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하맹호 (1) >
점심시간. 나는 도서실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며 손에 턱을 괴었다. 내가 만들어 온 도시락을 먹고 있는 차대엽과 유매는, 서로의 전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순위전이 끝난 뒤 다른 학생들은 혹독한 단련 스케줄에서 벗어나 조금 풀어진 느낌이 있었지만, 유매와 차대엽은 오히려 전보다 훨씬 강해지고자 하는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제대로 싸움이 성립될 만큼 수준이 맞는 상대가 별로 없었기에, 자기들끼리 대련하며 피드백과 복기를 반복했다. 개선점을 다 고쳐 둘이 싸우는 의미가 없어지면, 2학년 건물에 쳐들어가서 다음 상대를 찾을 계획이라 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단련 열풍이야?”
내가 맞은편 의자에 앉아 말하자, 차대엽과 유매 둘 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눈썹을 찌푸리면, 유매는 속 터진다는 듯 크게 한숨을 쉬고, 차대엽은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혔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실감했으니까.”
순위전 1등한 놈이 부족함을 실감할 게 뭐 있어? 턱을 매만지던 나는 그제야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결승전 시합장에 난입해온 정세나의 마물. 그건 일반적인 마물 중에선 확실히 최상위권에 속하는 부류였다. 1학년 때 그런 걸 코앞에서 보게 되면 기사 지망생으로서 동기 부여가 될 만도 했다.
어느새 도시락을 정갈하게 다 비운 차대엽이 말했다.
“영양 밸런스가 완벽한데. 이런 것도 신경쓰는 건가?”
“내가 신경쓰는 건 아니고···.”
나는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만 꽉꽉 눌러담는 스타일이었지만, 균형 잡힌 식단에 신경 안 쓰면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추궁하는 선배가 한 분 계신다. 쟤들이 싸울 때 개선점을 토론하는 동안, 나는 반찬을 음미하며 맛내기의 개선점을 생각했다. 그러자 유매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 쳤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그냥 맞고서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편이 훨씬 짜증난다고!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피해야 한다는 결벽증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그거 나쁜 버릇이야.”
유매의 지적에 팔짱을 낀 차대엽이 대답했다.
“너야말로 무조건 최대 화력까지 집속시켜서 쏘는 버릇은 좋지 않아. 네 주문은 이미 충분히 강하니까, 비교적 약한 주문을 여러 개 전개하는 편이 상대하는 입장에선 치명적이지.”
그런 말꼬리 잡기 같은 지적이 물고 물리며 이어졌다. 그 중에서는 꽤 생산적인 논의도 몇 가지 섞여있었다.
기본적으로 유매는 차대엽을 박살내기 위해, 차대엽은 그렇게 자신의 필승법을 파훼한 유매를 다시 파훼하기 위해 대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미 순위전 당시보다 한두 단계씩은 실력이 발전했을 것이다. 정말 질리지도 않는 괴물들이다.
두 사람이 이래저래 떠드는 걸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꽤 사이가 좋아졌네.”
그야 자기 능력을 결점까지 전부 밝히고 어떻게 개선해야 좋을지 상담하는 건 상대방을 상당히 신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예린처럼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면 아마 가족에게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사용자만이 알고 있는 능력의 약점이 새어나가는 건 치명적인 일이었으니.
사실 차대엽과 유매는 입학했을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얽히고 싸워왔으니 실력에 있어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다행이란 얼굴로 바라보자 유매가 확 눈썹을 찌푸렸다.
“누가 이런 거랑 사이가 좋다는 거야?”
“그런가. 나는 꽤 좋아하는데.”
“그런 점이 싫다는 거야. 친한 척 하지 마!”
쏘아붙인 유매가 고양이처럼 으르렁댔다. 강한 것만은 인정하니까 연습 상대로 이용하는 것일 뿐, 친구라 착각하지 말라는 얼굴이었다. 사실 저 말에 차갑게 정색하는 게 아니라 짜증내는 것부터가 상당히 마음을 터놓고 있단 증거였다.
“통 줘.”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손을 내밀자, 차대엽과 유매가 깔끔히 비운 도시락 찬합을 돌려주었다. 도시락을 싼 입장에서 이렇게 남김없이 먹어주는 건 기분이 좋다. 찬합을 잘 정리해 가방 안에 넣은 나는 앉아있는 차대엽을 보고 말했다.
“차군, 오늘 방과후 시간 좀 있나?”
“또 위험한 일이라도 하러 가는 건가.”
“또라니 뭔 소리야? 난 위험한 짓 같은 거 안 해.”
나는 진심으로 억울해서 반박했다.
세한기전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싸우고 강해지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전투광들이지만, 나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승부라든가 목숨을 건 싸움 따위 딱 질색이었다.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부터 만들어놓고 수틀리면 곧장 도망친다.
어련하다며 볼을 긁적인 차대엽이 유매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말릴까? 하고 묻는 눈빛에 유매가 콧숨을 쉬었다.
