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매 (2) >
길고양이가 냐앙, 하고 놀라서 도망갔다.
일어난 유매의 얼굴은 말 그대로 악귀의 형상이었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게 무엇인지 바로 이해가 됐다. 나는 솔직히 내 예상이 물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만 막으면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얘는 범인 반쯤 죽여버릴 때까지 절대 안 멈춰.’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살벌한 표정이었다. 그야 누가 위층에서 자기 머리에 화분을 떨어뜨리려 했으면 미수에 그쳤다 해도 몇 대는 패줘야 기분이 풀리는 게 정상이긴 했다. 하지만 유매의 경우 적당히 패는 수준으론 안 끝났다.
첫날에 둥지에서 그런 짓을 해놓고선, 둘째 날에는 친구 세 명을 피떡으로 만들어 퇴학시킨다. 남의 눈으로 볼 때는 수업을 방해하기만 하는 재앙 덩어리 문제아가 맞았다.
유매가 자기 사정을 스스로 설명할 만큼 남 눈치를 보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차대엽을 포함해 반 아이들 전부가 오늘을 기점으로 그녀를 적대하게 된다. 그 결과 유매는 2학년이 될 때까지 대화할 수 있는 친구를 한 명도 못 만들었다.
고립된 교실 속에서, 오로지 언니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며 괴물로 자라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양 손바닥을 펴고 말했다.
“잠깐만. 일단 진정해. 엄청 화난 건 알겠는데, 다행히 아무도 안 다쳤으니까 여긴 내 얼굴을 봐서···.”
“비켜.”
유매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원래 이 녀석의 성격이라면 경고할 것도 없이 마력으로 벽에다 내동댕이쳤을 텐데, 그래도 자기 도와준 사람이라고 친절하게 말로 경고해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비켜줄 수는 없었다.
나는 옆에 선 차대엽에게 핸드폰을 넘겨받았다. 화면엔 방금 벽 뒤에 숨어서 촬영한 사건의 전말이 담겨있었다.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책임 소재는 명확했다. 나는 유매에게 핸드폰을 내밀고 선명히 찍혀있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봐, 얼굴 다 보이게 증거도 찍어뒀다고. 굳이 네가 직접 안 가도 쟤넨 이미 망했어. 세한기전이 이런 일에 얼마나 엄격한지 몰라서 바보같이 실수한 거란 말이야.”
“비키라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유매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날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방금 화분에 머리를 맞을 뻔한 것치곤 엄청나게 냉정했다. 그 냉정한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선 철저하게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유매 또한 자신이 상당히 미움받는 위치에 서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범인들을 잡아 반죽음을 만들어야 한다. 또다시 이런 일이 생겨 귀찮아지는 일이 없도록. 힘의 차이와 공포를 같은 반 애들에게 쑤셔박는 것이다.
화가 난 거라면 진정시키고 말겠지만, 대단히 이성적인 사고 끝에 도된 결과이기에 사실상 설득은 불가능했다.
이렇게 되면 실력행사로 막아서는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혼자서 세한기전의 엘리트 스무 명 가까이를 학살한 저 마녀 님을 상대로 고작 십 초도 버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 가장 든든한 원군을 옆에 대기시켜두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유매 쪽을 삿대질하며 외쳤다.
“가라 차대엽! 수석의 실력을 보여줘!”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엥?”
차대엽의 대답에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유매와 차대엽은 치고 박고 싸우다 완전히 원수지간이 되어야 했지만, 그건 차대엽이 피떡이 된 놈들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있는 유매의 모습만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만 보면 그냥 사람 패는 양아치니.’
하지만 내가 데려온 덕분에 차대엽 또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되었다. 다음 학기나 돼서야 밝혀지는 오해가 이미 풀려있는 것이다. 차대엽이 팔짱을 꼈다.
“정당한 복수야. 저 녀석들이 내 친구라면 모를까, 상관없는 놈들이 싸움을 건 걸 내가 막아설 이유는 없지.”
그는 가족과 관련된 이유로 자기 능력을 남용해 남을 해치는 인간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혐오하는 수준이 아니라 증오하고 있다. 그래서 원래는 유매와 척을 졌지만, 지금 차대엽이 마음에 안 들어하고 있는 건 오히려 범인들 쪽이었다.
나는 차대엽의 어깨를 잡고 붕붕 흔들며 말했다.
“아니 그것도 절차 따라 해야지, 쟤 그냥 가게 두면 오늘 사람 죽는다고! 도덕 시간에 잤어? 사적제재 금지 몰라?”
“교수님한테 보고하러 가는 걸 수도 있지.”
“지금 쟤 눈빛을 보라고 그러게 생겼나!”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온 유매가 내 앞에 섰다. 나보다 키가 작은데도 거대한 맹수라도 눈앞에 둔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열일곱 짜리 꼬맹이가 내도 될 분위기가 아니다.
“도와준 건 고마운데. 얘기 끝났으면 비켜.”
이걸로 비키라는 말은 세 번째였다. 내가 게임 좀 해봐서 아는데 유매가 한 사람한테 똑같은 경고를 세 번이나 해주는 건 정말로 예외적인 일이었다. 보통 한 번, 아무리 친한 사이어도 두 번부터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게 하고 시작하니까.
유매는 인내심을 이미 한계까지 발휘해주고 있다.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차대엽은 정말로 나서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자신이 굳이 그 못마땅한 놈들을 지켜줄 의리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 답답한 멀대 놈. 그리고 당장 옆으로 비키지 않으면 벽에 날아가 처박히는 것은 내 쪽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하던 나는,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뭐···!”
