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탁병탄 (1) >
차대운의 우도할계는 결점이랄 것이 없는 능력이었다.
공격력이란 측면에서는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우도 한 자루만 가지고서도 웬만한 기사들은 일격에 양단하는 차대운이다. 그런 그가 수백 자루의 칼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과 같으니, 우도할계의 영역 안에선 얼마나 날고 기는 강자라도 전방위에서 몰아치는 참격의 폭격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에만 치중되어있는 능력도 아니었다. 일단 신검의 결계를 펴기만 하면 다가가기만 해도 조각조각이 나버리니 접근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표현이 이만큼이나 잘 들어맞는 능력도 없었다.
기습이나 요행수가 통용될 만한 양반도 아니고, 숫자로 밀어붙여봤자 정세나 꼴이 날 뿐이었다. 순수하게 차대운보다 강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공략해볼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없다는 것과 거의 없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뜻이었다.
‘계산이 안 섰으면 데려오지도 않았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방법만 해도 두세 가지는 있었다. 나는 순간이동으로 차대운과 거리를 벌리며 금예린의 옆쪽에 툭 내려섰다. 금예린의 등 뒤에는 여러 복잡한 문양이 얽혀 만들어진 꼬리 형태의 빛나는 술식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렀다. 저것이야말로 대요괴 요호의 정수를 가공해 만들어낸 유해 무기, 호선도(狐仙圖)였다. 대요괴의 유해쯤 되면 사용할 수 있는 적합자를 찾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금예린에게 한해서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요호가 자신에게 호환되도록 조정한 주술사이기에.
“어떻게 성공했네? 전이.”
“장로님이 옆에서 거들어주셔서 겨우··· 일까요.”
금예린이 미묘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유해 무기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해내는 능력은 별개. 꼬리 안에 새겨진 요호의 술식을 끄집어내 재구성하는 건 오로지 금예린의 몫이었다. 무기의 성능에 조금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역량에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따라가는 게 이상한 거지.’
하지만 아무리 금양호의 보조를 받았다고 해도 금예린은 멋지게 전이를 성공시켰다. 이건 재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지금 이 상황이 만들어졌다. 대뜸 전이당한 차대운은 조용히 이쪽의 전력을 가늠하며 말했다.
“5대 1이라···. 불리한 싸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물론 포위당한 차대운 쪽이 불리하단 말은 아니었다. 이만한 승부수를 걸어놓고 고작 다섯 명이서 싸워도 괜찮겠냐는 뜻이었다. 갑자기 본 적 없는 장소로 납치당했음에도 차대운은 전혀 냉정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피식 웃었다.
“면면을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야. 온몸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그 강맹한 투기···. 그때처럼 괴상한 가면은 쓰지 않았지만 알겠다. 우리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지?”
차대운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 건 대검을 들고 있는 유경명이었다. 유경명은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투기를 더욱 갈무리했다. 팔짱을 낀 정세나가 유경명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야, 구면?”
“구면이라고 해야 하나. 죽이려다 실패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요호 입장에서 이무기의 오른팔인 차대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워두고 싶은 존재였을 것이다. 호환을 보낸 것뿐만 아니라 온갖 모략과 저주를 동원해 제거하려 들었겠지. 하지만 차대운은 지금 멀쩡하게 살아있다.
“그때는 상당히 폐를 끼쳤군. 당연히 요괴인 줄만 알았지 설마 좋은 집안 검귀 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척 봐도 사람인걸.”
정세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끼어들었다. 말하는 내용 자체는 타당했지만, 몸에 어둑시니를 이어받은 그녀가 말하니 조금 설득력이 없었다. 유경명이 콧숨을 쉬며 대답했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다.”
이내 그가 대검을 등 뒤로 치켜들었다. 호신강기를 한계까지 꽉꽉 눌러담은 몸은 당장에라도 포탄처럼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지형째로 차대운을 분쇄한다. 유경명의 주특기인 초전박살의 전술이었다.
유경명 정도 되는 초일류의 산군이 전력으로 돌진하는 걸 맞받아치려면, 필연적으로 몸 안의 마력을 계속해 활성화하며 회전시키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격하게 움직이는 도중보다, 지금처럼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 않으면서 회전하는 마력의 평형을 유지하는 쪽이 훨씬 더 고난한 일이었다.
