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소개 (4) >
“이 목걸이 말인가요?”
금예린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반쯤 기가 찬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얼마나 가치있는 물건인지는 알고 그런 말을 꺼내냐는 듯한 눈빛. 그럴 만도 했다. 붉은 진주로 장식된 저 목걸이는 금가에서 제일 가는 보물이었으니까.
‘여우구슬.’
평상시에는 아무 효과도 없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주인이 불의의 기습을 당해 치명상이 될 만한 공격을 당하면, 대신 깨져서 몸을 지켜준다. 호위를 대동할 수 없는 세한기전에서 당주인 금예린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차고 있는 주물.
게임의 효과로 표현하면 ‘이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는 도중엔 전투불능이 되는 공격을 받아도 한 번까지 HP 1로 살아남는다, 발동할 시 이 아이템은 사라진다.’ 라는 식이었다. 저주와 주술에 특화된 금가에 전해져 내려올 만한 가보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내기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단 티를 너무 내기도 했고, 이쪽이 걸어오는 승부를 덥썩 받아들일 만큼 금예린이 바보도 아니다. 하지만 여우구슬을 직접 보니 너무 탐이 나서 말이 나왔을 뿐이다.
‘사실상 보너스 목숨 1개니까.’
다른 혼혈들은 죽을 위기에도 무슨무슨 능력을 쓴다 하면서 사기를 치고 달아날 수 있겠지만, 나는 한 대 툭 치면 죽는 유리몸이었다. 적에게 공격을 허용하면 뭐라 대응할 틈도 없이 게임 오버 직행이었다. 하지만 저게 있으면 다르다.
여우구슬은 저주를 이용한 보호구다. 한 명이 미리 죽음이란 댓가를 지불하고, 산제물이 되어 주조해낸 전설적인 주물. 그래서 얼마나 강한 공격을 맞든 한 번까진 무조건 빈사상태로 살아남는다. 최종보스의 즉사기조차 한 번은 막아냈다.
‘빠르게 두 대 때리면 그냥 죽긴 하지만.’
무엇보다 여우구슬은 이미 저주로서 완성된 물건이기에 마력이 없는 나도 문제없이 쓸 수 있었다. 저게 있으면 똥배짱을 부리며 할 수 있는 행동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어차피 금예린은 바꿔치기니, 환술이니, 액막이 부적이니 자기 몸 지킬 수단 많으니까 제발 저거 하나만 양보해줬으면 좋겠다.
“욕심으로 가득찬 표정이네요. 제가 정보를 떠들 때는 관심도 없다는 눈치시더니. 그런 얼굴은 좋아해요.”
금예린이 종이컵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추가로 조건을 걸죠.”
그러자 금예린의 몸 주변에서 각각 다른 기하학적 형태의 마법진이 세 개 나타났다. 그녀의 주변에서 언제나 돌아가고 있는 삼중의 결계였다. 주술사로서 가진 보디가드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자기 몸 만큼은 끔찍이 아끼는 녀석이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을 제치고 1등으로 여기 도착할 수 있었을까에 더해. 저는 언제나 들키지 않게 몸 주변에 세 가지 결계를 전개하고 있죠. 이 결계들의 능력을 전부 알아맞춘다면, 이 목걸이. 드리도록 하겠어요.”
이래도 해볼 테면 해보시든가 하는 도발적인 웃음.
“재밌네.”
나는 금예린의 몸을 축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세가지 결계를 바라보았다. 마력의 흐름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발화나 발광처럼 마력이 일으키는 결과적인 현상은 나도 당연히 볼 수 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음음 고개를 끄덕였다.
“항복이라고요? 현명하네요.”
“아니, 하자고.”
내 말에 금예린이 다시 부채를 휙 펼쳤다.
“후후, 진심인가요.”
“근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옆의 쓰레기통을 향해 휙 종이컵을 던졌다. 살짝 빗나갈 뻔했지만, 염동력으로 한 번 튕겨내 깔끔하게 골인. 그리고 고개를 돌려 금예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고맙게도 보물을 주겠다는 사람한텐 응당 이런 얼굴로 대해줘야 했다.
“세 개 아니고 네 개잖아?”
흠칫. 뭔가 잘못된 걸 깨달았는지 금예린의 호흡이 멈췄다.
삼중결계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문 사람 대부분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장의 결계가 하나 더 있다. 지금도 아마 금예린의 주변을 언제든 대응할 수 있게 돌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결계는 장화. 다른 결계에 간섭하고 결계의 효능을 극대화시키는 푸른 결계. 남의 결계를 견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주로 쓰는 건 자기가 쓰는 결계들의 보조.”
나는 손가락으로 소파의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네가 제일 먼저 여기 도착한 방법이 바로 이거지. 우리 담임이 타고 온 전이 결계의 술식에 간섭해, 자길 교직원이라 인식하게 하고 모니터실로 단숨에 순간이동.”
확실히 어떤 방법으로든 출구만 오면 된다고 했으니, 교수가 사용한 결계를 살짝 만져서 같이 타고 와도 반칙은 아니다. 내 해설지를 채점하는 금예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능력 자체를 들키는 건 사실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어떤 집단도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순 없고, 금가의 당주쯤 되면 어디서 뭘 하든 지켜보는 눈이 있다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결계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건 무엇인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금예린은 부채가 구겨지는 것도 상관없이 주먹으로 꽉 쥐었다. 이제부턴 한 단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 게임 할 때도 느꼈던 건데 얘는 화낼 때가 제일 호감이다.