“하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유매가 인상을 찌푸리고, 차대엽이 깜짝 놀랐다. 나는 유매의 얼굴에 손을 올려 한쪽 볼을 꼬집고 있었다. 강하게 꼬집어 늘어난 볼이 아파보였다. 그리고 옆에서 커다란 바람소리가 들렸다.
콰앙! 폭풍을 갈라내는 듯한 소리가 귀 옆을 강타했다. 순간적으로 검을 빼내들어 휘둘러준 건 뒤에 서있던 차대엽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긴 어렵지 않았다. 내 도발에 유매는 그냥 나까지 박살을 내버리기로 결정했고.
“미안한걸. 얘는 친구라.”
눈 깜짝할 새에 나에게 몰아친 마력의 격류를, 차대엽이 검으로 흩어버렸다. 도와주지 않았으면 난 지금쯤 저쪽 벽에 처박혀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손을 떼고 몇 걸음 물러나자, 입술을 잘근 씹은 유매가 노려보았다.
“죽어.”
“쟤가 나 죽인대 살려줘!”
나는 차대엽의 어깨를 붙잡아 앞으로 던져놓고 달려서 도망쳤다. 거의 전조 없이 내리쳐져 바닥을 강타하는 마력의 망치를, 차대엽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검으로 받아냈다.
“잘난 척 하는 거야?”
그것에 오기가 생겼는지 유매는 나보다 차대엽을 무릎꿇리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싸우는 게 아니라 오직 버티면서 발을 묶는 데에만 집중하는 차대엽을 쓰러뜨리긴 어려울 것이다. 달려간 나는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교실 문을 쾅 열어 안에 앉아있는 녀석들을 본다. 유매가 손을 댈 수 없게, 내가 먼저 범인을 교무실에 넘긴다.
* * *
교실에 돌아온 남자는 평정을 가장하며 앉아있었다.
방금, 감히 자신을 갖고 놀며 굴욕을 준 빌어먹을 계집애한테 화분을 떨어뜨렸다. 작전은 창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실행했고, 자신의 풍계 주문은 마력의 잔재도 거의 남지 않는다. 그 계집애가 씩씩대며 돌아와 범인을 찾으려고 소리칠수록, 반 애들은 반쯤 정신병자 취급할 것이다.
이미 교실엔 그 계집애를 싫어하는 놈들 천지였다. 완벽한 물증이 없는 이상 결백을 주장하기만 해도 이쪽 아군이 더 많았다. 만약 짜증을 못참고 폭력을 써주면 더 대박이고.
하지만 손바닥이 덜덜 떨리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저질러버렸다는 실감 때문은 아니었다. 계집애가 피를 질질 흘리며 양호실에 가든 조퇴하든, 뒤에서 몰래 꼴 좋다고 비웃어주려 했는데. 갑자기 구석에서 튀어나온 녀석이 막아버렸다.
‘멍청한 새끼···!’
하필 거기서 화분을 떨어지는 걸 보고 있었다는 점보다도, 그걸 왜 굳이 막아준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이렇게 되면 유매는 그다지 화를 내지도 적의를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어제 수업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저 유매라는 마녀는 남들 인생 망치려고 작정한 암세포 같은 년이었다. 입원시켜 수업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게 하는 게 모두에게 이득이다. 그렇다. 자신은 모두가 바라는 일을 대신 해준 것 뿐이었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녀석이 교실에 들어왔다. 떨어지는 화분을 미련하게 멈춰서 막아준 차석 놈이었다. 괜히 고개를 돌리면서 의심당할 빌미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자연스레 문 쪽에 시선을 보내자, 걸어오는 송한솔과 눈이 마주쳤고.
예감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싸늘한 확신이 들었다.
‘알아낼 거다, 이 녀석은.’
흐지부지 넘어갈 가능성은 없었다. 저 놈은 반드시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다. 이런저런 걱정들이 사고를 스쳤다.
옆에 있던 다른 두 놈은 일이 잘못되자 발을 빼며 우리는 말렸다고 한 마디씩 말을 얹었다. 만에 하나 그놈들을 추궁하면 자신의 이름이 나올지도 몰랐다. 식은땀이 이마에 줄줄 흘렀다. 이 상태로 추궁당하면 어색한 태도를 들킬 것이다.
설마 아직도 저 놈이 이쪽을 보고 있나? 1초가 영원같이 길었다. 엎드린 채로 살짝 주변을 힐끔거렸다. 이내 차석 놈은 문을 열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겨우 안심했다. 남자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획을 세워야 해, 계획을.’
불안할 땐 화장실 맨 구석 칸에 틀어박히는 게 그의 버릇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안쪽에서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첨벙!! 변기물 소리와 함께 얼굴이 물 안에 처박힌다. 위쪽에서 등을 꽉 짓밟는 발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하고 있었다. 힘으로 자세를 풀려 하지만 무슨 어이없는 일인지, 모든 관절이 잡혀있는 것처럼 어떠한 힘으로 묶여있었다.
“푸하아!”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이 겨우 호흡을 허락해준다. 옆을 돌아보니 바로 그 송한솔이 화장실 문을 닫아 잠구었다.
“알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미안한데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 결국 여기 올 것도 뻔해서 하품이 다 나와.”
“뭐, 뭘···.”
“야, 시치미 떼지 마. 또 물 먹을래?”
남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몸을 묶고 있는 힘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저항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장악당해있는 공포감. 이내 씨익 웃은 송한솔이 그의 눈 앞에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비치고 있는 건 자신이 꾸민 흉행이 노골적으로 찍혀있는 영상이었다.
“자수하자. 알았지?”
목소리는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웠다. 오히려 나는 널 지켜주고 있는 거라는 듯이. 그 자비로운 음성에, 변기물에 사레가 들려 콜록대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유매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