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하리 (3) >
마력중재 한 번만으로는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다. 몇 분에 걸쳐 주하리 주변에 솟아오른 불꽃들을 빠짐없이 빛의 가루로 분해하자, 그제야 주하리의 몸에서 흘러넘치던 마력의 폭주가 진정되었다. 벤치에 앉은 주하리가 숨을 헐떡였다.
불꽃에 공격당한 어깨는 당장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그을려있었다. 옆에 앉은 유설 선배가 코트 안에서 바구니를 꺼냈다. 바구니 안에는 여러 가지 시약부터 해서 실과 바늘, 붕대 따위가 들어있었다. 유설이 능숙하게 응급처치를 끝냈다.
“대단하다, 통증이 사라졌어요···.”
주하리가 신기해하며 어깨를 움직였다. 신기한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옆의 유설을 돌아보며 물었다.
“평소에도 구급상자 들고 다녀요?”
“제약과 주술적 치료는 마녀의 본질이니까요.”
대답한 유설이 바구니를 닫아 케이프형 코트의 안쪽에 집어넣었다. 도저히 자연스럽게 들어갈 크기가 아닌데 쉽게 집어넣는 걸 보니 저 바구니 또한 일종의 마도구인가 싶었다.
‘확실히 든든해.’
사람 자체가 너무 강해서 종종 착각당하기도 하지만, 유설은 기본적으로 싸움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남을 서포트하는 데에 특화된 능력자였다. 마력중재의 응용으로 저주를 해주하고, 동료들을 회복시키며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는 역할.
애초부터 화력전 위주인 유매와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팀을 이뤄 싸울 때 빛을 볼 수 있는 스타일. 그럼에도 일 대 일의 정면승부로 세한기전의 학년 2위를 쟁취했단 점에서, 유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역량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폐를 끼쳤네. 다른 사람한테 보일 꼴이 아니었는데.”
주하리가 부끄러운 듯 볼을 긁적이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나도 전혀 몰랐지만, 유설과 주하리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우리 반 반장인 주하리는 회의 시간에 불려나갔을 때 2학년 반장인 유설과 몇 번 인사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발작이 일어나거든.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하리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방금 있었던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유설이 옆에서 도와줬기에 이번에는 어깨에 살짝 불꽃이 스치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주하리가 조금만 실수했으면 자신의 불꽃에 온몸이 휩싸였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마력을 못 쓰는 건가요?”
자신의 마력에게 공격당하는 체질이라니, 유설도 처음 보는 경우일 것이다. 유매의 마력독재로도 저렇게 마력 자체가 의지를 가진 것마냥 형태를 이루어 본인을 공격하게 만들 순 없다. 저런 상태라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정확히는 반대였다. 마력이 제어를 벗어나 날뛰기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날뛰고 있는 것이다. 당장에라도 주하리가 모든 마력을 해방해 자연스레 흐르게 한다면 마력은 주인에게 순응할 것이다.
지금은 존재감 없이 수수한 인상이지만, 주하리는 온갖 괴물같은 천재들이 모여있는 세한기전 안에서도 예외라 할 수 있을 만큼 특별했다. 학생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건 무기를 다루는 역량만이 아니다. 순수한 마력의 격이 달랐다.
‘문제는 그 순간 누가 잡으러 온다는 거지.’
그렇기에 1학년의 마지막 날, 친구인 은세연을 상대로 마력을 해방한 주하리는 그대로 세한기전을 자퇴한다. 정확히는 찾아온 남자에게 끌려간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최소한 사건이 벌어지는 타이밍이라도 늦추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눈치가 좀 빨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치미를 뗐다.
폭주하는 마력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발작은 아슬아슬할 때까지 주하리의 의지로 견뎌낼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때 나나 유설한테 찾아와 가라앉혀달라 부탁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조금 짜증이 났다.
“내가 보기에 너도 문제가 있어.”
사실 주하리의 발작을 해결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냥 방치해도 화상을 몇 개 입을 뿐, 시나리오에는 하등 차질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원래대로라면 오늘 주하리는 실수로 팔에 큰 화상을 입어 붕대를 둘둘 싸매고 등교하게 된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도 날뛰는 내 마력을 진정시키느라 그랬다고 되도 않는 농담을 한다. 어떻게 보면 거짓말이 아니기는 한데.
