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풍회 (2) >
경매 진행자들이 진열장에서 미믹을 하나씩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연회장 무대에 놓여있는 기다란 테이블에 첫 번째 순서인 네 마리의 미믹이 올라왔다. 미믹을 꺼낼 때마다 마법사가 탐색 주문을 사용해 살아있는 미믹임을 보증해주었다. 달아오른 분위기에 좌중들이 눈을 빛냈다.
죽은 척 의태하고 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마물을 볼 수 있는 건 진귀한 광경이었다. 겉보기에는 경매고 본질은 도박이지만, 미믹 경매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쥔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워올렸다.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해 미믹의 생태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미믹의 입을 열어보니 나왔던 귀중한 보물들의 목록과 그 당첨자들. 자리에 놓인 미믹들이 몇월 며칠 어떤어떤 둥지에서 발견됐는지 입수경로까지 설명해주었다.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웅성댔다. 배은호의 말에 따르면, 딱히 미믹 경매로 돈을 벌 생각이 아니어도 블랙마켓에 오면 기념처럼 하나씩 열어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의 마인드에 운세 시험도 겸한 것이었다.
‘오락실에서 괜히 인형뽑기 해보는 거랑 비슷한가.’
미믹 정도가 되면 아무리 싸게 낙찰받는다 해도 인형뽑기 같은 푼돈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 빠져나갔지만, 여기 모여있는 건 대부분이 총알이 넉넉한 큰손들이니 정말 그런 감각으로 하나씩 사는 걸지도 몰랐다. 꽤 쏠쏠한 장사였다.
“물론 진심으로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도 있지.”
예를 들어 ‘흑철’이나 ‘생명의 꿀’처럼 미믹 안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최고급 재료들. 이런 것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장에 도는 매물 자체가 거의 없었기에,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선 직접 미믹을 깔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는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었다. 미믹 경매 자체를 연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위험도가 높은 둥지에서 나온 미믹일수록 훌륭한 아이템이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든가, 통계상 파란색 미믹이 제일 당첨이 많이 나온다든가. 앉아있는 배은호는 그런 미신 같은 데이터로 예측을 시도하는 자들을 한심한 치들이라 일축했다.
“결국 다 선동이고,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던 시도는 하나도 없었어. 복권 분석하는 인간들이랑 다를 바가 없지.”
미믹 경매의 이론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자들을 상당히 혐오하는 듯한 눈치기에, 나는 살짝 떠보듯이 물어보았다.
“혹시 헛소리 믿었다가 돈 좀 잃었어요?”
“···검증 과정에 소모한 비용이라 해둘게.”
큼큼 헛기침한 배은호는 테이블 위에 메모장을 놓고, 서명용 펜을 꺼내 조잡한 솜씨의 그림을 하나씩 그려갔다.
“제일 무난한 건 보물, 보석류. 이게 나오면 웬만하면 이익을 낼 수 있어. 당첨은 몇몇 희귀한 재료나 미믹의 정수 같은 거. 제일 좋은 건 완제품이 들어있는 건데, 이건 거의 없지. 꽝일 때는 최악의 경우 짐승 뼛조각 같은 게 나온다.”
미믹이 가지고 있는 완제품 장비들은 하나같이 요술이 걸린 것처럼 특이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표적으로 주문을 그대로 반사하는 거울이 유명했다.
개중에는 한 번 입으면 몸에서 뗄 수 없다든가 하는 곤란한 저주가 걸려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건 사용하기 전에 제대로 감정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나오질 않는다는 것. 편의상 ‘미믹 장비’라 이름 붙여진 이 특수한 주구들은 온 세상을 통틀어도 백 개가 넘을까 말까한 희소품이었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미믹들을 한 번 슥 바라보았다.
‘역시 그렇게 쉽게는 안 나오나.’
투시로 살펴보니 첫 번째로 테이블에 놓인 상자들 중 건질 만한 건, 맨 왼쪽 보석이 들어있는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배은호에게 내가 가리킨 미믹을 낙찰받아달라 지시했다. 별 다를 거 없이 평범한 미믹을 바라본 그녀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냥 감으로 찍는 거잖아. 진짜로 입찰하라고?”
“못 믿으시면 말고.”
내 도발에 콧숨을 내쉰 배은호가 입찰했다. 어차피 미믹 하나 정도 열어보는 것은 기분 전환이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꽝이 나오면 그때 가서 인생이란 게 그리 만만한 게 아니란다, 하고 비웃어줄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내가 지목해 낙찰받은 미믹들은 전부 본전 이상, 보물이나 귀금속을 비롯해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몇 번이고 다른 미믹들이 돌아가도 절대 꽝 미믹은 지목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있는 미믹들이 전부 꽝일 때는 그냥 넘겼고, 열기만 하면 무조건 보물이었다.
