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예린 (1) >
점심시간의 비어있는 도서실. 나는 철물점에 가서 사온 몇 가지 자물쇠를 책상 위에 꺼내 보여주고 있었다.
“딱히 어려운 게 아니야.”
나는 유매 앞에 분해한 자물쇠의 부품들을 늘어놓은 뒤, 투시로 엿본 내부 구조의 평면도를 대충 그려서 설명해주었다. 스프링과 홈판, 드라이버 핀과 바닥핀의 배분. 구멍에 넣고 돌릴 때 열쇠에 파인 각각의 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유매 또한 마도구 작성에 특화된 마녀 혼혈이니, 이 정도 장치의 구조 정도는 보기만 해도 이해할 것이다. 사실 내가 뭐라고 가르쳐줄 것도 없이 자물쇠 하나 사서 분해해봐, 라고 말만 해주면 알아서 방법을 터득할 수도 있는 정도였다.
<마인드맵 확장 : 염동력 Lv.2>
<마인드맵 확장 : 투시 Lv.1>
나는 멀쩡한 자물쇠 하나를 집어 구멍 쪽에 엄지를 가져다댔다. 투시로 안쪽을 확인하며 천천히 염동력을 제어한다.
굳이 염력의 덩어리로 열쇠 자체를 재현해서 꽂아넣을 필요는 없었다. 그건 너무 돌아가는 방법이었고 일일이 조형하기 번거로웠다. 요는 구멍 안쪽 모양을 파악한 뒤 내부에 있는 실린더 플러그를 회전시켜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자 딸깍, 하고 자물쇠가 열렸다. 나는 열린 자물쇠를 유매 쪽에 슥 밀어주었다. 도서실 문을 따고 들어오는 묘기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달라 한 것은 유매 쪽이었다. 내가 없을 때도 여기 와서 혼자 쉬고 싶으니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자물쇠 따기가 별 대단한 비기인 것도 아니고, 한 번 호기심이 들었다면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은혜를 입혀두는 편이 나았다.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는 건 나쁜 일이야, 따위의 말은 양쪽 모두 꺼내지 않았다. 차대엽이나 진소란처럼 고지식한 녀석들이라면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나나 유매는 필요하다면 이런 일쯤은 태연히 저지를 수 있는 불량 학생이었다.
“해볼래?”
“좋아.”
자물쇠를 받아든 유매에게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생깨나 할 거다.’
혼혈들은 격렬하게 날뛰는 마력을 폭발시킬 수는 있어도, 지금처럼 찔끔찔끔 작게 움직여야 하는 작업엔 약한 경향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똑같이 움직여주는 염력과 달리, 마력의 세밀한 조작에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으니까.
‘약자에겐 약자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거지.’
가진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낼 수 있는 최소 출력 또한 높아진다는 모순. 바로 거기에 내가 찌를 수 있는 틈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유매가 철컥, 하고 자물쇠를 땄다.
“그러네. 쉬운걸.”
“······.”
나는 삐져서 입술을 찡그렸다. 강해질수록 반대로 섬세함이 어쩌고는 개뿔이. 결국 천재란 놈들은 다 이런 법이다.
나는 가방에서 도시락 보따리를 꺼냈다. 어제 차대엽과 같이 학식을 먹은 뒤, 빠르게 판단을 끝내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었다. 이 학교에서 학식을 이용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딱히 학식의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들어가는 재료들은 다 비싼 것들 투성이였다. 다만 영양 밸런스를 완벽히 고려한 트레이닝 식단이기에 맛이 더럽게 없다. 안 그래도 수업에 치여 사는데 밥까지 맛 없는 건 용납이 안 됐다.
무릇 학교에서 먹는 점심식사란 영양 밸런스 따위 개나 주라 하고 좋아하는 걸로만 채워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야 점심을 기대하며 오전 수업을 버틸 수가 있다. 내가 식기를 들자, 솔솔 풍기는 소시지 냄새에 유매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뭐야.”
“뭐냐니. 너는 밥 안 먹냐.”
