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위전 (1) >
나는 가쁘게 숨을 헐떡였다. 조금만 늦게 능력을 풀었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당했다. 그렇게 확신할 만큼 어떠한 의지가 나를 눈치채고 이쪽을 향해왔다. 마치 내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이. 중요한 것은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저게 뭐지?’
나는 주하리의 마력이 왜 주인에게 거부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 주하리의 몸에 흐르고 있는 마력의 원천은 ‘전대’에게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날 쳐다본 무언가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무언가에 불가해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
그리고 주하리가 눈을 반짝였다. 똑같이 웃고는 있지만,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벤치에 앉아있는 주하리가 내 쪽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통증이··· 사라졌어.”
“뭐?”
이번에는 내가 놀랄 차례였다. 뭔가를 해보려다가 화들짝 놀라 도망쳐나왔을 뿐인데 문제가 해결됐다니. 주하리는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몇 번이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진짜 마력이 잠잠해진 모양이었다.
‘···다행인 건가?’
나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기뻐하는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주하리가 자기 마력을 전개해버리면 추적자가 찾아와 자퇴까지 이어지는 건 거의 확정이기에, 주하리에겐 최대한 끝까지 해방을 참아줬으면 했다. 그런 제멋대로인 생각에 마음대로 어울리게 해버렸으니 이 정도 서비스는 해주는 게 맞았다.
“혹시 모르니 팔찌는 차고 있을게.”
“그래라.”
이것으로 일단 주하리 쪽에서 마력을 해방하지 않는 한 별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조커 카드는 아껴두고 아껴뒀다가 결정적일 때에 사용해야 했다. 돌아가며 잡담을 하던 나와 주하리는 각자의 기숙사로 걸어갔다.
* * *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 나는 바깥의 공원에 나가지 않고 내 방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듯 앉아있었다.
<마인드맵 개척 : 의식 제어 Lv.1>
눈을 감고 자신의 정신을 계속 확인한다. 어제부터 나는 의식 제어만 죽어라 연습하는 중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숙련될수록 염력의 총량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몸을 단련하는 것에 비유하면 심폐지구력 향상 운동이었다.
염력은 어떤 초능력을 발동할 때에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자원이었다. 기술 하나하나의 숙련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투지속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일단 염력의 절대량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본선 첫 경기 날이었다. 나는 오늘 맞붙어야 할 상대에 대해 생각하며 세한의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침 구보도 이제 적당히 따라갈 수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단련을 받고, 유매와 점심을 먹고, 차대엽과 쉬는 시간에 떠들었다. 방과후는 정말로 눈 깜짝할 새에 찾아왔다.
오늘부터 순위전 본선이었다. 그런데 1회전부터 상대가 자세빈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전력차가 너무 나서 내가 관중이었으면 약한 애 괴롭히지 말라고 야유를 보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난 억지로라도 준결승까지는 올라갈 생각이었다.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집중하자.’
나는 손으로 내 양뺨을 짝 때리고 시합장에 입장했다.
* * *
넓직한 시합장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섰다.
고작 본선의 1회전일 뿐인데도 구경하러 온 관중은 상당히 많았다. 차대엽과 유매부터 시작해 금예린과 진소란, 반장인 주하리와 그녀를 따라온 은세연. 한쪽에는 자세빈을 응원하러 온 소꿉친구 두 명이 앉아있었다. 그 외에도 십수 명 가까이가 순위전 경기를 체크하기 위해 시합장에 들어와있었다.
차석인 송한솔과 마왕의 아들인 자세빈. 어느 쪽도 자신의 능력을 자세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마력을 이용한 싸움은 기록된 영상으로 분석해봐야 한계가 있다. 현장에 와서 경쟁상대가 숨기고 있는 패를 확인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사람 많으니까 긴장되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다가가서 악수하자 엄살을 떠는 송한솔에게 자세빈이 코웃음을 쳤다. 아직 1회전이지만, 자세빈은 이 싸움에서 이긴 쪽이 결승까지 올라가 차대엽과 만나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외에 결승에 갈 격을 갖춘 녀석은 없다. 사실상 대진표 왼쪽 조의 패자를 결정하는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너랑은 좀 더 위에서 맞붙고 싶었는데. 벌써부터 하이라이트라니 김이 새는군. 최소한 시시하게 쓰러지진 마라.”
