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위전 (3) >
차대엽이 자신의 검으로 뒤쪽의 땅을 내리쳤다.
땅바닥을 강하게 때리고 튕겨나온 검에, 차대엽이 전력으로 휘두른 충격량이 저장되었다. 그대로 뒤로 향한 칼끝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발산된 충격은 추진력이 되어, 땅을 박차고 날아가는 차대엽의 속도를 더욱 강렬하고 빠르게 만들었다.
순간적인 가속은 진소란보다 뒤떨어지지만, 차대엽의 무서운 점은 이 속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직선으로 돌진해 반격에 쉽게 노출되는 진소란과 달리, 그 움직임은 유동적이면서도 정밀하다.
‘역시 바로 달려오나.’
모자령을 해방한 유매가 십수 개의 붉은 마력 화살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조준으로는 저 속도로 움직이는 적을 제대로 맞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유매에게는 그런 녀석들을 요리하기 위한 방법이 있었다.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갔다.
차대엽은 단숨에 속도를 올려 궤도에서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흠칫 하고 놀랐다. 자신의 뒤에 떨어져야 했을 화살들은, 곡선으로 휘어서 앞에 달려나간 자신의 등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유매가 피식 웃었다.
붉은 화살들은 이미 차대엽의 마력을 기억했다. 그 녀석처럼 자신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마력을 숨기는 기술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추적하는 화살들로부터 차대엽이 벗어나기 위해선, 몸 안의 모든 마력을 남김없이 쓸 수밖에 없다.
위력에만 치중했을 때보다 화력 자체는 부족하지만, 필중이라는 메리트는 그만한 손실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유매를 향해 똑바로 달려오던 차대엽이 방향을 틀었다. 이대로라면 화살에 직격당한다고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도망 못쳐.”
유매가 살벌하게 웃으며 차대엽 몸 안의 먀력에 간섭했다. 아까부터 여러 방향으로 마력을 흔들리게 만들고 있지만, 차대엽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거기에 맞춘 움직임으로 균형을 잡고 있었다. 정말 귀신이라도 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하지만 마력 전체를 멈춰버리는 것엔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체내의 마력을 강렬하게 회전시켜 간섭에 저항하려 해도, 순간적으로 제동이 걸리는 건 필연이었다. 결정적인 순간 한 박자 움직임이 늦어버린다.
유매가 실수한 것은, 마력독재라는 비장의 수를 저 전투의 천재에게 몇 번이나 체험시켜주었다는 것이다. 처음 송한솔이 유매의 머리 위에 떨어지던 화분을 막아주었던 날. 차대엽이 화가 난 유매를 처음으로 막아섰던 날부터, 어떻게 하면 저 능력을 극복할 수 있을까 혼자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감을 잡은 것은, 한시혁의 사안을 뿌리치기 위해 마력을 일부러 몸 안에서 충돌시켜버렸을 때였다. 그때는 반동으로 피투성이가 되어버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몸에 돌고 있는 마력을 두 영역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회전 경로를 지니게 한다.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이점은 있었다.
첫째로, 이 방식에 익숙해지면 신검에 들어가는 마력과 몸의 동작을 강화시킬 마력을 완전히 나눠서 분리할 수 있다는 것. 한 곳에 백 퍼센트의 마력을 단숨에 실을 수는 없게 되지만, 모든 동작이 대단히 편해진다. 그리고 둘째. 몸 안의 마력에 간섭하는 저주 계통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가 있다.
그야 두 갈래로 나뉘어진 마력은 서로 연결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만약 마력을 쓰지 못하게 되는 강력한 저주에 당한다 해도 봉인당하는 건 어느 한쪽 뿐, 다른 쪽은 상관이 없다.
이륜구동(二輪驅動).
그리고 지금 차대엽은 유매가 전력을 다한 마력독재로 자기 몸 안의 마력을 멈춘 순간, 굳이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회전을 멈추었다. 억지로 힘싸움을 하려 들면 순간적이나마 움직임이 굳어버린다. 그리고 아직 돌아가고 있는 나머지 한쪽의 마력만으로 땅을 박차며 고속의 기동을 계속한다.
마력독재는 한 번에 하나의 마력에밖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러한 맹점을 당연하게 읽어내, 당연하게 파고들었다.
유매 입장에서는 마력독재 하나에 저항하기 위해 몸 안에서 도는 마력의 회전방식을 처음부터 뜯어 고치다니 정신이 나갔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차대엽은 자신이 막을 수 없는 불합리한 능력이 있다는 게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단 거겠지.’
