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파경 (1) >
날개 달린 섬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일정 범위의 공역 안에서 천천히 위치를 바꾸며 부유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귀소 본능을 지니고 있는 날개 달린 섬 출신 백익이 아니면 위치를 특정하는 것부터가 고생이었다.
“하지만 괜찮겠나? 문전박대를 당할 거라 생각하는데. 마을엔 이유 없이 외부인을 들여선 안 된단 규율이 있으니.”
“괜찮아. 그것보다 힘드니까 좀 바꿔줘라.”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진소란에게 말했다. 내가 낑낑대며 안아들고 있는 건 차대엽이었다. 진소란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섬의 위치를 알아낸 것까진 좋았지만, 일단 하늘 위에 떠다니고 있는 것이기에 도착하려면 비행을 해야만 했다.
나는 문제가 없었다. 염동력을 이용해 마음대로 공중에 뜰 수 있었으니까. 세한기전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자기 몸을 염력으로 띄운 채 유지하려고 고생했던 것 같은데 일취월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소란도 당연히 비행이 가능했다.
그야 백익 혼혈이니 날개를 완전히 전개하면 마력을 쓰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차대엽이었다. 이 놈은 그냥 땅을 박차는 것만으로 날아가는 거랑 비슷한 수준의 도약을 할 수 있는 괴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부에 방출한 마력을 능숙하게 형태로 만들어 제어할 수 있는 유매나 자세빈 같은 마법사 타입이라면 순수하게 마력의 힘만으로 비행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차대엽은 어디까지나 회전시킨 마력을 전부 신체 강화에 돌리는 타입이었다.
“면목이 없네.”
내가 들고 있던 짐에서 진소란의 짐으로 바뀐 차대엽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중에는 차대엽의 신검인 백류의 추진력을 이용해서 어쩌구 하며 잘만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지금의 차대엽은 아직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한 듯 했다.
나는 차대엽의 몸을 들쳐업고 날아오느라 힘들어서 진땀이 흘렀지만, 건네받은 진소란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딱히 완력에 자신있는 타입이 아닌데도 그랬다.
기사를 지망하는 성골 혼혈, 그것도 세한에 입학해 최상위권을 다투는 학생에게 사람 하나 드는 것 정도는 초등학생이 신발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는 수준의 귀찮음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분함과 억울함에 땡기는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부터 떠넘길걸···.’
그리고 날개 달린 섬에 어느 정도 가까이 접근하자 진소란이 기묘한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다. 세한기전의 입학시험 때 쳐져있던 것과 같았다. 외부인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감각과 인식을 혼란시키는 결계가 주변에 쳐져있는 것이다.
“내 뒤에 꼭 붙어서 따라와.”
진소란은 눈을 감고 그저 본능에 의지해 비행했고, 성공적으로 날개 달린 섬의 외곽에 착지했다. 나야 마력을 아예 느끼질 못하니 그냥 보이는 대로 날아왔을 뿐이었다.
차대엽은 바닥에 발을 붙이니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야 까마득한 상공에서 친구한테 들려있는데 팔 아프다 후들대고 있으면 솔직히 나라도 불안했을 것이다.
불안한 수준이 아니라 이 녀석 못 믿겠다고, 제발 땅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난리를 피웠겠지. 아무리 검귀라고 해도 그만한 높이에서 떨어지면 장난으론 안 끝나니까. 그런데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서 참고 있던 차대엽의 담력이 대단했다.
“정문은 조금 걸어가야 나온다. 일단 내가 살던 집에 와서 쉬겠나? 그러고 보니 남이 집안에 오는 건 처음이군.”
