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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백퍼센트 순혈인간-28화 (28/113)

< 담민우 (4) >

박쥐 혼혈의 조혈술은 무난하면서도 강력하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피를 마력으로 조형해 어떤 형태의 무기든 만들 수 있기에, 딱히 불리한 상황 없이 모든 국면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만능이라는 것은 사용자의 역량이 부족하면 이도 저도 아닌 조잡한 능력이 된다는 걸 의미했다.

검을 만들어 근거리에서 싸우든, 중거리에서 망토로 견제하든, 원거리에서 말뚝을 날리든. 모든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각 분야의 숙련도를 골고루 올려야 한다. 어느 한 곳만 죽어라 파고든 특화형 능력과 정면승부를 하면 당연히 밀린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조혈술사는 만능이기를 포기하고 검술이라면 검술, 투척이라면 투척이란 식으로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영역 하나에만 몰두하는 편이었다. 그야 엄청 고생해서 만능이 되어봐야 남 보조해주는 조역밖에 더 되겠는가.

그리고 담민우는 바로 그 조역이 되고 싶어했다.

딱히 자신이 대단해질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옆에서 도와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담민우는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단련했고, 망설임 없는 확신과 천재적인 감각은 그의 스타일을 확립하게 해주었다.

“무결점···.”

관중석에 앉아있는 금예린은 부채를 꽉 잡고 식은땀을 흘렸다. 한 순간만에 끝나버린 유매나 진소란의 전투와는 달리, 지금 담민우와 송한솔의 싸움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담민우의 망토가 채찍처럼 늘어나 땅바닥을 후려친다. 그리고 땅바닥에 박힌 망토는 그대로 담민우를 끌어당겨, 손 안에 만들어진 피의 검이 송한솔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거의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송한솔이 운동화에 손을 가져다대자, 새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재빨리 거리를 벌리자, 검붉은 말뚝들이 송한솔을 에워싼 채로 쇄도했다. 모든 종류의 공격들이 전부 일류의 기술과 정밀성을 지니고 있었다.

송한솔은 지금 말 그대로 담민우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과녁이 되어있었다. 송한솔은 개시 직후부터 담민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만 있을 뿐이다. 그건 그것대로 대단한 일이지만 결국에는 시간 문제였다.

“한 대만 맞추면 네 승리다, 담민우!”

관중석에서 일어나있는 자세빈이 응원했다. 옆의 늑대귀 여학생은 그걸 왜 말해 바보야, 하고 답답하다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러했다. 한 대만 맞추면 이긴다. 부상당해 둔해지면 후속타를 피할 수 없다, 같은 게 아니었다.

‘흡혈술.’

담민우가 조혈술로 만든 무기를 이용해 상대 몸을 후벼파 안의 생명을 착취하면, 그것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 상대방의 신체구조와 혈통능력을 거의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

아마 지금 송한솔이 필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맹공을 피하고 있는 것은, 꽁꽁 숨기고 있는 패로 일발 역전을 노리기 위함일 것이다. 자신의 공격 스타일을 들켜버리면 가장 대처하기 곤란한 거리에서 불리한 싸움을 강요당하게 될 테니.

하지만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해 흡혈당하는 순간, 숨긴 패 따위 의미가 없어진다. 담민우 또한 그 능력을 쓸 수 있게 될 테니. 게다가 담민우의 출생은 특별하다. 같은 혼혈은 물론 마물의 능력까지도 일부분 재현할 수 있는 탓에, 존재 자체를 기밀로 감금당해있던 박쥐 혼혈의 금단의 아이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 흡혈술 따위 무서워서 쓸 수도 없는 게 정상이지만, 지금은 완전히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진심을 낸 담민우가 이기지 못할 상대 따위 그리 없다. 세한기전의 첫 대련에서 당당히 흡혈을 사용해 이긴다면, 그 얼룩진 과거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늑대 여학생도 자세빈과 같이 일어나 자신의 친구를 응원했다.

“그걸 써버려, 담민우!”

“넌 할 수 있다, 담민우!”

호들갑을 떨며 소리치고 있는 관중석의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송한솔을 끊임없이 견제하던 담민우는 전개해두었던 조혈 무기들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지명 기술이 나와서.”

“쇼맨십 정신이 투철하신가봐.”

“그것 말고도··· 심리전은 나름 특기라 생각했는데, 너한테 삼지선다를 거는 건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아.”

담민우가 순순히 인정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상대방이 대응할 수 없는 공격으로 기습하는 게 담민우의 필승법이었지만, 송한솔은 이쪽 생각을 순간적으로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얄밉게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동체시력이나 순간속도 자체는 평범하다 못해 느린 편인데, 이상하게 다 피해버린다.