“걱정해봐야 이쪽만 손해지. 마음대로 해.”
그리고선 휙 단추 비슷한 것 하나를 던졌다. 유매는 손가락으로 자기 마이의 카라를 톡톡 쳤다. 거기에 달아두라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순순히 내 교복에 뱃지를 달았다. 붉은 매화 모양이 그러져있는 뱃지를 내려다보며 유매에게 물었다.
“이게 뭔데. 위치추적기?”
“내 부하니까 건드리지 말라는 표시. 고맙지?”
“나 네 부하 아닌데.”
유매가 이쪽을 째릿 노려봤고, 나는 두 손을 들고 항복 자세를 취했다. 더 말꼬리를 잡았다간 얻어맞을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돌아가며 차대엽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야?”
“그냥, 폐인 된 아저씨 하나 갱생시키러.”
나는 뒤통수에 양손을 모은 채로 대답했다.
* * *
“역시 여차할 때 의지할 수 있는 게 어느 쪽인지 깨달은 모양이군. 옆에 다른 놈이 앉아있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도로를 달리고 있는 새까만 차량 안, 피식 웃은 자세빈이 말했다. 차대엽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봤고, 어색한 둘 사이에 껴서 앉아있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자세빈. 너 호걸이라고 알아?”
내 물음에 자세빈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호걸? 그야 알고 있지. 기사단에 소속되지 않은 성골들은 기본적으로 마왕성 관할이니까. 하지만 꽤 옛날 인물일 텐데. 호걸이 한창 이름을 날리던 건 내가 아직 어릴 때였으니.”
개인적으로도 꽤 자세히 알고 있는 듯, 차 안에서 자세빈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걸 유경명. 마물을 때려잡는 데에 특화된 산군 혼혈이면서도, 특이하게 둥지에서 싸우는 것보다 능력을 악용하는 자들을 사냥하는 걸 즐기던 괴짜 기사.
아마도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실감을 원했을 것이다. 그 행적은 범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난폭했다. 강경한 수단도 전혀 마다하지 않고, 선을 넘은 자들에게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폭력으로 보복했다. 그 탓에 마왕과도 마찰을 빚었다.
“마음대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부숴버렸길래 불러냈더니, 쓰레기 청소를 해줬으면 혼을 낼 게 아니라 돈을 내라고 했던가. 아무튼 아버지가 상당히 눈여겨보던 남자였지.”
한참 어렸던 자세빈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만큼 자주 마왕성에 불려왔던 남자였다. 마왕은 그를 흑기사단에 스카우트하려 노력했지만, 조직에 소속되는 순간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고 마음대로 날뛰지 못한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어하셨던 모양이야. 아버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도 별 탈이 없던 걸 보면. 그만큼이나 두각을 드러내던 기사였는데 어느 순간 은퇴해서 사라져버렸지.”
호걸의 이야기에는 차대엽 또한 상당히 흥미로워하는 눈치였다. 그 아저씨나 차대엽이나 똑같이 틈만 나면 범죄자들 쥐어패고 다니는 게 취미였으니 통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거냐?”
자세빈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차대엽 또한 기대되는 듯 주먹을 살짝 쥐었다. 어떻게 은거한 곳을 알아냈냐 따위의 촌스러운 질문은 하지 않았다. 신경쓰는 것은 오직 한때 영웅이라 불렸던 남자에게 자신들의 힘이 어디까지 통용되는가. 즉 만나자마자 싸움을 걸 생각 만만이었다.
호걸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절에도 마왕이 직접 불러내 스카우트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기사였다. 점점 더 거대한 적을 찾아내 싸워가며 그것을 양분으로 또 강해졌을 테고, 호환으로 영락한 채 8년이 지나가버린 지금은 분명···.
‘차대운 수준.’
신검합일을 이루어낸 그 괴물 검귀와 같이, 평범한 기사들 따위 떼를 지어 달려들어도 아무 의미가 없는 레벨이었다.
마음이 꺾여 약해졌을 거란 예상은 터무니없다. 요호를 적대하는 온갖 요괴를 호환으로서 학살하며 전투 경험을 쌓아온 남자는 말 그대로 살육 기계라고 할 수 있었다. 대요괴의 오른팔을 자칭하기 아깝지 않은 실력. 요호 스스로도 이렇게나 쓸만한 말로 완성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대운이 기술의 정확성과 날카로움으로 뭐든지 베어낸다면, 호환은 거대한 대검으로 상대를 지형째 짓뭉개버린다.
애초에 서있는 영역이 너무 다른 존재였다. 그가 가볍게 검을 한 번만 휘둘러도 우리 세 사람은 고깃덩이로 다져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위험하다는 생각 따위 요만큼도 하지 않았다. 평소의 그는 이미 검을 들 수조차 없는 상태니까.
나는 자세빈네 기사님께 인사한 뒤 차에서 내렸다. 굳이 여기까지 자세빈을 데려온 건 자동차 좀 빌려타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셋이서 조금 걷자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걸이었던 남자가 활동하고 있는 건 이 동네의 공원이었다.
