말이야.”
한시혁이 종이에 쓰인 이름을 읽어보았다. 이번 기수엔 꽤 많은 학생들이 교란용 결계를 돌파하고 면접실까지 도착했다. 소문으로 듣던 기대주들도 많이들 보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깊은 학생 한 명을 꼽아보라면 단연코 이 청년이었다.
독사 혼혈인 한시혁이 가진 혈통능력 중 하나인 사안(巳眼). 그 능력의 정체는 마력의 감응을 통한 위압이었다.
신화 속 전승처럼 바라본 상대를 그대로 돌덩이로 굳혀버리는 엄청난 능력은 아니었다. 단지 응시한 대상의 움직임을 멈추고, 몸 안의 마력을 원활히 회전시키지 못하게 할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대일 전투에선 충분히 악몽 같은 능력이었다. 사안에 저항한다 해도 어느 정도 움직임이 둔해지는 건 피할 수 없었고, 그렇게 바보가 된 상대를 재정비할 틈도 없이 조용히 묻어버리는 게 한시혁의 방식이었다.
동료 교수한테는 기사답지 않다 잔소리를 듣는 음습한 싸움법이지만, 사안은 일류 기사들 사이에서도 확실하게 통용되는 능력이다. 학생 수준이라면 사안을 마주하자마자 아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는 게 정상이었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떨쳐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안의 위압은 마력을 민감하게 느끼는 인간일수록 더욱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다. 극단적인 경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불수의근이 멈춰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한시혁은 학생들한테 사안을 쓸 땐 어느 정도 힘을 빼고서 위압하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시혁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억지로 따르고 있었다. 딱 팔 하나 들어올리기도 힘들어할 수준으로.
‘이 놈은 그걸 알고 있던 눈치였지.’
한시혁이 턱을 매만졌다. 사안의 위압 속에서 합격증서를 빼앗아 자기 이름을 적어낼 때까지 1분 43초. 처음 1분은 이거밖에 안 되냐는 듯 가만히 서서 이쪽을 도발하느라 그런 거였다. 재미없게 힘 빼지 말고 제대로 붙어보잔 것처럼.
그리고 결국 끝까지 출력을 올리지 않자, 한숨을 쉬더니 아무렇지 않게 합격증서를 빼앗고 사전합격자가 되었다.
전국의 온갖 천재들이 몰려드는 세한에서도 1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사전합격자. 그 출신 녀석들은 하나같이 기형적인 재능의 소유자들 뿐이었지만, 배짱 하나만큼은 이 꼬맹이가 지금까지 봐온 학생들 중 최고라 단언할 수 있었다.
“송한솔이라.”
재밌는 놈이야. 한시혁이 얼굴에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게다가 올해의 사전합격자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양쪽 모두 물건이었다. 학기가 시작되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들을 벌이고 다닐지, 벌써부터 신학기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한시혁은 서류를 정리하고 면접실 문을 쾅 닫았다.
* * *
“망했어요.”
세한기전에 합격하고서 일주일. 나는 쭈그려앉은 채로 한숨을 쉬었다. 요 일주일 동안 상태창을 조사하며 알아낸 새로운 사실 덕분에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있었다.
본론부터 말해, 크레딧으로 올릴 수 있는 능력치엔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능력치를 올려주는 것조차 아니었다.
잠재능력을 개방한다 하는 게 맞았다. 크레딧을 사용해 근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내 근육이 당장 커지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무의식적인 부분에 작용해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을 보다 백 퍼센트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뚱이의 성능 자체를 뛰어넘는 힘은 무슨 짓을 해도 끌어낼 수 없었다. 크레딧으로 능력치를 끝도 없이 올려 혼혈이고 뭐고 다 때려부술 수 있는 패왕으로 거듭나겠다는 내 야심찬 계획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이미 내 몸을 백 퍼센트에 가깝게 활용하고 있었다. 세한기전에 합격해 받은 보상만으로도 모든 능력치를 한계까지 강화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보통 게임에서 똥캐들은 성장 한계가 낮아서 만렙을 찍기 손쉬울 때가 많은데, 지금의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게다가 내 상태창엔 마력이라는 능력치 자체가 누락되어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평범한 인간 몸뚱이엔 그런 기묘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이 달려있지 않았다.
마력이 없으니까 마력의 회전속도를 나타내는 주력 또한 당연히 없다. 주요 능력치 중 두 개가 아예 공백이었다.
고로 마력을 다루기는커녕 느끼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다들 눈 뜨고 싸우는데 나 혼자 장님인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태면 누가 옆에서 마력으로 칼을 들이대도 눈치 못채고 멍청하게 서있기만 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이게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예를 들어 누가 마력으로 환영을 빚어서 보여준다 해도, 나는 마법적인 시각장애인이라 애초에 볼 수가 없었다. 그것 참 대단하다. 싸울 때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개소리.”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결국 혈통도 없는 인간은 평생 약골 신세고, 힘 세고 강한 혼혈님이 짱이었다. 나는 나라 잃은 얼굴로 가진 크레딧을 전부 쏟아붓기 시작했다.
<근력 잠재치가 한계까지 개방되었습니다.>
<민첩 잠재치가 한계까지 개방되었습니다.>
<내구 잠재치가 한계까지···>
모든 능력치가 강화 한계에 달하자 더 이상 크레딧을 쓸 수가 없었다.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하다하다 만렙을 빨리 찍은 탓에 울고 싶은 기분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나 이제 어떡하냐. 막막한 기분으로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혼혈 죽어.”
혼혈 죽어, 혼혈 죽어, 혼혈 죽어. 그 말만 고장난 축음기처럼 반복하고 있자, 내 상태창 위에 알림이 떠올랐다.
<모든 잠재치 개방이 한계까지 완료되었습니다!>
<의식이 몸을 완벽하게 제어합니다. 두뇌의 모든 부분이 활성화되어, 정신 개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염력 스탯이 개방되었습니다.>
“뭐야?”
나는 바보같은 얼굴로 멍하니 알림을 쳐다보았다. 이내 알림창이 사라지고, 원래 있던 상태창 옆에 새로운 화면이 추가로 떠올랐다. 염력이라는 능력치와 관련된 창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새로운 상태창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오.”
혼혈 죽어 취소였다.
< 출발선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