“노력은 해볼게.”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서로에게 신경을 곤두세운 채 조용히 자신의 힘을 가다듬었다. 시작 신호가 울리자마자 송한솔은 바닥을 염동력으로 내리쳐 파편을 만들었다. 돌덩이는 탄환이 되어 자세빈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장난하는 거냐?”
자세빈이 놀라는 기색조차 없이 검을 꺼내들었다. 마력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 순수한 질량을 집어던진 공격. 유설처럼 비교적 몸이 약하지만 능력으로 방어하는 타입의 상대에게는 방어막을 펼치게 해 상당히 소모를 유도할 수 있었다.
몽마 또한 똑같이 가진 능력은 출중하지만 몸이 약한 경향이 있기에, 질량공격은 어느 정도 정공법에 가까운 첫 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한기전의 면면들은 하나같이 괴물이다. 단순한 정공법으로 공략할 수 있는 적은 별로 없었다.
자세빈은 몽마 혼혈이 몸이 약하다는 상식 따위 헛소리란 것처럼 정면에서 검을 휘둘러 모든 돌덩이들을 부숴버렸다. 굳이 피할 수 있는 파편까지 박살내버린 건 미적지근한 공격 따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의사표현이라 할 수 있었다.
마력이 실린 칼날에 박살이 난 파편에서 돌가루가 연기처럼 날렸다. 서로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가려졌다. 자세빈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마력 감지에 전혀 잡히지 않는 걸 보니 기척을 숨기는 능력은 수준급인 모양이지만, 자세빈은 눈을 감고서도 진동만으로 상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거기냐!”
검을 쿵 바닥에 내리찍자, 전해지는 진동이 확실하게 송한솔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달려나간 자세빈이 검을 내리친 순간. 분명히 그곳에 있어야 했던 기척이 일순간 사라졌다.
<마인드맵 확장 : 블링크>
뒤에서 나타난 송한솔이 자세빈의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 배후를 잡혔다는 생각에 등골에 오싹함이 느껴졌을 때. 거대한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충격이 머리 위쪽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바닥에 금이 가며 자세빈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력 자체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당하기 직전까지 전혀 기술을 눈치채지 못했기에 방어 자세를 취할 틈조차 없었다. 자세빈이 휙 고개를 들었다. 쯧 혀를 찬 송한솔은 후속타를 넣지 않고 저 멀리로 거리를 벌렸다.
‘공격 수단이 너무 한정적이야···.’
송한솔 쪽에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건 염동력 하나밖에 없는데, 혼혈 상대로는 이걸 직격으로 넣어도 한 번에 시합을 끝낼 만한 결정타가 되지 못한다. 역시 염동 세공부터 배워볼 걸 그랬나 싶었다.
“쩨쩨한 전법을 쓰는군. 빈틈을 찔러서 한 방 먹이고 바로 도망쳐버리기. 그 짓거리를 영원히 계속할 셈이냐?”
“난 연약한 소시민이라 이거 말곤 답이 없어.”
자세빈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진동 감지를 완전히 파훼해 등 뒤를 잡은 방금의 움직임. 레이더에서 한 순간 표적이 증발해 사라진 것과 같은 마술이었다. 확실히 말해 그런 묘기는 차대엽이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자세빈은 칼집에 집어넣은 장도를 거꾸로 쥐었다. 칼날 쪽을 기둥처럼 잡고, 칼자루 쪽을 입가에 가져다댄다. 손잡이를 옆으로 돌리자 자세빈의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출력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마이크를 쥐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꿇어라>.”
몽마로서 자세빈이 지닌 혈통능력 중 하나, 흰소리.
