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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백퍼센트 순혈인간-23화 (23/113)

< 차대엽 (2) >

나는 차대엽과 둘이 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꼭두각시 나무의 씨앗이라는 건데.”

나는 벤치에 앉아 씨앗을 만져보았다. 차대엽은 난간 앞에 서서 캠퍼스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지만, 평소처럼 무심한 태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초조함을 억지로 참는 표정이었다.

“이걸 생으로 삼키면 씨앗이 숙주의 몸에 작용해서 길을 넓혀주고, 마력을 더 민감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각성제 비슷한 효과인데, 일시적으로 마력 총량도 늘려주는 물건이지.”

이런 게 세한기전 안에서 발견된 이유는 명확했다. 장사다. 원래 지금은 사업의 준비 단계일 뿐, 알음알음 소문이 돌다가 제대로 교내에 돌기 시작하는 건 2학기 초부터였다.

한 번 복용해서 민감해진 감각을 체험하면 더 높은 경지의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다고 약을 팔면서, 학기 내내 반에 넘쳐나는 괴물들한테 무참히 짓밟히고 깨져버린 1학년과 2학년의 패배자들을 상대로 허황된 희망을 팔아제끼고 있다.

씨앗을 처음 섭취한 인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선명한 감각과 몸에서 차오르는 마력에 일종의 전능감을 느낀다. 약효가 끝나 원래대로 돌아온 뒤엔, 한 번 더 그 상태가 되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변명을 대며 의존을 시작한다.

악질인 점은, 사실 이 씨앗은 먹으면 먹을수록 마력의 총량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야 마물이 인간 좋은 일을 해줄 리 없었다. 팽팽하게 부풀어있던 풍선이 돌아왔을 때처럼, 한 번 한계를 넘을 때마다 몸 안의 마력은 열화된다.

나는 손 안에 든 씨앗을 하나 더 터뜨렸다.

“씨앗이 넓혀준 길에 익숙해지면 평상시 마력 제어가 둔해지거든. 다른 곳도 아닌 세한에서 그렇게 됐다간 끝. 씨앗 없이는 제 구실을 못하니 또 먹는 악순환이 생기는 거지.”

사실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부피가 작고 숨기기 쉽다 해도 이 학교에 살아있는 마물을 반입한다는 리스크를 생각하면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목적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세한기전에 장차 온갖 곳에서 활약할 인재의 보고. 천재들에게 밀려 바닥을 깔아주는 낙오자가 되어버린 녀석들이라 해도, 바깥에서 보면 충분히 능력 있는 학생들이다. 장기말로 굴리기에는 딱 좋을 만큼.

“누가 묻어둔 건지 찾을 수는 없나?”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알아. 근데 그 인간 패봤자 소득이 없을걸. 자기도 누구한테 산 건지 모를 테니까.”

나는 손 안의 씨앗들을 바라보았다. 원예부의 멍청이는 이걸 먹으려고 산 게 아니라 순수하게 키워보고 싶다고 수소문을 해서 구매했고, 식물 재배에 천재적인 재능이라도 있었던 건지 진짜로 마물이 발아해버려 대형 사고가 터지게 된다.

지금은 원예부실 안에 있던 화분에 한 번 더 하면 죽는다, 라고 포스트잇을 붙여놨으니 어련히 몸을 사릴 것이다.

“신고는 안 하는 건가? 선도부에든 교무실에든. 그러려고 부실 문을 부숴서까지 들어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할 수야 있지. 증거가 떡하니 있으니 조사도 제대로 할 테고···. 근데 그러면 장사 접고 잠적할 게 뻔하잖아.”

세한기전에서 이런 짓을 벌일 만큼 배짱 있고 영리한 놈이다. 거래는 조직이라고 부를 만한 것 자체가 없이, 완전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꼬리를 잡히지 않는 게 아니라, 꼬리를 잡혀도 상관없는 것에 중점을 둔 구조였다.

“결국 구매자들만 줄줄이 정학당하고 끝이지.”

애초에 난 범인의 이름을 알고 있고, 지금 당장 지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 고작 해야 장사를 더 못하게 방해하는 수준이 고작이다.

“그 정도로 끝나는 건 짜증나잖아.”

“그래.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기분이 찝찝해.”

차대엽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라는 건 다 해줄 테니 방법은 네가 생각해달라는 뜻이었다. 정색한 차대엽의 얼굴은 솔직히 말 걸기 무서울 만큼 위압감이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차대엽의 등을 팍 때렸다.

“표정 좀 풀어라.”

“···미안. 얼굴에 드러나있었나.”

차대엽이 한 손으로 자신의 양뺨을 쥐었다. 벤치에 앉아 숨을 내쉬자, 크게 인상을 쓰고 있던 표정은 평소의 조용한 얼굴로 돌아와있었다. 나는 옥상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 두 개를 뽑아 한쪽을 앉아있는 차대엽에게 휙 던져주었다.

“녹차가 좋은데.”

“주는 대로 드세요.”

사주는 거에 말이 많아. 나도 캔커피를 따서 벤치에 앉자, 옆에 앉아서 바닥만 빤히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말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 상태야.”

