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묵지화 (2) >
정세나가 어둑시니의 후계자로서 활동하게 된 것은 무언가 대단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끝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길거리에서 사이비들이 곧잘 하곤 하는 포교 활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참 눈이 맑으시다, 기운이 좋아 보이신다 따위의 시답잖은 말들로 궁지에 몰린 인간을 꾀어내보려 하는 수작.
평범한 사람이라면 반응조차 해주지 않았겠지만, 정세나는 충분히 궁지에 몰려있었다. 무엇보다 권유가 이루어진 곳은 길거리가 아니라 정세나의 방이었기에, 그림자가 비대해진 채 움직이는 듯한 괴물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텅 비어있는 눈동자군. 어둠에 전혀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아. 내가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숙주다. 용의 발톱에 그림자를 찢겼을 땐 어떻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군데군데가 찢어져 흩어지고 있는 그림자는, 똑같이 군데군데 멍이 든 채로 방 한구석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게 뭐가 좋다고 숨을 쉬냐며 언제나 화를 내던 남자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인간에게는 법도가 있겠지? 나는 방금 네 목숨을 구했다. 그러니 너도 네 그림자에 날 이어받아 나를 구해라.>
어둑시니가 들어차있는 방은 코앞에 있는 자기 손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심연으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웬만한 성골들도 착란하거나 의식을 잃어버릴 어둑시니의 어둠 속에서도 정세나는 태연했다. 오히려 더 편안한 기분까지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무서워하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새까만 어둠 속에 앉아있는 걸 좋아했다.
언제나 이 조용한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구석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새벽빛을 아무리 노려봐도 아침은 찾아왔다. 잠에서 깬 아버지는 소파에서 일어났고, 절망은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인사를 건넸다.
이윽고 정세나는 모든 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납득하면 편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절의 의사를 가지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삶 또한 바라지 않는다. 차가운 것도 미지근하게, 뜨거운 것도 미지근하게 느끼도록 감정을 가라앉혔다.
정세나의 안이 텅 비면 비어갈수록, 아버지란 남자는 왜 이런 시체 때문에 아내가 죽어야 했던 거냐고 분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미 그것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감정이란 영역을 넘어 자아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
“···구해주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의외로, 자신의 집안에 갑자기 나타나 가족을 기절시킨 그림자 괴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보고도 정세나는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꿈이나 환각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런 착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어둑시니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꿈이라느니 환상이라느니 하는 것은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자들에게만 보이는 것. 안쪽이 텅 비어있는 시체가 이렇게 생생한 꿈을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째서지?>
“그럴 가치 없으니까.”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 계속 집 안에 갇혀있었기에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그저 존재하고 있기에 존재하는 것뿐, 아무런 의미도 의지도 없다. 혈통능력 또한 완전히 전무. 온갖 색들이 섞여 새까맣게 침전되어버린 검정이었다.
하지만 전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둑시니는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해졌다면, 자신 또한 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주는 게 인간의 법도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자신이 이렇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된 것도 인간으로서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는 죽은 눈을 한 정세나에게 말했다.
<그건 다르군. 너에게는 가치가 있다.>
시답잖은 격려의 말이 아니었다. 그저 너무나 잘못된 사실이기에 정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한 냉정한 목소리였다.
<이 주변의 인간 수천 수만 명보다, 너 하나의 가치가 월등하게 크다. 너만큼 완전히 텅 비어 어둠과 융화할 수 있는 인간은 온 세상을 뒤져도 쉽게 나오지 않을 테니까.>
어둑시니의 능력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체질을 비롯해 어둠에 완전히 홀릴 수 있는 성향과 자아에 걸릴 부하를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능력. 과장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온 세상을 통틀어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인 것이다.
그 말에 정세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쓸모 따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네 삶이 요만큼도 빛이 존재하지 않는, 절망뿐인 인생이었기에 의미가 있다고. 이런 자신을 가치가 있다 평가해주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긍정하고 필요로 해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단 한 번도 경험이 없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상대가 방금 만난 수상쩍은 그림자 괴물이라 해도 상관없이, 그저 그 기대에 응하고 싶었다.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가져가.”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여하튼 그녀는 한참 전부터 살아있다는 실감 자체를 가지지 못했으므로. 하지만 점점 흩어져가고 있는 어둑시니는 우습다는 듯 껄껄 웃었다.