“다 예측한다면, 예측해도 상관없게 공격하겠어.”

담민우의 눈이 번쩍 뜨이고, 마력을 쏟아부어 순식간에 스무 개가 넘는 적색의 말뚝을 전개했다. 저만한 숫자가 탄막을 이루어 일제히 쏘아지면, 궤도를 읽고 말고 이전에 물리적으로 피할 수가 없다. 담민우가 손을 들어 송한솔을 가리켰다.

“이런 낭비는 좋아하지 않지만.”

소모를 감안하고 전개한 특공이었다. 말뚝들이 그저 단순하게 송한솔을 포위하며 쇄도했다. 정면으로 쏘아지는 말뚝 몇 개는 무언가의 힘에 의해 튕겨나갔다. 다만 옆에서 날아온 말뚝 하나가 송한솔의 어깨를 스쳐지나가 출혈을 일으켰다.

“끝이군.”

자세빈이 입꼬리를 올렸다. 스쳤을 뿐인 말뚝이 저렇게 피부를 찢어버린 건 의아했지만, 저만한 출혈량이라면 충분히 흡혈술을 발동할 수 있다. 그 생각대로 송한솔을 꿰뚫은 말뚝을 회수한 담민우는 그것을 자신의 몸 안에 받아들였다.

신체적인 능력도 혈통능력도, 담민우의 몸이 송한솔의 상태를 재현하기 시작한다. 아직 어떤 능력인지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이 세계에는 상태창이라는 훌륭한 물건이 있었으니. 침을 꿀꺽 삼키는 송한솔 앞에서 담민우가 피식 웃었다.

“한 번 볼까. 뭘 그리 꽁꽁 숨기고 있었는지.”

대강 어떤 능력인지 알 수만 있다면 그 이후는 자신이 감을 잡으면 될 뿐이다. 재현한 능력은 어쩔 수 없이 하위호환이 되지만, 담민우는 남의 힘을 적당히 쓰고 버리는 데에 대단한 감각이 있었다. 담민우가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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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 없음

[혈통능력] 없음

───────────────

“응?”

담민우가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몸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반쯤 억지로 재현한 신체적인 조건이, 몸 안에 돌고 있던 마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다시 격통이 찾아왔다.

“콜록, 커헉!”

쓰러진 담민우가 끊임없이 토혈하기 시작했고, 이내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된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장이 끊긴 듯한 고통과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담민우를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너, 무슨···.”

담민우가 괜찮냐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송한솔을 올려다보았다. 마물의 신체조건을 재현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송한솔에게 흡혈술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부르르 떨며 일어나려고 하던 담민우가 그대로 풀썩 바닥에 엎어졌다. 의식을 잃고 기절한 것은 그와 동시였다. 승부는 끝났고, 한시혁과 양호교사가 담민우를 향해 달려왔다.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다 염력이 다 떨어지면 항복하려고 한 송한솔은, 그대로 담민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 * *

대련 수업이 끝난 직후. 송한솔은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담민우가 누워있는 양호실로 찾아갔다.

사실 자신에게 흡혈을 쓰면 어떻게 될까 궁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렇게 피를 토하며 쓰러져버릴 줄은 몰랐다. 자칫했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이것은 자신의 부주의였고, 설명을 하진 못해도 최소한 사과해둘 책임이 있었다.

커튼을 들추자 안에는 이미 자세빈과 늑대 혼혈 여학생, 현미나가 앉아있었다. 다행히 담민우는 멀쩡하게 앉아 떠들고 있었다. 하긴 박쥐 혼혈은 회복력 하나는 알아줬다. 자세빈은 나를 보자 눈썹을 찌푸렸고, 현미나는 늑대귀를 쫑긋댔다.

“이 자식··· 패자를 조롱하러 온 거냐?”

“어, 차석 왔네? 나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너 가끔씩 공중에서 2단 점프 뛰던데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자세빈은 더 눈썹을 찌푸렸고, 현미나는 더 귀를 쫑긋댔다.

“방금 그게 담민우의 전력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잠깐만. 혹시 3단 점프도 할 수 있어?”

몰아치는 질문들에 송한솔은 양손을 들고 항복 자세를 취했다. 한 명이 하나씩 물어봐야 대답을 해주든 말든 하지. 이내 침대에 누워있는 담민우는 송한솔 앞을 막고서 떠들어대는 두 사람을 보고 조용히 미간을 꼬집으며 말했다.

“둘 다 나가.”