그러자 유매는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냈다. 마력으로 열량을 보급할 수 있는 마녀에게 있어서, 식사는 최소한의 영양 보급만 된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러니 요리 따위의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식단을 고집하는 차대엽과는 다른 의미로 합리적이었다.
유매가 알약을 꿀꺽 삼키고, 나는 깨작깨작 도시락을 먹어갔다. 점심을 1초 만에 끝내고 딱히 할 일도 없는 유매는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문어 칼집 낸 소시지가 맛있으면 맛있을 수록 무언가 죄를 짓는 기분이다.
“하나 먹어?”
“필요 없어.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도시락을 먹었다. 하지만 계속 보고 있다. 맛있을까 하고 관찰하는 시선이 계속 나를 바라봤다. 혼자만 밥을 먹고 있는 건 역시 뭔가 부담스러웠다.
“···날 보지 말고 책이라도 읽고 있는 건 어떨까.”
“내가 언제 널 봤다는 거야?”
“내가 아니라 내 소시지를 봤다, 로 정정할게.”
“안 봤다고.”
대놓고 봐놓고서 안 봤다 하면 안 본 게 되나? 하지만 말싸움을 해봤자 의미가 없으니 알았다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또 보고 있다. 지금 알았는데 남이 내가 밥 먹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건 상당히 수치가 느껴지는 일이었다.
“야.”
내가 부르자, 얼른 휙 창가로 고개를 돌린 유매가 다시 이쪽을 쳐다보았다. 이쪽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눈초리였다.
“왜 자꾸 부르는 거야?”
“먹어.”
내가 이쑤시개에 소시지 하나를 꽂아 유매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유매는 미간을 찌푸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내가 이걸 먹어야 하는 건데.”
“아니, 불편해서 그러니까 하나 먹으라고.”
“바보 취급하지 마!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심드렁하게 먹으라 흔들었더니 갑자기 화낸다. 나는 염력으로 소시지가 꽂힌 이쑤시개를 띄워, 빨리 먹으라고 유매의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이를 꽉 깨물던 유매는 필요 없다고! 하며 소리친 뒤 마력을 휘둘러서 소시지를 튕겨냈다.
내 소시지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나는 정색하고 바닥의 소시지를 바라보았다. 딱히 소시지를 준비한 수고 따위가 생각나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차피 그냥 마트에서 산 냉동 데워서 놓은 게 끝인데 뭐. 중요한 건 쟤가 조금 짜증내며 낸 마력 정도에 내 염력이 간단히 흩어졌다는 점이었다. 확실히 아직은 힘의 차이가 역력하다.
“아···.”
그리고 숨을 삼킨 유매가 바닥의 소시지를 바라봤다.
“네, 네가 잘못한 거야. 싫다고 해도 자꾸 그러니까.”
“그래.”
맞는 말이긴 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닥의 소시지를 주워 바라보았다. 닦아서 먹기는 좀 그런가.
“네가 그러니까···으!”
그러자 입술을 깨물던 유매가 성큼성큼 다가와, 히스테릭한 동작으로 내 도시락의 소시지에 차례대로 이쑤시개를 쿡쿡 찔러넣었다. 그렇게 소시지 꼬치를 만든 유매는 그대로 도서실 문을 쾅 열고 나가버렸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왜 하나 먹으랬더니 세 개를 가져가···. 책상에 앉은 나는 텅 빈 반찬을 보며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 * *
교실에 돌아와서 착석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음 시간은 ‘둥지 전략의 이해’였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이론수업 중에서는 제일 실전에 가까운 수업이라 할 수 있었다.
“안녕 여러분. 내 수업은 처음인가? 차우진이라고 해.”
교실에 들어온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얼굴에는 선글라스. 삐죽삐죽한 머리 사이엔 칼날처럼 얇은 금속제의 뿔이 귀 뒤로 솟아있다. 헤실헤실 웃는 꼴이 별로 강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했다는 얼굴을 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경박한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저 남자는 모든 기사들의 정점에 서있는 1급.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 학장을 제외한 세한기전 교수진 중 이견 없는 최강이었다.