“반장이라고 맨날 다른 애들 심부름 해주고 숙제까지 다 봐주는데. 이런 거 하나 도와달라 상담을 못하냐?”
“하하···.”
“하하거리지 마라 진짜.”
물론 주하리로선 자기 사정에 남을 끌어들이기 싫다는 생각일 것이다. 자기 비밀에 연관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력의 폭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일어나는 것일 뿐, 딱히 발작하지 않을 때도 주하리는 만성적인 격통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짜증을 내는 유매와는 정반대로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성격이었다.
교실에 같이 앉아있는 녀석이 몸 안쪽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언제나 견디고 있는 것이다. 찝찝하고 신경이 쓰여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었다. 진짜 못 참게 됐을 때 찾아오라는 임시변통 말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다.
퀘스트고 크레딧이고 걸려있지 않았지만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다. 혈통시대에서 드러났던 주하리의 설정을 생각하면, 그 방법에 대해서도 몇 가지 떠오르는 발상이 있었다.
“내일도 여기로 나와봐.”
“응?”
“시험해보고 싶은 게 좀 있어.”
나는 새 능력의 응용을 연습해볼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주하리와 다음 날 약속을 나누었다.
* * *
순위전의 예선은 이틀에 걸쳐 한꺼번에 치러졌다.
본선과 달리 예선 시합은 여러 시합장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모든 순위전 참가자는 각 예선 조의 구성원들과 한 번씩은 싸워봐야했기에, 하루에 두 번 이상 시합을 할 체력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힘을 쏟아봐야 질 것 같은 강적에게는 바로 포기할 건 포기하며 기권해버리기도 했다.
다른 이유로 기권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예선 통과가 확정된 최소한의 승점이 확보된 순간, 다른 경쟁상대의 시합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른 곳에 가서 적진을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 옆자리에 앉아있는 금예린이 그런 경우였다.
“이쪽 조는 정말로 안 됐네요.”
부채로 입가를 가린 금예린이 말했다. 저 멀리 시합장에 팔짱 끼고 선 것은 유매였다. 이번 시합 유매와 맞붙게 된 녀석은 이미 인생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심판이 다름 아닌 한시혁이기에 눈치가 보여 기권도 못 하고 있다.
유매를 절실하게 쳐다보고 있는 남학생은 이길 생각 따윈 하지도 않으니 최소한 아프지 않게 끝내달라는 얼굴이었다. 물론 유매가 그런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유매가 손을 휘두르는 것과 함께, 주변의 마력이 폭풍으로 화했다.
“으아아아아!”
콰앙. 남학생은 그대로 날아가 저 멀리 있는 벽에 부딪혔다. 몇 초 만에 끝난 허무한 공방이었다. 한시혁이 담담히 결과를 적어나갔다. 유매가 전승으로 본선에 올라오는 건 거의 확정이었다. 순위전에선 유매를 이길 수 있기는커녕 제대로 된 싸움 자체가 성립되는 상대조차 손가락에 꼽았다.
“저거 어떡하냐. 너는 대책이 좀 있나?”
“···솔직히 누가 중간에 떨어뜨려줬으면 좋겠네요.”
금예린이 솔직하게 자신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상대방의 심리를 역이용해 함정을 파두는 걸 즐기는 금예린에게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압도적인 마력만으로 주변 전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유매는 가장 껄끄러운 부류의 상대였다.
차라리 차대엽을 상대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나마 근접전 특화인 차대엽에게는 금예린이 파고들 틈이 있을지도 모르니. 금예린 스스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차대엽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개인적으론 당신한테 기대를 걸고 있답니다? 부디 저 무시무시한 마녀를 쓰러뜨리고 올라와주시길, 하고 말이예요.”
“나는 너가 졌으면 좋겠어. 너가 더 무서워.”
“다들 제멋대로네.”
차대엽이 담담히 대답했다. 관전을 위해 이후의 시합을 포기하고 온 금예린과 달리, 차대엽과 나는 미리 시드로 본선에 올라가있었다. 이른바 수석과 차석의 특권이란 것이다.
