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백퍼센트 순혈인간-7화 (7/113)

< 입학식 (3) >

송한솔을 바라보는 학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입학식 전에 사전합격자들과 면담을 진행하는 건 학장이 매년 해온 관례였다. 바깥에는 격려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이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면담의 진정한 목적은 학기 시작 전 원석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세한기전은 말 그대로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석들의 보고였지만, 그 중에서도 사전합격자 출신들은 특별했다.

사전 테스트의 내용은 매년 ‘1학년 수준으로는 절대 통과할 수 없는’ 것으로 정해진다. 우연이나 행운 따위가 작용할 여지가 일절 없는 순수한 장벽. 그것을 해낸 시점에서 실기시험 따위를 쳐봤자 다른 학생들의 평가만 방해할 뿐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 1학년 수준에 맞춘 커리큘럼으로는 해당 학생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업을 제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형적인 재능을 지닌 학생에게는 그에 맞춘 지도가 필요하다. 그게 천 년을 살아온 학장이 낸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우선은 현자의 눈으로 파악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입학한 학생의 자질, 성향, 버릇 그 전부를.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주며, 특수한 환경이 필요하면 사재를 털어서라도 조성해준다. 그것이 천년서생의 방식이었다.

대놓고 특별 취급이라고 비난한대도 상관없었다. 이 학교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사유물이었고, 이질적인 재능이 예쁘게 갈고 닦이는 모습을 보는 건 학장의 제일 가는 취미였다.

그런데 그 현자의 눈이 지금 아무 것도 읽지 못했다.

‘이상하군.’

현자의 눈은 학장이 천 년 동안 연마해온 관찰안 그 자체가 마법의 영역으로 승화한 것이다. 평범한 주문처럼 마력으로 튕겨내거나 방어할 수 있는 성질의 능력이 아니었다.

현자의 눈으로 상대방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학장의 기나긴 생애 안에서도 요정왕 단 한 명 뿐이었다. 일류 기사들로 이루어진 교수진조차 아무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일개 학생에게 파훼당했다. 그럼에도 학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기뻐하고 있었다.

지혜로운 자는 말 한 마디 없이 어리석은 자의 본질을 간파한다. 그 원리에 충실히 따르는 이 능력은, 사용자가 현명해질수록, 즉 세계를 깊게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강해진다.

단적으로 말해 현자의 눈에서 벗어나려면 상대가 세한의 학장인 자신보다도 ‘세계의 진실’에 깊이 닿아있어야 했다. 그래서 요정왕에게 통하지 않았을 때는 곧바로 납득했다. 그는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홀로 지내온 화석같은 존재니.

하지만 눈앞의 이 신입생은 무엇인가. 이번 대 마왕 녀석조차 현자의 눈으로 보면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런데 고작 열일곱 짜리 소년의 내면을 읽을 수 없다니. 천 년의 지혜를 가지고서도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재미있군.’

그래서 재미있다. 학장의 얼굴에 오래간만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가 정말 유쾌할 때만 짓는 표정이었다.

“자네. 혹시 미래라도 알고 있는 건가?”

“네?”

“···아니. 아무 것도 아니네. 듣지 않은 걸로 해주게.”

나름 농담으로 던져본 말이었지만 앞에 앉은 청년은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재미없는 이야기로 젊은이를 괴롭히는 몹쓸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 물어보는 건 반칙이지.’

눈앞의 소년에게 추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교사가 물어본다 해서 자기 생명줄인 능력을 술술 불어주는 얼간이라면 따끔하게 혼을 내줄 것이다. 학생을 관찰하고 어떤 식으로 단련시킬 지 고민하는 건 온전히 교수의 몫이었다.

“아무튼, 흥미로운 면담이었네. 두 사람 다 이런 노구의 취미에 어울려줘서 고맙군. 뭔가 보답을 해야 할 텐데.”

“저기 저랑은 한 마디도 안 하셨는데요.”

“흐음·, 뭐가 좋을까.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어.”

“저기요?”

고민에 빠진 학장은 이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턱을 매만지는 학장을 한참 바라보던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 학장실을 나왔다.

* * *

세한의 입학식이 시작된 것은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오페라 홀을 연상시키는 대강당, 한쪽에서 학장이 단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오고 있었다. 강당의 커튼이 올라감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학장실에 박혀 두문불출하는 그녀이기에, 기자들로선 현대에 살아있는 전설 속 존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천년서생이 외부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단 것만으로도 입학식은 매년 화제가 되었다.

자길 구경거리 취급하는 걸 싫어하는 학장이라면 한 번쯤 눈썹을 찌푸릴 만도 했지만, 오늘은 상당히 기분이 좋은 건지 카메라에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당연히 기자들은 열광했다.

그와 다르게 학장을 잘 알고 있는 여러 유력자나 교수진들은 죄다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그녀가 저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웃음을 짓는 것은 몇 년에 한 번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쪽의 반응에도 신경쓰는 일 없이, 학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소녀와 같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세한기사전문학교의 자랑스러운 신입생 여러분. 우선, 여러분들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온화한 목소리에 입학생들의 얼굴이 풀렸다. 몇 년을 계속해온 피나는 단련. 실기시험의 그 끔찍했던 관문들. 그 모든 걸 통과하고서 이제야 자신이 명문 세한의 신입생이 된 것이란 실감이 들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눈물까지 머금었다.

