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대엽 (3) >
“벌써 꼬리를 잡았다고. 대단한걸.”
어두운 뒷골목, 전화를 받은 차대엽이 놀라며 말했다.
혼자 따로 행동을 취하고 있던 친구에 대한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며칠 동안 송한솔과 같이 다니며 알게 된 건, 녀석은 요령이 없는 자신과 달리 여차할 때 자기 몸 하나 빼낼 방법은 확실히 만들고 나서 행동에 나선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를 정보들을 속속 물어오는 것도 그렇고. 가벼운 분위기와 달리 빈틈이 없었다. 친구가 성과를 냈다고 하니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쪽은 이쪽대로 몰려와서. 끝나면 다시 걸게.”
차대엽이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올려다보면,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괴한들의 무리가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허나 지레짐작을 하는 건 자신의 나쁜 버릇이다. 차대엽은 일단 확인을 위해 괴한들에게 물었다.
“···단체로 길이라도 잃은 건가? 나도 아직 이 주변 지리는 잘 몰라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걸.”
“꼬맹아, 넌 지금 이게 길 물어보러 온 것처럼 보이니?”
남자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저거 이제부터 처맞을 거 알고 현실 도피하는 거잖아, 그래도 안 떨고 장하다 야, 하면서. 차대엽이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 없단 말 많이 들어. 그러면 다른 할 말이 있나?”
“그런 거 없어. 그냥 넌 오늘 피떡이 되는 거야.”
송한솔이 예상한 대로였다. 이 놈들은 차대엽이 누군지도 모르고, 누구한테 어쩌다 찍혀버린 건지도 알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었다. 단지 보수를 받았으니 사람을 피떡이 되도록 쥐어패려 몰려든 것뿐. 편리한 인스턴트 폭력이었다. 적당한 린치를 가해주면 탐정놀이에 취해있던 녀석들은 무서워 발을 뺄 거란 생각이겠지. 사내가 웃었다.
“누구한테 밉보여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건지는 네가 알아서 생각하고. 팔다리 몇 개만 부러뜨릴 테니 가만히 있어.”
그 말에 차대엽의 얼굴이 완전히 식어들었다.
정색한 표정은 상당한 위압감이 있었지만, 괴한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여기 모인 인간들은 거의 전원이 기사의 자질을 지닌 성골이었다. 표적이 검귀라는 점은 전해들었고, 이미 충분한 준비를 하고 이만한 인원을 데려온 것이다.
아무리 명문 세한의 엘리트님이라지만, 결국 학생은 학생일 뿐이다. 사람 조지는 일로 밥 벌어먹는 프로 상대로, 그것도 일 대 다수라는 상황에서 실전 한 번 제대로 못 겪어본 코흘리개 1학년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오산이었다.
첫째, 차대엽은 이미 힘깨나 쓴다는 깡패들을 상대로 몇 번이고 실전을 경험한 몸이었고. 둘째, 차대엽은 아무리 과소평가를 한다 해도 결코 세한의 1학년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
어두운 그늘 아래에서 차대엽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마력을 머금은 눈동자의 푸른 안광이 도깨비불처럼 흔들린다.
그늘 속에서 촛불처럼 춤추는 안광에 놀라는 것도 잠시. 더 이상 시간을 주면 안 된다 판단한 괴한들이 차대엽을 덮쳤다. 손에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무방비한 애송이다. 다같이 달려들어 뒤통수에 몽둥이를 후려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쇠지레나 방망이를 비롯한 모든 연장들은 허상을 때리는 것처럼 차대엽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갔다.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차대엽은 단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을 뿐인데 어떤 공격도 맞지 않았다. 당황하는 기색에서 차대엽은 실망을 느꼈다. 이 자들은 약자를 간단하게 괴롭혀왔을 뿐, 진정한 검귀를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이다.
우두머리 격 되는 남자에게 걸어간 차대엽이 손으로 그의 목을 졸라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대로 발을 가볍게 굴리자, 몸이 총알처럼 튀어나간다. 콰앙! 다음 순간 목을 잡힌 남자의 머리는 저편에 있던 전봇대 기둥에 반쯤 처박혀있었다.
“너희가 이제부터 당할 꼴은, 그냥 나한테 밉보여서다.”
차대엽의 푸른 눈동자의 안광이 섬뜩하게 일렁였다.
귀안(鬼眼).