공원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자세빈이 눈을 빛냈다.
“알겠어. 저 남자다. 분명히 봤던 기억이 있어.”
자세빈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저만치 멀리 공원 구석에 서있는 덩치 큰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이내 남자 가까이 다가간 자세빈이 당황했다. 차대엽마저도 놀란 얼굴이었다.
다 헤진 누더기같은 코트를 입고 서있는 남자는 한 손에는 양철 집게를, 또 한 손에는 커다란 봉투를 든 채, 공원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처럼 보이는 노인에게 혼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깡통은 내가 쓰고 있던 거였다고! 왜 마음대로 버리냐고, 덩치만 커가지고 쓸모도 없는 놈이!”
“죄송합니다. 참으로 면목 없습니다···.”
황갈색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는 노숙자에게 허리를 숙이며 연신 사죄했다. 사과받는 쪽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굴한 모양새였다. 자신은 살아있을 이유가 없는 쓰레기이며 여러분들과 함께 숨을 쉬어 죄송하다는 표정이 얼굴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노숙자가 화내며 발로 봉투를 걷어찼다.
찢어진 봉투에서 온갖 쓰레기들이 바닥에 흘러나왔다. 곧장 흙바닥에 무릎꿇은 남자는 찢어진 봉투의 구멍을 손으로 막으며, 떨어진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다시 주워모았다.
“더러운 꼴을 하고서 쓰레기나 주우러 다니고 말이야, 젊은 놈이 왜 그렇게 살아! 내가 그 나이였으면 말이야 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차대엽이 말없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나는 슥 손을 들어올려 노숙자의 입을 물리적으로 틀어막으려는 차대엽을 제지했다. 자세빈은 아직도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노숙자가 실컷 화를 내다 돌아가고, 자리에 남겨진 남자가 남은 쓰레기들을 다 주워담았다.
그리고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뚫린 구멍을 손바닥으로 막은 채 어딘가로 걸어간다. 시체를 연상시키는 발걸음. 말 그대로 폐인이 된 상태였다. 이쪽을 눈치채지도 못한 것 같았다. 아마 갑자기 누가 자기 얼굴을 후려쳐도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화나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겠지.
‘직접 보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
호걸은 사실상 죽은 상태였다. 죽어있는 상태로 숨만 쉬며, 그저 요호의 지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온 동네의 쓰레기를 청소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건 살 가치가 없는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데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 지불이었다.
그리고 요호의 명령을 받아 백귀야행의 호환으로서 가면을 쓰면, 인격은 저 아래로 가라앉고 의무만이 남는다. 얼마나 강한 적이라도 어떻게든 이겨냈던 그 시절 호걸의 능력을 모두 써서, 주인이 처리하라는 적들을 기계적으로 분쇄한다.
반대로 가면을 쓰지 않았을 때는 아주 작은 반항도 하지 못한다. 환술에 속아 아이들을 죽였던 경험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기에, 자신이 무언가 능동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검을 쥐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환술의 영향에서는 벗어난지 오래인데도, 아직도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환각을 보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당장에라도 요호에게 반항하기 위해, 차라리 스스로 죽기 위해 대검을 집어들려고 하면 어린 여자아이의 환영이 속삭인다. 또 그때처럼 그 검으로 자신들의 내장을 헤집으려는 거냐고.
호걸은 그걸 자신에게 달라붙은 아이들의 원혼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착각이었다.
그야 요호의 환술에 속아 호걸이 자기 손으로 베어버렸던 아이들은 아직도 멀쩡히 살아있으니까. 사지가 붙어있지는 않지만 반은 재미로, 반은 호환이 자신에게 반항했을 때의 본보기를 위해 요호가 은신처에 숨겨둔 채 기르고 있었다.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아이들과 재회했을 때, 그들은 유경명에게 괜찮다고, 이해한다 웃어주었다. 그만큼 아이들은 호걸을 믿고 있었다. 영문 모른 채 몇 년을 갇혀있었으면서도, 절대 호걸이 스스로 자신들을 해치려 들었을 리 없다고.
그리고 옆에서 속삭이는 아이들의 환영은 웃으며 귀띔한다. 저것들은 가짜라고. 또 환술에 속아넘어갈 생각이냐고. 애초에 우리들이 당신을 용서해줄 리가 없잖아, 하고.
과연 그렇다고 납득한 유경명은,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구해주러 와줄 거라 믿고 있었다고 웃어주는 아이들을 이번에야말로 스스로 참살해버린다. 그렇게 완전히 탈선한다. 평범한 인간은 끼어들 수 없는, 요괴 사이드의 등장인물로.
‘너무 찝찝해.’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폐인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놔두어선 안 된다. 이후의 시나리오가 어쩌고 저쩌고 이전에, 그냥 안 되는 거다.
“따라가자.”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갱생시킨다. 나는 자세빈과 차대엽에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남자의 등을 가리켰다.
< 송하맹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