나는 차대엽을 돌아보았다. 사정을 대충 아는 나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사귄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놈에게 말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였다. 아마 친구에게 나름대로 성의를 담아 지금 자신이 화나있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차대엽의 아버지. 당대 검성의 자리에 오른 칼날술사.

혈통시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대단한 강함을 자랑하는 인물이지만, 차대엽이 말한 대로 그는 지금 행방불명 상태였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바깥에는 집 안에 은거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미 알 만한 자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차대엽은 그것이 범죄조직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검성이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억지력이 되는 힘의 상징이었으니까. 그들이 차대엽의 아버지를 해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사실 그리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어. 오히려 집안에선 나한테 말 한 마디 거는 일이 없었지. 나도 어머니와 형은 좋아하지만··· 아버지는 대하기 어려워하는 편이었고.”

차대엽이 캔커피를 들고 꿀꺽꿀꺽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손바닥에 빈 깡통을 쥔 채로 꽈악 주먹을 쥐었다.

“생각이 바뀐 건 내가 열네 살쯤 때였나. 형이 집에서 없어졌던 날.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이성을 잃고 화를 냈었어. 아버지한테 맞은 건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지. 충격이었어. 아버지는 가족에게 무관심하다 생각했으니까.”

꽉 쥔 차대엽의 주먹 안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저게 사람 손 안에서 나와도 되는 소리인가 소름이 돋았다. 이내 손바닥을 펴자 깡통은 초승달 모양으로 압착되어있었다.

“누구나 가족의 일이 되면 그렇게 화를 내는 게 당연해.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할 거다. 가족으로서 당연하게.”

차대엽은 완전히 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 녀석에게 있어 세상 모든 범죄자는 전부 아버지를 해친 공범이었다. 뒷세계에 깔려있는 ‘검성이 방해된다’는 분위기 자체가 그러한 흉행을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차대엽은.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건 내 신조야.”

이 세상의 모든 범죄자를 싹 다 박살내서라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내고 말겠다는 허황된 꿈을 진심으로 쫓고 있다. 그것은 진소란처럼 질서를 추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미워서 그런 것이었다. 화가 나니까 때려부수고 싶어한다.

사실 차대엽에게 있어서는 허황된 꿈이 아닐지도 몰랐다. 이 놈이 제대로만 성장한다면 진짜 이 세상 모든 범죄조직과 혼자서 싸워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끝에 자기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없을까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무튼, 나쁜 놈들 쥐어패고 싶다는 거지.”

“그래.”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주모자를 바깥으로 끄집어낼 필요가 있고, 차대엽은 범법자를 박살내고 싶어 한다. 나와 차대엽은 벤치에서 일어나 둘이서 행동을 개시했다.

* * *

나와 차대엽이 며칠 동안 한 일은, 조금씩 돌기 시작하는 마물의 씨앗을 중간에서 빼돌려 폐기하는 일이었다.

이 사업의 주모자인 2학년생은 대단히 철저한 성격이었다. 아주 작은 단서도 남기지 않기 위해, 결코 운반책과 구매자가 얼굴을 마주치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약속장소에 물건을 놓는 것과 수령 사이에 몇 시간 정도의 시간차가 있다.

내가 파고든 것은 그 틈이었다. 어느 장소를 거래 지점으로 삼는지에 대해선 조사할 필요도 없이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곳을 차대엽과 내가 싹 돌아가며, 따로 지령에 바뀐 점은 없는지 사이코메트리로 확인하며 모든 씨앗을 빼돌렸다.

슬슬 꼬맹이 두 놈이 사업 준비를 방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주모자가 행동에 나설 시간이었다. 일이 커져서 선도부 전체가 움직이며 전쟁을 선포했다면 모를까, 고작 신입생 두 명의 방해 때문에 아예 장사를 접고 싶지는 않겠지.

차대엽은 혼자 휘젓고 다녀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내 쪽이다. 언제 어디서 잠복이나 습격을 당할지 모르니 최소한의 보험이 필요했다. 내 한 몸을 지켜줄 수 있는 보디가드가. 내가 거리를 걷고 있자, 뒤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야 너, 뭐하고 있었어?”

다가온 남자는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걸어왔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배시시 웃는 의문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뭐야 이거.”

“아니, 못 알아보겠어? 섭섭하네. 나야 나.”

“네가 누구신데요.”

“나라고. 나라니까?”

신종 정신병자인가 싶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눈을 번쩍 뜬 남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고선 이제 알겠지?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나는 유쾌하게 따라 웃어주며 남자를 삿대질했다.

“아! 너였어? 와, 맞네. 진짜 너였구나?”

“그래, 나라니까? 오랜만···”

<마인드맵 확장 : 염동력 Lv.2>

말을 잇기도 전에 남자의 얼굴을 염력으로 후려쳤다.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서 내 전력을 다한 염동력에 강타당한 남자는, 바닥에 튕기며 저만치 굴러갔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통화를 눌렀다. 차대엽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하나 잡았다.”

나는 땅바닥을 구른 남자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 차대엽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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