이를 테면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마음껏 페달을 밟으며 씽씽 달리는 쪽보다도, 느릿한 속도로 가고 있을 때 오히려 밸런스를 잡기 까다로운 것이다. 이쪽을 떠보느라 먼저 행동에 나서지 않을 속셈이라면, 그 평형이 조금이라도 기울어지는 순간 폭발해나간 유경명이 투기검을 때려박는다.
그리고 가만히 서있는 차대운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동료에게 말해주지 않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차대엽은 몸 안에서 마력의 경로를 두 개로 나눠 따로따로 회전시킬 수 있을 만큼 체내의 조율과 제어에 뛰어났다. 자전거로 비유하면 외발자전거를 타며 묘기를 부리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차대엽을 지도해준 게 바로 차대운이었다.
머리를 긁적인 나는 유경명에게 조용히 말했다.
“기회를 엿보려 해도 의미 없어. 저 인간 상대로는.”
“···그런가. 하긴 틈을 보여줄 남자가 아니겠지.”
내 말에 납득한 유경명이 대검을 천천히 땅바닥에 내렸다.
그리고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콰앙! 눈 깜짝할 사이 유경명은 차대운의 코앞에 당도해, 아래쪽에서 대검을 올려치고 있었다. 판단을 끝냈다면 즉시 행동한다. 빈틈을 보일 상대가 아니라면 억지로 비틀어 열겠단 것이다.
“힘자랑이야? 이런 건 별로 취향이 아닌데.”
차대운이 대검을 튕겨내며 말했다. 눈으로 쫓기도 힘든 한 순간, 차대운의 손에는 이미 우도가 쥐어져있었다. 정세나의 그림자가 퍼져나가 땅바닥을 뒤덮은 건 그 뒤의 일이었다. 손바닥으로 지면을 짚고 있는 정세나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너무 빨라. 못 막았어···.”
일정 범위 안에서 혈통능력을 발동하지 못하게 하는 정세나의 묵계는 그것만으로도 검귀의 끔찍한 천적이었다. 어찌 됐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신검을 발현시키지 못하면 그 시점에서 검귀의 전투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차대운은 정세나의 그 능력을 이미 한 번 검성의 성소에서 경험해보았다. 다른 누구보다 정세나를 최우선으로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림자를 모아 묵계를 전개하는 동안 차대운이 그녀를 가만히 놔둘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기에 묵계를 전개할 타이밍은 유경명이 차대운에게 돌진해 움직임을 막는 한 순간밖에 없었다. 요행으로 유경명의 대검이 차대운을 그대로 베어버리거나, 요행으로 묵계가 한 발짝 일찍 신검의 발현을 틀어막았다면 좋았겠지만 역시 저 남자를 상대로 요행 따위를 기대하는 건 멍청한 일이었다.
“아니, 이걸로 됐어. 이제 그 자리에서 집중해.”
하지만 나는 전혀 비관하지 않고 정세나를 격려했다. 입발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성공적인 국면이었다.
‘신검을 꺼내는 건 어차피 못 막아.’
원래도 알고는 있었지만 종친회에 따라가서 확신했다. 신검의 능력이 단순해서 그런 건지 그냥 자기 역량인진 모르겠지만, 차대운이 우도를 발현하는 속도는 상대방이 공격을 시작한 뒤 동작에 들어가도 먼저 베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신검 발현은 막지 못했어도 일단 묵계를 전개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설마 유경명에게 일격을 허용하는 걸 감수하고 정세나를 노릴까 걱정했지만, 역시 차대운이라도 저 산군의 공격을 그냥 맞는 건 무리였다.
산군 특유의 호완(虎腕)과 온몸에서 흘러넘치는 규격외의 투기. 유경명이 전력으로 휘두른 대검은 단단한 철문을 찌그러뜨리는 게 아니라 찢어서 날려버릴 수준의 위력이다.