관중석 맨 위 난간에 팔을 걸친 송한솔이 생각했다.
제대로 대화 한 번 못 해본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경험이 있기에,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칼 한 자루로 전부 해결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검에 약점이나 빈틈을 발견하면 그걸 메울 때까지 다른 일은 전부 제쳐두고 개선할 방안을 모색한다.
굳이 주하리와 마력을 쓰지 않고 순수한 기술만으로 붙어본 것도, 어쩌다 마력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됐을 때 자신이 어디까지 싸울 수 있나 확인해두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게걸스러운 집착이야말로 타고난 재능 이전에 차대엽의 실력을 동년배의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준 일등 공신이었다. 사실 그런 사정이 없었어도 차대엽이 검에 미쳐 사는 검술 애호가인 점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잘난 척 하지 마···!”
유매가 눈썹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마력독재에 저항할 방법을 찾아냈다곤 하지만, 어찌 됐든 마력의 절반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거나 마찬가지다. 차대엽을 향해 유도해 날아가는 화살은 지금도 바로 뒤에서 사냥감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땅에 검을 내리친 차대엽이, 자신의 앞쪽에다 충격을 발사해 일부러 화살들의 한가운데를 향해 후진해 날아갔다. 차대엽을 쫓아 직진하던 화살들은 대상이 뒤로 날아가자 방향을 틀었고, 필연적으로 속도를 잃었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유연하게, 차대엽은 지그재그를 그리며 화살 사이를 전진했다. 춤이라도 추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차대엽의 마력을 따라 날아가는 화살은, 그 움직임에 현혹된 것처럼 서로 부딪혀 하나씩 폭발했다. 이내 폭풍을 등지고 빠져나온 차대엽 뒤에 화살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유매가 진심으로 어이가 없는 듯 식은땀을 흘렸다.
압도적인 속도로 따돌린 게 아니다. 코가 스칠 듯한 거리에서 가벼운 발걸음만으로 모든 화살을 갖고 놀 듯이 서로 충돌시켰다. 상대방의 공격에 스스로 몸을 던질 담력 이전에, 모든 궤도를 읽고 계산해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묘기였다.
그리고 유매는 그제야 자신이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체감했다. 붉은 화살들이 폭발한 여파를 등지고서. 검을 쥐고 선 차대엽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검귀의 눈은 모든 힘의 크기와 방향을 시각으로 읽어낸다.
유매는 저 눈을 하고 있는 차대엽에겐 유도탄을 몇 번 날려봤자 마력의 낭비일 뿐이란 걸 직감했다. 유설과는 다른 의미에서 일반적인 투사체가 통용되지 않는다. 저 짜증나는 검귀는 아마, 피할 수 있는 공격이라면 무조건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공격을···.’
뭘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고 차대엽이 달려왔다. 달려오던 도중 검을 땅에 후려쳐, 그 충격을 추진제로 다시 한 번 가속한다. 거리는 눈 깜빡할 사이에 좁혀졌다. 그리고 놀란 유매의 앞쪽에 거대한 수정의 벽 같은 것이 쾅 솟아올랐다.
차대엽의 검격이 어느 정도일지 예상이 안 되기에, 막대한 마력을 쏟아부어 구축한 방어막이었다. 보통 멀리서 주문을 쏘아내는 능력자는 적이 가까이 붙으면 아무 것도 못하고 무력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유매 정도가 되면 전혀 달랐다.
검을 든 암살자 따위의 화력으로는 아예 뚫지 못하게, 강고한 방어벽을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 마력의 양도 주문을 짜내는 기술과 속도도 전부 최고 수준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방벽을 앞에 둔 차대엽이 검을 들었다.
차대엽의 신검은 유매의 처음 일격을 받아낸 뒤 계속 검신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검신을 물들이고 있던 적색이 일그러지며 용솟음친다. 이내 유매의 방어벽에 신검을 때려박자, 결코 검격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붉은 폭열이 작렬했다.
콰앙! 내려치기와 함께 해방된 건 유매가 차대엽을 향해 처음 쏘아냈던 폭열의 창 바로 그것이었다. 차대엽의 전력을 다한 내려치기에 신검에 저장되어있던 남은 충격량, 그리고 폭열의 창의 화력이 더해졌다. 아무리 강고하게 짜여있다 한들 한 순간에 만들어낸 방벽이 버틸 충격이 아니었다.