자세빈과 현미나는 불만이라는 듯 담민우를 돌아봤지만, 담민우의 정색을 본 두 사람은 치. 하고 땅바닥을 발로 차대며 양호실 밖으로 나갔다. 이내 드르륵 문이 닫히고 적막만이 남았다. 송한솔이 의자에 앉자 담민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엿듣진 않을 거야. 우리 왕자 놈은 그럴 바에야 안 비키고 당당히 앞에서 팔짱 끼고 있는 성격이거든.”

송한솔은 눈썹을 찌푸렸다. 난 그냥 사과하러 온 거지 딱히 엿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러 온 건 아닌데.

“찾아온 이유는 알겠다. 입막음을 위해서지?”

“응?”

“캐내려고 그런 건 아닌데···. 너는 잡혈이었구나. 아니, 너는이 아니라 ‘너도’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한가.”

잡혈. 서로 상반되는 혈통이 잘못 섞여 기형으로 태어난 이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자, 멸칭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보통 혈통이 섞이면 더 강하게 이어받은 형질 쪽이 발현되지만, 운이 안 좋으면 형질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 가끔은 특수한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도 태어나고.”

남의 말을 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야 담민우 또한 사실 박쥐 혼혈의 형질이 크게 발현된 잡혈의 돌연변이였다. 그 탓에 박해받고 지하에 감금당해,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괴물 취급 당하며 온갖 마물의 기관을 억지로 재현했었다.

쇠창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기형의 소년을 생각한다.

후유증으로 며칠 동안 잠도 들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이물이 끼어든 고통에 신음했다. 이제 와서는 악몽처럼 느껴지는 기억이다. 그리고 눈앞의 차석은 아마 자신과 동류였다.

송한솔의 몸을 재현했을 때 느껴졌던 고통. 아마 그는 지금도 마력을 짜낼 때마다 그러한 격통을 느끼는지 모른다. 세한기전에 차석으로 들어올 수 있을 만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전혀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겠지.

“···걱정 마. 어디 가서 떠들 만큼 입이 싸진 않으니까.”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짙은 애수를 품은 눈빛에 송한솔은 나 잡혈 아닌데. 라곤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 너를 이쪽 패거리에 끌어들이잔 생각에는 내심 반대하고 있었어.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이쪽으로 와.”

악몽에서 깨어난 것은 아홉 살 때였다. 담민우는 무능한 놈들이 시답잖은 걸로 차별을 한다며, 오만하게 코웃음을 치던 자세빈을 생각했다. 철창 안의 기형을 보고 세 보인다며, 넌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따라오라고 말해준 소년.

그것은 선의나 도덕 같은 것이 아니었다. 자세빈의 세상 모든 걸 깔보는 오만한 면에, 담민우는 있을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세빈은 마지막까지 남의 눈치 같은 건 하나도 안 보는, 자기밖에 모르는 녀석이면 좋겠다 생각한다.

“너도 아마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삶을 살아왔겠지.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지 못하는 사정도 있을 거야. 그래도 이쪽으로 와라. 딱히 자세빈의 부하가 되라는 말이 아니야. 단지···네가 어울리려는 녀석들은 악질이야.”

“악질이라니? 걔네 착해.”

송한솔은 자신이 자주 어울리는 녀석들을 생각했다. 차대엽이나 유매나 근본부터가 나쁜 놈은 아니다. 아니, 유매는 솔직히 성격이 많이 나쁘긴 한데 그래도 근본이 나쁜 애는 아니었다.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러자 담민우가 답답하다는 듯 입꼬리를 찡그렸다.

“배은호. 그런 여자 밑에서 일했다간 소모품으로 쓰이다 버려질 거다. 결코 우리 같은 부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아니야. 사정이 있다면 최대한 해결하도록 도와줄 테니···.”

“아, 뭐야.”

송한솔은 그제야 담민우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삑삑삑 누군가에게 문자를 넣었다. 그러자 몇 분 안 있어 양호실 문이 발칵 열리더니, 숨을 몰아쉬는 호랑이귀의 선배가 나타났다. 송한솔이 손을 내밀었다.

“선배, 빵.”

“헉, 허억, 여기···.”

배은호가 매점에서 사온 비닐봉지에서 두 손으로 빵 하나를 꺼내주었다. 봉지 안엔 어떤 빵이 송한솔의 취향인지 몰라 이것저것이 들어있었다. 송한솔은 다른 빵 하나를 꺼내서 양호실 침대에 누워있는 담민우에게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이 사람이 내 부하인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빵을 받은 담민우가 연신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 떴다.

< 담민우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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