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룡동 (3) >
공터가 정적에 휩싸여 켈록대는 소리만이 들렸다.
자신들이 쏘아낸 송곳에 그대로 직격당한 직인들은 부상을 입었을지언정, 독에 의한 피해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다. 그야 스스로 생성하는 독에는 어느 정도 내성을 갖추고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다. 결코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괴하게 비틀린 몸으로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얼어붙어 아래의 은세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은세연과 같은 거미 혼혈이었기 때문이었다. 발달한 방향성은 다를 지언정 본질적으로 같은 계통의 혈통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눈앞의 은세연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상대인지 순식간에 이해한 것이다.
똑같이 실을 다룬다고 해도, 독이나 점액 따위에 의존하는 저들과 마력사를 예리한 칼날로도 괴뢰의 실로도 쓸 수 있는 은세연과는 술사로서의 격에 몇 단계의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 은세연의 몸을 다루고 있는 건 인형 그 자체인 주검각시의 인격. 인간의 한계를 가볍게 무시했다.
마력사는 보통 손가락 하나에 두 줄 이상을 다루면 합격점으로 취급하고, 다섯 줄 이상을 다룰 수 있다면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타고났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지금 은세연은 한 순간에 수백 가닥의 실을 양손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저런, 저런 건.”
“있을 수 없다···.”
“이상하다. 속임수다!”
웅성대는 적들의 목소리마저 불쾌하게 느껴지는지, 차갑게 정색한 은세연이 손을 오른쪽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리자 씨이잉,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건물 한 채가 베여서 무너져내렸다. 거기 달라붙어있던 남자들이 잔해에 파묻혔다.
“속임수인지 아닌지는 그 몸으로 느끼면 돼.”
그들은 우리를 자신들의 사냥터에 가두고 천천히 요리해먹을 생각이었겟지만, 이렇게 사방이 막혀있는 전장은 마력사를 다루는 은세연에게 있어 절호의 싸움터였다. 그야 탁 트인 공간과 달리 마력사를 걸어둘 만한 곳이 넘쳐나는 것이다.
마력사의 공간 장악이 시작되면 상대는 섣불리 움직일 수조차 없다. 속도를 내는 동작을 취했다간 까딱하면 보이지 않는 실에 사지나 목이 뎅겅 잘려나가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여기저기 뱉어둔다, 같은 저들의 유치한 장난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 칼날의 지옥이었다.
은세연이 감히 주인을 위협한 적들을 공포 속에서 갖고 놀 듯이 양손을 하늘하늘 손짓하며 움직이자, 건물의 벽에 붙어 있던 직인들 중 하나가 불안을 참지 못하고 공중으로 뛰었다. 비교적 안전해보이는 맞은편 건물로 옮겨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손질되는 재료처럼 공중에 떠있던 그대로 깔끔하게 몇 등분으로 잘려 투둑투둑 핏물과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살짝 비치는 마력사와, 그보다 더욱 색적하기 힘든 마력사를 교묘하게 섞어둔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지!”
“아직 다치게 하지도 않았는데!”
“너도 우리들이 살아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건가!”
건물에 달라붙어있는 녀석들은 헛소리를 지껄이며 은세연을 매도했지만, 그녀는 조용히 포위를 마력사를 끊고 다시 걸고를 반복하며 도망칠 수 없는 포위망을 좁혀갈 뿐이었다. 마지막 질문의 대답은 이걸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듯.
그러자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파악한 그들은 입을 가로로 쩍 벌리고 아까의 거미줄보다 훨씬 흐물흐물하고 끈적한 무언가를 바닥을 향해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최고 농도로 정제해 분비한, 생명력까지 끌어다 쓴 독액이었다.
십수 명이 저 기세로 독액을 질질 뿜어대 바닥을 채울 정도로 이 자리를 덮으면, 그것만으로도 거미줄로 휩싸인 이 장소는 독기가 넘실대는 사지가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인 전략이지만, 같이 독액에 노출됐을 때 먼저 쓰러지는 건 내성이 있는 그들보다 우리 쪽이었다.
