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대운 (1) >
“그러니까. 하하, 그게, 갑자기 납치당해서.”
나는 웃는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횡설수설 떠들다가,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차대운은 이미 내가 정세나에게 자의로 동행한 걸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모르고 끌려온 부외자가 아니라, 사정을 아는 채로 스스로 협력한 쪽이라고.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여기서 저는 아무 것도 못 봤고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바보같은 척을 해봤자 그런 것에 넘어가줄 만큼 차대운은 멍청하지 않다. 무엇보다 차대운이 진행하고 있던 계획을 옆에서 전부 다 들어버렸다.
나는 그냥 웃음을 지우고 차대운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랬어요?”
“무슨 뜻이지?”
눈썹을 올리며 되묻는 그에게 내가 내뱉었다.
“차대엽은 아버지를 실종시킨 범인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어요. 거기에만 모든 증오를 쏟아붓느라 다른 일에는 화 자체를 못 낼 정도로. 그 범인이 당신이란 게 밝혀지면 차대엽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솔직히 말해 인간을 재료로 유해 무기를 만들겠다 뭐다 뒤에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차대엽 또한 형이 평소에도 좀 위험해보이긴 했는데 완전히 훼까닥 돌아버렸으니 쥐어패서라도 고쳐줘야겠구나, 하고 담담하게 납득하고 말 것이다. 그냥 가족 중 한 사람이 나쁜 놈이었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실종시킨 범인이 자신의 형이라는 것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배신이었다.
그리고 내 말에 차대운은 기쁘다는 듯 웃었다.
“그것에 대해선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대엽이는 너무 우직해서 요령이 없거든. 그래서 중요한 때에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불안해하고 있어. 그런데 여차할 때 의지할 친구가 생겨서 초조함을 꽤 덜어준 모양이야.”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냈다. 쉬는 시간 틈틈이 차대엽이 쓰고 있던 편지였다. 편지봉투를 열어 내용을 다시 읽어본 차대운이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매주 써주고 있거든. 나랑 어머니한테.”
“당신 뭘 웃고 있어.”
나는 편지를 읽으며 웃는 차대운을 보고 가슴이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 인간이 차대엽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렇기에 화가 났다. 차대엽이 어떤 마음으로 범인을 쫓고, 어떤 마음으로 형과 어머니만큼은 잃지 않기 위해 단련하고 있는지 잘 알면서. 뭐가 좋다고 웃고 있는 것인가.
그건 미로로 된 상자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작은 동물을 구경하며, 귀엽다 비웃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아무리 노려본들 차대운은 얼굴에서 전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아니. 나도 동생을 속이는 건 가슴이 아파.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야. 대엽이가 역대 최강의 검성이 되기 위해선.”
차대운의 주변엔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자신의 흉행을 현장에서 들킨 범인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해하는 얼굴은 정말로 동생을 위하는 형의 표정이었다. 텔레파시로 표면에 떠오른 감정을 읽어보아도 거짓이 없다.
그래서 무서움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차대엽의 시점에서 바라본 차대운 뿐이다. 그래서 대체 무슨 심정인지 전혀 모르겠다. 동생의 편지를 평소에도 품에 들고 다닐 만큼 소중히 하고 있으면서, 뒤에서는 이런 짓을 하고 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나를 보고 있던 차대운이 내 얼굴을 가리켰다.
“직접 너랑 만난 건 한 번 뿐이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내심 날 무서워하고 있는 게 느껴졌지. 그래서 언젠가 너한테는 전부 들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차대운을 계속 의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차대운 또한 나를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텔레파시나 초감각 같은 게 아니라, 오로지 차대운이 지금껏 쌓아온 인간관계와 경험. 처세술과 수완에서 나오는 관찰안이었다.
“호랑이굴의 정보를 받았을 때, 네게 범상치 않은 탐색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았지. 그건 그 짧은 시간에 단순한 조사로 알아낼 수 있을 만한 질과 양이 아니었으니까. 설마 만난 지 몇 달도 안 돼서 여기까지 다다를 줄은 몰랐지만.”