검귀가 검귀라고 불리는 이유. 그 혈통능력의 실체는 극한상황에서나 진입할 수 있는 전투집중 상태를 의식적으로 끄고 켤 수 있는 체질이며, 귀안이 활성화되면 온갖 힘들의 방향과 크기를 직관적인 형태로 시각화해 포착할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저 녀석 손에 무기가 없다고! 맨몸인 꼬맹이 하나한테 져서 되겠냐 이 자식들아!”
소리친 것은 우두머리였던 남자의 오른팔이었다. 방금 보인 움직임에 압도된 괴한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포위망을 갖추었다. 이미 코흘리개 학생을 가지고 논다, 따위의 여유는 없었다. 무기와 숫자의 우위로 짓눌러야 한다.
“무기가 없다니. 그게 무슨 착각이지.”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진 우두머리를 내버려두고, 차대엽이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흘려들을 수 없는 도발이었다.
단순히 단단하고 빠르기만 한 건 반쪽짜리 검귀일 뿐. 귀안과 함께 또 다른 혈통능력 하나를 다룰 줄 알게 되는 것으로, 비로소 한 사람 몫의 검귀로 인정받고 칼날술사란 이름을 칭할 수 있다. 그리고 차대엽은 역대 최연소 칼날술사였다.
“신검(身劍) 발현.”
차대엽이 한쪽 팔을 들자, 손바닥 앞에서 마력의 급류와 함께 자그마한 금속 조각이 모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이 되어있었다. 체내의 연금기관에서 자신의 수족과 마찬가지인 고유의 무기를 만들어 꺼낸다.
칼자루를 쥔 차대엽이 괴한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 * *
염동력으로 다짜고짜 때려놓고 뭐하지만, 나는 친한 척 말을 걸어온 의문의 남자에게 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 결과 난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남자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응. 그 있잖아, 형님 알지? 너 보고 싶다더라 오랜만에!”
“아아~ 그 형님? 알지 알지.”
나는 장단을 맞춰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이 머저리는 갑자기 염동력에 맞고 날아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원래 친구끼리 이렇게 인사했잖아 왜 그러냐? 하고 시치미를 떼니 아 그랬지 참,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자기 쪽에서 사과했다.
아마 나한테 최면 비슷한 걸 걸려고 했던 모양이고, 지금도 내가 걸려있다 착각하는 중인 것 같았다. 하지만 텔레파시로 정신 감응을 할 수 있는 내게 그런 외부에서의 암시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슬쩍 얼굴 옆에 알림창을 띄웠다.
<시나리오 퀘스트 : 2. 호랑이굴>
<세한기전 안에서 암암리에 사업을 벌이려 하는 학생의 뒷배, 그 조직의 정체를 밝혀내 아지트에 잠입하시오.>
이 녀석한테 순순히 속아주는 척하며 이렇게 따라가고 있는 게 바로 이 퀘스트 때문이었다. 지금 마물의 씨앗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건지 추궁하려고 날 본거지까지 납치라도 하려는 모양인데, 그건 이쪽도 바라는 일이었다.
이 모든 일을 벌인 녀석은 뒷세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폭력 조직 보스의 자식이었다. 후계자로서 관록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지지 기반과 파벌을 만들기 위해 세한에 꼭두각시 나무의 씨앗을 반입한다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솔직히 후계자니 어쩌니 해봐야 빛바래는 감이 없지 않았다. 같은 반에 마왕의 아들이 있는데 동네 조폭들 아가씨가 뭐 어쨌다는 말인가. 하지만 확실히 지금 내가 혼자서 아지트에 잡혀간 뒤 몸 성히 돌아올 확률은 제로라 봐도 좋았다.
그야 애들 장난 같은 폭력서클이 아니라 진짜배기 조직인 것이다. 현역 기사들이 온다고 해도 정면에서 밀어버리긴 힘들었다. 실제로 게임에서 차대엽과 진소란 둘이 겁도 없이 덤볐다가 패배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30분쯤 지나자, 나는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있었다.
“이런 새파란 애송이한테 상품을 다 뺏겼다고? 어떻게 구해준 물건인데. 그놈도 자릴 이어받으려면 아직 멀었군.”
곰방대를 뻐끔뻐끔 물고 있는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자가 교내에 씨앗을 반입한 자식의 아버지이자, 폭력 조직 호랑이굴의 수장이었다.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온 남자가 이제야 제정신이 들었냐는 듯 비웃었다.