확실히, 금예린과 만나기 전에 유매를 탈락시켜줄 수 있는 상대라면 차대엽 정도 뿐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가까이 붙어 본선 시작 뒤 비교적 초반에 맞붙게 되어있었다. 그것에 안도감을 느낀 건 금예린 뿐만이 아니라 다들 똑같았다. 아무튼 누가 이기든 우승 후보 한 명이 사라지는 거니까.
비겁하다면 비겁하다 할 수도 있지만, 나 또한 솔직히 다행이라 생각했다. 저 둘이 서로 맞붙지 않으면 4등 안에 낑겨들어갈 자리가 도저히 나질 않는다. 내 욕심으로는 최소한 어떻게 쓰러뜨릴 여지가 있는 유매가 올라오길 바랬지만.
‘그건 무리겠지.’
유매의 화력은 아무리 차대엽이라도 계속 몸으로 받아낼 수 없는 수준이다. 지금은 훨씬 빠르게 뜨개질까지 익혔으니, 몇 방 직격을 허용하면 차대엽이라고 해도 휘청거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냥 검으로 싸울 때의 이야기였다. 질지도 모르겠다는 수준까지 차대엽을 몰아붙이는 건 가능하겠지만, 검귀인 차대엽이 신검을 꺼내고 칼날술사로서 싸우는 순간 방어 쪽이 부족한 유매로서는 대처할 방법이 없게 된다.
사실 어차피 유매가 올라오든 차대엽이 올라오든 나랑 싸우는 건 결승이었다. 결승까지 갈 수만 있다면 이미 퀘스트는 성공한 것이니 마음 편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렇다. 결승까지 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다른 시합장을 구경했다.
유망주들은 예선에서부터 두각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1학년생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녀석들. 예를 들어 나와 한 번 싸워본 적이 있는 담민우나, 첫 공격으로 시합을 끝내고 있는 진소란.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꿇어라.”
시합장에서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서있는 자세빈이 말했다.
그 말에 자세빈의 예선 상대는 정말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마력을 통해 내리찍는 압력을 만들어 강제로 무릎꿇게 한 게 아니었다. 일종의 최면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몽마 혼혈의 속삭임은 격이 낮은 상대에게 특정한 행동을 강제한다.
자세빈의 상대는 시합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자세빈은 싸움을 할 것조차 없이 승리했다. 원래는 전투 중에 쓰는 능력이 아니다. 저런 직접적인 강제는 일반적으로 몽마의 마력에 긴 시간 노출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즉, 타고난 혈통능력의 격 자체가 다르다.
유매가 마력통치를 넘어선 마력독재를 지닌 것과 같다. 자세빈 또한 의심할 여지 없는 괴물이라는 것. 마왕의 아들이니까 같은 이유가 아니라, 그냥 자세빈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버지를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자질을 가진 천재였다.
‘자세빈이 적일 때만큼 짜증나는 상황이 없지.’
역량만 있다면 충분히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력한 마력을 실어 정지 명령을 보낸다면 한 순간 움직임이 멈춰버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몽마의 목소리는 저렇게 행동을 강제하지 않아도 감각을 교란시키거나, 적끼리 싸우게 만드는 등 여러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세빈은 몽마의 목소리 따위에 의지하는 녀석이 아니다. 지금은 단지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상대이기에 싸워주지조차 않은 것뿐. 직접적인 전투가 약점이라 불리는 몽마임에도 불구하고, 자세빈은 오히려 전투에 특화되어있었다.
폼으로 담민우를 부하로 부리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담민우를 정면에서 완전히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차대엽의 라이벌이란 자리를 혈통시대의 끝까지 고수할 수 있을 만큼. 저 왕자님은 자신의 오만함에 걸맞은 실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승리가 선언되고, 자세빈이 천천히 고개를 돌아보았다. 이내 관중석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와 자세빈의 시선이 마주쳤다. 재미있게 됐다는 듯, 자세빈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나 박살내려고 작정을 했네.’
아직도 내단 안 팔아줘서 삐졌나. 내 순위전 본선의 1회전 상대는, 날 향해 삿대질을 하며 엄지로 스윽 목을 그었다.
< 주하리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