음성으로 화한 마력은 온갖 주파수를 넘나들며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암시는 의식에 간섭해 자세빈이 원하는 행동을 강제시켰다. 이것이 자세빈의 필승 패턴이라 할 수 있었다. 칼자루를 변화시킨 증폭용 마도구를 쓰지 않고도, 예선전에서 흰소리를 파훼하고 자세빈에게 맞선 학생은 없었다.
마치 정말로 왕자의 명령이라도 들은 것처럼. 꿇어라, 하고 말한 순간 바닥에 처박힌 무릎은 자세빈이 걸어올 때까지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빈의 흰소리를 들은 송한솔은 피식 웃으며 멀쩡하게 선 채로 대답했다.
“싫은데?”
애초에 마력을 포착할 수가 없어 마력적인 환각이 통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미 소리, 즉 진동으로 화해 나아간 흰소리는 확실하게 송한솔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다만 그것이 적의 정신에 간섭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마인드맵 확장 : 텔레파시 Lv.5>
송한솔에게 자세빈의 흰소리는 확실하게 먹혀들었다. 단지 들어온 명령을 꺼지라고 뿌리쳤을 뿐이다. 자신의 의식을 완벽하게 자각할 수 있는 진짜배기 정신 능력자한테, 소리를 통한 암시 따위의 어중간한 정신적 간섭이 통할 리가 없다.
“<꿇어라>!”
“싫다고!”
송한솔에게 흰소리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다시 바닥을 내리쳐 파편을 만든 송한솔이 돌덩이를 탄환 삼아 쏘아냈다.
송한솔은 일방적으로 공격하면서도 지독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염동력으로 직접 타격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 초감각이 있으니 기습적인 공격도 웬만큼 피할 자신이 있지만, 단 한 방이라도 직격타를 허용해버리면 자신은 그걸로 끝이었다. 인간의 몸은 너무나 연약하다.
하지만 멀리서 공격하기 위해 이렇게 다른 물건을 쏘아내는 형태로는 상대방에게 공격을 미리 읽혀버린다. 혼혈들에겐 견제 이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전조도 없이 순수한 힘을 꽂아넣을 수 있다는 염동력의 장점이 거의 퇴색되어버렸다.
실제로 기술에 집중하고 있던 자세빈은 아무렇지 않게 땅을 박차며 돌덩이들을 피했다. 흰소리가 아예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자세빈은 오히려 기쁘다는 얼굴이었다.
“역시 너라면 재밌게 해줄 줄 알았지!”
자신의 소꿉친구들조차 잠깐 움직임을 멈추는 척은 하는데, 아예 안 통하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자세빈이 다시 칼자루를 손으로 잡았다. 행동을 강제할 때처럼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굳이 목소리란 수단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
물건을 부수기 위해 특화된 진동. 단순히 강력한 충격파로 화한 마력이 자세빈의 검을 매개체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송한솔은 가끔씩 말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그 움직임을 읽는 건 자신에게 무리라고 냉정하게 판단을 마쳤다. 그렇다면 주변을 통째로 부숴버린다.
“피할 테면 피해 봐라, 송한솔!”
칼집에 꽂힌 칼이 쿵 바닥에 내리찍히는 것과 동시에, 전방위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의 여파가 시합장의 결계를 뒤흔들었다. 전후좌우, 어느 쪽으로 도망치든 폭발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의 공격이었다.
“···직접 보니까 박력이 다르네.”
자세빈이 목소리가 들린 쪽에 휙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공중에 떠있는 송한솔이 식은땀을 흘리며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땅밑에서 터져나오는 충격파. 전후좌우 어떤 곳으로 가도 피할 수 없다면, 위쪽으로 도망치면 된다.
“어떻게?”
자세빈의 천부적인 전투 감각은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송한솔이 하늘을 날 수 있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이상한 것은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했다는 것. 반쯤 자랑이지만 이 기술은 처음 보는 상대라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폭발의 지점과 타이밍이 교묘했다.
그런데도 송한솔은 한 박자 미리 안 것처럼 대응했다. 마치 직감으로 위험을 감지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리고 충격파에 박살난 시합장의 셀 수 없는 파편들은, 하나같이 공중에 떠있는 송한솔의 주변에 묶여있는 것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빛나는 팔찌를 손으로 붙잡고 있는 송한솔이 말했다.