<내가 왜 너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지?>
“···뭐?”
<내게 죽음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이 어둠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어둑시니라는 법칙의 존속이다. 네가 내 의지를, 내 능력을, 내 존재를 잇는 거다. 그것으로 내 어둠은 더 이상 흩어지는 일 없이 불멸이 된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서는 도리에 어긋난다.
어머니를 죽이고서 태어난 자신은, 결코 제대로 살아있어선 안 된다. 의지 따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세나의 정신에 내재화된 당연한 논리였다. 껄껄 웃는 그림자는 그러한 걱정조차 간단하게 날려버렸다.
<잘은 모르겠다만, 그것은 인간의 법도겠지.>
“그러면···.”
<인간이 아니게 되면 된다. 나를 죽이고 내 후계로서 다시 태어나는 거다. 그 뒤엔 요괴의 법도를 따르도록 해라.>
인간의 도리, 인간의 도덕이란 것은 분명 인간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만, 애초에 인간에서 벗어나버리면 그것 뿐. 논리 자체는 그야말로 타당했다. 그렇다면 부모와 같은 이를 죽이며 태어난 요괴는 어떠한 도리를 따라야 하는가.
<선대보다 강대해지기 위해 온 노력을 다할 뿐.>
체면을 차리는 인간과는 다르다. 힘만을 과시하는 들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아까 전부터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정세나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그녀가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여기서 완전히 끝인 걸까.”
<그렇겠지. 나를 이어받는다면 네 존재는 이미 인외. 더 이상 인간 세상의 겉무대에선 살아갈 수 없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는 네 목숨을 취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군.>
그것으로 마지막 걱정 또한 사라졌다. 눈을 감은 정세나는, 그저 스며들어오는 어둠을 몸에 받아들였다. 방 안을 한가득 채운 끈적한 그림자가 조금씩 정세나의 본질을 헤집어, 텅 비어있던 그녀를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에게 멍자국 따위는 사라져있었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그림자는 조용히 새로운 주인에게 복속했다. 난생 처음 혼자 걸어나가본 바깥은 밤인데도 밝아서 불편했다. 그래서 그림자를 뭉쳐 새까만 빵모자를 만들었다. 눈가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이 자그마한 안심을 주었다.
그 뒤에는 어둑시니의 능력과 지식을 얻어, 어둑시니의 의사에 따라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애초에 정세나에겐 그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선대의 뜻을 따라 다른 대요괴들을 사냥하기 위한 힘을 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둑시니는 여러 가지 부모로서의 가르침을 남겨주었다. 어둑시니가 대요괴로서 가지고 있던 지식들을 소화하며, 정세나는 점점 자신의 모습을 꾸며나갔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그러면서도 결코 의중을 간파하지 못하게 웃는다. 비장의 수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얕보이지 않게 힘을 과시해둔다.
모두 언젠가 전대 어둑시니를 넘어서는 강대한 존재로 거듭난다는, 요괴로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한 준비였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의무이고, 텅 빈 공동에 외부의 무언가가 섞여들어온 것일 뿐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정세나의 의사라는 것은 아직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분명 이렇게 공허한 자신이기에, 그림자 속에서 마구잡이로 섞인 혼탁한 본능들이 몇 번이고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협력자는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그러면서도 결코 의중을 간파하지 못하게 웃는다. 비장의 수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얕보이지 않게 힘을 과시해둔다. 자신처럼 겉껍데기만 얄팍하게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그냥 태생부터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자기 의사에 주변 상황을 짜맞춤, 그때그때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는 인간. 단지 그러고 싶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요소들을 끌어모아 대요괴인 요호를 기어이 토벌해낸,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류의 인간.
자신의 의지 같은 것을 가지지 못하고 시체처럼 살아왔던 정세나에게, 그것은 분통이 터지도록 질투가 나는 일이었다. 어째서 저런 인간이 존재하는 건지 따져들고 싶을 만큼.
“슬슬 한계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나타나 꺼낸 말이 저거다. 자신이 그림자 속의 목소리에 역으로 침식당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읽어냈다. 자신에게는 간단한 일이라는 것처럼.