진소란이 아주 살짝 들뜬 태도로 앞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턱을 매만졌다. 진소란은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게 처음이란 게 아니라, 집에 남이 오는 것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진소란의 가족. 마을에 있는 백익들조차도 진소란의 거처에 발을 들인 적이 없다. 그야 겉으로는 특별한 존재인 흑익이 사는 곳에 가볍게 출입할 수는 없다 뭐다 하며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놨겠지. 진소란은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서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아니, 정말로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
진소란은 성격이 고지식하고 꽉 막혔을 지언정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다. 진짜 인간이 미련해서 답답하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 미련한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형편 좋은 타협을 거부하는 부류에 속했다.
그런 그녀가 마을 전체가 자신을 터부시하고 배척하는 분위기를 전혀 읽어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건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진소란은 아마 못본 척을 한 것이다.
특별한 존재인 흑익이니 하는 칭송은 전부 비웃음 섞인 조롱일 뿐이고, 사람들은 그저 자신을 싫어할 뿐이라는 걸.
고개를 돌리면 정답이 바로 눈앞에 존재하는데도, 이를 악물고 못본 척하며 버텨왔다. 진소란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고지식한 성격으로 자라난 것은,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도 진소란이 특별하게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의 필요 속에서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져, 가족이 아닌 자들에게 가족 이상의 사랑을 받는 금예린은 진소란에게 있어서 보기만 해도 열등감이 느껴지는 존재겠지.
‘금예린도 진소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 테고.’
그야 여우누이의 의식을 이용해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원래대로라면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야 했을 금예린을 잡아먹었다 자신이 잡아먹었다 생각하는 금예린은 태생적으로 완벽한 돌연변이인 진소란에게 여러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금예린도 데리고 올 걸 그랬나봐.”
“뭐라고? 그 녀석이 갑자기 왜 나오는 건가.”
“허구한 날 둘이서 티격태격 하니까. 그 뭐냐, 밤에 진실게임 같은 거라도 하면 좀 사이가 좋아질지도 모르잖아.”
“언제나 저쪽에서 시비를 거는 거다!”
진소란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옆에서 걷는 차대엽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중에 떠있는 마을에 이런 푸른 숲이 조성되어있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무를 헤치면서 걷다 보니 자그마한 오두막이 나왔다.
아래로 늘어진 천을 걷어내고 오두막 안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생활하는 데에 있어 필요 최저한의 물건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책장이나 가구 따윈 물론 그 흔한 책상과 의자 하나 없다. 집이라기보단 임시 거처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인 차대엽마저 이렇게까지 아무 것도 없는 집은 본 적이 없는 듯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진소란은 아무런 이질감도 없다는 듯 기지개를 쭉 폈다.
“음, 역시 집에 돌아오니 안심이 되는군.”
그리고 진소란이 한쪽 벽에 서서 똑바로 섰다. 손님이니까 여기 앉으라느니 마실 걸 내오겠다느니 하는 말은 없었다.
집에 의자가 없어서, 찻잔이 없어서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집에 들여본 적이 없기에, 손님이 왔을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발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내 진소란은 벽에 걸려있던 투박한 목검을 손에 쥐었다.
주변의 튼튼한 나뭇가지를 스스로 깎아서 만든 듯한 투박한 검이었다. 몇 번이고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다시 만들어 교체했겠지. 그리고 진소란이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형태를 잡는 훈련인가?”