처음엔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칭찬하며 박수를 치던 진행자도 살짝 당황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단호하고 노골적이었다. 내가 배은호에게 다음 미믹을 지목했다.
‘잠깐만, 너···.’
옆에 앉은 배은호가 귓속말하며 팔꿈치로 나를 쿡쿡 찔렀다. 확실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이때다 싶을 때만 조금씩 해먹어야지, 이렇게 계속 정확하게 정답만 골라내버리면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가 있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돈 벌어주는 건데 뭐가 불만이예요.”
‘멍청아, 적당히 꽝도 섞어가면서 골라야 의심을 안 받지···! 꼼수가 있으면 빼먹을 대로 빼먹어야 될 거 아니야!’
내 대답에 배은호가 화난 얼굴로 속닥속닥 말했다. 방법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가 정말 당첨 미믹과 꽝 미믹을 골라낼 수 있다고 납득한 눈치였다. 아마 이걸로 크게 한탕 해먹고 싶은 모양인데, 어차피 지금 내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난 노리는 물건만 얻으면 충분해.’
오늘 이곳에서 얻어야 할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그것 말고는 전부 일부러 눈에 띄어 블랙리스트에 오르기 위함일 뿐이다.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사회자는 역시 프로라는 건지 곧바로 평정을 되찾고 능숙하게 경매를 다시 이끌어갔다.
“고르는 족족 당첨인 손님이 한 분 계시군요!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 걸까요? 그러면 슬슬,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하죠!”
그러자 연회장 안의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수많은 라이트가 테이블 중앙에 모였다. 사람들이 뭐냐며 웅성거렸다.
사회자가 신호를 보내자, 거한 두 명이 나타나 진열장에서 특별한 미믹을 꺼내왔다. 다른 미믹들보다 몸집이 2배 이상 커다랗고 호화로운 장식으로 몸을 감싼 녀석이었다. 누가 봐도 다른 미믹과는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 매물이었다.
“저거구나.”
다른 손님들처럼, 배은호 또한 눈을 빛냈다. 돌연변이라 생각될 정도로 커다랗고 화려한 미믹. 적어도 보석 이상의 물건이 들어있을 거라고 누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 낙찰받을 수 있는 것은, 직접 들고 온 가용 현금이 제일 많은 쪽이다.
“총알을 넉넉히 준비해오라 당부하던 이유. 이번 매물 정보를 미리 알아낸 거야? 여기 보안은 엄청 철저할 텐데.”
배은호는 최대한 돈을 들고 왔지만 이 정도로는 전혀 충분치 않다는 듯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수준의 특급 미믹이 나올 것이라 미리 알려주었다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서라도 반드시 낙찰받을 만큼 총알을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손가락을 교차해 엑스자를 만들었다. 저건 둥지를 죽어라 돌다 보면 아주 가끔씩 나오는, 일반 미믹과 달리 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황금 미믹’이었다. 만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녀석이기도 했다.
황금 미믹의 등장만을 기대하고 몇 번이고 미믹 경매에 참가해온 꾼들이나, 저것만 열 수 있다면 지금까지 잃은 것들을 전부 만회할 수 있다는 개봉 중독자. 다른 목적으로 왔지만 이 매물은 사봄직하다 턱을 쓰다듬는 뒤쪽의 자본가들.
온갖 욕심들이 일렁이며 연회장을 채웠다. 역대급 매물의 등장은 광기를 동반한다. 어쩌면 완제품 무기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잘만 풀리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 모두가 저걸 낙찰받고 싶어 안달이 난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테이블에 놓인 황금 미믹 안쪽에 들어있는 건 평범한 보석류였다. 나쁘지는 않은 구성이고, 일반 미믹과 비슷한 가격에 구매한다면 상당히 이익을 남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금 미믹은 엄청나게 가끔씩만 나오는 귀하신 몸이다. 딱 봐도 경쟁이 붙어 낙찰가가 치솟을 게 분명했다. 다시 말해 사봤자 손해. 만일 가용 현금이 충분해 무리해서 낙찰받았다 해도 입찰하느라 쓴 돈의 반도 못 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대한 황금 미믹과의 크기 비교를 위해 옆에 늘어서있는 일반 미믹들을 보았다. 미믹들 안쪽을 투시해본 내 눈이 반짝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황금 미믹 바로 옆에 놓여있는 투박한 미믹에 당첨 상품이 들어있었다.
“선배, 지금까지 연 것들로 얼마나 벌 거 같아요?”
“잘 모르겠는데··· 입찰 경쟁이 그렇게 심하지도 않았고, 급하게 처분하지만 않으면 최소한 세 장?”