그것이 화가 났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화가 났다는 것 자체가, 텅 비어있던 자신 안에 강한 의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라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화가 났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송한솔은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던 괴성들을 당연하다는 듯 지워주었다.
“한 번 애들 꺼내봐. 능력에 이상은 없나.”
순식간에 머릿속이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근묵자흑으로 수족들을 제어하는 데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 사실에 정세나는 한 번 더 이빨을 꽉 깨물었다. 분명 이 남자는, 세상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거다.
“···여기서 바로 꺼내보라고? 그랬다가 내가 그대로 오빠를 먹어치울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은 안 하나봐.”
“안 해. 못 할 테니까.”
송한솔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이 방아쇠였다. 편의점 앞이라는 위치 따위 상관없었다. 정세나의 발아래에 깔린 그림자에서 거대한 늑대의 머리가 튀어올라 송한솔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하지만 송한솔은 아무렇지 않게 피해냈다.
“아니. 왜 도와줘도 난리야?”
눈썹을 찌푸린 송한솔이 의자 뒤쪽에 둥둥 떠있는 채 말했다. 단순히 놀래키기 위해 한 공격이 아니었다. 정말로 다리 한 짝 정도는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미리 읽어내지 않는 이상 제때 반응할 수 없는 거리와 속도였고.
그럼에도 송한솔은 공격을 받았다기보단, 단지 어린애 짜증을 받아주는 듯한 태도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인 송한솔은, 파라솔의 테이블 위에 툭 카드 한 장을 던져 떨어뜨렸다.
“어차피 아지트에서 변변한 것도 안 먹고 있겠지. 편하게 써. 학생한테는 좀 안 어울리는 액수가 들어있어서.”
여유가 넘치는 얼굴이었다. 정말, 대요괴의 힘을 이어받고도 생활비와 식비에 허덕이는 자신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비교되는 인간이었다. 송한솔을 눈앞에 두고서 정세나는 간신히 자신이 자신을 대단히 싫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무감정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비참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송한솔 같은 인간을 보고, 초조해져서 평정을 잃어버릴 만큼.
하지만 더 이상 분노는 없었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요괴에게는 요괴의 방식이 있다. 저렇게 빛으로 반짝거리고 대단한 인간도, 일단 그림자 속에 집어삼키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둠의, 어둑시니의 방식이었다.
우선은 왜 혼자 그렇게 뭐든지 할 줄 아는 거냐고 몇 시간이고 화풀이를 하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능력을 모두 주인을 위해 쓰라고 맹세시키는 것이다. 요호와의 싸움 때에 같이 있었던 동료를 꼬드겨보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아지트에서 해줬던 요리를 다시 먹어보고 싶단 생각도, 다른 대요괴와 싸울 때도 옆에 있어준다면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도, 어둑시니로서 이외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을 도와줬으면 한다는 생각도. 전부 저 인간을 그림자 안에 쑤셔넣어 심복으로 만들면 끝나는 이야기였다.
받아든 카드를 똑 부러뜨린 정세나가 해맑게 웃었다.
“이런 거 필요 없어.”
그 순간 정세나는 자신이 가진 어둑시니의 능력이 하나의 벽을 깨부쉈다는 걸 느꼈다. 새벽의 길거리 바닥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고, 정세나의 한쪽 팔엔 그림자가 휩싸여 갑주와 검을 형성했다. 전대 검성의 변이체. 흑귀의 무장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등 뒤에는 날개가 피어나고, 허리에서는 촉수인지 꼬리인지 모를 새까만 무언가가 흐느적거리며 나타났다. 혈통능력의 발동을 봉인하는 묵계를 포기하고, 천변만화의 그림자를 끌어올려 자신의 몸과 일체화시킨다.
이것이 대요괴 어둑시니가 자랑하는 본래의 전투법. 품고 있는 심복의 특성들을 그림자에 투영해, 어둑시니 스스로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 수십 개가 넘는 요괴들의 특징을 그 몸을 먹물 삼아 그려내는, 걸어다니는 백귀야행이었다.
“오빠를 가질래. 지금. 여기서.”
이형의 그림자들을 몸에 두른 그녀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것은 처음으로 생겨난, 정세나의 순수한 의사였다.
< 현묵지화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