하지만 은세연은 요만큼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한 손으로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 듯한 새빨간 검을 들고 이쪽으로 퍼져오는 독액의 물결 끝에 가볍게 찔렀다.
저것이야말로 주검각시의 고유 무장인 주검이었다. 저 칼날에 닿으면 살갗은 썩어들고, 풀은 시들어 흩어지고, 쇠는 녹슬어 비틀린다. 저것은 단순히 산성으로 이루어진 독 따위가 아니라, 접촉한 주문마저 썩어들게 하는 부식이었다.
새빨간 칼날에서 흘러나와 독액의 흐름을 타고 흘러간 새까만 기운은, 그 독액을 뱉어내고 있는 기괴한 혼혈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목에 부식의 기운이 침투해 호흡조차 힘들다는 듯이 켁켁대던 누군가는 건물 벽에서 떨어졌다.
첨벙! 하며 그의 몸 절반이 빠져버린 건 건물 위에서 모두와 함께 흘려대며 만든 독액의 웅덩이였다. 추락한 뒤 강렬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이윽고 움직임을 멈춘 채 새까맣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썩어서 부스러기가 되었다.
“끄에에에에! 끄에에에에!”
“끄에에에에에에!”
건물 위에서 그 참상을 본 이들은 죽은 자의 고통을 나누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기행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그 몸을 물어뜯으며 서로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아무리 나라도 비위가 상하는 광경이었기에 살짝 고개를 돌리며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은세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서 그 자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마지막 한 사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피투성이가 된 자가 이쪽을 휙 쳐다보았다. 원래부터 인간이랑은 반 걸음쯤 동떨어져있는 생김새였지만 지금의 얼굴은 말 그대로 미쳐버린 괴물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얼굴의 가운데 부분에서 뭔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이익! 그의 살가죽이 천조각처럼 찢어지며, 그 안에 들어있었다는 것이 말이 안 될 만큼 거대한 거미가 튀어나왔다. 온몸에서 연보라색의 연기를 내뿜는 그것은, 두 건물에 거대한 다리를 걸치고 주변에 있는 은세연의 마력사를 전부 녹여 없애버렸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탈선했다···.”
애초부터 일족 전체가 평범한 혼혈에서 상당히 벗어나 기형으로 변해있는 상태였으니, 갑자기 탈선자가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다고 할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의아한 건 탈선하기 전의 수준에 비해 풍기는 위압이 너무 강대하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잡아먹은 게 뭔가 영향이라도 미친 건가?’
무엇보다 저 온몸에서 뿜어내고 있는 독기 비슷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은세연이 전개한 마력사를 녹인 것을 보면 아마도 마력 그 자체에 작용해 분해하는 성질일 것이다. 짙고 두터운 마력이라면 얼마간 버티겠지만 거의 모든 전술을 아주 얇은 마력사에 의존하는 은세연과는 상성이 너무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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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세연은 개의치 않고 손끝에서 수많은 마력사를 다시 뻗어내 탈선자 거미의 거체를 구속한 그대로 절단내 버리려고 했고, 피부를 찢고 들어간 실이 푸른 체액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 뿐, 거대한 거미가 포효하자 은세연이 한 번 더 짜낸 마력사들 또한 독기에 녹아서 끊겨버렸다.
심지어 거미의 피부는 조금씩 재생하기 시작했다. 주변은 끈적하게 달라붙는 거미줄로 칭칭 감겨 도망치는 데에도 불편이 따랐다. 거미의 눈이 은세연을 포착하고, 그대로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두두두 건물을 박차고 달려왔다.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다. 은세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끈질긴 것도 거기까지 해둬.”
그리고 눈앞에 작은 불꽃이 튀었다.
사슴을 닮은 뿔은 더욱 날카로워진 채 붉게 물들고, 그 뺨에는 새빨간 비늘이 돋아났다. 다정하고 유순했던 표정에는 오직 적을 배제하기 위한 냉정함만이 남아있었다. 불을 휘감은 주하리가 살짝 어루만지듯 거미의 독니에 손을 올렸다.