빙하처럼 굳건하게 서있던 방벽이 압도적인 폭력에 깨져버린다. 서로 몇 걸음이면 닿을 가까운 거리. 차대엽이라면 단 한 번 땅을 박차는 것으로 아무렇지 않게 좁힐 수 있다. 무방비가 된 유매가 이제 와서 요격용의 주문을 구성해봤자, 코앞까지 다가온 차대엽이 검을 휘두르는 게 더 빠르다.
“저리··· 꺼져!”
유매가 소리쳤다. 그것은 위협이라기보단 놀라서 지른 비명에 가까웠다. 반사적으로 주변의 마력과 몸 안의 마력 절반 이상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발산해, 시합장의 땅바닥이 뜯어져 날아갈 만한 폭풍이 유매의 몸을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곧바로 반응해서 방어 자세를 취한 차대엽이, 검을 땅에 박아 몸이 멀리 날아가는 걸 최대한 막았다. 유매의 이마가 땀에 젖어 숨을 헐떡였다. 슬쩍 바라보면 차대엽의 신검은 다시 하얀색으로 돌아와있었다. 아마 충격만이 아니라 주문마저 흡수해 저장해두었다가, 원할 때 방출할 수 있는 것이다.
“웃기지도 않아 정말···.”
하지만 항복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말해준 얄미운 인간이 있다. 유매 또한 천재인 것은 마찬가지. 유매는 방금의 일격으로 차대엽의 신검의 한계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있는 승산은··· 아직 있다.
‘주문의 저장은 한 번에 하나.’
처음 자신이 폭열의 창을 몇 자루나 날렸지만, 차대엽이 검에 휘감은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즉 동시에 여러 종류의 주문을 신검에 저장할 수는 없고, 두 가지 이상의 주문을 동시에 쏘면 저장을 통해 막아낼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그리고, 뜨개질한 주문은 하나조차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
유매는 승부수를 던졌다. 방어벽 따위에 돌릴 마력의 여유분을 전부 써서,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의 숫자까지 뜨개질해 붉은 창을 장전했다. 차대엽에게 적당히 피해서 흘릴 수 있는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하나하나가 주변 전체를 초토화시킬 만한 결정타의 위력을 가져야만 했다.
유매가 주문을 준비하는 걸 확인하자, 차대엽은 곧장 달려오지 않고 상태를 지켜봤다. 요격해온 유매의 주문을 신검에 저장한 뒤, 그대로 확실한 일격으로 끝낼 속셈이었다.
뜨개질한 창이 차대엽을 향해 쏘아졌다. 포위해서 일제히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 대응할 수 없는 간격으로 시간차를 두고 쏘아진다. 아무리 몸이 튼튼해도 확실하게 부술 수 있도록 필살의 위력을 담아서.
그리고 배배 꼬여있는 붉은 창의 행렬에 차대엽이 귀안을 번쩍 뜬 채 달려나갔다. 처음 쏘아진 창의 폭열을 신검이 흡수한 순간, 안에 감춰져있던 두 번째 주문이 깜짝 상자처럼 폭발을 일으켰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어서 날아간 뜨개질 창들이 시합장에 꽂혀 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시합장의 결계가 뒤흔들리고, 관중석에서 보고 있는 학생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시합장 전체를 폭격하는 수준의 화력. 스케일 자체가 너무 다르다. 이내 폭발의 연기가 걷히고, 숨을 헐떡이는 유매의 등 뒤에 차대엽이 조용히 서있었다.
쥐고 있는 신검의 검신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처음 봤으면 고생했을 거야.”
“참 나···.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거야?”
차대엽은 유감이라는 듯 말했다. 유매의 마력독재도 뜨개질도 싸우는 버릇도, 차대엽은 이미 몇 번이고 보아 알고 있었다. 뜨개질이라는 기술의 원리도 송한솔에게 전부 들었다.
몰랐다면 정말로 위험했을 텐데. 알고 있는 기술의 대응책을 이제까지 생각해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차대엽은 칼자루로 툭 유매의 등을 밀었고, 탈진한 유매가 바닥에 쓰러졌다.
시합 종료의 신호가 울렸다. 관중석은 박수조차 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저 차원이 다른 수준의 마녀와, 그런 유매를 상처 하나 없이 이기고 서있는 차대엽을 바라보았다.
“하하···.”
그리고 차대엽의 다음 상대. 당신이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따위의 말을 하던 금예린이 땀을 흘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 순위전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