나는 슬쩍 뒷문을 바라보았다. 비어있는 폐공장 부지를 사들여 멋대로 개조한 것. 역시 조직의 아지트라는 것인지, 먼지 냄새 나는 커다란 공간은 철문으로 막혀있었다. 아마 차대엽이 와도 저 문을 뚫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알림창 띄워서 아지트 잠입 성공 보상 받게 쇠사슬 좀 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내 몸의 안전을 보장해줄 인간에게 연락을 해두었다. 따라오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뒤쪽의 철문이 맥없이 쿵 쓰러져 열렸다.
“와, 진짜잖아?”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로 아지트 안에 들어온 것은,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였다. 한 손에는 프린트해서 가져온 듯한 종이를. 한 손에는 새하얀 검을 한 자루 들고 있었다. 묶인 나를 본 남자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한솔이니? 얼굴 보는 건 처음이네.”
“···뭐냐, 네놈은.”
의자에 앉아있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심히 심기가 언짢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야 자기 아지트에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이 문을 잘라버리고 나타나면 경계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아예 무시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종이를 툭툭 두드렸다.
“용케 일주일 만에 이만큼이나 조사했네. 엽이는 이런 데에 소질이 없거든. 사실 이런 게 다 청춘이고, 어른이 끼어드는 것도 촌스럽고. 웬만하면 둘이 알아서 가지고 놀라 놔두고 싶은데. 여긴 아직 너희가 놀기에는 벅찬 거 같아서.”
그는 아예 나 말고 다른 인간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남자는 다른 부하들을 데리고 온 게 아니라 진짜로 혼자였다. 이곳 호랑이굴엔 단련된 조직원이 어림 잡아 서른 명 이상에, 이쪽 전력은 묶여있는 나를 제외하면 저 남자 단 한 명. 하지만 위기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가 않았다.
남자는 터벅터벅 걸어와 내 쪽에 손을 내밀었다.
“대엽이 형인 차대운이야. 네가 송한솔 맞지? 편지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앞으로도 엽이랑 친하게 지내줘.”
“저 묶여서 악수 못 하는데요.”
“아, 그러네. 나도 참.”
그리고 차대운은 웃는 얼굴 그대로 옆쪽에 검을 휘둘렀다. 피가 튀며 몸을 숨긴 채 기습을 해온 조직원 한 명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차대운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대화하는데 끼어들지 마. 예의가 없어.”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구는 아이를 훈계하는 어조였다. 이내 차대운이 내 몸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검으로 간단히 끊어낸 뒤 내 손을 잡아 악수했다. 나는 솔직히 쇠사슬에 묶여있던 아까까지보다 이 남자 옆에 선 지금이 훨씬 무서웠다.
인상 쓰며 앉아있던 아저씨도 입에서 곰방대를 떨어뜨렸다.
“말도 안 돼. 태식이의 갑주를 단칼에···.”
“부두목! 괜찮습니까!”
방금 차대운을 덮친 사내가 나름 오른팔 같은 존재였나 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옆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차대운이 들고 있는 것은 검귀가 몸 안에서 만들어내는 신검(身劍)이었다. 마검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화려한 능력을 지닌 차우진이나 차대엽의 검과 달리, 차대운이 지닌 신검의 특성은 아주 수수했다. 절삭력이 강하다. 그것뿐.
하지만 그것도 정도를 넘어서면 무엇보다 흉악한 필살이 된다. 검귀 혼혈이고 산군 혼혈이고 한 번 베는 것으로 양단해버리는 방어불능의 검. 몸으로 받아낼 수도 없고, 무기로 막아낼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도망치는 것 뿐이다.
“일단 밖에 있는 것들은 다 치웠는데. 너희도 빨리 덤벼주겠어? 일하다가 온 거라 30분밖에 시간이 없어.”
이 남자를 여기 부른 시점에서 상황은 끝났다. 명실상부 최강의 검귀 중의 하나니까. 호랑이굴이 아니라 다른 동맹 조직들이 다같이 쳐들어와도 차대운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안심하는 저편에서 든든함보다 섬뜩함을 느끼는 것은, 혈통시대의 후반부에 이 남자가 보일 행보 때문이었다.
‘탈선자.’
누구보다도 가족을 아끼는 형인 차대운은, 몇 년 전부터 지하에 자신의 아버지를 감금하고 있다.
< 차대엽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