세한에서 친구들과 사이 좋게 수업을 듣고 있었으면 절대 관련될 일이 없었던 뒤쪽의 사정. 보면 안 될 것을 봐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차대운은 나를 놓아줄 수가 없게 된다.
바깥에 일러바치는 것 따위 사실 문제가 아니다. 정세나를 놓친 걸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물증 따위 없애버리면 그만인 데다, 애초에 차대운은 기사단의 개입 따위 상관이 없을 만큼 뒤쪽 깊숙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학생 하나가 신고한다고 해서 흔들릴 만한 규모가 아니다. 차대운을 정말로 멈추고 싶다면, 마왕이라도 끌어들여 제대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도 나를 보내주지 못하는 이유는, 알아버린 이상 차대엽에게 말할 거라 생각할 테니까.
“좋아. 합리적인 거래를 하자.”
손에서 신검을 거둔 차대운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도 나한테 죽기는 싫겠지? 그리고 나도 한솔이 널 죽이기 싫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눈을 감고 30초를 셀게.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네가 없으면, 나는 지금까지 헛것을 본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눈썹을 찌푸리자, 차대운은 웃는 얼굴로 자신의 매력적인 제안을 설명해주었다.
“너는 애초에 성소에 들어온 적이 없고, 나도 오늘 이곳에 방문하지 않았다. 우린 애초에 여기서 만난 적이 없고, 다음에 봤을 땐 오랜만이라 반갑다고 악수라도 나누는 거지.”
그리고 정말로 눈을 감은 차대운이 30, 29, 28···. 하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함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못본 척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꼬리를 말고 도망쳐놓고선 동생한테 전부 일러바치지는 않겠지, 하고 나를 도발하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0초가 지나갔다. 차대운은 눈을 떴고, 미동도 안 하고 제자리에 서있는 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차대운이 머리를 긁적이고, 내가 내뱉었다.
“뭘 놀란 척 하는 거야. 당신이라면 눈 감고 딴 생각해도 내가 사라졌는지 아닌지 정돈 알 수 있을 텐데.”
“깜짝 놀랄 만큼 조용하게 움직여서 사라진 게 아닐까 믿고 싶었어. 눈 뜨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러면 곤란하다는 듯 차대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없던 걸로 하자는 말은 혈통시대의 후반부 차대운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 차대엽에게도 한 번 써먹은 방법이었다.
사실 검성의 성소에 들어올 수 있는 건 가문의 직계 뿐이기에, 성소 안에서 아버지가 발견된 시점에서 차대운은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차대엽은 무의식적으로 그 가능성을 지웠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형을 제외한 가문 내부 인간들의 더러운 부분을 하나하나 파헤쳐갔다.
그렇게 아무 상관없는 검귀들을 숙청하고, 차우진의 심장에 검을 꽂아넣고. 자신이 계속해서 쫓아온 원수가 바로 옆에서 자신을 도와주던 존경하는 형이었다는 사실에 차대엽은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다. 그리고 차대운의 제안을 수락한다.
망가지기 직전인 차대엽에게 선택지는 달리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움직이던 원동력을 모두 잊어버리고. 어머니와 형과 함께 겉으로는 화목한 가정의 일상을 이어가면서, 빈 껍데기 같은 상태가 되어 신검조차 발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마음속에 굳건하게 서있던 검이 꺾여 부러진다.
‘그 뒤에 또 각성을 하니 주인공인 거지만.’
검보다도 사람을 다루는 데에 도가 튼 저 인간이라면, 한 번 자신을 굽힌 인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여기서 도망쳤다간 난 목숨을 살려줬으니 입 닫고 있으란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건 그 부분이었다. 난 애초에 준비가 끝날 때까진 차대엽에게 안 말할 생각이었고, 그건 남이 강요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본 걸 없던 일로 할 생각은 없어.”
“그래.”