“그럼 지금 한 장만 좀 빌려주세요.”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작은 미믹에 입찰을 넣었다.
내 선언에 연회장의 다른 인간들이 웃기는 녀석이라는 듯 피식댔다. 배은호 또한 무슨 짓을 했냐는 표정으로 입을 멍하니 벌렸다. 도대체 왜 황금 미믹을 낙찰받는 걸 포기하고 그런 아무래도 좋을 물건에 시드머니를 낭비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낙찰자를 확인하기 위해 테이블에 다가온 사용인에게 내 카드를 보여주고 서명했다.
작은 미믹엔 나 말고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그대로 내가 낙찰을 받았다. 그동안 황금 미믹의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치솟아있었다. 일반 미믹 평균 낙찰가의 열 배를 가볍게 뛰어넘는 액수였다. 낙찰자는 돈 많아 보이는 뚱보 아저씨였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봉식이 되었다. 낙찰받은 사람도, 낙찰받지 못한 사람도 짝짝짝 박수를 치며 저 거대한 황금 미믹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해하며 흥분했다. 이윽고 무대에 나타난 검사는 기묘하게 생긴 칼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안쪽의 물건에 최대한 상처를 내지 않고 미믹을 신속하게 죽이기 위한 전용 장비 같았다. 분위기를 띄워올리기 위해 검무를 추며 뜸을 들이던 남자가 황금 미믹에게 검을 꽂아넣었다. 황금 미믹이 저항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열어라! 열어라! 열어라! 열어라!”
연회장 안은 이미 광란에 휩싸여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 들어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배은호마저 동공을 날카롭게 좁히고 개봉식이 진행되는 무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사회자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폭죽이 터지며 황금 미믹의 입이 열렸다. 상자 안에서 여러 귀금속들이 주르르 쏟아져나왔다.
“아···.”
누군가 그런 침음을 흘렸다. 연회장의 사람들은 분위기에 따라 박수를 쳤지만, 아까까지 있던 광기와 흥분은 반 이상 사라져있었다. 사회자의 축하한다는 말에, 황금 미믹을 무리해 낙찰받은 아저씨는 허망한 표정으로 보석들을 바라봤다.
사실상 망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평범한 가격에 샀다면 모를까, 말도 안 되게 부풀어오른 낙찰가를 지불한 이상 저 보석들을 아무리 잘 처분한다 해도 입찰에 쓴 돈의 반의 반도 회수하지 못할 것이다. 커다란 도박에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일반 미믹들 또한 하나씩 개봉했다. 어차피 이번 경매의 메인은 방금의 황금 미믹이었기에, 다른 것들은 사무적으로 처리한 뒤 입을 따서 내용물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찰했던 작은 미믹이 입을 열었다.
“오오···!”
연회장의 사람들이 탄성을 흘렸다. 상자를 연 사람도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배은호는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에서 나온 건 보랏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금속 십자가였다. 의심할 여지 없는 완제품. 당첨 중의 당첨인 미믹 장비였다.
‘자색십자.’
효과는 단순했다. 하루에 한 번 치유의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대상의 기력을 소모시켜 강제로 회복을 촉진시키는 원리였다. 게임에서는 단순히 아군을 회복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기묘한 전략으로 보스의 기력을 빵꾸내버릴 때 쓰기도 했다.
사실 마력이 없는 나는 십자가의 발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남한테 건네주고 나한테 써달라 할 수는 있었다.
무엇보다 이 십자가야말로 아기 천사의 날개를 대천사의 날개로 진화시키기 위한 준비 재료 중의 하나였다. 하나만 더 손에 넣으면 그 강력한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의외의 개봉 결과에 다시 폭죽이 터지며 사회자가 소리쳤다.
“이럴 수가!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로 옆에 있었던 자그마한 미믹에서 올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완제품 장비가 등장할 줄이야! 다같이 행운의 주인공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연회장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짝짝짝 박수를 쳐주는 가운데, 가면을 쓴 나는 두 손을 들고 승리의 브이 사인으로 답해주었다. 그리고 이쪽 테이블에 한쪽 귀에 이어마이크를 끼고 있는 거한이 다가왔다. 경비요원 비슷한 모습이었다.
“송한솔 님, 배은호 님. 관리자 님이 두 분과 대화하고 싶어하십니다만, 안쪽으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절은 불허한다는 단호한 목소리였다. 배은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조금만 사랬잖아 멍청아, 하는 말이 큰일 났다는 얼굴에 쓰여있었다. 오늘 당첨이란 당첨 미믹은 전부 이쪽이 쓸어갔으니 관리자로선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고 느긋이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겠지.
“안 될 거 없죠.”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경비요원을 따라 걸어갔다.
< 적풍회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