“두 번째 결계는 홍련. 전개하면 네 등 뒤로 돌아가 탄창처럼 회전하는 결계. 부적을 만들고 투사하는 직접 공격용이지. 각 원소의 성질을 지니는 오행부부터, 부적을 정제할 틈이 없을 떄는 마력을 여우불 탄환으로 날릴 수도 있어.”
특히 홍련의 마력투사는 자동요격이 가능해 조무래기들 처리에 딱이었다. 이 결계 덕분에 금예린은 유틸리티 플레이어이면서도 직접적인 화력 승부 또한 다른 녀석들에게 꿀리지 않게 된다. 이 두 가지 결계가 금예린의 평소 주력이고.
“그리고 세 번째 결계가 바로···.”
“그만.”
금예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 말을 막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아무런 보안도 없는 데다 구석에서는 CCTV까지 돌아가고 있는 곳이다. 내가 여기서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정체를 말했다가 누구한테 도청당할지 어떻게 아는가.
금예린의 얼굴엔 식은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결국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찌 되든 드러날 능력이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그녀에게 있어서도 비장의 수단 중 하나. 섣불리 남의 입 밖에 나오도록 둘 수는 없었다.
“항복이라고? 현명하네.”
아까 했던 도발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금예린이 나를 째릿 노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어깨를 살짝 떨던 금예린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제가 졌어요. 최대한 과대평가를 하고 임하자는 마음가짐이었는데···. 그것조차 과소평가였네요.”
금예린이 순순히 걸고 있던 목걸이를 벗었다. 안 주겠다고 힘으로 찍어누르는 건 불가능했다. 그거야말로 금예린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힐 테니까. 당주인 이상 자신이 모든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녀가 내 손에 목걸이를 놓았다.
잠깐 자신의 가문에 전해내려오는 가보를 쳐다보고. 한 순간 뒤에는 다시 친절한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라있었다. 솔직히 화나서 째려보는 것보다 저 얼굴이 더 무섭다. 재빨리 여우구슬을 주머니에 챙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거 뒤끝 없기다?”
“후후, 어떨까요. 저는 미련이 많은 성격인데.”
금예린이 부채를 휙 펼치고 여우처럼 웃었다. 반드시 돌려받을 테니, 그 사이에 깨뜨려 버리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눈이었다. 나는 섬뜩한 눈웃음을 더 마주하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한시혁 교수한테도 눈싸움으론 진 적 없는데.
필사적으로 전환할 화제를 찾는다. 모니터실 화면에 비치는 유매는 절찬리에 같은 반 친구들 사냥을 하고 있었다.
‘다른 놈들 다 전투불능 만들고 도착하겠단 마인드.’
쟤는 아예 둥지 진행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 조지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마력의 제어가 예술의 영역에 달한 유매는 저 둥지 안에서도 함정을 발동시키지 않고 마음대로 마력을 쏘아낼 수 있다. 말 그대로 둥지의 독재자라 할 수 있었다.
“저건··· 심하네요.”
“정신병이야.”
모든 입구를 왔다갔다 돌아다니며 다른 애들을 학살하다, 더 이상 사람이 안 보일 때에야 유유히 앞을 걸어간다. 게임에서도 둥지 안에서 유매랑 만나면 강제 전투 시작이었다. 금예린 또한 보기만 해도 질색인지 으으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찰랑대는 여우구슬을 만져보았다. 아주 기분이 좋다. 너무나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 감각이었다. 나는 바라보던 유매의 화면을 가리키고 금예린에게 말했다.
“솔직히 이것만 받고 튀긴 좀 그러니까, 유매의 능력은 알려줄게. 개평이라 생각해. 내 능력은 알려줄 수 없지만.”
정확히 말하면 알려줘봤자 장난치는 거냐고 정색만 당할 게 뻔했다. 내 상태창이 일주일 전에 갑자기 변했는데, 너희들이 쓰는 마력이랑 달리 나한테는 염력이란 게 생겼고 어쩌고···. 조롱한다고 싸대기나 안 맞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금예린과 나는 같이 유매의 학살극을 구경했다. 아직 둥지를 많이 진행하지 못한 학생부터 전부 그녀에게 뒤를 당해 쓸려나가고 있었다. 내가 손에 턱을 괴고 말했다.
남의 능력을 멋대로 발설하는 건 나쁜 일인가 싶었지만, 솔직히 지금 쟤가 둥지에서 벌이고 있는 일이 더 나빴다. 게다가 유매의 능력은 안다고 해서 대응이 되는 게 아니니.
“일단 네 추측도 반쯤은 맞았어. 유매가 마녀 혼혈로서 가진 기본 능력은 마력 통치와 같은 계열의 능력이야.”
“같은 계열이라니···. 설마 그보다 상위라고요?”
“쟤가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던 혈통능력은 마력독재. 마력통치가 자기 체내의 마력은 물론 주변 대기에 흐르는 마력까지 제어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이라면, 유매는 아예 남의 몸 안에 흐르고 있는 마력에 직접 간섭할 수 있어.”
금예린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어쩌라는 건가, 그게 사실인데. 유매는 그냥 가만히 서있는 적한테서 마력을 다 증발시켜 바보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까진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
금예린은 긴장한 얼굴로 유매의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 말이 사실이란 근거를 하나라도 찾아내보기 위해서겠지. 기지개를 편 나는 금예린의 손목에 삿대질을 했다. 금예린은 온갖 가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보물창고였다.
“그 팔찌 주면 대응법도 알려준다.”
“···필요 없어요.”
그것 참 아쉽네. 나는 포기하고 쩝 입맛을 다셨다.
< 자기소개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