차대운의 손바닥 위에 신검이 나타났다. 정말로,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한 일을 밝힐 생각도 없어.”
“뭐···?”
“앞으로 2년. 딱 2년이면 돼. 차대엽을 당신한테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해지게 한다. 그리고 당신을 피떡이 될 때까지 패버릴 거야. 그 과정에서 당신네 보스도 박살낼 거고. 말하는 건 그때야. 당신은 무릎 꿇고 울면서 빌기라도 해.”
과장 하나 섞이지 않은 진지한 내 목표였다. 단언하듯 쏟아낸 말에, 차대운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빵 웃음을 터뜨렸다. 배까지 잡으면서 웃는 게 걸작 개그라도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 그야 차대운의 보스가 누구인지 아는 인간은 지금 내가 한 말이 얼마나 얼토당토 없는 것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싹 웃음을 지운 차대운이 짝짝 박수를 쳐주었다.
“멋지네. 응원하지.”
그리고 다시 입꼬리를 올렸을 때 그 웃음은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웠다. 아까까지의 얼빠진 분위기하고는 전혀 다르다. 동생의 친구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검승부의 상대로서 이쪽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차대운이 대단히 즐거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2년이라고 했겠다? 좋아, 2년. 그동안은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어. 친구의 형으로서라면 협력도 해주지. 시간이 다 지나거나, 날 공격한 시점에서 전쟁 시작이야.”
대단히 들떠있는 목소리였지만 근본은 싸늘했다.
“실패한다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죽이겠다. 나를 이렇게 기대하게 만들어준 죄는 그만큼 커.”
그리고 팅, 하고 차대운이 무언가를 던졌다. 손바닥으로 툭 잡자 차대운이 날린 건 투박한 디자인의 금속 반지였다.
“이쪽이 유리해도 너무 유리하니, 선공 정도는 양보해줘야겠지. 그걸 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지 기습해오도록 해.”
그리고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이템 퀘스트 : 차대운의 반지>
<탈선자 차대운을 2년 안에 완전히 제압하시오. (첫 시도에서 실패할 시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보상 : 100,000 Credit, 마인드맵 개척 – 염사 Lv.1, 마인드맵 개척 - 의식 세공 Lv.1, 시스템 접근 권한 Lv.3>
이내 차대운은 등을 돌린 뒤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마물들의 시체를 내버려둔 채, 출구를 향해 걸어 올라간다. 처리해야 할 실험체들은 전부 정세나의 그림자가 집어삼켰으니 청소는 나중에 해도 된다는 생각인 듯 했다.
차대운이 바깥에 나가고,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정세나가 치워준 덕분에 위험한 실험체들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결계를 해제한 걸 눈치채고 나타난 차대운도 돌아갔다.
이걸로 아무 것도 없는 검성의 성소에 혼자 남게 되었다. 나는 조용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갈려나간 마물들의 끈적한 핏물로 범벅이 된 땅바닥 너머를 투시를 써서 확인했다.
<마인드맵 확장 : 블링크 Lv.1>
샤샥, 하고 내 몸이 아래쪽으로 순간이동했다. 염동력으로 충격을 줄여 착지하자, 눈앞에는 거대한 문과 함께 위쪽의 석판에 이러한 말이 적혀있었다. ‘이 앞을 지나고자 하는 자, 자신의 신검을 꽂아넣어 검성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하라’.
혈통시대의 히든 스테이지였다. 중후반부에 가서 풀리는 떡밥으로 혹시나 해서 성소를 다시 뒤져보면 찾을 수 있는 비밀의 방. 구멍에 검을 꽂는 순간, 성소를 지키고 있던 초대 검성의 사념과 전투가 시작된다. 사념은 신검합일을 각성한 차대엽도 압도적으로 열세에 몰릴 만큼 끔찍하게 강했다.