검귀 혼혈, 차우진. 두 자루의 신검(身劍)을 다루는 칼날술사이자, 데뷔전에서 마물 천 마리를 베고 그 해의 신인 톱이 된 인물. 현재 가장 이름이 알려진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이만한 인재를 교직에 묶어둘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세한기전의, 정확하게는 학장인 천년서생의 대단함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느긋하게 수업 따윌 맡고 있어도 될 전력이 아니다. 사인 받고 싶다는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차우진에게 쏟아졌다.
수업의 내용은 간단했다. 실제 둥지에서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지. 검술이나 무술 같은 개인 능력이 아니라, 토벌대로서 둥지를 진행할 때 필요한 판단과 그에 따른 근거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역시 실전을 치른 기사와 그렇지 않은 교수의 지도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일류 기사라면 남을 따라오게 할 지휘력을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해. 나쁜 판단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이게 최선이라고 납득을 못 시켜서 동료한테 의심을 받는 거지.”
확실히 그러했다. 구성원 각각이 이게 될까 안 될까,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맞지 않을까 망설이다가 움직임이 늦어진다면, 츙분히 성공할 수 있는 작전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를 한 번 납득시켜 봐.”
씨익 웃은 차우진이 학생들에게 용지를 나누어주었다. 그곳에 적혀있는 건 토벌대 구성 후보인 30명 전후의 기사의 정보와, 토벌 대상인 특수 마물의 스펙. 그리고 둥지 주변의 상황이 화상 포함 몇 장 분량으로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이 중에서 네 명까지를 고른 뒤, 작전 브리핑을 써서 제출하는 게 과제였다. 차우진이 방금 말했듯 중요한 건 단순히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게 내 생각에 최선 같다고 남에게 납득을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펜을 휙휙 돌리며 나누어준 사례를 읽어보았다.
‘대못 수확자? 얘 좀 짜증나지.’
이미 몇 번이고 게임에서 쓰러뜨려본 마물이었다. 강해보이는 순서로 네 명을 줄 세운 뒤, 총공격을 해서 최대한 빨리 우두머리를 쓰러뜨린다. 이게 제일 한심한 오답이었다. 이렇게 박으면 반드시 전멸하도록 상황이 짜여져 있으니까.
“토론해도 된다. 아예 서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똑같이 써서 제출해도 돼. 남의 조언을 받는 것도 다 능력이니.”
그러자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이 테스트에는 ‘정답’이 정해져있다. 가장 효율적으로 해당 특수 마물을 퇴치할 수 있는 구성. 상당한 난항이라 기사들 사이에서 몇 번이고 토론이 되었고, 이미 결론이 나있는 케이스였다. 게임 안에서도 기사단 한 명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난 정답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온갖 둥지 공략을 몇 번 했는데 고작 모범 답안 내밀고 저 잘했어요 하겠냐고. 확실히 말하는데 둥지 공략 경험으로는 차우진보다 내가 위였다. 결국 게임 얘기일 뿐이지만.
‘그러니까. 산군 혼혈 한 명을 앞에 두고서···.’
그러자 내 자리 앞에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뭘 하려고 온 건지도 대충 감이 잡혔다. 이건 이미 이긴 승부라며, 엄청나게 자신만만한 얼굴로 겉으로만 상냥한 미소를 띄우고서 귀를 쫑긋쫑긋 거리는 녀석.
‘자기는 정답 알고 있다 이거지.’
날 벗겨먹을 생각 만만인 금예린이었다. 기사학회의 논문을 읽다 운 좋게 이 케이스를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누가 1등할지, 내기할까요?”
이기고 튀는 겁쟁이는 아니시겠죠? 하고 부채 뒤의 눈웃음이 나를 도발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너는 진짜 어디 가서 도박하지 말라고 충고를 하고 싶은데, 눈앞의 떡을 안 먹을 수도 없고. 저쪽이 먼저 걸어오는 데 어쩌겠는가.
“좋지.”
나는 금예린을 향해 씨익 미소지었다.
< 금예린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