“그런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집에 있을 때는 이걸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조금 쉬고서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다시금 중단 자세를 잡은 진소란이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차대엽도 눈치챈 것 같지만, 그건 검술 훈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아무런 생각도 없이 빠르게 휘두를 뿐. 굳이 따지면 정신통일을 위한 명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저것이야말로 진소란이 어릴 적부터 해온 유일한 검술 훈련이었다. 진소란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언젠가 세상을 위해 헌신해야 할 존재라며, 전설 속의 흑익으로서 마을 사람들에게 경외받던 아이. 진소란은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진소란의 집에는 그 흔한 책 하나 꽂혀있지 않았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어린애 혼자 체계적인 검술 같은 것을 알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검을 쥔 진소란은 미련한 방법을 궁구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휘두를 수 있을지. 그것 하나만을 지표로 삼아 스스로 몇 번이고 자세를 교정하며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휘두르고, 휘두르고, 휘두르고, 더욱 빠르게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지치면 쓰러져서 쉬고, 배가 고프면 공양이란 이름으로 창고에 던져준 식량을 먹는다. 일어나면 할 일이 없으니 다시 목검을 휘두른다. 세한에 입학하기 전 진소란의 삶은 정말 그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면 자신이 처해있는 비참함을 이해해버리게 된다. 그렇기에 무념무상의 상태로 오로지 검만을 휘둘러왔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세상에 날개를 펴고 나갔을 때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하지만 꼬맹이 혼자 이렇게 하면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낸 엉터리 자세다. 그런 게 실전에서 통용될 리가 없었고 실제로 제대로 기술을 지도받을 때까지 진소란은 단순히 빠르기만 할 뿐인 손쉬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의미는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조잡한 목검을 휘두르는 것만을 반복해온 그녀이기에, 진소란은 검을 휘두를 때 완벽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그 차대운조차 놀랄 만큼의 순간 집중력으로 최속의 일격에 도달할 수 있다.
차대운 또한 몽롱해진 눈으로 완전히 집중에 들어간 진소란을 보고 검사로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팔짱을 낀 채 서서 진소란의 그 무의미한 반복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근육통으로 아파하는 팔을 주물렀다. 역시 몸으로 힘쓰는 일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소란의 반복 동작은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검을 휙 휘두르고, 이마의 땀을 닦은 진소란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차대엽은 그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질리지도 않고 몇 시간을 계속 흥미로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내 진소란은 마을에 갈 때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에게 어울리도록 흑색 일색으로 통일되어있는 복장이었다. 마을의 백익 혼혈들이 모두 더러운 걸 싫어하며 새하얀 옷을 입고 지낸다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따돌리는 듯한 옷이었다.
마을의 정문으로 가는 길 진소란은 어딘가 씁쓸한 얼굴이었다. 내가 죽상을 하고 있는 표정에 눈길을 주자, 눈치채여서 부끄럽다는 듯 멋쩍게 웃은 진소란이 머리를 만졌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면 싫어하겠지. 언제까지고 여기 얽매여 있어서야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을 테니. 어쩌면 썩 돌아가라 혼날지도 모르겠어.”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흑익의 전승이라 해봐야 옛날 이야기를 형편에 맞춰서 적당히 꾸며낸 것일 뿐이다. 전승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다고 진소란이 찾아오면 마을에 들여보내주긴커녕 헛소리 말고 꺼지란 내용을 완곡히 돌려서 말하겠지.
‘그렇게까지 진소란이 싫으면 그냥 추방하면 될 텐데.’
어디까지나 고상하고 깔끔한 자신들로 있고 싶다는 거겠지. 진소란은 아직까지도 그런 얄팍한 기만에 의존하며 자신이 미움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다고. 옆에서 보면 참 답답해 죽을 노릇이었다.
‘내 입으로 말해주기도 그렇고.’
진소란이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 이전에, 내 말을 진심으로 믿지도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말 한 마디로 깨질 착각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까워지는 마을의 외벽을 보며 생각했다. 문전박대를 당한다면 당하는 대로 좋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
그리고, 벽의 정문을 바라본 차대엽이 입을 열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그 광경에 나는 한숨을 쉬었고, 진소란은 말조차 잇지 못하고 안색이 새하얘졌다. 마을의 정문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건, 진흙이 뭉쳐서 들끓고 있는 듯한 기괴한 형태의 검붉은 살덩어리였다. 손바닥에 신검을 발현시킨 차대엽이 말했다.
“왜, 마물이 이곳에 있어.”
“···아무래도 첫 번째에 당첨이네.”
나는 허탈해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두억시니가 숨어있는 장소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효파경 (1) > 끝