하지만 나는 딱히 문을 열 필요가 없다. 문 안쪽을 투시한 뒤, 블링크를 써서 그냥 지나갔다. 안쪽의 방엔 장식 하나 없이 새하얀 검 한 자루만이 박혀있었다. 아직까지도 능력을 잃지 않고 성소 가장 깊은 곳에 꽂혀있던 초대 검성의 신검.
“이거지.”
나는 신검을 뽑아들고 다시 블링크를 써서 나왔다.
* * *
차대운은 기분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피식 웃음까지 흘려댔다. 그가 일하는 곳에서 그런 표정을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차대운과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떨던 부하들이, 갑자기 막 웃으니까 오히려 더 무서운 듯 멀리서 바라보았다.
차대운은 과거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정한 괴물에게는 검성의 힘 따위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인간으로서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에 미치기 위해서는 미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인간을 벗어나 탈선해야 한다···.
아버지라는 인간은 어디서 한 번 박살나고 오더니 그런 헛소리를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미쳐야 한다, 미쳐야 한다, 중얼거리던 양반은 진짜로 미쳐서 자신의 아들에게도 미치라고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한심한 양반이었다.
어머니에게는 검성이 되는 길은 혹독하니까, 이게 다 단련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어째서인지 차대운은 어릴 때부터 사람의 심리라든가 다음에 할 행동 같은 것들이 손에 잡힐 듯이 알 수 있었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막아선 어머니가 크게 다칠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렇다 해도 아픈 건 아픈 것이요 짜증나는 건 짜증나는 것이다. 힘없는 인간도 아니고 검귀의 정점인 검성이라는 인간에게 매일같이 단련을 핑계로 학대당하는 것은 진지하게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차대운은 내심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길 미쳐버리게 하고 싶어하는데, 자신이 태어나길 너무 잘 참는 성격으로 태어난 탓에 아무리 학대하고 압박을 가해도 똘망똘망한 정신으로 미치질 않는다.
그래서 잠깐 집을 나갔다. 자신이 사라진 동안 아버지가 좀 그런 미신 같은 것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혔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 딱히 엄청 센 놈한테 한 번 졌다고 찌질대다 미쳐버린 아버지를 미워하진 않았다. 자신은 견딜 만 했으니까.
그리고 다음날. 동생의 얼굴에 상처가 나있었다. 그때 차대운은 자신이 평생 집에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웃으며 식사를 차려준 어머니는 이마에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넘어졌다가 잘못 부딪힌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의 흉터들을 단련하다 그런 것일 뿐이라고 둘러댈 때마다, 어머니가 이러한 기분을 느껴왔을 것이란 걸 알았다.
차대운은 처음으로 견딜 수 없는 정신적 압박을 느꼈다. 더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났다. 그리고 아버지는 옳았다. 처음부터 비틀려있던 인간이 미쳐버려 선을 넘는 것으로, 처음으로 얻을 수 있는 힘이란 게 있었다.
그 뒤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두 자신을 만들어준 경험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자신의 동생을 하루 빨리 검성으로 만들어, 요령이 부족한 동생 대신 자신이 방해되는 것들을 전부 청소해주는 것 뿐이었다. 그걸 가능케 할 재력도 권력도 폭력도, 자신에게는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유일하게 걱정했던 동생의 정신적 문제도, 안심하고 맡길 만한 친구가 생겼다.
차대운은 끼익, 문을 열고 안쪽에 앉아있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아버지였던 전대 검성을 벌레 보듯 한쪽 발만으로 짓밟아, 평생을 패배감에 꿈틀대도록 만든 남자.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무슨 일이지?”
“아, 그냥 집에 가스불 안 잠그고 나와서요.”
“아아. 불조심은 중요하지.”
검은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다리를 꼰 채 끄덕거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와인을 병째로 들이켜 벌컥벌컥 마신다. 모든 행동에 경박함이 넘치는 이 사내야 말로 차대운이 섬기고 있는 보스이자, 그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물.
“그래서 오른팔아, 뭐 재밌는 일은 없냐?”
흑룡, 이무기가 쭉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차대운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