“무기 고맙다.”
둥둥 떠있는 시합장 파편들 사이에서, 땀을 흘리는 송한솔이 더욱 힘을 끌어냈다. 충전해뒀던 진동은 지금 걸로 다 썼을 터. 이 높이에 이 숫자. 남은 염력을 죄다 박아 전부 자세빈을 향해 날려버린다면 결정타가 될 만한 위력이 나온다.
염동력을 전력으로 전개한 송한솔이 단순히 돌덩이들을 쏘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계속해 속도를 붙이기 위해 같이 자세빈을 향해 날아갔다. 지금까지의 투척과는 속도도 위력도 전혀 다르다. 콰아앙! 유성군처럼 떨어진 파편들이 자세빈에게 작렬했다. 가루가 연기처럼 날리며 시합장을 가렸다.
“잡았다···.”
돌가루의 안개가 걷혔다. 상처투성이가 된 채 송한솔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은, 어떻게든 버텨낸 자세빈이었다. 절대 도망치게 하지 않겠다는 듯 웃은 자세빈이 송한솔과 눈을 마주쳤다. 몽마의 뿔에서 새까만 마력이 주변에 흘러나왔다.
“검은소리.”
기분 나쁜 음색이 주변을 감싼다. 온통 새까만 음표, 음표, 음표. 겹쳐진 음표들이 어둠을 만든다. 흰소리는 어디까지나 주특기일 뿐. 이것이야말로 자세빈이 숨겨둔 비장의 수였다. 그야 몽마의 필살기라 하면, 악몽을 꾸게 만드는 것이다.
이내 완전히 새까맣게 색칠된 구체 안에서, 자세빈은 송한솔의 꿈에 간섭했다. 악몽의 세계는 몽마의 영토이자, 자세빈이 각본가인 한 편의 영화였다. 복도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문들이 늘어서있었다. 자세빈은 난폭하게 걸으며 문을 하나하나 열어갔다. 어디에서도 송한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에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큰 소리를 내며 문을 열면 열수록, 어딘가에 덜덜 떨며 숨어있을 송한솔에게 자신은 공포의 화신으로 각인된다. 그리고 약해질대로 약해진 송한솔을 꿈에 잡아먹히게 만들면, 감각계를 오인시켜 있지도 않은 손상을 입은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자세빈이 오만한 얼굴로 다음 문을 열었다. 문 안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피식 웃으며 쿵쿵 걸어가 다시 문을 연다. 그 문 안에는 문이 있었다. 또 그 안에 문이 있다. 뭔가 잘못됐단 걸 느낀 자세빈이 침을 꿀꺽 삼켰고, 잠깐이나마 공포를 느낀 순간 바닥이 갑자기 꺼지며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새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끝없이 이어져있는 문들과 배배 꼬인 채 순환하는 계단. 전혀 현실같지 않은 광경이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며 초현실적이다. 자신이 지금 떨어지고 있는 건지 올라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있을 수 없는 형태로 꼬여있는 계단 어딘가에 송한솔이 앉아있었다. 악몽에 시달려야 할 주인공은 지루하단 얼굴로, 하품까지 하며 턱을 짚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몸싸움을 했으면 이겼을 텐데. 꿈 속에서 정신 능력자랑 싸우겠단 웃기는 생각은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야?”
주변의 모든 게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하고, 송한솔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약한 몸으로 강자에게 대항하며 힘들게 싸워왔지만, 이곳에서 압도적 강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나가면 다 잊어라.”
잠시 후. 자세빈이 송한솔을 집어삼키며 주변을 둘러싸게 한 검은 장막이 다시 하나하나 음표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안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어느 쪽이 승자인가 하는 것. 두 사람을 가리고 있던 어둠이 사라지자, 자세빈이 엉망진창이 된 시합장의 중앙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송한솔이 관중석에 대고 브이자를 내밀었다.
< 순위전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