그런 이들을 비웃듯이, 학장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미리 위로하지.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는 심정이겠지만, 이 앞에 있는 건 더한 지옥이야. 이제부터 3년간 자네들은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들을 체험하게 될 거네.”

학장은 차가운 눈동자로 좌중을 내려다보았다. 학생들은 심장이 무거워진 듯한 감각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건 기분탓이 아니었다. 학장이 어조를 조금 내리깐 것만으로, 입학생들에게는 마력에 의한 가벼운 위압이 가해지고 있었다.

“인간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시련. 오직 시련뿐이네.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혹한을 맨몸으로 나아갈 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취를 얻을 수 있지. 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시련에 무턱대고 몸을 던졌다간 얼어죽기 십상이야.”

빛나는 재능이 자만하여 자기 자신을 망치는 꼴을 몇 번이고 보아왔다. 결국 눈밑에 파묻혀 지금은 잊혀져버린 영웅 후보생들. 천 년을 살아온 학장은 그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곳은 바로 그걸 도와주기 위한 곳이네. 교수진들은 자네들이 견디지 못할 시련의 정확히 한 발짝 앞을 계속해서 내려줄 거야. 자네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지옥을 선사해주기 위해 여기저기서 내가 직접 모은 우수한 인재들이지.”

그 말에 옆에 앉아있던 교수들이 일어나 인사했다. 세한기전의 교수진은 한시혁을 비롯해 전원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류 기사였다. 학장의 인맥이 아니었다면 상식적으로 애들 가르치겠다 교편이나 잡고 있을 면면들이 아니었다.

“세한의 수준에 적응한다고 해서 결코 편해지는 일은 없네. 그럴 때마다 더욱 혹독한 시련을 자네들에게 내릴 테니까. 자네들은 계속해서 추위에 떨며, 계속해서 굶주려야 해. 적당한 만큼만 훈련하면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었던 거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학 수속을 밟도록 하게.”

이제야 살겠다 안도하는 학생들에게 한 번 더 혹독한 추위를. 세한(歲寒)이라는 이름은 그것을 의미했다. 조개의 살을 어떻게 후벼 파야 더 예쁜 진주가 만들어질까만을 생각하는 수업 방침. 놀랍게도 연설에 위축된 학생은 거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앉아있는 건 하나하나가 산처럼 쌓인 불합격자들을 짓밟고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학생들이었다. 적당한 2류 수준으로 만족할 어중이떠중이 따위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이번 기수의 정점에 어울린다는 듯 확신에 가득찬 얼굴로 웃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입학생용 좌석의 맨 앞줄, 수석의 바로 옆자리에서 죽고 싶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청년 한 명을 제외하고는.

‘개싫다 진짜···.’

그런 생각이 얼굴 바깥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자의 눈이 통하지 않으니 그게 본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송한솔을 흘겨보며 피식 웃은 학장이 고개를 돌렸다.

“하나같이 야심으로 가득찬 얼굴들이 보기 좋군. 그러면 자네들이 맨 처음 끌어내려야 할 먹잇감을 소개하지. 수석 입학자 차대엽, 차석 입학자 송한솔. 앞으로 나오도록!”

호명받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앞에 섰다.

나온 두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학장이 품에서 기다란 두루마리를 꺼냈다.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는 게 세한의 학풍이지만,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효율이 나올 리 없다. 경쟁을 이겨낸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준다.

원래대로라면 부상은 장학금과 시설 사용료 면제였지만, 방금의 면담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흥미롭게 해준 학생에게 그런 재미없는 보상을 줄 수야 없었다. 꺼낸 두루마리를 본 교수들이 옆에서 놀라 얼굴을 굳혔다.

“야, 시혁이. 저거 설마···.”

“맞아. 천년창고의 소환비서다.”

천년서생이 시대를 걸쳐 모아온 온갖 기보들이 잠들어있다는 창고. 학장이 꺼낸 두루마리는 그 창고에 비치된 보물들을 언제든지 자신의 곁에 소환할 수 있는 스크롤이었다.

“이 두루마리에 써있는 것들 중 하나를 고르도록. 학장으로서 자네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선물해주도록 하지”

그 말에 교수들이 또 놀랐다. 천년창고의 보물을 아무 거나 한 가지 선택해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세한을 졸업한 학생 몇 명에게만 주어졌던 부상이다. 이번 수석과 차석은 어지간히도 학장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물론 수백 년 전 보물들이 널린 천년창고에서 뭐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이름만 봐선 알 수 없었다. 확실히 말해 학생 입장에서는 운으로 찍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저 학장은 조금 기묘한 물건이라면 뭐든지 수집하는 괴짜다. 잘못하면 아무 쓸모도 없는 꽝 품목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거지···.”

단상 앞에 선 송한솔은 뭐가 그리 좋은지 몸을 부르르 떨며 크크크 웃어대기 시작했다.

< 입학식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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