‘몸이 단단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백전연마라 할 수 있는 두 남자의 공방에서는 동작 하나하나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니, 상대를 몰아붙이며 거대한 여파를 일으키는 건 대부분 유경명 쪽이었고, 차대운은 그 힘을 어떻게든 흘려보내며 최소한의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차대운이라도 유경명의 검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귀안을 뜬 차대운은 유경명의 검격 대부분을 완벽한 기술로 흘려냈지만 터져나가는 투기의 여파만으로 압도당했다. 말 그대로 인간 전차였다.
차대운이 이 형국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신검합일을 발동하는 것. 굳이 우도할계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신검합일을 한다면 그것만으로 유경명과 정면에서 맞싸움할 수 있을 만큼 전체적인 능력이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바닥은 어둑시니의 그림자로 새까맣게 물들어있었다. 이 또한 대요괴가 가지고 있던 권능. 묵계 안에서는 이미 사용된 혈통능력의 유지는 가능해도 새로운 혈통능력을 더 발동하지는 못한다.
애초에 능력 자체를 쓰기 전에 틀어막는 것. 이것이 우도할계를 공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나는 금양호에게 눈길을 줬다. 금예린 옆에 서있던 노인은 그것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이해해, 기다란 두루마리를 펼치고 합장했다. 그러자 공중에서 네 개의 기둥이 내려와 묵계의 가장자리에 맞추어 반투명한 푸른 막을 형성했다.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가두기 위한 결계였다. 차대운의 공격이라면 몇 번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이 정도 결계 따위 쉽게 찢어버릴 수 있겠지만, 유경명의 맹공에 대응하면서 결계를 부수는 건 아무리 차대운이라도 고생 좀 할 것이다.
신검합일을 한 차대운은 그야 무시무시하지만, 단순히 우도만 들고 싸운다면 그렇게까지 답이 없는 상대도 아니다. 철저히 준비한 다음 끌어들이면 충분히 몰아붙일 수 있다.
“그렇군. 신검합일을 봉인한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만들어진 싸움의 무대에, 차대운은 내가 어떻게 자신에게 승리할 생각인지 대강 파악한 듯 했다. 유경명의 체력은 끝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고,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승리하는 것은 우리들 쪽이었다.
그리고 차대운은 유감이라는 듯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유경명의 등 뒤 저편에 서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시도는 좋았어. 하지만 정보 부족이구나.”
공격을 피하고만 있던 차대운이 우도를 머리 위에 들어올렸다. 날카로운 칼날은 공기를 찢으며 내리쳐진 유경명의 대검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새하얀 검신이 점점 새까맣게 물들고, 쥐고 있는 차대운의 손이 신검과 일체화하기 시작했다.
차대운의 피부가 단단한 금속으로 감싸이며, 눈의 흰자위 또한 검게 물들었다. 머리의 뿔은 비대해져 마치 이야기 속 악마와 같이 솟아올랐다. 그야말로 귀신의 형상이었다.
“저건 진짜 무슨 요괴 같잖아.”
자리에서 집중하던 정세나가 놀라서 눈썹을 찌푸렸다. 금예린과 금양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반면 유경명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야 호환이었던 시절 유경명이 죽이는 걸 포기하고 도망친 차대운은 바로 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검마(劍魔)라고 불리는, 흑룡의 오른팔로서의 차대운.
“꽤 노력한 모양이지만, 봉인 작전은 실패군.”
“그런가 보네···.”
나는 새까맣게 물든 차대운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야 저것은 혈통능력 같은 것이 아니었다. 능력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했다. 탈선자로서 힘을 해방해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그리고 차대운이 쾅 발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우도할계와 같은 원형의 영역이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역의 넓이는 그대로 차대운의 공격 범위였다. 이래서야 차대운을 묵계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펼친 기둥의 결계가 역으로 이쪽을 가둔 꼴이었다.
차대운이 손가락을 까딱이자마자, 수십 개의 참격이 발현해 유경명의 피부를 찢어버렸다. 새빨간 피가 튀어오르며 유경명이 쿵 무릎꿇었다. 이내 차대운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럼 이제 넷이서 덤빌 건가?”
차대운이 보라색 안광을 빛내며 검을 치켜들었다.
< 청탁병탄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