다음 순간, 탈선자 거미의 거대한 몸 전체가 동시에 불길에 휩싸인 뒤 모든 수분을 잃고서 새까맣게 그을려졌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커다란 불꽃이 피어났는데 다른 곳에 불이 옮겨 붙거나 이쪽이 열기에 화상을 입는 일은 없었다.
주하리가 무표정한 채 손을 휙 내젓자, 꽃잎처럼 예쁜 새빨간 불꽃이 위쪽으로 휘날리며 주위를 덮고 있던 거미줄을 깔끔하게 녹여버렸다. 이내 거미줄로 격리된 공간 바깥에서 떡고물을 얻어먹으려 대기하고 있던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완전히 그들은 완전히 말라붙어 꼬아진 초대형 거미의 그을린 시체와, 불꽃을 휘감은 채 무표정하게 자신들을 바라보는 주하리를 보더니 순식간에 저 멀리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생존본능이 누구보다 민감하게 발달된 이들이었다.
조용히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는 주하리를 보며, 인형 은세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친구가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는 용기사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건 싫었던 것이다. 자신이 약해서 이렇게 됐다는 듯 자책하는 은세연에게 주하리가 말했다.
“내가 있어서 다행이지.”
차가운 인상을 하고 있는 주하리의 얼굴은 아주 약간이지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 그 표정에 은세연은 물론 나 또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의 다정다감한 반장 주하리로서 계속해서 생활해온 결과, 본래의 모습일 때도 조금이나마 감정을 보일 수 있게 된 것일까. 은세연이 주하리를 안았다.
뻗어나간 마력사가 주하리의 내면에 매듭을 묶고, 날카로워진 뿔과 뺨의 비늘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한숨을 쉬자, 그녀는 평소의 주하리로 돌아와있었다.
사람들이 떠나간 주변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이제 느긋하게 흑룡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온몸의 감각이 쭈뼛 솟아오르며 경보를 울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영문을 모르는 채 급히 고개를 돌렸다.
“잘도 태웠군. 냄새가 고약한데.”
그곳에선 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서있었는지 모를 새까만 셔츠의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바닥에 쓰러진 거대 거미의 유해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서 꿈틀대지조차 않고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거미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다행이야. 이런 놈이 탈선자가 돼서 동포랍시고 들어오면 짜증이 나니까. 내가 죽여버리면 분위기가 싸해지거든. 약한 놈이 강한 놈을 때리면 용감한 반항이지만,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때리면 학대라 하잖냐. 나도 반항 좀 하고 싶은데.”
주하리를 껴안고 있는 은세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 주하리는 아직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인데도 어깨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몸에서 흐르는 마력 따위를 느끼지 못하는 나인데도, 이 남자가 재해 못지 않은 위험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손가락에서 꽁초를 거미의 사체 위에 툭, 내던져 버리더니 아래쪽을 향해 내민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무언가 거대한 파장이 퍼져나간 느낌과 함께, 남자가 버린 담배꽁초와 거대한 거미의 사체가 동시에 사라져있었다.
인형 은세연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턱을 매만지는 남자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뭔가 치사하다고 생각 안 해? 검귀인 차대운 같은 놈은 탈선해도 그렇게 삐까번쩍 멋있는 모습인데, 방금 같은 녀석은 완전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괴물이니.”
“···흑룡.”
“아니, 그 별명은 안 좋아해. 이무기라고 불러달라고.”
그리고 내 어깨 위에 사내의 팔이 얹어진 감각이 느껴졌다. 한 박자 늦게, 눈앞에서 흑룡이 사라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 옆에서 허리를 숙이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추고 움직인 듯한 불가사의한 기동이었다.
만전 상태인 대요괴가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에 서있었다. 요호 토벌을 시도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위압감. 마력의 크기니 뭐니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로서의 순수한 강함이 내 정신이 찌릿거릴 만큼 전해져왔다.
“그래서 꼬맹아, 내 오른팔을 어쨌다고?”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흑룡이 담담히 물었다.
< 흑룡동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